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https://arca.live/b/lovelove/34692604

2편 https://arca.live/b/lovelove/34759113


*제목만 이렇지 이거 순애 맞아요 고어 학대 강간 일절 안 나올 거에요




"어쨌든 이제 옷도 주문했으니까.. 좀 쉬어."


"혹시.. 제가 도와드릴 건 없을까요..?"


"없어. 보다시피 원래 이 집엔 나밖에 안 살거든."


루이 혼자서는 딱히 무언가를 어지를 일이 없고, 설아도 얌전히 있다 보니 집안일을 할 일은 거의 없었다.


"불편하면 저 방에 있을래?'


루이가 침대가 있는 안방을 가리켰다. 잘 때와 옷 갈아입을 때를 제외하고는 그가 딱히 들어갈 일이 없는 곳이었다. 우물쭈물하던 설아가 문을 닫고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평범한 크기의 침대와 거울이 놓인 작은 책상, 그리고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옷장이 보였다. 그의 성격에 맞게 모든 물건들은 전체적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침대를 써도 된다는 그의 말을 떠올린 설아가 몸을 뉘었다.


'되게 푹신하네.. 잠 잘 오겠다.'


누워서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던 설아가 자신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나한테 물어보고 옷을 산 것도 그렇고.. 진짜 해칠 마음이 없나 봐. 다행이긴 한데..'


루이가 딱히 잘못한 건 없지만, 큰 덩치와 날카로운 송곳니 때문에 그가 무서운 건 어쩔 수 없었다.


'뱀파이어는 다 저렇게 키가 큰가? 나보다 50cm는 더 큰 것 같아.'


얼마나 체격 차이가 심했는지, 어제 그녀의 머리를 감겨주던 루이는 행여 손에 힘을 잘못 주면 크게 다칠까 봐 노심초사해야 했다.


식곤증 때문인지 가만히 누워 있으니 또다시 잠이 솔솔 왔다. 오랜 기간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한 탓에 그녀의 눈 밑에는 여전히 다크서클이 드리워져 있었다. 설아는 곧 팔을 배게 삼아 낮잠에 빠져들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한편 루이는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며 주식을 확인하고 있었다. 과거에는 대기업에서 일하던 그였지만, 몇 년 전 닥친 극심한 경제 불황으로 정리해고되며 살 길을 마련해야 했다. 그런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당시 한창 열풍이던 주식이었다. 초심자의 행운인지는 몰라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떼부자가 된 그는 경제가 회복되고 나서도 주식을 놓지 않았다.


'다행히 꾸준히 올라가고 있네, 뭐, 지금 있는 돈으로도 저 녀석을 돌보기엔 충분하겠지만..'


거실로 나온 그의 예민한 귀에 희미한 숨소리가 들렸다. 안방으로 들어가 보니 설아가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많이 피곤했나 보네..'


말라 보이는 팔을 배고 자는 게 안쓰러웠던 루이가 조심스럽게 그녀의 머리 밑에 배개를 넣어주고 이불을 덮어 주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이전에도 시종을 드는 인간은 몇 번 봤지만 한 번도 불쌍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잠든 그녀는 어렸을 때 자주 놀러 온 사촌 동생의 자는 모습과 닮아 있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 정감이 가게 되는지도 몰랐다.


'이렇게 보니까 좀 귀여운.. 아니, 지금 뭔 생각을.'


잡념을 떨치려 고개를 세차게 저은 루이가 옷을 갈아입고 어디론가 향했다.


몇 시간 뒤 잠에서 깬 설아가 이상한 점을 눈치챘다.


'왜 배개가 여기 있지? 이불도 덮은 적 없는데. 설마...'


때마침 방금 외출에서 돌아온 루이가 노크를 하고 안방으로 들어왔다.


"저기.. 제가 잘 때 혹시.."


"어, 그거 내가 한 거야, 불편해 보여서.."


"고맙습니다.. 손에 그건 뭐에요?"


"잠깐 마트 좀 갔다 왔어. 식재료가 다 떨어졌거든."


그날 저녁 설아가 지켜보는 가운데 루이가 택배 상자를 한 개씩 뜯었다.


"이게 네 옷이네. 한번 볼래?"


오늘 아침 그는 속옷 외에도 실내에서 입을 옷 몇 벌, 그리고 외출할 때를 대비한 스웨터와 코트를 주문해 두었다.


"와.. 예쁘다."


"마음에 들어?"


"네., 정말 감사합니다.."


설아는 여기 온 후 처음으로 밝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루이도 약간이지만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듯했다. 


'나도 예전에 부모님께서 장난감 사 주셨을 때 저랬지.'


"저기.. 루이 님. 제가 너무 폐만 끼치는 게 아닌지.. 죄송해요."


"딱히..? 나 생각보다 돈 많이 안 썼어. 그리고.."


루이가 설아 앞에서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네가 좋아하는 모습 보는 것도 나쁘진 않네."


잠시 후 설아가 회색 잠옷으로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거실에서는 소파에 앉은 루이가 평소처럼 TV를 틀고 있었다.


"그거 텔레비전이에요? 신기하다.."


그녀는 지금껏 한 번도 실제로 TV를 본 적 없었다.


"너도 같이 볼래?"


"아, 아니요! 괜찮아요."


설아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괜찮아. 여기 앉아. 보기 싫으면 언제든 가도 돼."


그녀는 쭈뼛쭈뼛하면서도 소파 반대편에 앉았다. TV에서는 때마침  '기묘한 이야기'가 막 나오고 있었다. 평범한 뱀파이어 가족에게 이상한 일이 생긴다는, 일종의 호러 드라마였던 '기묘한 이야기'는 공개되자마자 큰 인기를 끌었다.


어느덧 내용이 중반부에 들어서고 '데모고르곤'이라는 흉측하게 생긴 괴물이 나올 때쯤, 집중해서 보던 루이가 옆을 슬쩍 돌아보았다. 설아는 움찔거리면서도 화면에서 얼굴을 떼지 않고 있었다. 


'무서울 텐데.. 생각보다 잘 보네.'


마침내 다음 회차를 예고하며 드라마가 끝나자 루이가 설아에게 말했다.


"안 무서워? 나도 이 드라마는 오늘 처음 보는 건데. 생각보단 조금 무섭더라."


"아, 너무 신기해서.. 텔레비전은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 없거든요. 진짜 누가 안에 있는 것 같아요."


"그럼 다음에 또 같이 보자. 오늘은 이만 자고."


그날 밤 침대에 누운 루이가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돌이켜 보았다.


'나름 파란만장한 하루였네. 어쩌다 같이 TV도 보고..'


문득 아까 옷을 받고 환하게 웃던 그녀의 미소가 떠올랐다.


'역시.. 그때 저 여자 사 오길 잘했다. 그렇게 기뻐할 줄이야.'


한결 홀가분한 마음으로 뱀파이어가 눈을 감고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