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는 듯한 더위가 이어지는 나날이다.


코끝을 찌르듯이 나는 풀내음과 지긋지긋한 메미 소리, 벌써 여름이 당도했다는 증거다.


뉴스에선 나날히 최고기록을 갱신했다니, 몇십년만의 폭염이니 떠들어대고 있다. 작년에도 똑같이 더웠으면서.


애석하게도 이 한적한 마을은 도시와 다르게 어딜가도 여름을 만끽하게 해준다.


더위를 피할만한 곳이라곤 마을회관 앞에 놓여있는 조그마한 정자밖에 없으니까.


즐길거리도 별로 없다. PC방이나 노래방은 여기서 차타고 30분은 가야 있는 시내에나 있다. 그리고 그 시내에 가는 버스는 1시간마다 온다. 


아이스크림 하나 물고 정자에 앉아 풀이나 보는게 이 마을의 명물이라고 할 정도다.


지겹다. 답답하다. 더이상 여기 있기 싫다.


그럼에도 여기에 계속 있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안녕?" 


싱긋 웃으며 인사하는 여자아이.


작다. 분명 같은 나이임에도 나에 비해 한 20cm는 작다.


흰색 원피스에 밀집모자. 뭔 순정만화의 히로인도 아니고.


꼬맹이에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패션이다.


화장하나 하지 않았지만 냇물만큼 깨끗한 피부, 굳이 따지자면 여우랑 비슷한 느낌의 얼굴상, 그럼에도 성격은 쪼끄만 강아지 같은 여자.


10년의 지긋지긋한 인연, 이화연이다.


"안녕하긴 10분전에 편의점에서도 봤는데."


오늘은 방학식 날.


30일동안 학교를 안가도 되는 날.


즉 이화연을 30일동안 안봐도 되는 날... 이여야 하는데.



"뭘, 이거 먹고 집가는 길에도 볼꺼고, 이따 저녁먹을 때도 볼꺼고 그리고..."


그만. 거기까지. 말을 끊어내고 그녀를 응시한다.


시원하게 뻗은 검은 생머리가 땀에 살짝 젖어 빛을 발하고 있다.


아이스크림이 살짝 녹아 손목을 타고 흐르고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핥짝핥짝 아이스크림을 핥아댈 뿐인 화연이.


가지고 있는 손수건으로 꼬맹이 손을 닦아주면서 말을 건다.


"그래서 나한텐 또 뭔 볼일인데."


"여름방학인데도 울상으로 지내길레 한마디 해주려고 왔지~"


생긋웃으며 당당히 말하는 꼬맹이의 이마를 가볍게 딱밤으로 뚝 친다.


울상이 되어 노려보는 꼬맹이에게 한마디 쏘아준다.


"어른 놀리는거 아니에요 이 꼬맹아."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나를 노려보며 반박하는 꼬맹이.


"이씨! 어른은 무슨 어른이야! 동갑이면서!"


그리고 딱밤은 너무한거 아니냐며 덧붙히며 짧뚱막한 손을 이리저리 휘적이며 나를 공격할 준비를 한다. 


이곳을 못떠나는 이유.


처음 만남은 다들 그렇듯 어색하게 시작했다.


그러다가 뭐 다들 그렇듯 소꿉장난이나 치며 놀고, 같은 학교 다니고, 같은 반에서 지내고 집도 옆집이다 보니 자연스레 얼굴 맞댈 날도 많았다.


그러다가 결국 고등학교 까지 같이 다니다 보니 이젠 이름보다도 꼬맹이라고 불르는게 더 편해졌다.


"야!! 사람이 말을하면 ㄷ..ㅇㅂ븝!!"


시끄러워 죽겠네 , 일단 아이스크림으로 입부터 막아준다.


고래고래 성을 내던건 언제고 다시 또 조용히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진정하는 꼬맹이.


아직 분이 덜풀렸는지 씨익 씨익 하면서 연신 아이스크림을 먹어댄다.


저렇게 급하게 먹으면 흘릴텐데, 하고 생각하고 있자 그 기대에 응답이라도 하듯 남은 아이스크림이 툭 하고 떨어진다.


"아.."


또 그렁그렁 눈에 울음이 차기 시작하는 꼬맹이.


별 수 있나, 내가 사온 아이스크림이라도 손에 쥐어줘야지.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화나네?


"...아까 나한테 놀리러 왔다고 했지?"


새 아이스크림을 보고 화색이 되었다가 방금 발언에 다시 표정이 스윽 굳는 꼬맹이.


"아니~ 그~ 그게에..."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변명거리를 찾는 듯 했다.


괘씸한 모습에 일부러 장난을 쳐주기로 했다.


일부러 아이스크림을 그녀 앞에 갖다댔다가 확 내 쪽으로 당겼다.


상체의 벨런스가 무너지며 내 몸쪽으로 그녀의 몸이 다가온 그때,


투욱 하고 무언가가 맞닿았다.


"흐이이이잇?!!?!"


이상한 소리를 내며 나한테서 멀어지는 그녀.


쌔빨개진 얼굴이 퍽 보기 괜찮다.


"그러게 누가 남자친구 놀리려고 하래?"


살짝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을 손에 쥐어주고 터덜 터덜 정자에서 빠져나간다.


약간 멍해진 채 내 뒤를 쫒아오는 꼬맹이.


그러고보니 아까 말을 하다 말았지.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


사람 놀리기 좋아하고, 어디로 튈 줄 모르겠을 정도로 엉뚱하며, 쬐끄만하고 울보인.


"...손 안잡아줘? 여자친군데?"


어제까지는 소꿉친구인, 그리고 오늘 방학식 이후로 부터는 여자친구인 사랑스러운 이 꼬맹이 때문에.


아까까진 삐져서 얼굴도 안보던 녀석이 이젠 당당하게 손을 잡아달라고 요구하는 이 뻔뻔한 모습에 단단히 코가 꿰어버려서.


이 모든게 사랑스러워 미치겠어서.


난 이곳을 벗어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