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시아..."


검은 마법사를 봉인하기 위해 직접 봉인에 뛰어들었던 그 극적인 순간, 마치 주마등을 보듯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갔다. 프리드를 비롯해 이 전쟁의 끝을 위해 함께한 동료들, 슬픈 표정으로 방주에 오르던 미나르 숲의 주민들, 모험을 하며 만난 이름 모를 사람들, 비어완, 스승님, 내 가족같았던 사제 동료들, 그리고 루시아...

.

.

.

.

.

***


세레니티는 그 누구도 침입할 수 없도록 차원과 차원 사이의 아공간에 만들어진 신전이었다. 한때 빛의 힘을 연구하다 비극을 맞이한 오로라, 그 오로라의 2대 마스터와 생존자들이 세계 각지에서 빛의 힘을 가진 자들을 모아 만든 새로운 오로라의 터전. 검은 마법사조차 뚫지 못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륀느로부터 시공간의 힘을 강탈한 검은 마법사는 손쉽게 이 곳의 위치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 날, 대부분의 사제들이 검은 사슬에 꿰뚫려 죽음을 맞이했다. 루시아도 예외는 아니었다. 뛰어난 빛의 마법사였던 자신의 아버지와는 달리 빛의 힘이 약했던 비어완은, 어찌저찌 사제분들의 도움으로 몸을 숨겨 목숨을 지킬 수 있었다.


검은 마법사의 사슬은 마치 자석의 반대 극성마냥, 빛의 힘을 가장 많이 품은 자들을 우선적으로 추적했기에 강한 자들이 먼저 쓰러진 세레니티 최후의 전사들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당시에도 나름 방대한 빛의 힘을 가졌던 나는 정말 알 수 없는 이유로 살아남았다. 어째서였더라...?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악몽의 순간을 더듬어본다.


아마 그 날은 나의 생일이었을 것이다. 동시에 루시아의 생일이었지. 당시 세레니티에 데려와 육성하던 어린 견습 사제들 중에는 고아가 많았다. 그리고 이들을 데려온 날을 생일로 지정하여 매 해마다 선물을 주며 작은 파티를 열었는데, 어쩌다보니 나와 루시아가 세레니티에 오게 된 날짜가 같았던 것이다. 루시아와 나는 사제들에게 생일 선물을 받았다. 수제 샤이닝로드를 받은 루시아와 다르게, 내가 받은 것은 작은 목걸이었다.


보라색 수정 같은 게 나무 틀에 박힌 아주 작고 볼품없는 목걸이, 겨우 그것 하나만을 선물받았던 나는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화를 낸 뒤 숙소으로 도망치듯 들어갔다. 아마 비싼 보석도 아니었을 것이라며, 겨우 이딴 것을 받고 싶었는 줄 아냐며, 루시아는 사제들이 직접 화려한 샤이닝 로드를 만들어줬는데 왜 나는 이런 취급이냐며 유치한 추태를 부리고 말았다. 만약 이 일화를 동료들에게 털어놓았다면 도둑놈 팬텀 녀석은 정색하여 혀를 내두를 정도였겠지.


루시아는 나보다 강했다. 빛을 품은 크기 자체는 나보다 부족했지만 그녀는 빛의 힘을 운용하는 능력의 발상이 나보다 훨씬 더 뛰어났고, 체술조차도 내가 그녀를 이길 수 없었다. 매 대련마다 루시아는 나를 기절 직전까지 몰고갔고, 그런 그녀를 단 한번만이라도 이기고 싶다는 경쟁심이 생겼었다. 그러다 딱 한번 그녀를 이겼었는데, 바닥에 넘어진 그녀의 얼굴 바로 옆에 로드를 내리찍고 위협한 나에게 그녀는 미소로 답했다. 그녀의 미소가 마치 봐줬다는 의미로 보여서 기분이 나빴던 나는 샤이닝 로드를 구석에 던져버리고 대련장을 벗어났다. 돌이켜보면 그토록 후회스러운 순간이 없다. 그 따뜻한 미소를 다시 볼 수 없을 거라고는... 그게 그녀가 죽기 일주일 전이었다.


다시 생일 얘기로 돌아와서, 검은 마법사가 세레니티의 차원 장벽을 부순 건 내가 깜빡 잠이 들었을 때였다. 밖에선 사제들과 오멘들이 치열하게 싸우며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절박한 소리가 들렸다. 나는 재빨리 문을 열고 나가려고 하였으나, 문이 열리지 않았다. 이건 잠금장치 같은 것이 아니었다. 문을 포함한 벽 자체에 봉인 결계가 깔려 있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방어 결계를 만들 수 있다면 모든 사람들이 결계 내로 피했어야지, 왜 나만. 나만 숨겨놓고 당신들은 목숨을 걸고 싸우는 거지? 나는 절규하며 미친듯이 문을 두드렸다. 소리를 질러보았으나 소리조차 흡수하는 고도의 결계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결계를 부수기 위해 빛의 마법을 쓰려는 찰나, 문과 벽틈사이로 불길한 색감의 안개가 스며들어오는 것을 감지했다.


