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림표--




"...뭐?!"


"말 그대로일세." 


"그대를 사랑하고있네. 누구보다도 더."


게르트와 타이펀은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양쪽 모두 비슷한 반응이었지만, 그 후의 모습은 전혀 달랐다.


"느닷없이...아니, 왜? 이렇게 갑작스럽게? 오늘 만난 참인데 언제부터?!"


게르트는 코토네의 갑작스런 발언에 귀가 새빨개졌고,


"....하...흐하...하하하...정말이지...."


타이펀은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올라 주위로 노란 빛의 마력을 흩뿌렸다.


"....진짜, 어이가 없네. 정말이지..."


마치 눈으로도 독기를 쏘아내는것 같은 눈으로, 그녀는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긴 꼬리를 땅에 박아넣어 뒤를 지지한 채, 


"이제 더이상 못참아!!"


길고 두꺼운 꼬리는 힘껏 땅에 내리꽂아 박아넣고, 금방이라도 달려들것같은 자세.


"자....잠깐! 타이펀! 진정..."


게르트가 말릴 틈도 없는 찰나의 순간.


"으랴아아아아!!!"


타이펀은 기합을 내지르며 앞으로 튀어나갔다.


화살같이 빨랐던 처음의 모습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속도.


빛이 번쩍이고 뒤이어 소리가 따라오는 번개처럼, 그녀가 지나간 자리에서부터 소리가 그녀를 뒤따라오듯 터지는 소리가 났다.


-콰앙!


눈 한번 깜박일 틈도 없는 찰나의 순간, 타이펀은 뒤를 돌아 게르트를 바라보는 코토네의 눈 앞에서 검을 휘두르기 직전의 자세를 취하고있었다.


"...흠. 엄청나게 빠르군."


그녀의 움직임을 눈으로 쫒은 코토네가 왼쪽 허리춤의 야츠후사를 뽑아내 공격을 막아내려 했지만,


"하아아아아-!!!!"


오른 옆구리를 시작으로 왼쪽 어깨를 베어낼 기세로, 타이펀의 곡검은 밑에서부터 빠르게 날아들었다.


완벽하게 들어오는 빗겨베기.


이만한 속도와 힘이라면 필히 그녀의 몸은 두동강이 나도 이상하지 않다.


코토네의 오른손으로 야츠후사를 쥐고있긴 했지만, 도저히 막아낼 속도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코토네는 뒷걸음질 치며 몸을 살짝 틀어내 공격을 흘리고, 칼을 뽑아 타이펀의 목에 칼등을 때려박을 생각을 하고있었다.


하지만,


"...에이, 진짜!"


채앵-!


후왁-


펑!


"으왁...!"


코토네가 생각을 이행하려했던 그 찰나의 순간, 게르트는 검을 뽑아 타이펀의 공격을 막아냈다.


"...게르트...."


타이펀은 분노로 가득 찬 눈빛을 띈 채 게르트를 노려봤다.


"왜 감싸는거야....?"


독살스럽고 낮고 살기어린 목소리.


점잖고 예의바른 그녀가 드물게 화를 낼때 나오는 목소리였다.


"진정해. 길 한복판에서 무슨 짓을 하려는거야?"


등줄기에서부터 올라오는 오한이 느껴졌지만, 게르트는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기 위해 심호흡을 하고 말했다.


타이펀은 혀를 날름거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진정....진정하라고?"


쉬이이이익...


매끈한 입술에서 튀어나오는 끝이 갈라진 길다란 혓바닥 끝에서, 끈적하고 노란 액체가 묻어나오기 시작했다.


"지금 이 꼬라지를 보고도.....그딴 소리가 나와?!"


마치 빙판 위에서 미끄러지듯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타이펀은 앞으로 나아가 곡검을 머리 위로 올려 내리쳤다.


휭-!


"윽!"


카가앙!!!


"지금 나한테...진정하라는 소리를 어떻게 하냐고?!!"


"큭!"


게르트는 식은땀을 흘리며 엘레메실을 치켜들어 그녀의 공격을 막아냈다.


"저 사람은 도를 지나쳤다는거, 게르트도 알잖아! 알고있잖아!"


끈적한 마비독의 냄새가 게르트의 코를 자극했다.


"알지 그럼! 나도 뭐가 뭔지 모를 지경이니까!"


"그럼 왜...!"


카각...!


"어째서....!"


카가가각....!


"어째서, 왜...!!"


"윽...!"


"나를 막는거냐고...!!"


타이펀은 눈을 가늘게 뜨고 게르트를 차갑게 쏘아봤다.


