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몽무스 세계의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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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새로운 거래처를 찾아야하나…”
“면목이 없습니다.”
나의 대장간. 한켠에 마련해 놓은 손님용 탁자 앞에 앉아 하나야씨는 후, 하며 백색 연기를 토해냈습니다. 이 분은 하나야 토모하. 교부다누키라는 마물로 잘은 모르겠지만 존재 자체가 악덕 상인인 마물이라고 합니다. 이 왕국이 마에 떨어지기 전부터 내 대장간을 주로 이용하는 고객님입니다. 물론 마에 떨어지기 전까지는 마물인 것을 몰랐지만요.
이 분이 내 대장간을 이용하시는 이유는 딱 하나.
“마물이란 것들은 말이지, 섹스 밖에 생각하지 않아. 장사에서 제일 중요한게 뭔지 아나? 바로 신뢰야. 그것들이 납기일을 제대로 지키는 것을 본 적이 없어! 심지어 자기들을 장인 종족이라고 칭하는 드워프들도 가끔 그런다니까? 그러니까 자네에겐 기대하고 있어.”
납기일을 잘 지키기 때문입니다.
“난 지금 마음이 찢어질 것 같다네. 평생 함께 할거라고 생각한 사업 파트너가 또 이렇게 사라지다니. 정말 통탄을 금할 수 없군.”
“저기… 일단 다 만들었습니다만.”
그 순간, 하나야씨는 대체 무슨 말을 하느냐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일단. 다. 만들었다. 이 간단한 내용의 말에 뭔가 다르게 해석할만한 여지가 있는걸까요?
“자네가 알프가 된지 3일이지?”
“네, 3일입니다.”
그동안, 그녀를 어떻게든 마주치지 않으려고 별짓을 다했습니다. 물론 제일 힘들었던 상황은 알프로 변한 날 아침에 출근하려니 맞는 옷이 없었던 그 상황이었지만 말이죠.
“그리고 내가 자네에게 검을 몇 개 만들어달라고 한게 4일 전이고. 그렇다는 말은 자네는 하루만에 내가 지시한 분량을 만들었단 말인가?”
나는 왜 그게 그렇게 되는걸까. 생각하며 꼬리를 천천히 좌우로 흔들었습니다.
“평범하게 3일 걸려서 만들었습니다. 갑자기 몸이 바뀌니 힘들었어요.”
다행히도 마물의 근력은 인간보다 훨씬 쎘습니다. 이런 연약한 손아귀로도 과거의 나와 같은 정도의 힘을 낼 수 있다니, 인류의 미래는 어둡습니다.
한편, 내 설명을 전부 들은 하나야씨는 더욱 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럼 자네는 지금까지 그냥 평범하게 일하고 있었다고? 마물이 되었는데, 섹스도 자위도 안하고? 그저 지금까지 해왔던대로 단조로운 일상을 보냈다 이건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오히려 내 마음 속에 들끓는 번뇌를 감추기 위해 더 열심히 일했죠. 나 자신을 리본으로 포장해서 그녀에게 가져다 바친다니 무슨 미치광이 생각일까요? 조금 사이한 기운이 깃든 검은 바로 용광로에 넣어버렸습니다.
나의 대답을 들은 하나야씨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렇게 답했습니다.
“자네 의원 가보는게 어떤가? 내가 아무리 피도 눈물도 없다고 칭해지는 교부다누키지만, 이런 상황에서 최고의 사업 파트너를 찾았다고 기뻐하진 않는다네. 내가 용한 의원을 하나 알고 있으니 거길 소개해주겠네.”
“아니… 저는…”
“내가 아무리 장사꾼이라도, 세상에는 돈보다 소중한게 있네!”
하나야씨가 겨우 납득해 준 건, 내가 그녀와 저의 복잡한 사정에 대해 4절까지 설명한 이후였습니다.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을 때는 참 특이한 사람도 있다 싶었는데, 아무래도 당신도 그 이상으로 정신이 나간 것 같군. 여하건 원래 그런거라면 더 걱정할 필요는 없겠네.”
“말이 심하시네요.”
“그래서 고백은 언제 할 생각인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하나야씨의 시선을 피해 나는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리고는 조그맣게 대답했습니다.
“언젠간 하겠죠?”
내 어설픈 대답에 하나야씨는 쯧, 하며 입술을 비틀었습니다.
“자네는 틀려먹었어. 이렇게 된 이상, 답답한 자네를 위해 나라도 나서야 할 것 같군. 감사 인사는 필요없네. 나와 당신 사이 아닌가?”
