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유키 : 평소와 같은 밤이었습니다. 평소와 같은 설녀여관의 밤.

           오늘도 손님은 안 오시고,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들리는 건 눈보라 소리와 장작이 타는 소리 뿐입니다.

           어둠과 눈이 창문을 덮치고 평소와 같이 밤이 깊어갑니다.

           벌써 심야 12시가 거의 다 되어가는데 아직 저는 잠자리에 들 수 없습니다.

           오늘의 청소당번은 저와 네리 씨.. 입니다만..

           이쪽도 평소와 같이, 네리 씨는 테이블에 엎드려 졸린듯이 하품을 할 뿐이었습니다.


네리 : 후아아암.. 흐으응..


코유키 : 네리 씨, 졸리신 거 아닌가요?


네리 : 으으응? 그야 졸리지.. 벌써 12시 직전이고.. 후아암.. 코유키는? 안 졸려?


코유키 : 저도 빨리 침대에 가고 싶어요. 그러니까요 자, 같이 청소 하자구요.


네리 : 그치만 있지, 딱히 있지~ 매일 청소하고 있기도 하고, 하루정도 안 해도 안 들킬거라 생각하는데~


코유키 : 제대로 안 하면 안 된다구요! 주인아줌마, 꼭 눈치 챌테니까, 혼날거라구요?


네리 : 으음... 확실히. 주인아줌마는 항상 어디서 감시라도 하고 있는것처럼 눈치빠르다니깐~


코유키 : 네리 씨가 항상 주인아줌마를 화나게 하니까 찍히신 거라구요.


네리 : 후훗.. 그치만 있지, 코유키가 어릴 때 이불에 지렸을 때도 있지, 항상 들켰었잖아?


코유키 : 그건... 그런 건 기억 안 나요!


네리 : 역시 주인아줌마는 초능력자인 거 아닐까? 아니면, 우주인이라거나?


코유키 : 뭐, 이상한 분이실지도 모르지만.. 그보다, 청소 하자구요~


네리 : 으응.. 그럼 있지, 잠도 깰겸 이 쪽으로 와서 이야기하자. 그럼 나도 할게~


코유키 : 정말.. 네리 씨도 참.. 너무 졸리시다면 저 혼자 할테니까 먼저 자셔도 된다구요?


네리 : 그건 안돼~ 코유키한테 미안하기도 하고.


코유키 : 에에~... 어쩔 수 없으니까 조금만 얘기할까요?


네리 : 후후후, 코유키는 상냥하구나?


코유키 : 그래서, 뭔가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나요?


네리 : 으응...? 딱히 없어...


코유키 : 그런~


네리 : 으음.. 으음~ 으으음.. 아, 맞다. 코유키 있지, 오늘이 몇월 몇일인지 알아?


코유키 : 오늘, 말인가요? 어디보자.. 어라? 몇일이었지? 그러고보니 날짜는 별로 의식 안 하게 되네요.


네리 : 여기는 캘린더도 없고, 맨날 눈오고, 잘 모르게 돼버리지?

        실은 있지, 오늘은 12월 31일이라구? ...아마도.


코유키 : 12월이란 건, 겨울이지요? 어라, 1년은 몇개월이었죠?


네리 : 12개월이야. 그, 아르마 씨한테 배웠지?


코유키 : 그.. 한 달은 며칠이었죠?


네리 : 31일.. 아 그치만 30일일 때도 있었나?

        뭐, 어쨋든 오늘은 1년의 마지막이라는 것 같다구? ...아마도.

        저번에 장보러 갔던 게 21일이었으니까.. 음... 열흘 지나서... 응. 맞을거야.


코유키 : 그럼 이제 몇 분 뒤면 새해가 되는거네요?


네리 : 맞아맞아, 여관에 오기 전엔 있지, 새해맞이같은 거 가족끼리 했었는데 어느샌가 잊고 있었단 말이지~


코유키 : 저는 어릴 때부터 여기 있었어서 별로 기억은 안나지만.. 그치만 확실히 연말연시라고 하면 뭔가 특별한 날이었던듯한 느낌이 들어요.


네리 : 코유키의 고향에선 축하같은 거 했어? 새해맞이 풍습같은 거?


코유키 : 음~ 거의 기억 안 나지만요.. 아, 신사라는 곳에는 갔던 것 같아요.


네리 : 신사, 가 뭐야? 재밌는 곳이야?


코유키 : 으응.. 재밌다고 하면, 아니었던 것 같지만요.. 분명 신사에는 신이 있어서 참배를 해요.


네리 : 아아.. 교회같은 거려나? 참배라는 건 기도같은 느낌이야?


코유키 : 그러네요, 교회랑 닮았을지도 몰라요. 새로운 한해를 무사히 보낼 수 있도록 기도하는 거에요.


네리 : 참배라~ 나도 해보고 싶은걸~ 우리집에는 신사도 교회도 없으니깐 말이지...

        내일 아침에 주인아줌마한테 참배해볼까?


코유키 : 히히.. 혼나도 모른다구요? 네리 씨는 어떤 식으로 새해맞이를 하셨나요?