후일 내가 독자적으로 연구한 내용에 따르면, 이 마법의 원리는 아마 검은 마법사가 살포한 어둠 입자가, 내게서 뿜어져 나오는 빛의 입자와 공명하여 증폭될 때 나의 위치를 찾아낼 수 있는 원리였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그것을 알 턱이 없었던 나는, 그럼에도 이 검붉은 입자가 위험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나 어질러진 책 한 권에 발이 걸려 넘어진 나는 몰려오는 안개를 보고 그만 패닉에 빠졌다. 그 순간 목걸이가 자색으로 빛나며 강력한 결계를 만들었다. 안개 입자는 결계에 둘러싸인 나를 피해 방 곳곳에 퍼졌으며, 이제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안개가 사라지자 정신을 차린 나는 다시 문 앞으로 달려가 스승과 사제들, 그리고 루시아의 이름을 외쳤다. 그 순간, 소름끼치고 공포스럽게 울리는 거대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에 별의 아이는 없는 모양이군."


이어서 들려온 것은 루시아의 목소리.


"없긴 누가 없어? 내가 바로 너에게 대적할 별의 아이다, 검은 마법사!"


그 직후 굉음과 함께 어마어마한 마법을 주고받는 소리가 들려왔다. 유리가 깨지는 듯한 소리, 대지가 무너지는 듯한 소리에 이어 세레니티 전체가 흔들리기까지 했다. 당장이라도 이곳의 모든 사람들이 몰살될 것만 같은 최후의 항전은 그렇게 몇 분간 지속되었다.


"너는 별의 아이가 아니다. 어리석은 것들, 역시 아직 때가 아니었던 건가."


***


나답지 않게 눈물과 콧물을 다 쏟아낼 무렵, 결계가 풀리자마자 문 밖으로 뛰쳐나와 본 풍경은 그야말로 피바다 그 자체였다. 복부가 뚫리거나 팔다리가 잘린 사제들... 잔인하게 죽음을 맞이한 저들은 불과 반 나절 전까지만 해도 생기어린 얼굴로 나의 생일을 축하해주던 자들이었다. 뜬 눈으로 죽은 이들의 눈을 감겨줄 여유도 없이, 나는 다급히 루시아를 찾았다.


루시아의 죽음은 더욱 끔찍했다. 사슬과 오멘의 공격으로 죽은 다른 이들의 시신과는 달리, 검은 마법사와의 전투 끝에 최후를 맞이한 그녀의 모습은 말로 담아낼 수 없을 정도였다. 나는 루시아의 모습을 보자마자 올라오는 구토감을 참을 수 없었다. 생일 선물을 보자마자 방으로 뛰쳐들어오기 직전 먹었던 케이크가 위산과 섞인 맛이 났다.


"루미너스 님, 살아계셨군요...!"


목숨을 부지한 비어완은 나를 발견하자마자 겁에 질린 표정으로 품에 안겨 눈물을 터뜨렸다. 비어완 또래의 어린 사제들조차 거의 다 죽었을테니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을까. 비어완은 곧이어 나를 스승님이 있는 곳으로 인도했다. 스승님께선 폐 한쪽이 뚫렸음에도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계셨고, 나는 회복 마법을 이용하여 응급처치를 했다. 그럼에도 가쁘게 숨을 쉬던 스승님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너는 오로라의 마지막 희망이자 이 긴 비극을 끊어낼 최후의 존재가 될 것이라고. 스승은 그렇게 말했다.


나는 물어보고 싶은 것이 정말 많았다. 왜 내 방에만 그러한 결계를 친 것인지, 그런 목걸이를 나에게 주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내가 그렇게까지 소중한 존재인지, 그럴 거면 다른 뛰어난 사제들이나 루시아는 왜 목숨을 잃어야 했는지. 왜 나에게 이런 무거운 과업을 짊어지게 하는 것인지. 하지만 이 상황에서 그에게 의문과 원망을 던지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소수의 생존자들과 함께 죽은 이들의 장례를 치르고 나서 며칠 뒤, 나는 이제는 아무 마력도 깃들지 않은 목걸이를 목에 두른 채, 검은 마법사를 무찌르겠다는 각오를 품고 세레니티를 떠났다. 아마 스승은 머지 않아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그리고 비어완은... 스승과 다른 사제들의 마지막을 지켜본 뒤 먼 훗날 나와 다시 만나기까지 빛의 영으로 남아 하염없이 제 자리를 지킨 모양이다.


***


소중한 이들을 잃은 내 앞길은 그저 깜깜한 밤이었다. 프리드를 만났음에도, 많은 동료들을 만나고 더욱 강해졌음에도 고작 방향감을 되찾는 정도 뿐이었다.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이 길이 과연 옳은 길인지, 나를 지켜봐주고 응원해주는 사람도 없는 외로운 허허벌판에 서 있는 기분이 들 때면 울적한 마음에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싶어질 때가 있었다. 마지막에 합류한 저 도둑 녀석조차도 능글능글한 표정 너머로 상실의 아픔을 숨기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이러한 고민을 하고 있는 스스로가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하, 이 샌님 자식, 왜 그렇게 융통성이 없어?"


