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오시오. 빨리."



붉은 옷을 입은 무당이 앞장서고, 그 뒤에 아이를 감싼 포대기를 끌어안은 남자가 뒤따라갔다.


둘은 산을 오르고 있었다.


남자는 최대한 울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었지만 새어 나오는 눈물을 막을 길이 없었다.


자신의 아들을 살리기 위해, 또 다른 아들을 버려야 한다니.

아버지로써 짊어질 수 있는 가장 괴롭고 잔혹한 짐일 것이다.


앞장서는 무당은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냉정하고 딱딱한 표정이였다.




"굿을 치르려면 산 속 깊이 들어가야 하오.

그냥 귀신의 화면 모를까, 산신의 화를 입은 것이니 일반적인 곳에서는 굿을 할 수 없소."




남자는 무당의 뒤를 따라가면서 참담한 심정으로 자신의 과거를 회고했다.


고향에 두고 온 그녀가 자신에게 이런 화를 뿌렸단 말인가.


그녀는 정말 착한 사람였는데...

그녀가 직접 내게 저주라도 내린 것일까?

아니, 산신에게 내게 불행을 내려달라고 빌었을까?


...어쩌면 그런 착한 사람을 두고 온 날 보고 산신들이 노해서 대신 날 벌주려는 것인가.



어찌되었든 이미 엎질러진 물이였다.

다시는 되돌아 갈 수 없었으니...




"여기면 되겠소."




무당을 따라 정신없이 산길을 올라가던 중, 무당이 팔을 쳐들고 남자를 멈춰세웠다.


나무밖에 안 보이던 꽉 막힌 지형은 어느 새 벗어났고, 갑자기 눈 앞에 탁 트인 곳이 나타났다.



콸콸콸 물이 쏟아져내리는 소리가 울렸다.




코앞에 물줄기가 쏟아지는 폭포가 나타났다.


엄청난 양의 물이 쏟아져내려 폭포 아래 깊고 검은 계곡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저 안에 빠지면 사람이든 짐승이든 다시는 기어오를 수 없을 것이다.





"던지시오."



"뭐... 뭐라고?"



"폭포 아래로 아이를 던지시오.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날 것이오. 계곡이 아이를 삼키고 나면, 신이 만족하겠지."





남자는 시커먼 계곡 속을 들여다 보았다.


물이 쏟아져 들어가는 깊은 계곡 속은 너무나 검어서, 그 안을 볼 수가 없었다.


저런 곳으로 아이를 던져야 한다니, 그것도 자신의 혈육을...





남자는 아이를 감싼 포대기를 풀었다.


핏기 하나 없는, 숨조차 쉬지 않는, 하지만 아직도 살아 있는 아기...


자신의 아이를 저 아래로 던져버려야 한다니.


손이 벌벌 떨리고 눈물이 줄줄 흘렀다.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나... 나는 못 하겠소... 대신 해 줄 수는 없소...??"





무당은 차가운 표정으로 남자를 노려보며 말했다.





"당신이 직접 던지지 않으면 아무런 효과도 없을 것이오."




"..."





남자는 자신의 볼을 아기의 볼에 비볐다.

너무나 차가웠다. 시체 같았다.




"미안하다, 아가... 이 애비가 못나서... 이 애비의 잘못이다...

너는 죄가 없는데... 벌은 내가 받아야 하는데... 미안하구나... 미안하다... 미안하다..."




남자가 어깨를 들썩이며 통곡하기 시작했다.

무당은 주먹을 꽉 쥐고, 더는 못 보겠다는 듯 이를 악물고 남자에게 소리를 질렀다.





"에잇!! 그럴 거면 그만두시오!!

시간이 없소! 빨리 아기를 던지란 말이오!! 던지란 말이야!!"





남자는 무당의 호통을 듣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자기 일이 아니라고 저렇게 소리지르는 꼴이라니.


당장 달려들어 주먹질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품에 안긴 아가와, 집에서 여전히 차갑게 식은 채 누워있을 다른 어린 것이 떠올랐다.




더 이상 머뭇거릴 수만은 없다는 걸 느꼈다.




남자는 떨리는 손으로 아기를 담은 포대기를 앞으로 내밀었다.


폭포의 물줄기에 포대기가 닿을랑 말랑 했다.


남자의 손이 미친 듯이 떨려왔다.




이윽고 포대기가 미끄러지듯 손에서 빠져나갔고, 폭포 물줄기를 타고 깊고 어두운 계곡 아래로 떨어졌다.





