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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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인간 복제에 대한 아주 많은 비난이 합리적인 논거에 근거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사람들의 혐오감을 자극할 요소로 이루어져 있거나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가치와 인간 복제가 윤리적으로 상충된다는 점에 막연하게호소할 뿐이다. 만약 이런 막연한 호소에 모든 것을 맡겨 버린다면 결국 윤리적 상충이 실제로 어떤 상황으로 전개될지 진지하게 고려되지 않을 것이며 감정적인 혐오라는 추상적인 관점만 남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인간 복제에 관한 논점을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고찰해 볼 것이다. 하나는 패배론과 운명론이다. 운명론을 따르면 어떠한 치명적인 유전자가 우리 가족을 휘몰아쳐 죽도록 괴롭히더라도 그냥 받아들이면서 우리가 지금까지 해 온 대로 계속해서 적당히 살아가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우리가 인류의 미래를 향해서 좀 더 단호한 태도를 취한다면 지금까지는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새로운 질문에 대답하기 시작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운명론을 받아들이고 있지 않다. 우리는 항상 더 나은 인류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ㅡ G.E.펜스, 《누가 인간복제를 두려워하는가》 中 발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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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여유가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는 누구인가?”


“나는-“


N은 헬멧을 쓴 사내의 말에 곧바로 대답하려 했지만, 이내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왜 대답을 못 하고 있지? 왜 대답을 망설이고 있지? 말하고 싶지 않은 건가?”


헬멧의 사내는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면…자네 스스로가 누구인지 자네도 모르고 있거나.”


N은 순간 흠칫 놀랐다.


자신은 과연 누구인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하층의 어느 고아로 남겨져서, 그 무기상에게 거두어졌다.


그 뒤로, 신더와 스파크를 만나고…



만나고…


“정말 단 한번도 자네의 기억이 왜 비어 있는지 의심해 본 적이 없나? 단 한번도?”


그 사내는 그에게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


“정말 이상하지 않나? 비정상적인 기억의 공백이 있는데, 스스로 의심조차 해 본 적이 없다니 말이야.”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자네의 기억은 조작되어 있다는 걸 말해주려는 거네.”


“개소리 집어쳐. 기억 조작 기술을 가지고 있는 놈이 나 같은 하루 벌어 며칠 먹고 사는 밑바닥 용병의 기억을 조작할 이유가 뭐가 있는데?”


“글쎄, 아마 자네는 보지 말아야 할 무언가를 봤거나…사실 자네의 신분이 밑바닥 용병이 아닌 거겠지.”


N은 의아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난 평생 구시가지를 제대로 벗어나 보지도 못한 놈이야. 내가 그저 그런 용병이 아닐 리는 없다고.”


“그럼 자네는 뭘 본 거지?”


“내가 알고 있겠어? 설령 알고 있더라도 네가 말하는 대로라면 누군가가 지워 버렸겠지.”


“오 이런…믿을 수 없을 정도로 순진하군, 자네는 말이지.”


사내는 과장된 태도로 다시 몸을 펴며 말했다.


“자네는 그저 그런 용병이 아니야. 그것 하나만은 내가 보증하지.”


 


 


한편, 부서진 N의 차의 잔해에 기대어 쉬고 있던 스쿨드는 멀리서 달려오는 자동차의 소리를 듣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멀리서 다가오는 허름한 자동차를 보며, 그녀는 그것이 신더의 차임을 알았다.


이내 신더의 차는 그녀의 앞에서 멈췄고, 그녀는 그 차를 향해 다가갔다.


차의 유리창이 내려가자, 그 안에서는 신더와 스파크가 그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N을 태운 차는 어느 쪽으로 갔죠?”


“저쪽, 오른쪽으로 가더구나.”


스쿨드는 차의 문을 열고 안에 타며 말했다.


“납치된 지는 얼마나 지났죠?”


“30분도 안 됐을 거다.”


“그럼 서두르면 납치 차량을 따라잡을 수도 있겠네요.”


신더는 차를 돌려 스쿨드가 알려준 방향으로 차를 몰며 중얼거렸다.


“저번에 리암 아저씨 때도 그렇지만, ADX가 그 녀석을 노릴 이유가 없는데. 그 녀석, 우리가 없는 사이에 무슨 사고라도 친 거예요?”


신더의 물음에, 스쿨드는 잠시 고민하더니 답했다.


“…내가 사창가에 납치되었던 적이 있었지.”


“그럼 N이 거기 들어가서 거길 싹 다 헤집어 놨겠네요?”


“그랬지.”


“아마 그 사창가가 ADX의 비호를 받는 곳이었나 보네요. 그것 때문에 이러는 걸 수도 있겠어요.”


“...그렇다면 이 일은 내 책임이나 마찬가지인 거구나.”


신더가 무심코 던진 말에, 스쿨드가 자신을 자책하자차, 스파크는 신더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세게 찌르며 스쿨드에게 손수건을 건넸다.


“일단 이걸로 피라도 조금 닦으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스쿨드는 그녀의 손수건을 받아 얼굴에 묻은 피를 닦으며 말했다.


“…그 녀석은 나를 구하려 왔었다, 우리가 만난 지도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는데도 말이다.”


“N은 원래 그런 녀석이에요. 우리가 감옥에 들어가기 몇 년 전부터 성격이 조금 변하기는 했지만.”


“그게 무슨 말이냐?”


“그 녀석, 원래는 굉장히 성격이 무른 편이었어요.”


스쿨드는 바의 알라우네 여주인, 리나의 말을 떠올렸다.


착한 아이였죠. 남들에게 싫은 소리 하나 못하고…


“그 성격이 변했다는 게, 어린 시절에 죽었다던 너희의 친구와 관련이 있느냐?”


