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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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서클 시티


소설의 배경인 메갈로폴리스로, 미국 동해안에 위치해 있다.

2040년의 핵 공격에서 살아남은 미국 동해안의 유일한 메갈로폴리스로, 개편된 신 미국 동부의 중심 도시들 중 한 곳이다.

세계적인 메가코프 스마일 테크의 본사가 위치해 있는 곳이기에 미국 평균소득과 전체소득 2위를 차지하는 도시이며, 동시에 미국에서 가장 빈민이 많은 도시와 빈부격차가 가장 심한 도시, 대기오염이 가장 심한 도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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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쿨드는 거실 소파에 꼿꼿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그녀의 눈빛에서는 집에서 나가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느껴졌다.


그녀가 힘으로 뜯어냈던 문을 대충이나마 고치고 온 그는 수건으로 땀을 훔치며 말했다.


“저 문짝 수리비용이랑 생활비는 네가 알아서 벌어와라.”


그 말을 들은 스쿨드는 눈에 띌 정도로 화색을 띄며 말했다.


“그 말은 나를 내쫓지 않겠다는 거냐?”


“난 갈 데 없어서 문 부술 정도로 사정이 절박한 사람을 내쫓을 만큼 모질지가 못해. 그나저나 빈민구제센터에는 들려 본 거야?”


“날아가 보니까 불에 타고 있었다.”


“신기할 것도 없네, 경찰들이 일 안 하는 게 하루 이틀이어야지…”


그는 짜증 섞인 한숨을 내뱉고 그녀를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일단 옷부터 어떻게 해보자.”


“내 갑옷이 어때서 그러느냐?”


“당신이 살던 시기에는 나름대로 최신 패션이었을 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렇게 입고 나가면 시선이 엄청 끌리는 건 둘째 치고, 100m도 못 가서 강도들한테 당할걸?”


“그럼 일단 갑옷을 벗어야 하겠군.”


“그렇겠-“


그는 무심코 대답했다가 그녀의 갑옷이 빛의 입자로 바뀌어서 흩어지며 그 아래의 나신을 드러내는 것을 보고서 자신이 말을 잘못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갑옷 안에 아무것도 안 입고 있었어?”


“원래 그런 게 정상 아닌가?”


“…아무리 그래도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알몸을 드러내다니, 수치심도 없어?”


“옛날에는 알몸으로 벗고 싸우는 전사들도 많았다.”


“그걸 말하는 게 아니라…하아…”


그는 내심 과거와 현재의 인식 차이를 절박히 체감하며, 오늘 몇 번째인지 모를 한숨을 쉬고 자리에서 급히 일어났고, 방에 널려 있던 적당한 옷가지를 주워 그녀에게 던져주며 입으라고 말했다.


“이거라도 입어. 안 맞겠지만, 어쩔 수 없지.”


“이건 어떻게 입는 거냐? 허리에 두르는 치마냐?”


“…그건 바지야. 다리에 입는 거라고.”


“그럼 이렇게 두르면 되는 건가?”


“아니, 그게 아니라…”


결국 그는 그녀에게 옷을 하나하나 입혀줘야만 했다.


날개에 걸려서 들어가지 않는 상의만 빼고 말이다.


“날개 어떻게 못 없애? 걸려서 이걸 못 입히겠는데. 익인(翼人)용 옷을 사려면 일단 위에 뭐라도 입어야 할 거 아냐.”


“잠깐만 기다리거라.”


그녀가 그렇게 말하고서 잠시 말없이 집중하자, 그녀의 날개는 등 안으로 접혀 들어가며 조용히 없어졌다.


날개가 있던 흔적도 남아있지 않은 매끄러운 등을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던 그는 이내 날개가 들어간 날개뼈 부근을 무심코 만져보았다.


“히익!?”


갑작스럽게 닿은 차가운 손의 감촉에 그녀는 놀란 듯한 신음을 내뱉었고, 마찬가지로 놀란 남자는 그녀에게 사과하며 상의를 마저 입혔다.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그는 부서진 탁자의 근처에 떨어져 있던 지갑과 총을 줍고서 말했다.


“가자.”


“어딜 말이냐?”


“네 옷 사러. 옷값은 수리 비용에 포함해서 한번에 받을게.”


그는 그렇게 말하며 현관문을 열었고, 현관문의 망가졌던 경첩은 아예 문틀에서 뜯어져 쿵 소리와 함께 떨어졌다.


“…씨발.”


그는 욕지거리를 중얼거리며 그녀가 현관문을 나설 때까지 기다렸다가 문을 틀에 맞게 끼워놓은 뒤, 


“도둑 들기 전에 수리기사도 빨리 불러야 되겠네.”


그는 한숨 섞인 중얼거림을 내뱉은 뒤 수리기사를 불러 놓고서 계단을 내려갔고, 스쿨드는 애써 모른 척을 하며 아무 말없이 그를 따라갔다.


 


잠시 뒤, 두 사람이 탄 자동차는 레드 서클 시티의 시내를 달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네 이름은 무엇이냐?”


