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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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벼...병원에 가면 돼. 아무리 심하게 다쳐도 병원에 가면 금방 회복 될수있지.

-황모 씨-



병이 들거나 외상을 입은 환자들을 치료해 주는 시설. 


2050년대의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들은 일반적인 의료에 대한 지식 뿐만이 아닌, 신체 증강 부품을 이식한 환자들의 수술과 치료를 위해 공학과 기계 등에 대한 지식 또한 필요하며, 핵전쟁 이후로 그런 의사들의 양성이 어려워진 환경이었기에 2050년대의 병원비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그 덕에 빈민들이 밀집해 있는 구시가지에는 무면허 의사들이 대거 나타났으며, 그렇게 실력이 불확실한 의사들의 손에 구시가지의 시민들은 오늘도 자신들의 건강을 맡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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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과 그 일행은 리암을 바에 내려준 뒤, 급히 병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서두르는 게 좋겠구나. 안색이 점점 안 좋아지고 있어.”


스쿨드의 말대로, N의 낯빛은 점점 창백해져가고 있었다.


그의 호흡은 점점 약해지고, 눈은 초점을 잃고 있었다.


상처를 지져 외부로 나가는 출혈은 방지했지만, 신체 내부의 출혈은 막지 않았던 탓이었다.


몸에 오한이 몰려오고 있는지, 그는 점점 몸을 떨고 있었다.


“최대한 서두르고 있어.”


신더는 그렇게 말하며 차의 속도를 높였다.


“괜찮을 거다, 괜찮을 거야…”


스쿨드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떨리는 자신의 손으로 차가운 N의 손을 그것이 마치 그의 생명줄이라도 되는 것 마냥 붙잡고 있었다.


이내 차는 한 건물 앞에서 멈췄고, 신더는 차에서 내려 N을 부축해 내리게 했다.


스파크는 걸치고 있는 것이 신더의 외투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기에 차에 남아 있었다.


그를 부축해 건물 안으로 들어간 신더는 의사와 몇 마디를 나누더니, 이내 진료실로 들어갔다.


잠시 뒤, 약간은 안도되어 보이는 표정을 지으며 진료실에서 나온


“이제 괜찮을 거예요. 의사한테 맡겼으니 어떻게 치료해 주겠죠.”


그는 그렇게 말하며 병원의 벽 쪽에 놓인 벤치에 앉았다.


“그러고 보니 너도 어깨 쪽에 총을 맞았던 것 같은데, 괜찮느냐?”


“…버틸 만해요. 그리 심한 상처도 아니고. 응급 처치는 했으니까 괜찮아요.”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얼굴을 찡그리며 총상을 입은 부위를 압박했다.


 


잠시 뒤, 의사는 진료실에서 나와 스쿨드와 신더에게 N의 상처가 심해 응급 수술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전했다.


스쿨드 일행은 초조해하며 병원의 로비에 앉은 채로 수술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몇 시간 뒤,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두 사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N의 용태를


신더가 차에 홀로 남아있는 스파크를 챙기기 위해 자리를 뜬 사이, 스쿨드는 N과 단 둘이 남아 있었다. 


“…치명상을 입어도 병원이란 곳에만 오면 살아날 수 있다니, 세상이 참 좋아졌구나.”


그녀는 아직 잠들어 있는 N을 보며 말했다.


“치료가 잘 돼서 다행이었지만…너는 언제 깨어날 것이냐? 조금은 걱정이 되는구나.”


의식이 없는 그가 듣고 있을 리가 없음에도, 그녀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비록 의사가 수술을 성공적으로 끝냈다고 했지만, 그녀는 걱정을 떨칠 수 없었다.


그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어 보기 위해, 그녀는 계속해서 그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이었다.


약 한 시간 정도가 지나자, 마취가 풀렸는지 그는 서서히 눈을 떴다.


“정신이 드느냐?”


그는 대답 없이 주변을 둘러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내 숨은 아직 붙어 있나 보네.”


“사지도 아직 멀쩡히 붙어 있지. 그러니 어서 기운을 차리거라.”


“신들은 어디 한 군데 뚫려도 금방 메꿔지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린 아니거든? 어디 한 군데 뚫리면 병원에서 한참 골골대야 한단 말이야.”