스쿨드의 말에, 신더와 스파크는 동시에 뒤로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걸 어떻게 아세요?”


“리나가 말해주었다. 그것과 관련이 있느냐?”


신더와 스파크는 잠시 서로를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애의 이름은 레이첼이었어요. N은…”


“그 애를 짝사랑했다는 것도 들었다.”


“그럼 다 아시는 거면서 왜 물어보세요? 구시가지의 폭동에 휘말려서 레이첼이 죽었고, N은…그날 이후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어요.”


“N은 내게 말했다. 자신은 청소년기의 기억이 없다고 말이야.”


“…그런 말은 처음 들어보는데요? 아니, 애초에 청소년기의 기억이 없으면 저희도 못 알아봤을 텐데, 그냥 농담한 거 아니에요?”


“농담하는 것 치고는 꽤나 진지한 표정이었다. 애초에 청소년 때의 기억이 없다면 성격의 변화도 없어야 하는 것 아니더냐?”


“옛날 기억만 사라진 거라면 성격은 달라지지 않을 거예요. 옛날에 뇌 인터페이스 오류 덕에 기억이 다 날아간 사람이 있었는데…성격 지랄맞은 건 여전

했거든요.”


스파크는 혀를 차며 말했고, 신더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목소리로 스파크에 이어 말했다.


“이해가 안 돼요, 저희가 감옥에 들어가기 전에는 N이 당신 말 대로 기억을 잃은 것 같아 보이진 않았는데…그럼 저희가 감옥에 가 있는 2년 동안 무슨 일이라도 있었단 말인가요?”


“그건 아무도 모르지. 그리고 그 이야기는 걜 구출한 다음에 직접 물어봐도 늦지 않을 것 같은데.”


스파크의 단호한 말에, 신더는 말을 멈추고서 차를 모는 것에 다시 집중하기 시작했다.



 

“씨발, 말 돌리지 말고 날 잡아온 이유나 말해!”


N은 헬멧의 남자에게 소리쳤다.


“잘 생각해 보게, N. 머리가 좋은 편이라고 들었는데 그 정도 추리도 못 하나? 그럼 힌트를 주지.”


검은 헬멧을 쓴 남자는 품 속에서 단말기를 꺼내 어떤 장소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사진 속의 장소는 화려한 네온 사인을 단 사창가의 건물이었는데, 특이한 것은 그곳이 완전히 화염에 휩싸여 있다는 점이었다.


그곳을 곧바로 알아본 N은 남자에게 말했다.


“네 소유의 건물이었나? 미안한데 그 건물에서 일하는 놈이 먼저 내-“


“그렇게 하도록 명령한 게 누구라고 생각하나?”


“…뭐?”


“자네 연인을 납치하라 지시한 건 나네. 자네를 시험하기 위함이었지.”


그 말을 듣고서 N은 당장 남자에게 달려들려 했지만, 의자에 묶인 N의 움직임은 그저 몸부림으로 그칠 뿐이었다.


“그래서 실력은 확실히 확인했고, 이제 자네가 한 가지만 동의하면 자넬 놔주도록 하지.”



“좆까.”


“혈기왕성한 건 좋지만…때를 가리지 않는 혈기는 대가를 치르게 되는 법이지.”


그렇게 말하며, 남자는 주먹으로 N의 얼굴을 후려쳤다.


N의 머리는 그 충격으로 세차게 돌아갔고, 그것을 보며 남자는 말했다.


“자, 이제 내 이야기를 들어볼 준비가 됐나?”


“좆까.”


남자는 다시 N의 머리를 후려쳤다.


“이젠 준비가 됐나?”


“준비는 니미…그래, 니 엄마한테 허락이나 맡고 와서 나한테 그러지 그래?”


“허허, 이거 생각보다…훨씬 미친 새끼네?”


남자는 총을 뽑아 N의 머리에 겨누며 말했다.


“이젠 좀 준비가 됐나? 응?”


“내 말 못 들었나, 응? 니 엄마한테-“


남자는 총의 방아쇠를 당겼고, 총알은 N의 볼을 스치며 상처를 남기고 지나갔다.


“이래도 내가 농담하는 것처럼 보이나?”


“…야, 장난질은 좀 그만하지? 어차피 넌 날 죽일 생각이 없잖아. 날 죽이러 잡아올 거였으면 내가 눈 뜨자마자 내가 뒤져야 되는 이유를 장황하게 설명한 다음에 지체 없이 내 대가리에 총알을 박았겠지. 아니야? ”


N은 여유 있는 목소리로 말하며 그를 바라보았고, 남자는 그를 빤히 바라보더니 이내 총을 거두며 그를 비웃었다.


“그래, 잘 알고 있구나. 솔직히 말해서, 널 죽여버리고 싶은 마음이 정말 굴뚝같지만, 안타깝게도 넌 아직 내게 쓸모가 있고, 앞으로도 큰 쓸모가 있을 예정이거든. 그러니까 아직은 널 죽일 수 없는 거다. 하지만 말이지…”


총을 든 반대쪽 손에 들고 있던 단말기를 조작해 어딘가를 비추는 화면을 보여주며, 남자는 말을 이었다.


“이 녀석들은 죽여도 난 아무 상관이 없지.”


화면 속에 비치는 것은, 스쿨드 일행이 탄 차였다.


"이제 좀 내 얘기를 들어줄 기분이 되었나? 응?"


남자는 명백한 비웃음을 입가에 띄우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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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픈가...글이 잘 안 써지네...ㅠㅠ


오늘도 부족한 글 읽어줘서 고마워, 몬붕이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