“아니,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하나야씨? 잠깐요? 네? 아니…”
나는 날 잡아끄는 하나야씨의 완력에 필사적으로 저항했습니다. 뭔가 요상한 정신 마법들도 몇 개 거신 것 같지만 제겐 통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일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방어용 아티팩트를 몇 개나 만들어두었습니다. 마물의 비정상적인 사고 방식을 생각해보면 저는 미약에 푹 절여진채로 선물 상자에 담겨져서 그녀의 집으로 배송되겠죠. 아니면 명령을 거부할 수 없는 목걸이에 채워진채로 그녀에게 팔려버릴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녀가 노예 같은 것을 살거라고 생각지도 않고 야한 명령을 내릴거라고도 생각치 않습니다만…
“거기까진 할 생각 없네! 애초에, 그것들 단순히 자네가 당하고 싶은 상황 아닌가?! 그냥 솔직하게 되지 그런가?”
아무래도 내 최악의 망상중 몇가지를 무심코 입 밖으로 내버린 것 같습니다.
“정말로 그랬다가는 부끄러워서 죽어버릴겁니다! 그녀에게 있어서 나는 털이 숭숭 난 아저씨에 불과해요!”
“나도 자네에게 거기까지 원하지 않아! 자네가 뭣하러 그런 모습으로 변했다고 생각하는가? 그 털이 숭숭 난 아저씨에서 벗어나고 싶어서가 아닌가, 그녀의 마음에 들 수 없는 자기 자신이 너무 원망스러워서 아닌가! 그녀의 마음에 쏙 드는 모습으로 바뀌었는데 뭐가 문제지? 당당하게 고백하란 말일세!”
저는 순간 힘이 빠져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그렇네요. 뭐가 문제일까요. 어째서 나는 정말로 가지고 싶었던 것을 손에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망설이는 걸까요.
“내가 생각하기에 문제는 자네에게 있네.”
물론 그렇…
“자네 정신에! 제발 자신감 좀 가지게. 자네는 객관적으로 봐도 뛰어난 사람이네. 자네 나이에 이렇게 개인의 대장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의 능력을 신임하여 스승이 대장간을 물려주고 은퇴한 것 아닌가? 그녀는 왕국의 공주도 뭣도 아니고 그저 왕국 경비대 대장일 뿐이네. 설령 공주라고 해도 계급의 차이 따윈 지금와서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걸 당신은 아주 잘 알지 않는가? 자네가 그런 모습으로 변한 지금, 자네와 그녀 사이를 가로막는 건 다음 아닌 당신 자신의 마음 밖에 없다네!”
나는 하나야씨가 던지는 모든 질문에 단 하나도 제대로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답은 이미 나와 있었습니다. 먼 옛날부터 나와있던 사실입니다.
“그렇다하더라도 제게 그녀에게 사랑 받을 만한 자격은 없어요…”
나는 양팔로 나 자신을 꽉 끌어안으며 필사적으로 자기 자신을 유지했습니다. 나 자신을 되돌아보면 되돌아볼수록 내면에서 거뭇거뭇한 것들이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내가 지금껏 눈을 돌려왔던 모든 것이 이 안쪽에서 끓어 넘치기 시작했습니다. 애당초 나는 그녀를 정말로 좋아했던게 맞기나 한걸까요? 지금껏 내가 간단히 포기하고 놓쳐버린 모든 것을 사랑스럽다는 듯 품에 껴안고 놓지 않으려는 그녀가 그저 가엾고, 가련하고, 불쌍하고, 그리고 또 부러워서…
그러고보면 저는 한 번이라도 그녀의 행복이라는 걸 진심으로 바랬던 적이 있었던가요?
그녀가 나를 가장 필요로 하는 순간에 그녀를 떠났으며, 그녀가 사랑을 하는 것을 질투했으며, 그녀가 사랑을 잃은 것에 기뻐했습니다. 나는, 나는 사실 스스로를 속이고 있던게 아닐까요? 난 언제나 올곧게 꿈을 향해 나아가는 그녀를 동경하고, 그리고 시기했을 뿐이 아닐까요? 만약 그렇다면 나는…
“라크, 있어?”
내가 내면에서 부의 스파이럴을 한창 그리고 있을 때, 노크와 함께 들려와서는 안될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순간, 나는 현실로 돌아왔습니다. 도망, 도망가야 합니다. 이런 꼴로 그녀를 마주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어중간한 마음으로도.하지만 황급히 뒷문으로 빠져나가려는 나의 꼬리를 하나야씨는 캐치했습니다.