           여기에 오기 전, 고향에 있을 적에요.


네리 : 으음.. 그게 있지~ 뒹굴뒹굴 했으려나~?


코유키 : 후후, 지금이랑 똑같잖아요~ 후훗.


네리 : 아아, 그치만, 새해맞이 할 땐 조금 특이한 과자를 먹을 수 있었으니까 즐거웠다구?


코유키 : 특이한 과자라니요?


네리 : 갈레트라는 케이크같은 과자인데 말이지? 새해맞이 할 때 먹는 건 평소랑 다르게 말이지? 가족이 다함께 나눠서 먹는데, 그 안에 완두콩이 딱 한 알 들어있다구?

        자기가 나눠받은 갈레트 안에 완두콩이 들어있으면 당첨이라서, 그 한해는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고 해.


코유키 : 와아~ 왠지 멋지네요, 그 과자!


네리 : 응. 뭐, 그치만 완두콩을 눈치채지 못하고 다 먹어버려서 결국 누가 당첨됐지 몰랐던 적도 많았었지~


코유키 : 좋네요~ 저도 혹시 마을에 내려가면, 그런 식으로...


네리 : 응? 으음...


코유키 : 왜 그러세요? 네리 씨.


네리 : 코유키 있지, 지금 손님 생각 하고 있었지?


코유키 : 으읏, 네, 네에..


네리 : 이히히. 코유키는 알기 참 쉽구나? 손님이랑 같이 지냈으면~ 하고 생각했지?


코유키 : 그건, 그, 그렇지만요...


네리 : 히히히, 소녀구나~

        저기, 코유키.


코유키 : 어어? 네.


네리 : 코유키가 접대해드린 손님 있지, 어떤 사람이었어?


코유키 : 어떻냐고, 하시면..


네리 : 성격은? 상냥한 사람이었어?


코유키 : 그게.. 그렇네요, 굉장히 상냥한 사람이었어요.


네리 : 그럼.. 혹시 엄청 부끄럼 잘 타는 사람이었어?


코유키 : 네, 부끄럼을 잘 타서, 몸을 씻겨드릴 때에도 얼굴을 붉히시고~


네리 : 부끄러워하는 모습도 귀여웠어?


코유키 : 맞아요! 그래서 좀 더 해주고 싶어져서~


네리 : 무심코 돌봐주고 싶어지는 느낌?


코유키 : 네! 그치만 저도 신경써주고요


네리 : 마음씀씀이도 좋고, 이러니 저러니 이쪽이 하는 말 들어주는거지? 응, 응.


코유키 : 맞아요, 맞아요! 그래서 무심코 어리광부리게 된다고 할까, 이것저것 부탁드려 버리구요!


네리 : 흐으응.. 후후훗.


코유키 : 굉장하네요, 네리 씨. 잘 알고 계시네요!


네리 : 응? 뭐 그렇지. 왠지 그럴거 같아서~

        코유키는 있지, 그 손님이 밥 해준 적 있어?


코유키 : 밥 말인가요? 아뇨, 해주신 적은 없지만..

           아, 그치만 제가 한 요리는 먹어 주셨어요!


네리 : 흐응.. 그럼 있지, 귀 파달라고 한 적은 있어?


코유키 : 해달라고 한 적은 없지만.. 그치만, 해준 적은 있어요!


네리 : 흐으응... 그런가 그런가.. 후훗, 후후훗..


코유키 : 왜 그러시나요?


네리 : 아무것도 아니야~ 후후훗.


코유키 : 아, 그러고보니 들었다구요? 네리 씨도 요전번에 손님 접대 해드렸다고, 에리나랑 아이리가 그랬어요!


네리 : 아아아.. 꼬맹이들이 참 입도 가볍지~


코유키 : 네리 씨의 손님은 어떤 분이셨어요?


네리 : 으으응? 아아.. 코유키랑.. 똑같아.


코유키 : 똑같다니, 닮은 사람인가요?


네리 : 아하하.. 뭐, 그런느낌?


코유키 : 그런...가요?

           네리 씨는 생각해보신 적 있나요?


네리 : 응? 뭘?


코유키 : 그거요, 만약 마을에 내려간다면~ 하고요.

           결혼한 언니들처럼 손님이랑 결혼해서, 만약 마을에 내려간다면 이런 일을 해보고싶다~ 거나, 저는 자주 생각하는데요.


네리 : 으음.. 해보고 싶은 거 말이지~? 뭐, 있다고 하면 있지만..


코유키 : 어떤 일이라도 괜찮다구요?


네리 : 으윽, 왠지 부끄러우니까 코유키부터 말해줘?


코유키 : 에에~?


네리 : 히히히, 자 자, 언니한테 말해보렴?


코유키 : 그, 그럼!


네리 : 응응, 응!


코유키 : 그렇네요.. 이것저것 있지만요..

           바다에 가보고싶어요.


네리 : 바다?


코유키 : 네. 저, 지금까지 바다에 가본적이 없어서요.. 게다가 여기는 항상 눈만 내리잖아요.

