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이런 상황이 오고야 말았다. 난 도망치는덴 재주가 없는게 분명하다. 역사책을 그렇게 많이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런조와 런도 못한 인조의 재능은 체화하지 못한 것이 틀림없다. 내 앞에 있는 안경쓴 단발 선배가 그걸 증명하고 있다.

“우리 문학이는 무슨 생각을 할까?”

“’우리’는 빼주시죠 부장님.”

“그치만 문학아, 이렇게 하지 않으면.”

“부장님한테 그다지 관심받고 싶지 않습니다.”

“문학아, 한번만 내 부탁을 들어주면 안되는 거야?”

“네.”

부장의 눈은 살짝 떨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부장은. 혜진은 꼭 이 녀석을 동아리에 데리고 가고 싶었다. 학교 동아리들의 공식 입부기간은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그걸 놓치면 이 녀석과는 함께 할 수 없으니.

“그럼 한번만, 한번만 나랑 도서관에 가주면 안돼? 응?”

“싫어요. 저 경제 소논문 동아리 들어가요. 도서부는 제가 대학가는데 방해에요. 그리고 항상 왜? 제 반에 와서 이러시는 거에요?”

“킹치만 문학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제가 선배한테 킹치만만 도대체 몇번을 듣는거에요? 그리고 선배 경제부장이랑 친하다면서요. 이미 제가 그 동아리 면접까지 본거 알잖아요? 그리고 선배님. 도대체 저를 어디서 봤길래 자꾸 저한테 이러시는거에요? 저는 선배님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입학식 다음날부터 자꾸 이러시는 거에요..”

혜진은 생각했다. ‘그 카드'를 써야하나? 그치만 그렇게 해서라도 얘를 데려오고 싶지는 않았는데.

“안되겠다. 하나만 말하고 싶은게 있는데.. 마지막으로 하나만 부탁할게. 점심시간에 도서관에 와줘. 그럼 갈게.”

갔다. 도대체 저 선배 뭘까? 원래 나를 아는 사람인가? 나를 봤다고 해도 입학식에서 대표 선서를 했을 때 내 얼굴을 봤을 거고..? 근데 나는 정말 정말 저 사람을 모르는데? 근데 왜 자꾸 맨날 나한테 와서

‘요! 문학쿤!’

‘우리 문학이!’

‘문학아 안녕?’

‘나 기다렸지?’

아.. 머리야...

“오늘도 인기 많다?”

“이게 인기가 많은거면 난 전생에 무슨죄를 진거냐?”

“구라치지마 이 새꺄. 속으론 좋지? 귀엽고 에쁜 선배가 ‘문학아!’하면서 맨날 이렇게 찾아오는데? 모솔 새끼한텐 과분하지. 중학교 때 연애 한번도 안한 놈이 위대한 선배님이 오시면 ‘감사합니다'하고 넙죽 업드러서 ‘저같이 미천한 사람을 좋아해줘서 감사합니다' 해도 모자란 판에 뭐?! 죄? 야이 미친 새끼야 부러우니까 꺼져 씨발”

“뭐래 오타쿠 모솔이.”

“아아아아악 그래 오타쿠는 꺼져줄게”

말은 저렇게 하지만 저 새키는 뚱뚱해도 오타쿠는 아니다. 오히려 어.. 음 테크덕후? 아무튼. 가야하나?

문학은 도서관에 대해서 그다지 좋은 기억은 없었다. 오히려 피하고 싶었던 기억들중 하나다. 글에는 재능이 없으니까. 아무리 좋아해도 재능이 없다는것만큼 슬픈게 없다는 걸. 이미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문학은 뼈저리게 공부를 했고, 지난 입학식에서 신입생 대표로 장학금을 받으며 고등학교를 다닐 수 있었던 것이다.

제발 공부만 하게 해줘..


