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윽, 눈부셔…."

"당신은 누구죠?"

"왕국? 기사? 처음 듣는데요."

"저를 괴롭히던 서큐버스들이 모두 죽었다니… 그나마 좋은 소식이네요."

"네? 원하는 건 없냐구요?"

"그럼, 저를 죽여주세요."

"왜냐니… 저같은 실패작한테 살아갈 가치 따위 없는 게 당연하잖아요."

"아, 모르셨나요. 저도 서큐버스에요. 보시다시피 남자를 유혹할 수도, 정기를 짜낼 수도 없는 결함품이지만."

"'오히려 좋아'? '꼴알못'? 무슨 말씀이신지 전혀 이해가 안되네요."

"……어째서죠? 왜 저를 살려두시는 건데요?"

"이렇게 고통 받으면서 살 바엔 죽는 게 훨씬 낫잖아요."

"'나랑 같이 가자'? 주인이 바뀌어봤자 어차피 똑같을텐데…."

"……마음대로 하세요. 어차피 제 인생에서 제가 선택할 수 있던 건 하나도 없었으니까."








"우와… 바깥 풍경은 이렇구나…."

"네? 태어났을 때부터 쭉 지하 감옥에만 있었으니 당연하잖아요."

"무슨 일을… 당했냐…구요?"

"……왜 사과하시는 건가요. 제가 떨고 있다니… 그럴 리가…."

"힉?! 아… 죄, 죄송합니다. 갑자기 손을 들어올리셔서…."

"머, 머리… 머리는 왜 쓰다듬으시는…. 아니, 아무 것도 아니에요…."








"주인님은 제 생각보다 대단한 사람이셨네요. 모두가 주인님을 찬양하고 있었어요."

"호칭이 왜 그러냐니… 같이 가자고 하셨잖아요?"

"'그런 의미가 아니야'? 하지만… 알겠어요, 순붕 님이라고 부를게요…."

"여기가 순붕 님의 집? 아, 저기가 제가 머물 곳인가요?"

"거긴 헛간이라구요? 어쩐지, 노예가 사는 곳 치고는 너무 크다 했어…."

"네? 제가 노예가 아니면 뭐죠? 자유? 그게 뭔가요?"

"힛…! 모, 모두 날 쳐다보고 있어….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이런 모습이라 죄송합니다…."

"누, 눈을 마주치라니… 저같은 게 어찌 감히…."

"스읍… 하아… 스읍… 하아…. 네, 진정됐어요…."

"확실히 경멸하는 눈빛은 아니었지만… 아, 아니에요. 저 때문에 신경쓰실 필요 없어요…."

"저기, 어디로 데려가시는 건가요? 지하로 가는 길이 아닌 것 같은데…."

"제 방이라구요? 이렇게 넓은 데가?"

"앗. 저, 절대 싫은 게 아니라! 그냥… 제게 너무 과분해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발음하면 되나요?"

"어, 어? 이렇게 화려한 옷을 저같은 실패작이 받아도 되는지…."

"예쁘다구요? 그야, 화려한 옷감을 썼으니 당연하겠죠."

"네? 옷이 아니라 제가…. 그런 말은 처음 들어봤어요."

"읏…! 또 머리를…. 아, 아뇨. 괜찮아요. 저도 모르게 놀란 것뿐이에요."








"이제 어디로 가는 건가요?"

"식사 시간? 그런가요…."

"못 보던 음식들이 가득…. 호, 혼잣말 했을뿐이니 신경쓰지 말아주세요."

"왜 바닥에 엎드려있냐구요? 순붕 님같은 분의 식사 자리에 제가 껴있는 것만으로도 민폐니까요."

"네? 의자에 앉으라구요? 그, 그치만…."

"그럼…. 시, 실례하겠습니다…."

"저, 저는 먹다 남은 찌꺼기만 핥게 해주시면 돼요."

"전 정말 괜찮… 으읍…."

"우물우물…. 맛있다…."

"저기, 혹시… 방금 그거 하나만 더 먹어도 괜찮을까요?"








"이렇게 많이 먹어본 적은 처음이에요…. 배가 터질 것 같아요."

"그렇구나… 배부르다는 건 이런 느낌이었구나."

"목욕? 그게… 무슨 뜻인지 잘…."

"옷을… 벗으라구요? 이런 더러운 몸을 보셔도 좋을 게 없으실텐데…."

"상처… 말씀이신가요. 제 자매들은 늘 결함품인 제게 화풀이를 일삼았어요. 저는 몸도 약하고 힘도 없어서 장난감으로 쓰기 딱이었죠."

"서큐버스는 원래 재생력이 뛰어나지만, 저는 결함품이라…."

"아…! 괘, 괜찮아요. 갑자기 뜨거운 물이 닿아서 놀랐을뿐…."

"순붕 님도 제가 한심하시죠? 서큐버스 주제에, 어린애같은 빈약한 몸이라니…."

"……순붕 님은 저같은 낙오자에게도 친절하시네요."








"기분이요? 뭔가 깨끗해진 느낌이긴 하네요."

"저기… 정말 이런 방에서 자도 되는 건가요? 아직 실감이 안 나서…."

"바닥이 따뜻해…. 네? 바닥이 아니라… 저기서 자는 거라구요?"

"푹신푹신하고… 부드러워서… 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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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애는 역시 구원순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