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던 기사님께.


안녕하셨습니까, 소녀 에버화이트입니다.

정원으로 발길을 옮기신 지도 어언 열 일곱 달 하고도 열흘이 된 것으로 압니다.

위험한 식물들과 제멋대로인 야생 마물들이 들끓는 곳으로 가시게 되었으니, 아무리 기사님이라고 하여도 걱정을 떨칠 수 없어 소녀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습니다.

하여 다시 한번 여쭙고 싶습니다. 기사님께서는 진정으로 안녕하신지요?

한 마디라도 소식이 있더라면 기사님께서 변을 당하시진 않았는지 알 수 있을 터인데, 그날 이후로 아무런 편지글도 전령도 본 적이 없으니 기사님께서 편지글조차 쓰지 못하게 된 것은 아닌지 두려울 따름입니다.


만약 기사님께서 진정으로 변을 당하셨다면 이 글 또한 읽을 수 없을 테니, 어쩌면 이 편지는 기사님이 가르쳐주신 것처럼 제 마음만을 달래기 위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사님의 가르침을 어기고서도 기사님을 다시 만나 뵙기 위해 독단적으로 정원으로 떠나려는 것 역시 순전히 저 자신을 위해서이겠지요.

그러나 여신님께서 이르셨듯 무릇 사람이라면 제 자신보다 중요한 것이 없으며, 자신에게 중요한 다른 무언가를 위하는 것 역시 본디 자신을 위한 것이라 하였습니다.

기사님께서는 소중한 것을 지키려고 했다는 말을 자주 하셨으니, 이러한 저의 기분 역시 헤아리리라 감히 예상합니다.


하여 다시 한번 여쭙고 싶습니다. 기사님께서는 진정으로 안녕하신지요?

요즈음 정원에 새로운 마물이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전투에도 숙련되고 교묘하기 그지없어 누구도 쉽게 손댈 수 없으나, 그러한 것 치곤 누군가를 쉽사리 공격하지 않는다고 하여 아주 특이하다고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 어째서인가 기사님밖에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기사님만큼 강인하면서 정원에 발을 디딜 만큼 용기 있는 자가 그 말고 얼마나 될까요? 마물들을 구원한다는 이유로 마물의 손길을 받아들인다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할 사람이 그 외에 또 누가 있을까요?

이러한 발칙한 추측을 하게 된 소녀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길 바라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러면서도 이 소문의 진상을 확인해보고자 기사님의 뒤를 따르려고 합니다.

만일 소문이 거짓이라면 저는 기사님을 다시 만나 뵐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저의 희망하는 바입니다. 기사님께서 설령 다치거나 피곤하게 되시더라도 저의 힘이라면 기사님을 도울 수 있을 터이며, 기사님과 함께 여행을 하게 된다면 약속하였던 무술의 수련도 겸할 수 있을 터입니다.

물론 기사님께선 죽지 않으시니 어찌 되었건 만나 뵐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만일 그 소문이 제가 예상했던 바와 같은 내용이라면.

그때는 부디, 소녀를 다시 한번 종으로 삼아주시길 바라옵니다.


에버화이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