한참 뒤에 저 깊은 곳 아래에서 풍덩 하고 뭔가 물 속에 빠지는 소리가 났다.


남자는 비통한 울음을 내지르며 바닥에 엎드려 땅을 쳤다.






"흐으으으으윽.... 으아아아아아아악....으윽..."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남자는 그 말 밖에 할 수가 없었다.





무당은 그렇게 울고 있는 남자를 뒤에서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였다.






"...잘 했소. 이제 다른 아이에게 내린 저주는 풀렸을 것이오. 이제 집에 가도 좋소."




"..."






남자는 아무 말 없이, 비틀비틀 엎드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무당에게는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채, 그 발걸음을 옮겼다.


남자가 자신을 바라보지도 않고 그냥 지나쳐가자, 무당은 남자를 바라보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무당의 눈에서도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그냥 참고 가만히 있으려고 했는데,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야!!!"






갑자기 여자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비척비척 걸어가던 남자는 소스리치게 놀라서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섰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잊을 수가 없는, 아주 익숙한 목소리.


어릴 적부터 들어왔던 목소리...




남자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아까까지 서 있던 무당은 온데간데 없었고, 고향에 두고 왔던 그녀가 그곳에 서 있었다.


갑자기 주변 광경이 흐릿해지는가 싶더니 낯익은 풍경으로 바뀌었다.




여기에 있을 리가 없는, 수도 근처 산에 있을리가 없는 고향의 산 속 작은 계곡.


남자가 어렸을 적부터 물을 길어 왔던, 그리고 지금 저기 서 있는 그녀를 어릴 적 처음 만났었던 그곳이였다.




순간 남자는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이 모든 게 악몽이였던 건가 하는 헛된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이내 깨닫고 말았다.



이건 꿈이 아니였다.




그녀가 바로 저주를 내린, 그리고 자신을 원망하는 산신 그 자체였던 것이다.





은발의 신령은 눈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남자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왜 그랬어...?"






그녀가 원망 섞인 목소리로 남자에게 물었다.





남자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사실 무슨 말을 하던 어떤 소용이 있으랴.






"...나쁜 놈...!"






신령은 남자의 뺨을 후려쳤다.


남자의 고개가 맞은 충격으로 휙 돌아갔다.







뺨을 맞은 남자가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그녀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있었다.





아까까지 자신은 분명히 고향의 익숙한 작은 계곡 앞에 서 있었는데,


이젠 다시 낯설고 거대한 폭포가 남자의 앞에서 매섭게 콸콸콸 흐르고 있었다.





남자는 그 자리에 잠깐 멍하니 서 있었다가, 이내 올라왔던 길을 터덜터덜 걸어 내려갔다.



















=====












"미안해... 미안해... 당신의 마음을 괴롭게 해서 미안해..."




신령은 바닥에 앉아서 끅끅대며 울었다.



그이를 속이고 자신의 아이를 스스로 물 속에 던져버리게 했던 자신이 미웠다.


그이가 울면서 아이를 던지는 모습을 보며 가학적인 쾌감을 느낀 자신이 너무나 역겨웠다.


자신이 상대방의 괴로움에, 그것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괴로움에 잠시나마 즐거워했다는 것이 너무나 괴로웠다.





하지만 결국, 이젠 모든 것이 다 끝나버렸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였다.





"헥...헥... 저기, 괜찮슴까? 괜찮을리가 없겠지만... 그만 우십쇼 이제..."





옆에 숨어 있던 구미호가 튀어나왔다.


그 구미호가 없었으면 신령의 복수는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신령을 주술로 무당으로 변장시킨 것은 구미호였다.


남자의 아이들을 진찰하고 무당을 추천해 준 늙은 의원 또한 구미호였다.




그리고, 마지막에 신령이 결국 참지 못하고 남자 앞에서 변장을 벗어던지고 모습을 드러냈을 때, 둘을 잠시동안 고향의 계곡으로 이동시킨 것 또한 구미호의 주술이였다.



그리고 신령만 계곡에 남겨놓고 남자만 다시 수도의 산으로 이동시킨 것도 당연히 구미호였다.




신령의 부탁을 받아 그녀의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한참동안 안 썼던 온갖 주술을 죄다 사용한 구미호는 엄청나게 지쳐있었다.





"...흐흑... 미안. 나 때문에... 훌쩍... 많이 고생했지?"



"좀 많이 빡셌슴다. 제가 뭐 옛날에 날고 기던 시절도 아니고... 하이고야... 뒷골이야..."



"응... 미안...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아님다. 앗, 누님. 오셨음까?"






