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처음 이 말을 듣고 이해할 수가 없었다.
과학적인 사실을 부인한다는 뜻이 아니다.
'2차성징이 온다면 사람은 모두 털이 나게 된다'라고 짐짓 나는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티스에게 음모가 자란다?
무언가 목구멍 속을 기어다니며 성대를 꽉막히게(난 시계라 성대가 없지만) 하는 듯한 그러한 말이였다.
'뭐?'
나는 파우스트에게 되물었다.
말했다시피 이해를 청하며 되물은 단어는 아니였다.
단지 '오티스에게 보지털'이라는 문장이 그저 낱말 낱말로서 읽히는 그러한 상태였던 것이다.
"오티스에게 보지털이 자랐다고요. 못 들으셨나요?"
아...
그제서야 나는 일말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사람의 지성은 법칙의 아래에서 이토록 비약하면서도 허물어지는가...
나는 그 사람의 앞이라는 상황조차 잊은 채 닭똥같은 눈물을 또륵또륵 흘리고 싶은 것이다
히말라야 산맥의 소금과 같은 청결함에 때가 탔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 즈음에 도달하자 마음속 어딘가 참을 수 없는 역겨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는 않지만 코트의 오른쪽 손수건 주머니 안에 늘상 라이터를 가지고 다녔다. -어쩌면 일종의 타오르는 청춘을 갈망하는 노인의 불협화음이 아닐까-
이제는 참을 수 없다. 해야한다 무슨 짓이든 하지 않는다면 한 그루의 나무는 매말라 사하라의 눈을 만들 것이다...
그렇게 마음 먹은 나는 조용히 오티스가 그려진 크레파스 1세트를 부탁했다.
요즘은 석유값이 올라 2만원 가까히 지불하였지만 지금의 나에게 그러한 지출은 명품에 대한 지출처럼 찬란하게만 느껴졌다.
이윽고 30개 크레파스를 일일히 소각로에 넣기 시작했다. 문조차 열지 않은 방 안에는 소각로 안의 뿌연 연기와 타는 냄새로 질식할거 같아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남자는 멈추지 않았다. 마치 절대적인 사명을 얻은 것처럼 소각로에 크레파스를 던져 재물을 태워 숭배하듯 두는 것이다.
이윽고 29개가 남았을 때 초인종이 울렸다.
전날 시켰던 오티스 모양의 오나홀이리라
근거는 없었지만 별볼일 없는 나에게 올 것은 그 물건 하나뿐이였다. 나는 개걸스럽게 포장지를 뜯고는 부서져라 자위를 하고 만 것이다. 음경은 윤활유의 부재로 점차 피가 나기 시작했으나 이 또한 남자에게는 고귀한 순결의 증거이자 서약이었던 모양이다.
이내 남은 크레파스를 가져와 다쓴 오나홀에 갈아 넣기 시작했다. 멀리서 본다면 스님의 신성한 의례놔 같아보이는 이 모습은 가까히 보았다면 그야말로 '아귀'의 모습이 따로 없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