"...그야!"


챙-


게르트는 교차된 검을 위로 튕겨낸 뒤,


"원만하게 해결하고 싶으니까 그러지!"


펑-


"그니까 진정하고, 열부터 식혀!"


"읏...!"


오른손에 응축시킨 바람 속성의 마나 샷을 쏘아내, 그녀의 무장을 해제시키려했다.


"....우선, 그거부터 놓고!"


게르트의 오른손을 꼬리로 쳐낸 타이펀은 마나 샷의 각도를 틀어 거리로 쏘아내게 만들었다.


"뭣...?!"


"늘 써먹는 그걸 당해줄거라 생각했어?!"


공격이 빗나가자, 타이펀은 차갑게 웃으며 혀를 날름거렸다.


"....이제 비켜! 널 다치게 하고싶지는 않으니까."


타이펀은 게르트의 목덜미에 곡검을 갖다댄 채 말했다.


"...타이펀. 진정해. 머리 식히고..."


"칼부터 내려놔."


게르트는 순순히 패배를 인정하고 엘레메실을 땅에 떨어트렸다.


"......"


"손."


그녀의 말을 따라, 양 손을 머리 위로 올린 그가 말했다.


"...니 마음은 충분히 알지만, 이제 그만해. 아무리 그래도 이건..."


"시끄러."


타이펀은 게르트의 무릎 뒷쪽을 발로 차 그를 무릎꿇게 만들었다.


"잠시 마비시킬거야. 또 방해하면 곤란하니까."


그리고, 드러난 윗쪽 목덜미를 보며 입을 벌렸다.


"아움."


콱, 하고 그의 목을 물은 타이펀은 그대로 진한 마비독을 그의 몸에 집어넣었다.


"큭...!"


뜨거운 액체가 목을 타고 퍼지기 무섭게, 게르트의 온 몸에 감각이 사라져갔다.


"푸핫."


게르트는 부들부들 떨리며 사라져가는 감각 속에서 힘겹게 말했다.


"...이건...너무...쎄잖아...!"


평소보다 몇배는 독한 마비독이 몸 속 혈관을 타고 흐르고 있다는것을 직감한 게르트였지만,


"...츄릅."


타이펀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입맛을 다셨다.


"당신이 진심을 내면 나도 금방 질게 뻔하니까, 봐주고 있을때 제압해둬야지."


그녀는 게르트의 볼을 어루만지며 웃었다.


"걱정하지마. 어차피 내성이 있잖아? 마비독이니까 죽지도 않을거고."


"...너....진짜....!"


팔, 다리, 심지어는 혀와 입술까지.


온 몸의 감각이 마비되어 저리는 느낌이었지만, 의식만큼은 또렷했다.


"...제발...일 크게 벌리지 좀 말라고..."


"저쪽이 먼저 시작한거야."


"아무리...그래도..."


"조용."


타이펀은 게르트의 입에 동그랗게 만 천을 물려 말하지 못하도록 봉했다.


"후...."


그녀는 불쾌하다는듯 미간을 찌푸리며 천천히 일어섰다.


"그럼...."


곡검을 고쳐잡고 자세를 잡은 채, 타이펀은 코토네를 바라봤다.


"...이제 당신 차례네요."


"....으음...."


코토네는 쓴웃음을 지으며 타이펀을 바라봤다.


"이것 참, 곤란하구먼."


비늘덮힌 녹색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타이펀은 코토네를 노려봤다.


"곤란해? 이런 짓을 해놓고도 하는 말이 고작 그거에요?"


"허허. 이것 참."


코토네는 양 손을 올리고 말을 이었다.


"난 그저 스스로의 마음에 솔직해졌을 뿐일세. 그대 말처럼 말이지."


"하. 내 남자한테 맘대로 손대는게 당신 마음이라 이거에요?"


타이펀과 코토네는 다섯걸음 정도 떨어져서 서로를 바라봤다.


"...그것 참,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군 그래."


코토네가 곤란하다는듯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나는 그저 오른쪽 팔짱이 비어있는게 좀 마음에 걸려서 채워주고 싶었을 뿐일세."


"...그걸 지금...말이라고...!"


타이펀은 다시금 튀어나가 코토네를 향해 곡검을 휘둘렀다.


"하는거냐아아아아아-!!!"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곡검을 덤덤한 얼굴로 바라보던 코토네는,


"....호세팔방천(護世八方天), 남동의 하늘...화천(아그니)...."


칭.


"토모시비(灯火)."


채앵-!!


"우극....?!"


