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쯤인지도 기억나지 않는 옛시절, 그녀는 이번 만남처럼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그녀와 첫만남도 이런식으로 우연과 짝사랑으로 시작되었다.

그녀는 어렸고, 나도 사랑하는 것에 어렸다.

그때든 지금이든 그녀를 바라보는 것 만으로 달콤한 향과 맛이 느껴졌고, 어딘가 마음속에 퍼즐이 맞추어지듯이 행복했다.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그곳은 학교였다.

남들보다 특출나지도 떨어지지도 않는 적당한 고등학교의 조용한 아이와 조용한 아이로써,

첫 만남은 강제적인 장소에 놓임으로써 이루어졌다.

어디선가 그녀는 이유 있이 슬펐고, 이유 없이 행복하는 기운이 전해졌다.

이 때부터 나는 남이 슬퍼할 때면 슬퍼하고 행복할때면 행복해졌던것 같다.

나는 그녀를 알아가는 중이였다.

그저 어린 아이처럼, 얼굴이 빨개진채로 그녀를 바라보며 그녀가 나에게 먼저 다가와줬으면 하는 일말의 희망은 따듯하기 그지없었다.

따듯한 날들이 시작되는 첫 봄에는, 그러한 기분에 젖어 막연히 행복해했다.

물에 빠진 생쥐도 이렇게 따듯한 물 속이라면 행복하지 않을까 싶은 이상한 생각을 하며, 그녀 생각을 계속했다.

하지만 젖은 몸을 닦을 때의 한기처럼 내 일상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조금 불행하고 슬픈 내 이야기를 하자면

아버지는 기억에 없었다.
어머니는 기억에 있었지만 희미했다.
현실에도 존재하지만 살기위해서는 빼꼼히 튀어나온 실루엣처럼 일에만 전념하며 나에게는 모습을 거의 보이지 않으셨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부모이자, 조부모였다.

마음의 안식처이자 따듯한 보금자리였다.

하지만 안식처는 도피를 위한 수단이였던것인지 현실의 나는 일, 일, 일에만 이루어진 일상에 익숙해져만 갔다.

이러한 생존을 위해 생존해야만 하는지 새벽만 되면 눈앞의 칼과 장미가 머리속을 에워쌌다.

그리고 도피처이자 안식처 안에서 모든 생각을 지워갔다.

나에게 쉬는 시간이란 학교의 국어시간과 할아버지 할머니와의 잠자리뿐이였다.

그런 현실속에서 그녀는 그림 속 각설탕이였다. 에스프레소같이 쓴 현실을 마시면서 언젠가 이 커피를 달콤하게 만들어주지 않을까 싶은 그런 존재이자 희망으로 쓰여졌다.

따뜻한 봄에도 추위는 계속되는듯이, 옷은 얇아지고, 날씨는 여전히 추웠고, 몸은 얼어붙어갔다.


차가운 봄날, 주말 저녁. 일에서 잘렸다. 하지만 신도 갑자기 이런 불행을 주기는 뭐했는지, 사장의 손을 빌려 밀린 월급과 추가로 50만원을 받게 했다.

무언가를 잃으면 무언가를 얻는것은 당연했던것이다.

아버지가 도망가면서 어머니의 가게를 얻었고
부모의 사랑을 잃게되어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얻었다.

갑작스러운 돈도 어떻게보면 보상아닐까 싶은 기분은 순간적인 행복을 불러일으켰다.

저러다가 한 3달뒤에 다시 일손이 부족하다며 나를 부른적이 2번정도 있었기때문이다.

쓰라리고 달콤한 상처를 안은채로 다같이 먹을 설렁탕 3인분을 사고 들어가던 길이었다.

바깥에서는 사이렌소리가 시끄러웠다.

이 달동네에서는 1달에 1번씩 고독사하거나 자살하는 사람들이 빈번했기에 익숙한 일이였다.