그는 말할 기운이 조금 돌아왔는지 그녀의 말에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가서 좀 쉬어. 네 성격상 몇 시간 동안 내 옆에만 앉아 있었을 거 아냐.”


그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럼에도 그녀가 떠나지 않고 있자, 그는 그녀를 보며 다시 한번 말했다.


“집에 가서 쉬라니까? 네 말대로 내 사지는 멀쩡히 붙어 있으니까 내일 아침이면 퇴원할 거야.”


그럼에도 그녀가 떠나지 않자, 그는 한숨을 쉬며 말을 이으려 했다.


그때, 그는 자신의 오른손에서 이물감을 느끼고 그 쪽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그는 그녀가 자신의 손을 꽉 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잠시 할 말을 잃은 채로 자신의 손과 맞잡은 그녀의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긴 침묵의 시간 끝에, 그는 입을 열었다.


“…나 진짜 괜찮으니까, 신더네한테 부탁해서 집에 가서 쉬어. 나 멀쩡해.”


“난 어차피 못 돌아간다. 네 친구들이 빌려간다면서 네 차를 가져갔거든.”


그 말에, N은 잠시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살벌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이번엔 감옥이 아니라 납골당으로 보내버려야겠네.”


그의 혼잣말을 듣고서, 그녀는 작게 웃음을 흘렸다.


“왜 웃어?”


“그냥, 정말로 멀쩡한 게 맞는 것 같아서 말이다.”


그는 그녀가 웃는 모습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는 자신의 심장이 평소보다는 조금 더 빠르게 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왠지 모르게 고민에 빠져 있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본 그녀는 그에게 물었다.


“왜 갑자기 그런 심각한 표정을 짓느냐? 웃거라, 고생 끝에 살아났으면 호탕하게 웃어버리며 안 좋은 기억을 떨쳐야 하는 법이다.”


“난 원래 잘 안 웃어. 반대로 운 적도 별로 없고. 왜 그런지는-윽…”


그는 갑자기 얼굴을 찡그리더니,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괜찮으냐? 머리가 아파 보이는구나.”


“…괜찮아. 어쨌든, 왜 그렇게 된 지는 나도 모르지. 언제부터 잘 안 웃게 됐는지는 나도 몰라.”


“나도 원래는 잘 웃지 않았다. 노른들은 감정이 희박하거든.”


“너, 내가 보기엔 잘만 웃던데? 진짜 감정이 희박한 거 맞아?”


“발키리가 되면서 감정이 활발해졌지만, 정작 그때도 잘 웃지는 않았던 것 같구나.”


“그럼 지금은 왜 잘 웃는데?”


“글쎄, 누구 덕분이 아니겠느냐?”


“누구…아.”


그녀가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 눈치 챈 N은 쑥스럽다는 듯이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렸고, 그녀는 그런 그를 보며 말했다.


“네가 쑥스러워하는 건 처음 보는구나.”


“…쑥스러워하는 거 아니거든? 


설득력 없는 주장을 하는 그를 보며, 그녀는 여전히 입가에 웃음을 띈 채로 말했다.


“네 감정에 솔직해지거라, 그게 나쁜 건 아니지 않느냐.”


“내가 원하는 대로 그게 되면 진작에 그랬지. 나도 안 웃으면서 살고 싶은 게 아니라고.”


“그럼 지금 당장 한 번 웃어 보거라.”


“…지금?”


“그래, 지금.”


그는 그녀를 잠시 어이가 없다는 듯이 바라보더니, 이내 입가를 씰룩이며 미소 비슷한 무언가를 얼굴에 띄웠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우스꽝스러웠기에, 스쿨드는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참다가 결국 박장대소하고 말았고, 그런 그녀를 짜증 섞인 눈빛으로 바라보던 N은 이내 자신도 모르게 작은 웃음을 흘렸다.


그 웃음소리를 들은 그녀는 웃다 말고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N 자신 또한 자신이 웃은 것에 놀랐는지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금세 얼굴에서 웃는 표정을 거뒀다.


“방금 웃지 않았느냐?”


“…아니, 안 웃었어.”


“내가 두 눈으로 직접 보고 두 귀로 직접 들었다. 감히 여신의 앞에서 거짓말할 생각은 하지 말거라.”


그녀는 무엇이 그렇게 즐거운지 싱긋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고, 그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그는 고개를 돌려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드디어 웃어주었구나. 나와 몸을 겹칠 때도 웃지 않던 너인데 말이다.”