눈 깜짝 할 사이, 오른손으로 야츠후사를 쥐고 타이펀의 공격을 막아낸 코토네의 기술이 날아들었다.


화르륵...


"불...?!"


야츠후사에 둘러진 검붉은 불꽃이 주위를 밝혔다.


"이런, 이런...굳이 이래야 하는 이유가 있나?"


코토네는 덤덤한 얼굴로 타이펀을 바라봤다.


도신에 둘러진 뜨거운 열기 탓인지, 타이펀은 식은땀을 흘리며 인상을 쓰고있었다.


"쓰러진 부군의 말처럼, 여기서 그만하는게 좋다고 생각되네만."


"....닥쳐!"


챙-!


타이펀은 코토네의 칼을 튕겨내고 자세를 낮춰 내려베기를 날림과 동시에,


"으랴아아아!"


부드럽게 움직이는 꼬리가 검격과 함께 몸통 중앙으로 날아들었다.


빠르고 정확한 검격과, 직선적이고 정직했던 과거가 생각나지 않는 신체의 특징을 살린 공격.


서로 함께 했던 여정에서 강해진것은, 인큐버스가 된 게르트만이 아니었다.


마력으로 강화된 근력과, 그 근력의 강화를 증명하듯 빨라진 속도, 마비의 농도를 더 강력하게 조절하는 독, 온갖 냄새가 섞인 도시에서조차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후각.


타이펀의 신체적인 모든 요소가, 코토네를 능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흠!"


코토네는 날아드는 꼬리를 왼손으로 잡아챈 뒤, 오른손에 쥔 야츠후사를 땅에 박아 하단의 검격을 막아냈다.


"뭣...?!"


"휴우... 것 참, 이렇게 가까운데도 정말 빠르군. 눈으로도 겨우 쫒아갈 정도였네."


"어...어떻게...?!"


타이펀의 소스라치게 놀란 얼굴을 보며, 코토네는 태연하게 웃어보였다.


"그냥 감일세. 왠지 이걸 노리는것 같기에."


"이익....!"


타이펀은 이를 갈며 뒷걸음질 쳤다.


"어이쿠야."


꼬리를 잡은 채였던 코토네는 타이펀의 강한 힘에 이끌려 몸의 중심을 잃으려했고,


"하아앗!"


타이펀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오오, 속도는 물론이고 힘까지! 대단하구먼!"


"이게 진짜!"


능글맞을 정도로 태연한 코토네의 얼굴을 보며 짜증을 느낀 타이펀은 좌반신을 틀어 코토네를 향해 들이받으려했다.


"핫!"


"...속도, 완력, 마력...모든 면이 그대보다 뒤쳐지는군. 이런 이런...역시 '영교접'은 대단하군."


정면으로 달려드는 타이펀의 몸통, 꼬리의 힘에 의해 손 밖으로 나와 땅에 박힌 채인 야츠후사.


"...허나 역시 부족하군. 전력을 다하지도 않다니, 너무나도 오만하군 그래."


코토네에겐 방어할 수단이 없었다.


"...호세팔방천(護世八方天), 남서의 하늘, 나찰천(니르리티)."


하지만, 그녀는 냉정침착한 얼굴로 잠시 정신을 집중해 중얼거리고는,


"모오코(猛虎)."


다가오는 타이펀의 좌반신에 힘껏 움켜쥔 주먹을 올리고 크게 소리쳤다.


"갈(喝)!!"


주먹에 가득 응축시킨채 발사하듯 짧게 끊어친 주먹과 함께, 충격파가 일었다.


"끅...?!"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붕 떠버리며 뒤로 날아간 타이펀은 공성추에 직격당한듯한 충격을 받으며 고꾸라져버렸다.


맹호(猛虎).


안개의 대륙의 권법가들이 사용하는 촌경(寸勁)을 응용해 자신들의 기술로 승화시킨 호세팔방천의 하나.


"...후-...."


바다 건너 안개에 둘러쌓인 대륙의 권법이 떠오르는 '품새'와 흡사한 자세로, 코토네는 깊게 심호흡을 하고서,


"거기 자빠져있게나.....네년같은 hlócë는 내 아들의 반려가 될 자격따인 없으니 말이다."


"윽....?!"


타이펀은 배를 움켜쥔 채로 코토네를 바라봤다.


"바닥을 기고있는 모습이 참으로 어울리는구나. 더러운 hlócë."


날이 선 듯 날카롭고 공격적인 말투로, 코토네는 타이펀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만한 힘을 숨겨두고 나를 이길 수 있을것이라 생각했느냐? 오만한 hlócë 같으니."