“저 인간이 자네가 말하던 그녀인가?”
“놔줘요!”
“싫네, 당신은 현실을 마주봐야해!”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녀가 대장간 안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나는 전력을 다해 꼬리를 잡아당겼고, 이내 하나야씨의 손에서 꼬리를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힘을 쓴 나머지 엉덩방아를 찧어버렸습니다.
황급히 일어나 돌아 나서는 그 순간, 나는 그녀와 눈이 마주쳐버렸습니다. 그녀는 답지 않게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도둑이야!”
하나야씨가 그렇게 소리쳤고, 금빛 섬광과 함께 나는 땅바닥에 머리부터 처박혔습니다. 반응할 시간도 없었습니다. 전투에 인생의 모든 것을 바친 사람. 그게 기사라는 존재니까요. 나는 순수한 근력으로 나를 억누르고 있는 그녀에게 대항하려 했지만, 이상하게 머리가 빙빙 돕니다.
“이게 기사란 존재인가.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군. 평범한 인간이 서큐버스를 한방에 무력화시킬 줄은 상상도 못했어.”
“기사라서 그런건 아닙니다. 직업상 난동 피우는 분들을 제압할 기회가 많아서요. 그래서 이 분은 뭘 훔쳐가려고 한거죠?”
하나야씨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내 시간을 많이 훔쳐갔지.”
“네?”
“거기 엎어져있는 마물 있잖나, 그게 사실 당신의 친구일세. 아무래도 알프가 되어버린 것 같아. 어찌나 당신 앞에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하는지 원… 거의 한시간 넘짓 설득하고 있었지. 때마침 와줘서 다행이야.”
끝났습니다. 내가 여태껏 고민하던게 아무 의미도 없다는 듯이 진실은 허무하게 밝혀졌습니다. 지금부터 여기서 뭔 일이 일어나든, 나는 듣고 싶지 않습니다. 보고 싶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보고, 듣지 않는다고 해서 그 행위에 의미가 있을까요? 이미 결과는 났습니다. 나는 무력하게 심판을 기다렸고, 이내 그녀는 작게 말했습니다.
“역시 이녀석 남자를 좋아했던거군요.”
그녀는 그리 말했고, 하나야씨가 손에서 담뱃대를 툭하고 떨어트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하지만 내게는 이보다 더 호조는 없습니다. 나는 황급히 먼지를 털고 일어나 그녀를 향해 애써 미안하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숨기고 있어서 미안, 하지만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어. 그야 이런 걸 고백하기는 내겐 힘…”
나는 그녀의 눈을 마주보자마자 얼어붙어 버렸습니다. 지금껏 항상 나를 향하던 따스하고 온화한 눈빛이 아닌, 그녀에게서 한번도 보지 못했던 뭔가 비틀린 열정이 거기에는 있었습니다. 나는 꿀꺽, 침을 삼켰습니다.
그녀의 피부를 긁는 듯한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습니다. 나는 조금 움츠러들었습니다. 어쩐지 모르게 그것이 나를 책망하는 것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만, 다른 한편으로 두렵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나와 그녀의 관계는 어떻게 변하는걸까요? 최소한 계속해서 그녀의 친구로는 남고 싶습니다. 그러한 내 걱정도 무색하게, 멍하니 나를 바라보던 그녀는 곧 귀 끝까지 빨개져 얼굴을 슬며시 가렸습니다. 그러고는 말했습니다.
“너는 거짓말을 할 때, 항상 말이 빨라지더라.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면 앞뒤 생각 안하고 상황만 모면하려는 것도 그렇고. 조심해야지. 내가 만약 진짜로 네가 남자를 좋아하는 줄 알았다면 어쩔 뻔 했어?”
그녀는 열심히 손부채로 얼굴을 식히려고 노력하더니, 이내 포기하고 내게 서툴게 웃었습니다.
“대답은… 지금은 보류로. 듣고 싶으면 오늘 밤 그 장소로 와.”
그녀는 애써 당황하지 않은 척 밖으로 걸어나갔습니다만,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녀가 어떤 대답을 했는지 나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하나야씨도 짐작한 모양인지 내게 엄지를 치켜들으며 말했습니다.
“거봐, 역시 잘됐지?”
나는 말없이 하나야씨의 팔뚝을 힘껏 꼬집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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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질척질척한 전개보다는 질척질척한 액체가 좋지않을까 생각합니다.
질척이는 전개 밖에 생각나지 않는 나는 정말 바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