베스트 라이브

얀붕이는 어릴 때부터 여성혐오증이 있었어.


어머니는 어릴 적 자기를 버리고 다른 곳으로 도망갔고

고모들은 얀붕이에게 구박하기 바빴지. 너 때문에 우리 오빠가, 남동생이 재혼도 못한다고.


유치원에서는 아버지가 미처 못 챙겨줘서 꼬질꼬질한 상태로 다녔고

그래서 같은 유치원에 여자애들은 얀붕이가 다가가면 울거나 도망가기 바빴어.


결국 얀붕이는 여자만 보면 순간 몸이 굳어버리고,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자리에서 벗어나려고 하게 되었어.

여자가 말을 걸 때, 몸에 닿을 때마다 벌레가 기어다니는 감각에 소름이 끼치게 되었거든.



그리고 중학교 때

남중으로 진학하고 나서

얀붕이는 간신히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어.


그리고, 초등학교 때 같이 진학해온 애들 중 몇몇이

얀붕이의 사정을 알면서도 놀리지 않고 같이 놀았거든.


슬슬 얀붕이는 친구들과 게임하는 데 빠졌어.

가끔 옆에 남녀공학 중학교에 다니는 남자애 몇몇과도 게임을 붙었고

하루하루가 즐거워졌지.


유독 남녀공학에 다니는 애 중에서

얀돌이라는 애랑은 호흡이 잘 맞았어.


두발 자유화 학교라서 그런가

목선을 살짝 가릴 듯 드러낼 듯 한 단발에

중성적인 듯한 외모도 좀 거슬렸고

몸에서 찌든 담배냄새도 좀 거슬렸지만


그래도 '야 겜하자' 하고 부르면 'ㅇㅋ 지금 간다' 라고 즉시 답이 오는 게 얘 하나였거든.



"야, 우리 고등학교는 저기 얀챈남고로 갈까?"


어느 날, 같이 게임을 하다가 얀붕이가 물었어.


"지랄 ㅋ. 난 이런저런 사정이 있어서 아카고등학교 가야해. 내가 형 없이 누나만 셋이라서 다 같은 고등학교 가려면 어쩔 수 없다."


피시방 구석, 알바의 눈이 미처 미치지 않는 곳에서 몰래 담배를 피면서, 얀돌이는 씨익 웃었어.


"거기 남녀공학이잖아? 난 여성혐오증 있어서 거기 못 가."


심각하게 다운된 목소리로 얀붕이가 내뱉었어.


"부모님이 가라는 데 어떡하냐... 야 캔커피 콜?"


얀돌이 역시, 한숨을 쉬었지. 그리고 억지로 화제를 돌렸어.




고등학교에 가서도, 둘은 변하지 않았어.

서서히 다른 애들은 공부다 뭐다 해서

둘끼리만 서로 만나게 되었지.


대학교는 서로 같은 곳으로 가자.

공대는 남자가 90퍼가 넘으니까 둘이 갈 수 있을거다.


군대도 같이 동반입대 하면 재밌겠다.

근데 여성혐오증은 면제가 되나 안되나.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 얀붕이에게

얀돌이는 다 들어주며 웃을 뿐이었어.




대학에 가서도

여성혐오증은 낫지 않았어.


신입생 환영회 때

얀붕이는 선배들 중 여자가 두셋 있는 것 보고 기겁해서 빠져나왔고

얀돌이는 얀붕이를 챙겨준다는 명목으로 같이 빠져나왔어.



"하... 여자만 보면 무서워서... 입이 안 떼져..."


얀돌이의 자취방으로 온 얀붕이는

한숨을 내뱉으며 누웠어.

취기 때문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서.


그리고 곧, 이상함을 느꼈어.


얀돌이의 자취방은 처음 와 봤어.

얘는 나랑 같이 입학해서, 여기 온지 얼마 안 되었을 거란 말이야.


그런데 왜

브래지어가 바닥에 있지?


"... 너 여친 생겼냐?"


"아니."


그러면서 얀돌이는 옷을 벗었어.


술 때문에 붉어진 얼굴

목 뒤를 살짝 덮는 단발

그리고 가슴에 꽉 매인 압박붕대.


"...너.... 너... 너 설마..."


얀붕이는 지금 이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어.

중학교 때부터 친했어.

그 동안 얘랑 같이 놀러 간 피시방 횟수가 몇 번인데

목욕탕 가자는 건 계속 거절해와서 그런갑다 했지만


이런 건 전혀 상상하지 못했어.


"하... 우리 부모가 내 위로 누나만 셋 낳아서 말이야, 넷째는 꼭 아들일 거라고 이름을 미리 지어버렸더라고."


압박 붕대를 풀고, 살짝 솟아나온 가슴을 쓸어내며, 얀돌이는 독백을 이어나갔어.


"어... 어...어어..."


얀붕이는 배신감에, 공포증에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방 구석으로 몰렸어. 도망가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로.


"키우는 것도 남자처럼 키웠어, 나만. 아들이 없으니까 아들 역할 좀 해주라고. 중학교 때는 내 주변 사정을 다 알아줘서 아무 말도 안 했지만 말이야..."


그리고 얀돌이는 팬티를 슬쩍 내리기 시작했어.

거기엔 남자의 상징 대신 여자의 모습이 있었지.


"이제까지... 너 나를..."


술기운 때문에 제대로 말조차 잇지 못하는 얀붕이를 보며

얀돌이는 씨익 웃었어.


"그렇게 남자처럼 살려고 했는데, 니 생각만 하면 내가 여자가 되더라."


"......"


"목소리도 허스키하게 바꾸려고 중학교 때부터 담배를 태웠고, 머리도 너무 길면 여자같으니까 단발로 깎았는데, 그래도 너를 생각하면 내가, 내 몸이, 내 정신이 여자가 되더라고."


"...왜... 날 속였..."


얀붕이의 눈에서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어. 너무 거대한 배신감이었거든.


"네가 동성애자였다면, 트랜스젠더 수술을 받아서라도 네 곁에 있으려고 했어. 근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더라."


서서히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얀붕이에게 얀돌이는 다가갔어.


"그러면 어떡해. 이럴 수밖에 없는데. 네가 날 좋아할 일이 없을 거라는 걸 아니까, 근데 난 너 좋아하니까, 어쩔 수 없..."


"아니, 내 눈 앞에서 꺼져."


얀붕이는 큰 용기를 내서, 욕설을 내뱉으며 몸을 일으키고, 얀돌이를 밀친 채, 신발을 챙겨신고

문을 열지 못 했어.


처음 간 남의 집 도어락은 원래 어떻게 여는 지 모르는 법이잖아.


곧, 뒤통수에 묵직한 통증이 닥치고

얀붕이는 쓰러졌어.


"못 도망가. 내가, 네 여성혐오증을 치료해줄게. 여자를, 나를 좋아하게 될 때까지. 쭉."


팔다리에 스륵스륵하는 소리와 케이블타이 묶는 따닥 소리가 조금 이어진 뒤

얀돌이는 다시 옷을 챙겨입은 뒤, 문을 열고 나가면서 말했어.


"몇 달 동안 같이 살아야 하니까, 장 좀 보고 올게. 괜찮아, 네 취향은 충분히 알아."


p.s. 1주일 전에 요청받았는데 이런저런 일이 있어서 이제야 써옴. 미안.


소재 제공 및 과거글 모음 : https://arca.live/b/yandere/83284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