차의 창문 밖으로 펼쳐진 화려한 도시를 구경하던 스쿨드가 묻자, 이미 그녀가 자신에게 던지던 수많은 질문-예를 들어서 고층 건물의 외벽을 가리키며 저 정도의 유리를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낸 거냐고 묻는-들에 지쳐 있던 그는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로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냥 N이라고 불러.”


“N? 왜 이름이 한 글자밖에 없느냐?”


“이름이 아니라 그냥 호칭이니까.”


“혹시 천출이라 이름이 없기라도 한 것이냐? 괜찮다, 난 그런 걸로 사람을 차별하진-”


“헛소리 한번만 더 하면 버리고 간다.”


“…미안하구나.”


“N이란 건 그냥 호칭이야. 딱히 너한테 이름을 알려줄 필요도 없잖아.”


“서로의 이름을 아는 건 중요한 거다. 서로에 대한 신뢰는 그것에서부터-“


 “난 당신을 별로 신뢰하고 있지 않아.” 


그는 그녀의 말을 끊고서 대답했다.


“…어째서 나를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냐?”


“책에서 갑옷을 입은 날개 달린 여자가 튀어나와서는 자기가 신이라고 하면 그게 쉽게 믿어지겠어? 정신병자 취급이나 받겠지. 솔직히 난 지금도 내가 드디어 옛날에 받은 사이버웨어 시술 부작용 덕에 돌아버린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고.”


“나는 허깨비 같은 게 아니다. 봐라.”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운전대를 잡고 있는 그의 손에 그녀의 손을 올렸다.


“어떠냐? 나는 엄연히 생명의 온기를 갖춘 생명체란 말이다.”


“그래, 그건 잘 알겠는데 일단 손 좀 떼. 운전에 방해된다고.”


“알았다. 그나저나 이건 신기하구나. 자동으로 움직이는 쇳덩이라니.”


그녀는 자동차가 신기했는지 자동차의 계기판을 만지작거려 했다.


“만지지 마. 괜히 만졌다가 고장내지 말고.”


“조금 전부터 드는 생각인데, 네 말투는 꽤나 쌀쌀맞구나. 나에게만 그런 것이냐?”


“…원래 이런 말투야.”


“고치는 게 좋을 것 같구나. 아니면 친구도 못 사귈 게다.”


“나 친구 있거든?”


“친구가 성격이 좋은가 보구나.”


“말을 해도 꼭 그렇게 해야 하냐? 그래…걔 성격이 좋기는 하지. 정신에 조금 문제가 있는 친구기는 하지만.”


“정신에 문제가 있다고?”


“심각한 문제는 아니야. 그냥 폭발물에 조금 집착하는 것뿐이라고. 그나저나 당신 진짜 말 많네.” 


“시끄러웠다면 미안하구나. 하지만 이해해주거라. 몇 천년 동안 홀로 갇혀 있으면 누구라도 외롭다고 느끼지 않겠느냐?”


“딱히 말이 많은 사람이 싫은 건 아니야. 그냥 내 감상이었을 뿐이지.”


그라고 해서 그녀와의 대화가 싫은 것은 아니었다.


그로서도 대화를 이렇게 끊임없이, 길게 한 것은 꽤 오랜만이었기에, 그도 조금 즐거웠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너는 가족은 없느냐? 혼자 사는 것처럼 보이던데.”


“…글쎄.”


그는 그녀의 질문에 애매하게 대답을 하며 옷가게가 있는 쇼핑몰의 주차장으로 차를 몰았다.


 


“이건…꽤 커다란 건물이구나.”


그녀는 백화점 건물의 앞에 서서 말했다.


“아까 차 안에서도 커다란 건물들은 충분히 봤으니까 신기해 할 것까지는 없잖아.”


“차 안에서 멀리 있는 보는 것과 직접 볼 때의 느낌은 다르다. 넌 매일 봐서 그 차이를 모르는 것이겠지. 이곳에는 옷감을 짜는 이들이 사느냐?”


“시장 비슷한 곳이야. 그리고 사람 손으로 옷감을 안 짠 지는 벌써 수백 년도 더 됐어.”


"그렇느냐? 신왕전보다는 작지만, 그래도 몹시 큰 건물인데 겨우 시장이라니."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멋대로 앞서서 쇼핑몰의 안으로 들어갔고, 그는 그녀의 뒤를 천천히 따라갔다.


쇼핑몰 안의 옷가게들을 둘러보며, 스쿨드는 감탄하듯이 말했다.


“옷이 정말 많구나. 뭘 골라야 할 지 모르겠다.”


“1층에 있는 가게에서 아무거나 골라. 돈 없으니까 너무 비싸 보이는 건 말고.”


그 말을 들은 스쿨드는 주변의 가게를 둘러보더니 싼 일상복을 주로 취급하는 가게로 향했고, N은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약간 신나 보이는 발걸음으로 가게 안으로 들어간 스쿨드는 이내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하고서 말했다.


“이건 어떠냐?”