아.. 내가 도서관에 왜 왔을까 도대체. 마지막 부탁이라고 굳이 도서관에 온게 실수였던걸까? 아니면 7년전의 나를 원망해야하는 걸까?

“무르기 없기다? 너 이제 나랑 같이 도서부야?! 후.. 히...”

-30분전-

“문학아!! 왔구나? 와줘서 고마워!! 정말이야!”

“도대체 마지막으로 무슨말을 하려고 부른거에요?”

“이거 봐봐, 내가 이 사람을 정말 좋아하거든.” 혜진은 아이패드로 갑자기 무언가를 틀었다.

“문학이는 뭐가 그렇게 좋을까?”

“글쓰는게 좋아여! 글을 쓰면 내가 가보지 못한곳을 상상할 수 있으니까요!”

아니 시발, 도대체 이게 왜.

“문학아, 내가 이 사람을 정말 좋아하거든. 이 사람을 어디가면 만날 수 있을까?”

이 사람 표정이 위험한데? 웃으면서 천천히 나가자.

“글쎄요? 제가 그걸 어떻게 알까요? 헤.. 아 맞다 진아 누나가 부른게 있어서 나가볼게..”

“기다려.”

“네가 지금 나가버리면 당장 방송부로 가서 이거 틀어버릴거고, 국어선생님께 바로 달려갈거야.”

“도대체...”

“요샌 문학같은거에 관심 갖는 사람이 없어서 신쌤도 참~ 좋아할거야.”

“원하는게 뭐에요?”

“딱 하나. 너 나랑 도서부하자. 그리고 음... 학교 끝나고 항상 나랑 놀아주는거?”

“다른 사람의 약점을 쥐고 이러는거? 양심에 찔리진 않으세요? 그래도 선배가 귀찮아도 이런 사람인줄은 몰랐는데?”

“그치만 지금은 내 욕심이 우선이라서. 문.학.후.배.님.”

“퍼뜨리든지, 마음대로 하세요. 전 이제 글쓰는 거 따위엔 관심이 없으니까요. 꺼져주세요.”

“야 가지마”

그 때였다. 선배의 손이 내 뺨에 닿았고 그대로 선배의 상체가 그대로 떨어지려던 찰나.

“선배?!”

내 손이 왜 선배 셔츠 위에.. 그리고 내 몸이 왜.. 선배 위에..

“문학아. 비밀이 하나 더 늘었네?”

“아.. 아니 선배 그러려고 그런게 아니라. 다친덴 없어요?”

“다친것보단 후배한테 성추행당할 뻔한 선배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기회를 줄게. 너 지금이라도 도서부에 있겠다고하면 이것까지 전부 비.밀로 해줄게. 안그러면 너? 바로 고등학교 생활 꼬일거야.”

“싫어요. 증거도 없잖아요.”

“문학쿤? 위를 봐줄래?”

아.. 왜 CCTV가 저기에 있지?

“그리고 저기 있는 CCTV영상은 저기 있는 경비실이랑 여기 있는 컴퓨터로 보내져. 그리고 비밀번호를 아는건 나랑 신쌤뿐이지. 근데 신쌤한테 들키면? 어떻게 될까? 좀 그렇잖아? 지워줄게. 그러니까 너 나랑 같이 도서부 하자. 어려운거 아니잖아. 문.학.천.재.군”

“영상부터 지워주세요.”


“도서부에 온거 환영해. 어.. 음 부원은 이제 너랑 나 하나 뿐이지만 앞으로 잘.부.탁.해.”

교성이 섞인 목소리가 이렇게 듣기 싫은건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도서라든가, 문학이라든가 그런거 다시 할줄은 몰랐다고.

약점만 잡히면 가만 안둘겁니다. 선배님.

문학은 이 결정을 결혼하고도, 후회하게 된다. 

------------------------

그냥 옛날 추억이 생각나서 써봄. 근데 한화에 5000자씩 쓰고 싶은데 그거 쉬운게 아니구나 반도 못채우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