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제가 군대 전역하고 대딩일때 블레이드 앤 소울 이라는 게임을 참 즐겼드랬습니다.

그때 고양이를 좋아하는데 린족이라는 귀여운 고양이 귀 수인들이 참 많아서 행복했었죠.


 어느날 아무 생각 없이 일퀘를 하는 중에 길가에 린족 소환사를 보고 귀엽다 이쁘다고 하면서 무턱대고 "절 한번 해주세요!" 라며 노가리를 까다가 헤어졌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냥 겜에서 고양이 좋아하는 이상한 놈 이였는데...


 한달 후에 던전 입구에서 친구랑 비무를 하다가 예전에 헤어진 린족이 절 보고 귓말을 때린 거였죠.



"님 저 기억 나요?"


 당시 저는 여기저기 린족 보면 절 좀 해주세요 라고 했던 이상한 놈으로 이름이 퍼지기 시작한 터였던 지라 "네! 제가 부탁드렸을때 린으로 애교 부려주신 분이죠!" 하고 말하고 그때부터 다시 노가리가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엔 상대가 장비가 약해서 4인팟 던전 여러곳을 2인팟으로 클리어해주고.. (당시 저는 젊어서 이렇게 말하면 자랑질이지만 컨이 좀 됬습니다.) 둘이서 헤딩하고 실패하면서 장비도 맞추는 등 재밌게 놀았었죠.


 그때 게임 내에서 마이크 기능이 있던 지라 제가 주로 말 하고 상대방은 듣기만 했어요. 근대 왜 너는 마이크 안 하냐? 라는 말에 자기 목소리 나가면 안된다고 너 실망할 거라고 하더라고요.


 여기서 순간 "너 여자야?""...응" 같은 씹덕 의 대화가 이어지고... 순간 머리에서 혼자서 망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초록불이 반짝반짝 였더랬습니다.


 당시 블소 에서는 여성유저도 은근히 있었던 지라(소환사 고양이 + 린족 콤보가 귀엽다고)  껄떡대는 친구들이 좀 많긴 했는데. 평소엔 그렇지 않다가 저도 껄떡이가 된 거였죠.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매너있게 (꼴깝을) 떨고 말은 안하지만 "여자인 니가 좋아!" 라는 오오라를 펑펑 퍼트리고 (그때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아마 커플복 맞추고 뭐 그랬었던가...) 재밌게 놀다가 껄떡이인 작성자가 마구마구 대쉬를 했습니다.


"우리 만나서 겜방에서 놀자~ 재밌게 놀자~" 뭐 이러고 사진교환하자 이러고... 난리를 피웠었죠. 당시에 상대도 제가 그렇게 싫지는 않았는지 카톡으로 사진도 보내주고 어디 산다고 말해준다고 하며 심지어 전화통화도 해서


"이건 진짜 그린 라이트야!" 꺄호 내가 모쏠에서 벗어난다!


 라는 망상에 젖어들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어느날 거의 반년 넘게 조르고 졸라서 서울에서 만나 점심을 먹기로 약속했습니다. 군대 전역하고 처음으로 12월 추운겨울날 정장에 코트 쫙 빼입고 약속장소로 갔습니다.


 사실 속으로는 '아. 안나오면 어떻게하지. 거짓말이면 어떻게 하지. 남자면 어떻게 하지.'


 하고 굉장히 고민과 걱정을 했는데. 1시간 정도 기다리고 나서 드디어 한명이 예약자리로 오는 겁니다. 뽀송뽀송 귀여운 털 옷에 키도 좀 작아서 (제 외형적 취향) 예스예스! 하면서 행복해하는 중에 모자를 딱 벗었는데..


'어라?'


 뭔가 저한테 보내준 사진과 다른 여성 분이 온 것 이였어요. 그것도 좀 보내준 사진보다 더 나이가 많아 보이는 여성이요.


'아, 부끄러워서 날 속였나?'


 라는 생각 이였지만 조금씩 천천히 대화를 이어나가면서 나중에 그녀가 솔직하게 말해주었습니다.


"나, 40 대야"

"응?"


 어.. 아니 30대 인줄 알았는데 40대라고? 진짜? 완전 개 깜짝 놀랐는데 본인이 그렇게 말하는데 그걸 안 믿을 순 없잖아요.


'아니 근대 안 믿기는데!?'


"농담이야?"

"아니 진짜야.. 나 사실 너랑 동갑이라는 것도 거짓말이고 너랑 띠 동갑 이상 나이 차이 나. 네 어머니랑 나이가 더 가까울 거야."

"진짜?"

"응."


 순간 그녀가 왜 그동안 만나자고 하는 걸 거부했는지 모든 것이 정리되는 순간 이였습니다. 진짜 만화, 영화, 소설 에서나 나오는 일 이였던 거죠. 대충 제가 태어 났을때 그녀가 고등학생 이였을 나이 차이였습니다.


'와.... 뭐지.'


 순간 그동안 내가 한 말들이 떠오르면서 머리가 복잡해지고 얼굴이 이상해지고 (보진 않았지만 아마 그랬을 겁니다.) 망상들이 떠오르더니 그녀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처음엔 너도 거짓말 인줄 알고 지켜봤어.. 근대 1시간 정도 자리 지키고 앉아 있는거 보니까 정말 나 좋아하는 것 같더라. 그래서 나도 거짓말 했지만 용기 내서 여기 왔어. 실망했어?"


그때 무슨 큐피트가 등장한건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니 난 네가 안 오는 줄 알고 이번에도 나 속은건가 하고.. 되게 슬펐었는데. 와줘서 고마워 정말 너 너무 이쁜것 같아."

"..."


 라고 무슨 병신같은 작업멘트를 치고 난 이후 그녀도 나에게 마음이 움직였는지 진짜 제대로 연애를 하게 되었습니다.


무려 18살 나이차이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