코유키 : 그러니까 바다에 가서 수영복 입고, 손님이랑 같이 수영해보고 싶어요.


네리 : 흐응.. 그렇구나. 확실히 눈밖에 없는 추운 곳에 있으면 따뜻한 햇살이 그리워지지~


코유키 : 물론 이 여관은 좋아하기도 하고, 주인아줌마나 언니들도 좋아하지만, 가끔씩 전혀 다른 장소에 동경하고 그러죠?

           아, 그리고그리고, 쇼핑도 해보고 싶어요!


네리 : 쇼핑이라니, 장보는 거 말고?


코유키 : 먹을거 장보러 가는것도 좋지만요, 그렇달까 아무것도 안 사도 괜찮지만요.

           손님이랑 같이 가게를 둘러보고, 이것저것 보면서 돌아다니면 좋겠어요. 옷 같은것도 같이 골랐으면 좋겠어요! 손님한테 제 옷을 골라달라고 하고, 손님의 옷도 제가 고르고! 그래서, 서로 고른 옷을 같이 입고, 또 데이트 하거나!


네리 : 옷인가~ 그러고보니 여관 유니폼 말곤 별로 안 갖고 있고, 마을에 간다면 필요해지겠네~


코유키 : 다른 건, 평범한 것들 뿐이지만요, 같이 책을 읽거나, 극장에 가거나, 요리하거나! 평범한 일들을 함께 하고 싶어요.


네리 : 아아.. 그거 알 것 같아. 나도 뭔가 특별한 게 하고 싶다기보다, 막연히 같이 있고싶다는 느낌인걸?


코유키 : 후훗, 후후훗..


네리 : 코유키? 왜 그래?


코유키 : 아뇨. 왠지 그.. 네리 씨가 귀여워서요! 후훗.


네리 : 으응? 혹시 바보취급 하는거야?


코유키 : 그럴리가요! 아니에요! 단지 네리 씨는 그.. 이래저래 무기력하시고, 연애같은 거엔 흥미 없을 것 같았어서 신기해서요!


네리 : 뭣, 그, 그야.. 뭐.. 나도 그런 거.. 생각하기도 한다고.


코유키 : 우후훗. 이번엔 네리 씨 차례에요. 마을에 가면 손님하고 어떤 일을 하고 싶으세요?


네리 : 나는~ 흐응... 코유키랑 별다른 거 없으려나~


코유키 : 에에~? 뭔가 있으신 거 아닌가요~? 저도 말했으니까 부끄러워하지 마시고 알려주세요!


네리 : 으으.. 그러네.. 굳이 말하자면... 같이 뒹굴뒹굴 하고 싶으려나?

        무릎베게같은 거 받고 낮잠자고 싶을... 지도.


코유키 : 후훗, 후후후후훗. 좋네요~ 무릎베게~


네리 : 으으.. 역시 바보취급 하는거지?


코유키 : 히히, 안 한다니깐요~


네리 : 아~ 정말.. 옛날의 코유키는 더 솔직했었는데 말이지~


코유키 : 그런 네리 씨도 손님을 접대해드리고서 바뀌었다고 다들 그런다구요~ 요리공부 하거나, 귀파기 연습하거나..


네리 : 그, 그건 딱히! 변했다고.. 할까..


코유키 : 후후훗.


네리 : 으으으..


코유키 : 아! 네리 씨, 네리 씨! 시계요!


네리 : 으응? 아, 벌써 12시 지났었나?


코유키 : 이걸로 이제 새해가 시작됐다는 거죠?


네리 : 맞아, 맞아. 아.. 그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면 되는걸려나?


코유키 : 아아, 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히힛.


네리 : 마을에서는 새해맞이같은 거 하고 있으려나?


코유키 : 그렇겠네요. 손님도 지금 누군가에게 새해 복 많이받으세요,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네리 : 그러네...

        후에에.. 새해가 돼도 청소할 맘은 안 드는걸~


코유키 : 정말~ 그런 말 하지 마시고, 같이 하자구요?


네리 : 으으..


코유키 : 혹시 내일 손님이 오실지도 모른다구요?


네리 : 으, 으으...


코유키 : 언제 손님이 오셔도 괜찮도록 깨끗하게 해두자구요? 네?


네리 : 으으... 그러네. 청소 해볼까~


코유키 : 네!



코유키 : 이리하여 조금이지만 평소와 다른 밤이 깊어갔습니다.

           눈보라와 장작불이 타는 소리 속에서 그 사람의 발소리를 찾으면서, 저와 네리 씨는 묵묵히 청소를 계속합니다.

           그 사람은 지금 어디에서 뭘 하고 있을까요?

           가족과 함께 신년을 축하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이미 잠들었을지도 모릅니다.

           혹시 손님도 저를 생각하고 계실지도! 같은 건 너무 기대하는 걸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손님.

           여기에는 신사도 교회도 없지만 기도만은 해둘까 합니다.

           손님이 새로운 해를 행복하게 지내실 수 있기를.

           올해도 손님과 만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