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편 별고래 이야기 - 순애 채널 (arc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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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의 아들은 어떤 아이야?"


보고서를 다 쓰고 잠시 산책하는 사이에, 어느 샌가 내 곁으로 다가왔던 그 아이의 질문이었다.

그러고보니, 저번에 이야기할 때 이 아이보고 '아들 뻘 정도 된다'고 했었던 게 기억나네.


"차분한 아이야."

"나보다 차분해??"


참나, 당연한 걸 진짜 궁금한 듯 물어보는 이 아이도 대단하네.

그래도 '네가?'하는 식으로 답하면 상처받을 것 같아 최대한 부드럽게, 내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기 시작했다.


"차분하달까, 조용하달까? 이렇게 우주로 나오거나, 아니면 회사에 일하러 나가서 밤늦게 들어오는 날이 대부분이다보니 이야기할 시간이 적어졌어. 그래서 나랑 있을 때는 항상 조용해."

"응응."

"그런데 한번은 아들이 자고 있는 사이에 방을 둘러 봤는데, 천장에 빛나는 글씨와 스티커가 적혀있는 거 있지? 뭐라고 쓰여있었는지 알아?"

"빛나는 거 좋아!! 그래서? 어떤 거였는데??" 


내 이야기가 지루하지도 않은지 온 열과 성을 다해 이야기를 들어주는 아이.

내 아이 이야기를 이렇게 즐겁게 들어주니 뭔가 신기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언젠가 아빠와 우주를 돌아다니고 싶어요...라고 적혀 있더라."

"우주? 그럼, 아저씨랑 같이 올 수도 있는 거야? 나도 그 아들이라는 아이, 볼 수 있는 거야??"

"하하, 그건 조금 힘들지."


우주로 사람을 보내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조건을 충족하는지 검사도 해야 하고, 충족했다 하더라도 우주선 내 환경 적응여부 라던가, 1주일간 외로운 생활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인지 라던가 여러 검사를 진행해야 하기에 지금처럼 조사를 나오는 사람을 1인으로 줄인 건데...

그래도 내 아들이랑 이렇게 우주 여행을 한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꿈을 꾼 것처럼 머릿속이 두둥실 떠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조금 힘들 것 같다는 내 이야기에 그 아이는 곧바로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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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온 마지막 날,

자고 일어나 밖을 확인했을 땐, 여느 때와 같이 방사능 폭풍을 맞으며 몸을 빛내는 아이가 서있었다.

마지막 날 보고서 작성을 빠르게 끝내고, 폭풍이 잠잠해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나는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앗, 아저씨!"

"오늘이 마지막 날이다. 그래서 인사차 나온 거야."

"마지막?? ...아, 맞다. 그랬었지."


마지막 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고난 후, 아이는 아쉽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안절부절하는 모습이 어쩐지... 할 말이 남았다는 것처럼 보였다.


"왜? 할 말 있어?"

"아저씨! 혹시 지금 걸을 수 있어?"

"응? 걷다니? 길게는 못 걷는데 왜?"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래! 지금은 별이 떠 있으니까, 반대편으로 가면 보일 거야!"


보인다니, 뭐가?

이후로 함께 걸으면서 계속 뭘 보며주려는 거냐고 물어보았지만,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는 '마지막이라니까 보여주는 거야!'같은 대답 뿐이었다.

터벅, 터벅. 얼마나 걸었을까?

연두빛으로 불타는 아름다운 항성을 등지고 , 마침내 나는 아이와 함께 별의 뒷면에 도착했다.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 봤을 땐,


"무...뭐야."

"저번에 이야기했었잖아. 아저씨... 저 배 타고 멀리 나갈 수 없다며."


"내가 말한 '별을 먹는 고래', 가까이 갈 수는 없지만 볼 수 있으니까."


거대한 고래 형상의 은하수.

푸른빛, 보랏빛, 연두빛의 형형색색의 별들이 합쳐져 거대한 별의 강을 헤엄치는

은하수가 내 머리 위를 흐르고 있었다.


"아저씨의 아이가 만약, 혹시라도 만약에 이 곳에 오겠다고 한다면..."


그저 멍하니... 우주의 천장을 바라보는 나에게

꼬마아이나 나지막히, 부탁을 건넸다. 


"나는 그 때에도 아저씨처럼 그 아이에게 고래를 보여줄 거야."

"......"

"하지만 그 때가 오더라도, 저 고래는 그 때와 다른 고래일 거야. 왜냐하면,"


어두운 우주하늘을 수놓는 별빛의 십자수.

그 빛을 따라 흘러가는 은하수 위에는 안개같았던 고래의 형상이 어느 새 강물을 따라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풍경을 보는 나의 옆에 그 아이가 조심스레 다가와, 


"처음으로 아저씨와 함께 본 고래니까."


약속을 지킨 새끼손가락을 나에게 보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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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는 꽤 많은 시간이 지났다.

유치원에 다니던 아들은 어느 새 어엿한 성인이 되어 내가 다니던 회사에 다니고 있고, 항상 가족 걱정을 먼저 하던 아내도 이내 '너의 꿈을 쫓으렴'이라 말하며 아들의 우주비행을 말리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아들이 드디어 훈련을 끝내고 우주로 날아가 별에서 생활을 시작한다.


"언제쯤 돌아오니."

"아마 오늘 출발하면 1주일 정도 걸릴 거예요."

"혹시... 어느 별로 간다고 알려준 건 있니?"

"글쎄요... 회사에서는 초록색의 별을 도는 한 행성으로 갈 거래요. 최근 들어서 그 곳에 이상한 현상이 하나 둘 포착된다고..."

"이상한 현상?"


내 물음에 답해주려는 듯, 아들은 서류가방에 들어있던 우주생활 메뉴얼을 꺼내 페이지를 넘겼다.

기계 사용방법, 보고서 작성 양식, 시간 측정 방법... 이전에 내가 생활할 때 쥐어줬던 양식 그대로였다.


"여기 사진 봐주실래요? 2년 전에 갔었던 탐사대원이 찍은 사진이래요."

"너 바로 전 아이가? 어디..."


보고서의 마지막 장에 선명히 찍힌 사진.

사진 속에는...

그 때 봤었던 우주아이의 형상이 일렁이며, 빛이 없는 땅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아직도 기다리고 있나 보구나."

"네?"

"아들아, 너는 아마 이 별에 도착하면 한 아이가 너를 보고 도망치려 할 거야."

"...네."

"그 때, 그 아이에게 큰 소리로 말해주겠니?"

"뭐라고 말하면 될까요?"


우리 아버지께서 너에 대해 말하셨다 라던가,

나는 너를 알고 있다 라던가...

거추장스러운 이야기는 붙일 필요가 없었다.

그 아이는 분명,


"별을 먹는 고래를 알고 있느냐...고 물어보렴."


두 번째 별고래를, 보고 싶어 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