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너무나 편애하여 세상에 저주받은 몸.

세상이 너무나 사랑하였으나 세상조차 소녀의 마음을 얻지 못하여 버림 받은 몸.

마치 절벽 위에 피어있는 꽃 처럼, 그녀는 하루를 아슬아슬하게 살아간다.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든 세상의 질투를 받아 괴로운 삶을 살게 되어버렸다.

그것이, 세상이 그녀를 괴롭히는 방법이다.

마침내 마음의 문을 닫았다고 말하면서 소녀는, 세상을 어렵사리나마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였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대충 살아가게 되었다.


' 엄청나게 아름다운 소녀네요. '


' 말도 말아요. 저주를 받아서, 주변 사람들이 전부 다쳤대요. '


' 에구머니나. 넌 저 사람 곁에 가지 말아라. '


들리지 않지만, 눈은 그렇게 말을 하고 있을테니까.

소녀는, 너무도 진실 된, 눈이 말하는 소리를 전부 삼키며 하루를 살아간다.


세상에 애원도 해보았다. 저주도 해보았다. 하지만 마음을 돌린 세상은 다시는 찾아오지 않았고, 소녀는 완벽한 외톨이가 되었다.


" ......... "


대화를 나누어 본 지도 오래. 소녀는 말을 하는 법을 거의 까먹었다. 목소리를 어떻게 내는 것인지 소녀는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저 매일 밤, 한탄하며 자신의 팔에 상처를 새길 때 마다 내지르는 고통 찬 울음소리로 간신히 자각 할 뿐이었다.









소녀는 오늘도 그저 길 가에 앉아 있었다. 음식은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죽기 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런 소녀의 앞에, 한 소년이 와 앉았다.


" ..팔에 상처가 많네요. "


소녀는 신경쓰지 않았다.

소년의 몸 또한 상처투성이었고, 갈색 머리는 뻣뻣하게, 마치 빗자루 같았다.

하지만 그 두 눈은 마치 어떠한 미련을 담고 있는 것 같아서, 소녀도 잠시 쳐다보게 되었다.


" 저는 죽고 싶어요. "


소년이 말을 꺼내었다. 소녀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 저는 당신의 소문을 들었어요. 저주 받은 사람이라면서요. 저는 죽고 싶어요. 당신이 저를 죽게 해주었으면 좋겠어요. "


소년은 말을 이어나갔다. 소녀는 그런 소년을 노려보았다.


" 알아요, 이기적인 소원인거. 하지만 저는 당신을 사랑하는 걸요. 처음 보았을 때 부터 사랑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전 처음부터 죽고싶었죠. 그래서 다짐했어요. 이왕이면 당신 옆에서 죽고 싶다고. "


" ...그래서. 내 마음은 생각해보지 않겠다는 거야? "


당연히, 이기적인 말을 꺼내는 소년을 소녀는 좋아할 리가 없었다. 그래서 매몰차게 내쫒았다.


하지만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소년은 소녀를 찾아왔다.


재주도 좋게, 어느 날은 꽃다발, 어느 날은 소녀가 가장 좋아하는 애플 파이를, 또 어느 날은 아름다운 그림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그렇게 74일이 지나자, 소녀도 소년에게 관심이 생겼다. 소녀는, 소년의 말을 조금 더 들어보기로 하였다.


" .... 그래서, 죽고 싶은 이유는 뭔데? "


" 병이에요. 병. 고질병이죠. 아마 5년 안에 죽을 수도 있어요. 천천히, 단번에 심각해지는 일은 없겠지만, 저를 천천히 집어삼킬거에요. "


" ....3년 줄게. 대신 너도 나랑 약속을 해. 3년 동안, 같이 살자. 물론 난 널 사랑하지도 않을거고, 약간의 애정도 보이지 않을거야. 하지만, 부부로써의 연은 다 해 줄게. 그리고 그 3년이 지나서도 네가 살아있다면, 여기서 나가서 다시는 돌아오지마. 그리고 죽고싶다는 말을 다신 하지 마. "


소녀는 냉기가 느껴지는 말투로 소년에게 쏘아붙였다. 하지만 왠지 소년은 웃고 있었다.

그 다음날 부터 소년은 소녀의 집에서 살게 되었다. 