코토네는 배를 움켜쥔 채 자신을 노려보는 타이펀을 향해 몸을 수그렸다.


"그 담피르의 방에 숨어지내던 동안, 내가 왜 네년의 말을 무시했는지 알고있느냐?"


"...커흑...!"


그녀의 푸르고 붉은 눈빛은 타이펀의 노란 눈동자와 마주치며 강렬한 빛을 발했다.


"그만한 힘을 숨겨두고도 고작 몸을 저리게 하는 마비독만을 사용하는 네년의 오만함이 싫었기 때문이다."


오른쪽 상완부에 붙은 뼈뭉치에서 강렬한 푸른 불꽃이 화륵거리며 타올랐다.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못한 채 힘을 숨길 뿐인 네년따위는 내 아들의 곁에 설 자격은 없다."


코토네의 차가운 일갈에, 타이펀은 인상을 쓰며 이를 갈았다.


"...콜록...커흑...!"


그녀는 힘겹게 기침을 토해내며 코토네를 노려봤다.


"당신이....뭘 안다고!"


노란 눈동자는 서로 색이 다른 코토네의 눈동자와 마주친 채 불타오르듯 빛났다.


"나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는 당신이....대체 뭘 안다고!"


"아무것도 몰라? 하! 우습구나!"


코토네는 주위를 불태우듯 뿜어지는 노란 마력을 바라보며 코웃음쳤다.


"네년이 세샤나가의 핏줄이라는것 정도는 진작에 알고있었다! 검에 인생을 바치며 살아온 내가 나기니를 한두번 만나본줄 아느냐!"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땅에 박힌 야츠후사를 왼손으로 뽑아냈고, 푸른 마력이 그녀의 몸에서 발하기 시작했다.


검에서부터 뿜어지는 코토네의 - 아니, 페나르핀의 마력이 야츠후사를 타고 흘렀다.


타이펀은 곡검을 지팡이삼듯 잡고 천천히 일어서서, 스스로의 검에 마력을 담아내는 엘프의 얼굴을 바라봤다.


"...윽....!"


"하. 참 힘겹게도 일어서는구나. 그런 힘을 갖고도 엄살이라도 부릴 셈이더냐?"


페나르핀의 하늘처럼 푸른 왼쪽 눈이 은은한 빛을 내뿜으며 타이펀을 향하고 있었다.


"Tolo.(오거라.) 오만한 hlócë. 이번에야말로, 네년의 전력을 내게 부딪쳐봐라."


그 푸른 마력의 기류는 타이펀의 그것보다 보잘 것 없이보였지만,


그 작은 마력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그 무엇보다도 인상적이었다.


마치 잘 갈고 닦은 도검처럼 예리하게 빛을 뿜어내는 그녀의 작은 마력은 오직 단 하나의 목적만을 위해 야츠후사를 빛내고 있었다.


타이펀을 베는것.


그것 하나만으로, 그녀의 마력은 그토록 서늘하고 날카롭게 야츠후사를 빛내고 있는 것이었다.


"...큭....!"


게르트는 입에 물린 재갈을 어떻게든 뱉어내고 두사람을 바라봤다.


평소보다 더 진하고 강한 마비독이 몸을 타고 흐르는 탓에, 팔다리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두사람을 말려야 한다.


오직 그 생각으로 머리가 꽉 차버린 게르트는 이를 갈며 몸을 움직였다.


"으그그그그....!"


부자연스럽게 부들거리는 몸은 말을 듣지 않았지만, 게르트는 움직이는것을 멈추지 않았다.


마치 오랫동안 눌려있다 풀어진 팔다리의 감각이 온 몸에 퍼진 기묘한 감각이 온 몸에 퍼져있었지만,


그는 악에 받친 목소리로 팔에 힘을 주며 중얼거렸다.


"...하여간! 머리에 피만 돌았다 하면 사람 말을 들어처먹지를 않아대고 말야!"


타이펀은 페나르핀을 노려보며 곡검을 고쳐잡았다.


전투준비가 끝난 페나르핀을 항해 무작정 달려들 기세였음을, 게르트는 파악했다.


"이 망할 여편네...!"


녹색과 청색이 뒤섞인 그의 눈동자에 번갯불과 같은 빛이 튀겨올랐다.


"흐아아아아아악....!!!!"


타이펀이 몸에 주입하는 마비독은 마비반응을 일으키는 화학물질과 마력이 혼합된 액체.


주 성분의 반이 마력이라면, 해결방법은 간단하다.


"...움직여라...!....움직여...!!"


게르트는 온 힘을 다해 마력을 내뿜어, 몸 속에 흐르는 마비독을 태워내려했다.


