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무참히 무기를 휘두른다.


"끄아악-!" "살려ㅈ..."

"파삭-"


처참하게도 찢겨나가는 저들에게 어떠한 연민도 들지 않는다. 나는 이런 존재로 만들어졌으니까.


이런 존재? 언제부터였지?


나는 누구였지?


그래. 나는 레프군의 군인. 적을 물리치고, 레프에 영광을 다시 가져올 선봉에 서는 자. 하이레프의 방주.


내 이름은 아크.


적들을 벤다. 베고, 또 베고, 무심하게 베어댄다.


그런데, 적은 누구였지?


아... 맞아. 스펙터. 스펙터가 내 적들이다. 그들은 아주 잔혹한 괴물들이다. 그들은 공허한 눈을 뜬 채 검은 형체로 이루어진, 말조차도 하지 못하는 존재들이다.


말? 분명 말을 하지 않았던가? 잘 모르겠다.


검은 형체들, 공허한 동공, 전혀 들을 수 없는 목소리.

나는 그들을 쓰러뜨리고, 찢어발기고, 살육해야 한다.


익히 배운 그대로의 모습을 한 적들이다.


살색 피부, 공포에 빠진 얼굴, 살려달라는 울부짖음.

나는 그들을 쓰러뜨리고, 찢어발기고, 살육하고 만다.


... 뭐?


내 손에 피가 얼마나 묻어있지?


나는 내 손을 내려다본다.


나는 피가 고인 웅덩이 속 나를 바라본다.


검은 형체, 공허한 동공, 전혀 들을 수 없는 목소리...


나는 누구지?


나는, 나는... 스펙터.


아크였던, 침식당한.


이제, 죽어야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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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스토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