소년은 그림을 좋아하는 순박한 사람이었다. 소년이 바깥 풍경을 그릴 때면 항상 소녀를 데리고 갔고, 소녀는 말 없이 그 앞에 서서, 하나의 작품이 되어주었다.


매일 아침, 소년은 소녀를 깨웠다. 그 때묻지 않은 웃음을 보면서 소녀는 일어났다.

간단히 세안을 하고 아래층으로 내려오면 소년은 아침상을 차리고 있었다.

빵 두 조각에 계란 프라이 3개, 간단히 만든 샐러드 한 접시.

계란 프라이 2개는 소녀의 몫이었다.


소녀는 어느날 소년의 마음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소년에게 언제부터 자신을 좋아했는지 물어보았다.

하지만 그때마다 소년은 "옛날이야기에요." 라면서 멋쩍게 질문을 피할 뿐이었다.


소녀가 소년의 이름을 물어본 날은, 둘이 동거한지 200일이 조금 지난 날이었다. 소년은 그 말에 감동을 했다는 듯, 그러나 잠깐 머뭇거리다, 에버라는 이름을 꺼내었다.

200일 하고도 십여년만에, 소녀는 잠깐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317일 째 되는 날 아침, 소년은 소녀의 눈을 가리고 어디론가 소녀를 데려갔다.

그곳엔 하얀 꽃 밭이 소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원래는 아무것도 없는 들판에, 소년의 노력이 약간 더해졌다고나 할까.

의아해 하는 소녀에게 소년은 하나의 초가 빛나고 있는 작은 조각케이크를 내밀었다.

생일 축하해요, 라고 말하며 미소를 짓는 소년을 보며 소녀는 무뚝뚝하게 촛불을 껐다.


그리고, 소년을 천천히 안아주었다.


그날 밤, 소년과 소녀는 처음으로 같은 방에서 자게되었다.

서로 손만 마주 잡은 방, 창 틀에 비추어오는 별빛이 아름다워서 밤새 감상하며, 풀벌레 소리가 그윽하였다.


그날 이후로, 소녀는 소년에게 조금씩 말을 걸기 시작하였다.

소녀의 이름은 안나. 평범한 이름이었다.

소녀의 대화는 절대 3문장을 넘지 않았지만, 그 횟수는 조금씩 늘어나게 되었고, 표정도 조금씩 생기게 되었다.


소년의 생일을 소녀는 몰랐다. 소녀가 물어보아도 소년은 까먹었다고 할 뿐이었다.

그래서, 574일째 되는 날, 3월 3일. 소녀는 이 날을 소년의 생일로 정하였다.

왠지 모르게 꾸며져 있는 방에 어리둥절해진 소년을, 소녀는 팔을 잡고 침대로 이끌었다.


그 날 소녀는 소년을 몸으로 받아들였다.

소녀는 서툴렀다.

소년도 서툴렀다.

침대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종국에는 서로 맨살을 맞대며, 숨을 고르고 젖은 몸을 침대에 맡길 뿐이었다.

소녀의 얼굴은 붉어졌다.

소년의 얼굴은 뜨거워졌다.


만난지 700일이 조금 지난 날, 소년은 소녀가 보는 앞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소년은 전부 자신의 탓이라며 자책하는 소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떠나지만 말아달라며, 미소를 짓는 소년의 곁을 소녀는 떠나지 않았다.


다행히도 소년의 병은 잠잠해지고, 만난 지 900일이 조금 덜 지날 동안, 그 들은 4번의 잠자리를 더 가졌다.

점차 소녀는 소녀의 얼굴을 띄게 되었고, 소년은 그것을 기쁘게 바라보았다.


소녀는 최근 매일, 하늘에 빌고 있다.

제발, 소년에 대한 미움을 풀어달라고.

하늘도 그 기도를 기특하게 받아들였다보다.

그들이 만난지 1000일하고도 74일이 지난 날, 소년의 병은 마침내 치료법을 찾게 되었다.

소년은 그 소식을 들고 소녀에게 달려갔다. 

소녀는, 한 방울의 눈물을 흘리며 소년을 안아주었다.


" ...다시는, 죽겠다는 말을 하지 마. "


" ...네, 대신, 사랑한다는 말은 해도 되나요? "


" .....바보. "


소녀는 세상 가득히 웃어보였다.


그들은 다음 날 결혼식을 올리기로 하였다. 