그녀는 걸려 있던 청바지와 재킷을 골라 그에게 보여주었다.


“괜찮아 보이네. 한번 입어봐.”


그는 패션에 대해서는 거의 문외한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최소한 무엇이 그녀에게 어울릴지 볼 수 있는 안목 정도는 있었다.


“그래.”


그녀는 그렇게 대답하고 그 자리에서 자신이 입고 있던 헐렁한 티셔츠를 벗기 시작했고, N은 황급히 그녀의 손목을 붙잡으며 제지했다.


“왜 그러느냐? 입어 보라면서?”


“…저기 탈의실에 가서 입어보라는 거야.”


그는 탈의실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일찍 알려주지 그랬느냐.”


“옛날에는 탈의실도 없었어?”


“없었다.”


“…됐다, 그냥 갈아입기나 해.”


그는 한숨을 쉬며 말했고, 그녀는 옷을 가지고 탈의실로 향했다.


“그나저나 생활비를 빼면 돈이 안 남을 것 같은데…또 일을 나가야 하나…” 


그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방금 전.


문 수리비와 옷의 가격을 계산해 보던 남자는 다시 한숨을 쉬었다.


“이번 주는 쉴 생각이었는데…생각대로 되는 게 없네.”


그가 그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사이, 탈의실의 문을 열고 그녀가 나와 말했다.


“어떻느냐?”


그녀가 고른 청바지는 그녀의 길고 탄탄한 다리에 딱 맞았고, 재킷은…


“왜 그런 눈으로 보느냐?”


재킷이 작은 사이즈는 아니었으나, 그녀가 지퍼를 끝까지 전부 잠궈 옷이 몸에 딱 달라붙은 탓에 그녀의 풍만한 두 언덕은 그 존재감을 충분히 과시하고 

있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그녀의 언덕을 바라보며 속으로 엄청 크다고 생각했다.


“방금 머릿속으로 꽤 무례한 생각을 하지 않았느냐?”


“안 했어.”


N은 양심이 찔렸는지 애써 눈을 돌렸고, 스쿨드는 장난기 섞인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바짝 다가가 말했다.


“그대의 눈빛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는 것 같은데?”


“안 했어. 어쨌든 그건 너한테 사이즈가 안 맞는 것 같네.”


그는 옷걸이에서 셔츠 한 벌을 꺼내서 건네며 그녀에게서 뒤로 한 발짝 멀어졌다.


“이걸로 갈아입고 나와봐.”


그녀는 그것을 가지고 탈의실로 들어갔고, 이내 셔츠로 갈아입은 채로 나왔다.


“어떤가?”


그는 그녀를 보자마자 자신이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을 깨달았다.


셔츠는 재킷보다는 헐렁했으나, 옷감의 두께가 얇았던 탓에 오히려 재킷보다 두 언덕이 그 존재감을 더욱 확실히 드러내고 있었고, 그 커다란 언덕의 중앙에는 옅은 색의 무언가가 그 모습을 희미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다른 거.”


N은 그렇게 말하며 황급히 옷걸이에 걸린 옷들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안 어울리는 건가?”


“아니, 안 어울리는 건 아닌데, 조금 문제가 있어서.”


“무슨 문제길래 그러느냐? 그나저나 이번에도 날 보는 시선이 조금 이상하던데.”


“말하기가 조금 그래. 어쨌든 이걸로 갈아입어 봐.”


그는 급히 옷걸이에서 두꺼운 후드티를 빼 건네 주며 말했다.


잠시 뒤, 탈의실에서 후드티로 갈아입고 나온 그녀를 보며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어떻게 해도 저건 영 가려지질 않네.


그의 말대로, 무엇을 입든 그녀의 두 언덕은 그 용맹함을 과시하고 있었기에, 그로서는 얇고 몸에 달라붙지 않는 형태의 옷을 입히지 않는 것이 최선이었다.


“계산하고 집에 가자. 지금은 돈이 별로 없어서 그것밖에 못 사.”


그는 계산대의 점원에게 크레딧 칩을 건네 계산을 마친 뒤, 백화점을 빠져나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녀는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정말 안 이상한 것이 맞느냐?”


“하나도 안 이상하니까 걱정하지 마.”


“그럼 아까는 왜 계속 갈아입게 한 것이냐? 어딘가에 문제가 있어서 그랬던 것이 아니냐?”


…가슴이 너무 커서 그랬다고는 절대 말 못하지. 그걸 어떻게 대놓고 말해.


그는 속으로 생각했고, 그럼에도 표정 변화가 없는 그의 얼굴을 보며 스쿨드는 그에게 물었다.


“너는 표정이 거의 변하질 않는구나. 짜증 낼 때를 빼고 말이다.”


“원래 감정이 얼굴에 잘 안 나타나거든.”


“신기한 녀석이구나. ”


그녀는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고, 그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 그녀를 쳐다보지 않기 위해 진땀을 뺐다.


그는 차를 자리가 남는 곳에 주차하고서 내리며 말했다. 


“…다 왔어. 내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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