“…그걸 할 때 굳이 웃어야 되는 거야?”


그의 말에, 그녀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잘 모르겠구나. 그래도 웃는다는 건 기쁨과 즐거움의 표시이지 않느냐?”


“그렇지.”


“그렇기에 나는 너와 몸을 겹칠 때 웃는 것이다.”


그 말의 뜻을 이해한 N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딱히 너랑 하는 게 기분 좋지 않다는 건 아니야.”


“그건 안다. 침대 위에서 흥분한 너의 몸짓이 꽤 거칠게 변하니까 말이다.”


“...아팠다면 미안해.”


“그 부분에 딱히 미안해할 필요는 없다. 딱히 아프지는 않고, 오히려…”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말꼬리를 흐리더니, 이내 대화의 화제를 돌렸다.


“어쨌든, 기쁘고 즐거운 일이 있으면 웃는 거다. 아니면 즐거운 일이 딱히 없는 것이냐?”


“아니, 사실…너와 만난 뒤로는 즐거운 일이 생기더라.”


“그게 무슨 뜻이냐?”


“너가 처음 책에서 해방되었을 때, 너는 책 속에서 혼자였었지.”


그녀는 왜 그 이야기를 꺼내는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널 만나기 전에는 혼자였어. 신더와 스파크가 다 감옥에 가 버리고…”


그는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 집에서, 되는 대로 먹고, 되는 대로 자고, 되는 대로 일하는 생활의 반복이었지.”


그는 그 시절의 생활이 생각나는지 조금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목적도, 아무것도 없는 무료한 일상이었어. 느린 자살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말이야.”


그렇게 허비한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담긴 눈빛으로 그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네가 내 앞에 나타났지. 갑자기 마법처럼 말이야.”


“마법처럼이 아니라 정말로 마법이 맞다.”


“그런 의미가 아니잖아. 어쨌든, 네 이야기를 듣고, 나는 너에게서 나를 겹쳐 보게 되었어. 우린 똑같은 외톨이었으니까.”


“…그래서 날 받아주었던 거냐?”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맨 처음엔 그런 이유였지. 그 뒤로 너랑 같이 지내다 보니까…네가 점점 더 신경 쓰이기 시작했어. 겨우 며칠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말이야. 그렇게 계속 신경을 쓰다 보니까…그냥 자연스럽게 너에게 끌리게 됐지. 솔직히, 네가 매력적인 탓도 컸지만. 그리고 내가 너에게 야경을 보여주러 간 날에, 난 조금 취한 채로 본능에 몸을 맡기고 너에게 입을 맞췄고, 너는 그걸 뿌리치지 않았지. 그렇게 된 거야.”


그는 다음으로 꺼낼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를 않는지 잠시 우물쭈물했다.


그러나 이내 그는 마음을 다잡았는지 입을 열었다.


“조금, 아니 많이 늦은 감이 없지는 않지만…나는 너를 좋아하는 것 같아.”


그녀는 그 말을 듣고 말없이 그를 쳐다보더니, 이내 다시 한번 웃음을 흘렸다.


“…왜 웃는데?”


“지금 그걸 고백이라고 한 거냐? 감정 표현이 서툴다는 네 말이 정말 맞는 것 같구나.”


그녀는 즐겁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 서툴러서야 내 마음을 붙잡을 수나 있겠느냐?”


“…시끄러. 기껏 힘들게 말했는데.”


“뭐, 그렇게 서툰 점이 네 매력 아니겠느냐.”


그녀는 즐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봐라, 지금 나는 기쁘니까 웃고 있지 않느냐? 너도 지금 활짝 웃어보는 게 어떠냐?”


그 말을 들은 N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억지로 입꼬리를 올린 듯한 미소를 지었다.


“아니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 그냥 자연스럽게 웃어 보거라.”


그 말을 들은 그는 얼굴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조금 전, 그녀를 보며 작게나마 웃었던 느낌을 기억해내려는 모양이었다.


이내 그는 얼굴을 다양하게 일그러트리더니, 몇 십 번의 시도 끝에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미약하고 옅었지만, 확실한 웃음이었다.


“그래, 그렇게 말이다.”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그를 보며 같이 웃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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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쉬어가는 느낌으로 쓴 편.


오늘도 부족한 글 읽어줘서 고마워, 몬붕이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