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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 https://arca.live/b/yandere/9864897?p=1










  나보다 한 학년 위의 선배가 있었다.

 

 1학년 때 축제에서 선배를 처음 봤다. 기타에서 나오는 잔잔한 소리와 선배의 포근해지는 목소리. 눈이 부셨다. 눈을 한 번도 감지 않고 멍하니 쳐다봤다. 하늘에서 내려온 여신이 있다면 선배가 아닐까. 사랑이라는 것이 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 날 나는 선배에게 첫눈에 반했다.

 

 그렇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주변에서 인기가 많은 선배와는 다르게 나는 음침한 학생 중 한 명이었으니까. 친구라고는 한 명 밖에 되지 않는 내가 감히 선배에게 말을 건다는 일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림의 떡.

 

 선배를 바라보는 나의 처지였다. 선배에게서 눈을 돌린다는 것은 숨을 쉬지 않는다는 것과 같았다. 한 번 빠지면 다시는 빠져나갈 수 없는 늪. 나는 그 늪에 빠져버린 것이다.

 

 당장에라도 몸을 빼야 하는 늪에서 나는 내 몸을 더욱 늪에 빠져들게 하는 짓을 하고야 말았다.

 

 `안녕하세요.`

 

 난 선배에게 먼저 연락을 했다. 없던 용기를 쥐어짠 결과였다.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자, 나는 그만 포기했다. 저녁 먹을 시간에 보냈음에도 돌아오지 않는 답장이라면 답은 뻔했다.

 

 결국, 의미없는 짓을 했다며 자책하던 나에게 선배의 문자가 도착했다.

 

 `누구야?`

 

 

 

 선배와 나는 거의 매일 연락을 주고받았다. 항상 내가 먼저 연락했고 선배는 답만 했지만 그런데도 만족스러웠다. 행복했다.

 

 선배와 주고받는 연락 자체가 좋았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선배와 연락하는 시간이 항상 기대됐다. 매일이 설렜고, 행복했다.

 

 선배는 이런 내 마음을 알까.

 

 하루라도 선배를 보지 못한다면 죽을 것만 같은 상사병에 빠진 나를 알까.

 

 선배만 보면 얼굴이 빨개지고 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돼버리는 자신이 부끄러운 나를 알까.

 

 선배는 뭐할까, 이럴 때 선배는 어떻게 할까. 자나 깨나 선배 생각뿐인 나를 알아줄까.

 

 선배가 고백받았다던 소문을 들었을 때 일주일 내내 그 생각뿐이었던 나를 알아봐 줄까.

 

 

 로또에 맞은 당첨자들의 기분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정말 기적적으로 선배와 나는 친해질 수 있었다. 세 시간 동안 고민해서건 전화 덕분이었을까. 선배와 나는 말을 놓는 사이까지 가며 무려 한 시간 동안 통화했었다.

 

 나는 더는 다른 애들이 부럽지 않았다. 누구보다 행복하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지금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며 안 하던 운동도 무리해서 하며 그 기쁨을 온몸으로 표출했다. 오죽했으면 한밤중에 동네 한 바퀴를 뛰어다녔을까.

 

 `뭐해?ㅋㅋ`

 

 `자?`

 

 `통화하고 싶당 ㅜㅜ`

 

 `ฅ^•ﻌ•^ฅ`

 

 선배와 나눴던 문자 기록을 보며 밤을 새웠다. 다시 봐도 가슴이 떨리고 두근거렸다. 선배의 자냐는 문자도 설렜고 고양이 이모티콘을 쓰는 선배도 귀여웠다.

 

 내가 늪 속의 보물을 발견한 것 같아 기뻤다. 그렇게 난 더더욱 선배라는 늪에 빠져들었다.

 

 쭉 뻗은 한쪽 팔만이 남겨질 때까지.

 

 

 "누나 이번 주말에 영화 보러 갈래?"

 

 "갑자기?"

 

 ".......그래!! ㅋㅋ"

 

 통화를 끊고 나는 침대에 뛰어들었다.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하늘을 날듯이, 우주까지 가버릴 만큼 기뻤다. 입꼬리가 승천하여 내려가질 않는다. 품속에 베개를 꼭 안고 침대에서 몇 시간 동안이나 뒹굴었다.

 

 너무 기뻐서.

 

 허투루 낸 용기가 아니었다는 게 증명돼서.

 

 설마 하던 기대감에 눈을 붙일 수가 없어서.

 

 늪 속에 잠들어있던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는 보물을 손에 넣을 것만 같아서.

 

 

 

 그래서 더욱 비참해졌다.

 

 

 

 평소 꾸미지도 않던 내가 누나에게 조언이나 받으며 노력하고 있을 무렵, 얼마 없던 내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야, 이거 구라 아니니까 똑똑히 들어."

 

 "왜 뭔데 그래."

 

 실실거리며 묻던 나는 그 뒤에 나온 친구의 말에 온몸이 굳어버렸다.

 

 "....진짜냐? 네가 잘못 들은 건 아니고?"

 

 "잘못 들은 거 아니라고 병신아. 그렇게 망신당하고 싶으면 나가든지 네 마음대로 해."

 

 ".........."

 

 뚝.

 

 통화가 끊겼다.

 

 동시에 내 심장도 멈췄다.

 

 헤실 거리던 얼굴은 눈물 콧물로 범벅돼 있었고, 선배와 만날 때 입을 바지에는 내가 꽉 쥔 탓에 주름이 생겨 있었다.