소녀와 소년은, 절벽 위 꽃이 핀 언덕에 올라가 그림을 그리기로 하였다.


한창 그림을 그리고 있던 그때, 소녀는 목이 마르다고 하였다.

마침 물이 다 떨어진 터라, 소년은 집까지 뛰어 내려갔다.

그리고 물과 여러 다과를 챙겨 언덕으로 향하는 순간,


콰과광.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소년은 황급히, 먼지를 헤치고 언덕으로 달려가 보았다.


그 돌 더미 아래엔 꽃이 꺾여있었다.


그리고 소녀가 죽어있었다.







소년은 소녀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너무 어릴 적의 기억. 하지만 지금도 똑똑히 떠오른다. 

넘어진 소녀를 소년이 일으켜 세워주었고, 그렇게 그들은 친구가 되었다.

서로 이름을 부르면서 그들은 웃었고, 새들이 지저귀는 나무 아래에서 얼굴을 붉히기도 하였다.


그 날 집에 돌아간 소년은 피를 토하였다.

부모님은 소녀를 탓하면서 소년을 데리고 다른 먼 곳 으로 이사하였다.

하지만 그 곳의 의사로서도 소년을 고칠 방법을 찾을 순 없었다.

소년은 그렇게 불치병을 얻었다

하지만 소년은 그 병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따위 몸의 병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의 병.

상사병이었으니까.


소년은 어찌저찌 성장하게 되었다. 병은 언제는 평온한 수면 처럼 아무 일이 없다가도, 언젠가는 소년을 죽일 듯이 달려왔다.

마지막으로 죽을 것 같았을 때, 소년은 소녀가 보고싶었다.

가슴이 그리 말하였다.


그래서 소년은 십 몇년만에 다시 마을로 돌아오게 되었다.

거기서 소년은 모든게 변해버린 소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눈에서 미련을, 그 팔에서 외로움을 보았기에, 소년은 다시 소녀에게 다가갔다.


" ....팔에 상처가 많으시네요. "







소년은 하얀 병실에 누워있었다. 더이상 살기 싫었다.

세상은 결국 소년의 꽃을 질투해 꺾어가 버렸고, 소년은 그 세상 속에 홀로 남겨졌다.

소년은 죽고싶어했다.

병원에서 뛰어내린 게 세 차례. 약을 먹고 드러 누운게 두 차례.

세상은 소년을 쉽게 놔주지 않았다. 마치 소년이 죽으면 그 꽃을 빼앗길 것 처럼.


마지막으로, 소년은 목을 메었다.

시시각각 얼굴이 파래지고, 머리로 산소가 가지 않아 점점 멍해질 때 쯤, 어디선가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살아 준다고, 약속 했잖아. 날, 기억해 줘. 다른 사람이 기억하는 모습이 아니라, 네가 기억하는 모습으로. 부탁할게. 이기적이란건, 알지만. "


줄이 끊겼다.


소년의 이성이 끊겼다.

소년은 어린 아이처럼 울부짖기 시작했다. 소년의 꽃을 되돌려 달라고. 그렇게 못 한다면, 차라리 모든 걸 버리게 해달라고.






그들이 만난지 2000일이 지났다.

소년은 다시 붓을 들었다. 펜을 들었다.

소년의 펜 끝에서, 소년만 알고있는 꽃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 마을에, 거장이 살고 있었다. 

그 거장은 정확히 아침 6시에 일어나, 빵 한 조각과 계란 프라이 1개, 그리고 약간의 샐러드로 아침을 먹는다고 하였다.

아침 8시 30분이면 거장은 일어나 정처없이 떠돌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떤 충격을 받는 날에는 그 자리에 앉아, 몇시간이고 그림을 그리곤 하였다.


그 거장의 그림에는 언제나 한 소녀가 있었다.


사람들이 그 소녀에 대해서 물어보면 거장은 언제나 한 단어로 답했다.


미련, 이라고.


거장은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거장은 이름모를 그 소녀에 대한 그림을 수백 장도 넘게그렸다.

그 그림은 너무나 생생해서, 보는 이들은 왠지 모를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거장의 마지막 그림에는 소녀와 함께 웃고있는 소년이 있었다.

작품의 끄투머리에는 왠지 모를 번진 자국이 남아있었다.


거장은 이 작품의 이름을 짓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