어느샌가 커다란 호랑이 한 마리가 둘의 곁으로 어슬렁 어슬렁 다가왔다.


호랑이는 신령의 얼굴에 남은 눈물자국을 혀로 햝아주었다.






"...뭐하는거야아..."



"...넌 복수같은 걸 하기엔 사람이 너무 착해. 그래서 걱정했는데..."



"흐윽..."



"뭐, 결국 복수는 성공했네.

그 놈도 네가 느꼈던 슬픔과 같은 슬픔을 느꼈을거다. 어쩌면 더 깊은 슬픔일수도."




"...그이에게 내가 너무한 게 아닐까?"




"또 그런다. 그 놈은 그래도 쌌어.


널 헌신짝처럼 버렸잖아. 

복수까지 했으니, 이젠 정말 전부 잊어버려. 전부.


그놈도 잊고, 이 일도 잊어.


그냥 이제... 예전처럼... 그놈 만나기 전의 몇백 년 동안 함께 살아왔던 것처럼 사는 거야."





"...응. 그래... 그래야겠지."





신령은 터벅터벅 자신의 계곡으로 걸어들어갔다.


물 속에 하반신이 잠겼는데도 그녀의 옷과 몸은 젖지도 않았다.





"하지만, 난 역시 그이를 못 잊겠는걸."




"또 그런다. 좀 잊는 법을..."




"아니... 잊을 필요 없어."




신령은 물 속에 깊숙히 손을 집어넣더니, 뭔가를 꺼냈다.

완전히 녹초가 되서 호랑이 옆에 추욱 쳐져 있던 구미호는 신령이 물 속에서 꺼낸 걸 보고 두 눈이 휘둥그래졌다.





"캐앵?! 뭡니까 그건?! 설마????"



"뭐, 뭐야. 저게 뭔데 그래?"





호랑이는 구미호의 반응을 보고 당황했다.



대체 저게 뭐길래?



신령은 물 속에서 터벅터벅 걸어나와 호랑이와 구미호에게 자신이 물 속에서 꺼낸 것을 보여주었다.





예쁜 아기 하나가 포대기에 싸여서 편안한 표정을 지은 채로 잠들어있었다.





"뭐, 뭐야 이게."



"그이가 던진 아기야. 귀엽지?"





신령이 씨익 웃었다.


호랑이는 순간 소름이 돋은 나머지 등의 털이 다 곤두섰고, 구미호는 경악한 표정으로 천천히 뒷걸음질쳤다.





"왜 그래 다들? 아기는 죄가 없잖아. 내가 설마 아무 죄도 없는 아기를 그냥 죽게 놔둘 것 같았어?"




"어음... 어어..."




"그리고 이 애좀 봐봐. 눈매랑 눈 밑에 점, 그이랑 완전 판박이야. 히히."




"...어...어어..."




"헤헤. 헤헤헤헤.

어머, 아가야. 일어났니? 이제 내가 네 엄마란다. 아님 네 미래의 아내일수도 있고? 히히."





구미호는 천천히 호랑이에게 다가가 조용히 귓속말을 했다.





"조... 조금 맛이 가버린 게 아닌 가 싶슴다.


원래 착한 사람이 화내면 무섭다던데, 저건 착한 사람이 너무 슬픈 나머지 맛이 가 버린 것 같습니다요. 저거 보세요 눈에 초점 흐릿한 거..."




"...그러게. 아무래도 앞으로 너랑 내가... 재를 좀... 잘 보살펴줘야 할 것 같다..."




"네?! 저는 왜요?"




"너 재 마음에 두고 있는 거 다 안다. 본인한테 일러바치기 전에 조용히 해."




"..."








"아 맞다 언니. 언니가 애 젖 좀 먹여주라. 애 배고파 하는 것 같아. 울려고 한다."




"뭐?! 내가 왜?!"




"아아~ 왜그래~ 언니 젖 나오는 거 다 알고 있거든? 내가 모를 줄 알았어?


빨리 사람 모습으로 변해서 그 잘난 커다란 젖통으로 젖 좀 먹여줘~"




"아니 씨... 니가 그걸 어떻게..."




"빨리이~ 부탁할게 언니~"




"야이 미친년아!!!"





구미호는 완전히 꿀 먹은 벙어리가 된 채로, 옆에서 그 난장판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왠지 자신의 앞날이 평온하지만은 않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일어나는 중인 그날도 어김없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해는 천천히 계곡 너머 산 사이로 져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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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터진 몬갤 대피소 

두번 터진 백업본


ㅅ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