좀도둑과 처음 말다툼을 한 날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샌님, 융통성 없는 녀석. 나는 돌덩이에 얻어맞은 듯한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융통성이 없다고? 내가 샌님이라고? 이건 내가 루시아에게 종종 했던 말이었다.


나보다 고작 몇 살 더 많다는 이유로 나에게 쓸데없는 잔소리를 구구절절 늘어놓으며 가르치려 들던 그녀, 알게 모르게 나는 그녀를 닮아가고 있었다. 원칙을 중시하고,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며, 매사에 신중한 사람. 메르세데스가 언젠가 나를 평가하며 한 말이다. 내가 루시아와 사이가 좋았던 시절, 나도 비슷한 말을 루시아에게 한 적이 있었다. 그 말을 듣고 루시아는 얼굴이 빨개진 채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고, 나 또한 쑥쓰러워서 방금 한 말을 취소한다고 소리치고 달아난 적이 있다.


모험을 떠난 뒤 스스로 익힌 체술과 마법의 운용 방식도 마찬가지였다. 더 이상 나를 가르칠 수 있는 조력자가 없는 시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훈련 방법은 심상 이미지를 떠올려 행동으로 구현하는 것. 그리고 이러한 이미지를 만드는 데 있어서 루시아와 대련했던 기억이 큰 영향을 준 듯 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루시아와 비슷한 패턴의 움직임을 따라하고, 루시아의 것과 유사한 스킬을 개발하고 있었다. 어쩌면 내가 그 날의 대련에서 루시아를 이길 수 있었던 것도, 루시아가 나에게 미소를 지었던 것도...


***


엘리니아의 거대한 나무 사이로 달빛이 드리운다. 악몽에 몸부림치다 잠에서 깨어난 나는, 라니아가 곤히 자는 모습을 확인하고선 집 앞 풀밭으로 나왔다. 미나르 숲에서 최후의 싸움을 앞둔 전날의 밤하늘에서 봤던 것만큼이나 무수히 많은 별들이 하늘을 가득 채웠다. 나는 잔디 위로 그대로 들어누운 채, 봉인에서 풀려난 뒤 있었던 일들을 회상한다. 검은 마법사의 힘이 폭주하여 라니아와 페니를 위험에 빠뜨린 것, 하인즈와 그 제자에게 큰 민폐를 끼쳤던 것, 비어완과 재회하는 순간 라니아의 허상을 보고 고통에 몸부림치며 정신을 되찾은 것, 비보를 찾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도우며 메이플 월드를 모험한 것, 그리고 나의 정체가 검은 마법사가 떼어낸 빛이었다는 것과 라니아가 루시아의 환생이었다는 것까지.


나는 '별의 아이'다. 그 날 검은 마법사 앞에서 자신이 별의 아이라고 외쳤던 루시아는, 실은 진짜 별의 아이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만들어진 대체자였다. 별의 아이를 대신하여 대체자가 검은 마법사에게 죽음을 맞이하게 하고, 이를 통해 검은 마법사가 진짜 별의 아이를 찾지 못하게 하는 것, 그리고 그동안 별의 아이가 검은 마법사를 대적할 힘을 키울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스승과 사제들의 진정한 계획이었던 것이다. 검은 마법사는 루시아가 대체자라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으나, 끝내 별의 아이가 저 문 너머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던 모양이다.


별, 왜 나는 별의 아이일까. 차원의 도서관에서 본 검은 마법사의 옛날 이야기에 따르면, 아마 검은 마법사의 몸에서 떼어져 나온 빛의 조각은 저 밤하늘의 별처럼 은은하게 빛나는 별과 같았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오로라와 세계를 구할 마지막 희망이라는 은유로서 붙인 이름인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당시에는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길에 놓인 나에게 그녀는 끊임없이 방향을 제시하여 주고 있었다. 나의 성격과 행동거지, 그리고 내가 계속 살아가야 하는 이유까지... 나의 모든 것에는 그녀의 흔적이 남아있다. 그것은 마치 밤의 사막을 여행하던 상인들이 하늘의 별을 보고 사막을 횡단했다는 니할 사막의 어느 일화를 떠올리게 한다. 어디로 가야할 지, 무엇이 되야할 지 몰랐던 나에게 그녀는 죽어서조차도 내 삶의 유일한 이정표가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라니아라는 이름으로 다시 환생한 지금도 여전히 내 삶의 목적으로 남아있다.


그래, 너는 별이다. 항상 같은 곳에서 대지를 비추는 북극성같이, 너는 내 마음 한켠의 늘 같은 곳에서 나를 지켜봐주었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네가 비춘 길을 따라 걸어가는 자, 나는 별의 아이다.












아 급 꼴려서 써봤지롱

근데 개 ㅎㅌㅊ네... 무지성 퇴고했으니까 중간에 끊긴 문장이나 중복, 앞뒤 안맞는 표현 있어도 난 몰라

설정 오류가 있어보여도 걍 넘어가줘 루미너스 스토리 마지막으로 본지 너무 오래되어서 형식만 기억나네

부족한 글 읽어줘서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