그러나 오늘따라 사이렌 소리 속에 절규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처럼 소름끼치는 기분이 느껴졌다.

한걸음 한걸음 발을 옮기던 나는 순식간에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려도 닦지 않고 땀이 나도 무시하고 집으로 달려갔다.

집의 불은 꺼져있었다.

어디보다 따듯했던 우리의 안식처이자 보금자리였던 집은 차갑게 식어버렸다.

앉아서 울고 울었다. 방안에서 식어버린 온기에 버틸 수 없던 나는 맨발로 병원까지 달려갔다.

맨발로 달려갔음에도 나의 고통은 슬픔에 묻혀 느껴지지않았다.

도피할 수 없었다. 이 모든 상처를 흘려버리던 나는 이제 모든 상처를 직접 떠안아야만했다.

응급실 앞에서 믿지 않았던 신에게 너무나 원망과 바램을 실어보냈다.

신은 그저 교환자이다.

잃어버린것을 대신 보답해주는 사람이자 냉정한 사람.

전지전능하지 않으니 신도 아니다.

나에게 갈취해간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자리에는 만원권으로 바뀌어진 보험금만이 남아있었다.

나는 운수가 나빴다. 그저 꿈이길 바랬다.

아무도 없는 방 속에서 울음을 멈출 수 없어 모두 쏟아냈다. 방속에 물이 점점 차올라 어느 순간 방속을 눈물로 가득채웠다.

숨은가빠지고 가라앉은 나는 헤엄치는것 외에는 할 수 없었다.

그 때 문이 바깥에서 열렸다. 물이 바깥으로 빠져나가고 물 때문에 일렁이는 바깥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나타샤는 선명히 내 눈 앞에 서있었다.

교환자는 냉정하지만 철저한 교환을 주는 듯 보였다.

그녀는 눈물로 젖은 바닥에 앉아 푸념을 들어놓았다.

나조차도 그녀를 이해하지 못할정도로 그녀도 미래에 아마 밝을 현실에 속아 차가운 현재를 보내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단 하나밖에 없는 따스하게 바라보는 사람이였고, 그녀는 나에게 따스하게 위로하고 공감해주는 오직 한 사람이었다.

따스한 그녀의 품과 나의 품 속에서 우리는 저 먼 별을 바라보며 태양보다 더 밝게 빛났다.

그 날 이후 우리 집은 아파트가 들어설 자리가 되며 강제철거가 되고 그녀의 집에서 함께 하게 되었다.

사실 정확히는 그녀의 집이 아니라 그녀를 돌바주는 사람의 보금처였다.

그녀는 악행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나지 못했다. 그녀는 부모에게 버려지고 악행으로 밥을 먹고 살았다.

나는 엄마를 찾아가도 보았지만 엄마는 희미해지다가 어느 순간 배경에 묻혀 사라진듯했다. 이미 존재가 사라져버린 사람을 찾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더 이상 강제적인 곳에서 벗어나기를 더욱더 갈구했다.

강제적으로 불행과, 학교와, 보금자리에서 억압당하고, 앞으로 있을 미래를 분해시키고 있었다.

이렇게 불행한 상황에서 그녀와 나는 사랑으로 버텨냈다.

그녀는 나에게 동정과 이해를 처음으로 준 사람이였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모든 것을 베풀어야겠다 마음 먹었다.

쌓아놓은 악행의 돈과 지금까지 모아온 곳으로 우리는 도망쳤다.

새벽 3시 53분, 화장실 창문 사이로 도망가 우리는 자유를 찾아 나아갔다.

해가 바뀐 추운 겨울,

맨발로 달려갔음에도 나의 고통은 자유에 묻혀 느껴지지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미래의 아마 밝을 현실을 찾아 떠났다.

5장, 과거 이야기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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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나 딥다크하네요 주인공이 슬플 때 저도 슬퍼서 마음이 울적해요

순애챈으로 달달하게풀고 자야겠네요

마지막에는 주인공들은 아마 행복할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