 

 "더러워, 졌네. 선배, 만나러, 가야 하는, 흐읍, 데."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아무리 부정해봐도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억울했다. 분했다. 왜 내가 이런 음침한 새끼여서. 내가 좀 더 잘난 놈이었으면 선배도 나를 한 번쯤은 뒤돌아봐 줬을 텐데.

 

 선배 친구들과 나를 조롱할 때 선배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선배는 정말 단 한 번도 나를 봐 주지 않았던 걸까.

 

 두근거렸던 심장은 더는 뛰지 않았다.

 

 동네 한 바퀴를 뛰어다니며 활발했던 두 다리는 움직일 기미가 안 보였다.

 

 언제나 헤실 거리던 내 얼굴은 웃질 못했다.

 

 설렜던 가슴은 찢어질 듯이 아팠다.

 

 영영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았던 늪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단번에 빠져나올 수 있었다. 온몸이 산산이 뜯긴 채로.

 

 

 

 ****************

 

 

 

 "뭐? 들켰다고? 아, 씨 재밌을 뻔했는데. 그래, 끊어."

 

 내일 만나면 시원하게 차 줄 생각이었는데. 아까워라. 뭐, 이제 지긋지긋한 문자도, 전화도 안 해도 되니까 편하지 뭐.

 

 "야, 걔 안 왔냐? 그, 앞머리로 눈 덮은 애 말이야. 아프다고? 어......알겠어."

 

 길어봤자 일주일이면 오겠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얀붕이는 보이지 않았다.

 

 "전학.....갔다고? 야, 그럼 말을 해야지.... 아니, 됐어."

 

 매일 오던 문자도 통화도 아무것도 오지 않았다.

 

 그 녀석의 친구에게 가보니 들려오는 건 전학 갔다는 말뿐. 정신이 멍해졌다.

 

 나도 모르게 얀붕이의 문자를 기다린다. 왜 안 오지, 무슨 일 있나? 하며 자기도 모르게 전학 갔다는 사실을 잊고 만다.

 

 순수한 호의를 가진 녀석이 그리웠다. 자꾸만 치근덕대는 남자들이 더러웠다. 외로웠다. 그가 보고 싶었다.

 

 왜 나는 모르고 있었을까.

 

 사라지니 알아버렸다. 얀붕이의 선의만 가득 찬 미소가 보고 싶었다. 순수한 문자 한 통이 그리웠다. 아무것도 모르는 귀여운 얀붕이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흑....흐윽....어디간거야...."

 

 추악한 자신이 너무나 싫어서 나를 정화해줄 얀붕이가 필요해서 그가 없으면 마음이 허전해서 이 구멍을 채워달라고 메꿔달라고 말하고 싶어서.

 

 얀붕이를 찾아 헤맸다.

 

 


 

 ***************

 

 

 


  "선...배?"

 

 한 달이라는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선배의 몸은 눈에 띄게 나빠져 있었다. 초췌해진 몰골에 색을 잃은 몸뚱어리. 오랜만에 만난 선배는 크게 내려온 다크서클이 있는 눈에서 눈물을 흘리며 나의 다리를 붙잡고 울었다.

 

 "죄, 송해여어.... 다시는,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요오... 용서해주세요..."

 

 "선배? 왜, 왜 이러세요! 얼른 일어나요!"

 

 애처럼 훌쩍이며 선배는 무릎을 꿇고 빌었다. 총명했던 눈은 공허했으며 항상 정돈 됐던 머리는 산발이었다.

 

 언제나 완벽했던 선배가 왜 이러는 걸까. 정말 나 때문에 이러는 걸까.

 

 "나, 나 많이 반성했,어요오.... 나느은, 얀붕이, 없이는 못, 살 거 같아요. 제발 용서해주세요오오...."

 

 "....다시는 저를 배신 하지 않을 거라고 맹세할 수 있어요? 다시는 날 조롱하지 않겠다고, 비웃지 않겠다고 하늘에 맹세할 수 있겠어요?"

 

 양팔로 내 한 쪽 다리를 붙잡고 선배는 눈물을 펑펑 쏟으며 나를 올려다 봤다. 내 다리에 몇 번이고 머리를 부딫이며 끄덕였다.

 

 애 마냥 칭얼거리는 선배가 안쓰러웠던 탓일까. 아니면 아직 못 버린 미련 때문이었을까.

 

 나는 이미 한 번 발을 뗐던 늪에 다시 발을 담갔다.

 

 "그럼, 나도 선배를 용서할게요. 선배는 제 거고, 저도 선배 거에요."

 

 "다시는 배신하지 말아요, 누나."

 


 

 

 ****

 

 

 


 "얀붕아, 오늘 얘기 나눴던 여자애는 누구야...? 호, 혹시 나 몰래 누구 만나는 건 아니지?"

 

 가만히 누나를 바라보던 나는 손에 낀 반지를 빼냈다.

 

 침대에 앉아있던 누나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리며 곧바로 내려와 내 다리를 부여잡는다.

 

 "미, 미안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그래도 하, 한 번만 안아주시면 안 돼요? 너무, 너무 불안해서 그래요."

 

 눈부시게 빛났던 선배는 이제 없다.

 

 "헤, 헤헤...."

 

 그 대신 집착과 소유욕으로 끈적이는 어두운 선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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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쓰려니까 힘들다. 말 그대로 내 망상이나 적음. 만화 결말이 너무 불쌍하자나... 난 후편이라도 있을 줄 알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