이글거리는 마력의 기류가 게르트의 온 몸에 불처럼 달라붙어 타오르자, 녹색과 청색이 뒤섞인 그 특유의 빛깔이 어두운 밤거리에 빛을 더했다.


엎어진 상태로 독을 태워내길 수십초.


그의 팔다리가 조금씩 조금씩 자연스럽게 움직이며, 차갑게 식은 거리의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가 느끼기 시작했다.


"...좋았어...!"


게르트는 쓴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다리에 힘을 줘 일어섰다.


"...으극...후우...!"


일어서는 와중에도 마력의 방출을 계속하고 있자, 결국에는 타이펀에게 주입된 독의 영향이 대부분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는 무릎꿇은 자세로 한숨을 내쉬고, 자신이 떨어트린 엘레메실을 잡았다.


"...후우!"


그리고는, 서로를 죽일듯 노려보는 두사람을 향해 소리쳤다.


"거기까지!"


성난 게르트의 외침을 들은 페나르핀과 타이펀은 그에게로 시선을 집중시켰다.


"뭐....?!"


"...아가...."


"둘 다, 거기까지만 해."


게르트는 두사람을 바라보며 녹색과 청색이 뒤섞인 눈동자를 빛냈다.


"가족싸움도 정도껏이지, 칼까지 빼들고 대체 어디까지 가려고?"


"........."


"...다...당신...어떻게?"


그는 마력을 뿜어내 체내의 마비독을 전부 태워내버리곤 말을 이었다.


"기합으로 어떻게든."


칼자루를 쥔 왼손을 들어 자세를 취한 게르트는 말을 이었다.


"이제 주변에 민폐를 끼치는건 거기까지만 해둬."


녹색과 청색이 뒤섞인 특이한 눈동자에서 마력이 튀겨오르듯 뿜어졌다.


"이제 칼 거두고, 둘 다 물러나. 안그러면...힘으로 말려주겠어."


두사람은 게르트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입을 다물었다.


"......"


"타이펀."


게르트는 타이펀을 바라보며 말했다.


"...잘못한건 저쪽이 먼저잖아."


그녀는 혀를 날름거리며 샛노란 눈을 마력으로 빛냈다.


"화났구만."


"당연히 화나지! 너같으면....!"


타이펀은 분노로 가득 찬 얼굴로 온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녀는 쉽게 화를 내는 성격은 아니나, 한번 그 분노의 스위치가 켜지면 쉽사리 화를 삭힐 줄 모른다.


자신의 컴플렉스를 건드리거나, 남편의 대한 흉을 듣는다거나, 혹은 그 이외의 요소로 그녀의 화를 불러일으키게 되면,


그녀는 길길이 날뛰며 쏜살같이 빠른 다리로 주변을 마구잡이로 부수고 베어낸다.


심지어는 평소 살생을 꺼려하는 그녀라도 이렇게 화가 난 순간만큼은 모든 것을 무참히 베어낸다.


자신의 분노가 꺼질때까지, 적이라고 인식된 모든 것에 화를 내는것이다.


두사람이 이명을 얻을 정도로 유명해진 계기도 사실, 타이펀의 화를 돋군 도적단이 그녀의 움직임에 모조리 쓸려나갔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직 유일하게 게르트만이, 그녀의 화를 진정시킬수 있다.


악이 받친만큼 강한 독이 몸에 주입되어 타이펀의 고기인형이 되는 부담은 있지만 말이다.


"암만 그래도 이건 아니지. 감옥에서 빼내오고 두달간 그 개고생을 해놓고선, 이제와서 그걸 전부 물거품으로 만들 셈이야?"


".....윽...!!..."


"됐으니까, 칼 거둬. 또 잔뜩 죽인 다음에 후회하지 말고."


"......!!!"


마치 자신을 타이르듯 이름을 부르는 남편의 목소리에 타이펀은 더 이상의 말도 하지않고 곡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


게르트는 전투의지를 꺾은 타이펀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다, 두 눈의 색이 다른 그녀를 바라봤다.


"....그럼..."


그는 왼손에 칼을 쥔 그녀를 천천히 관찰했다.


야츠후사를 쥐고있는 그녀의 자세, 표정, 기척.


아무리 봐도 그 모습은 코토네의 것이 아니었다.


"어째 요즘들어 부쩍...싸우기만 하시는군요."


게르트는 확인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


"...더이상은 주위에 민폐를 끼치니, 거기까지만 하는게 어떻겠습니까?....어머니."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엘프어로 말했다. 그러자,


"후후....아가. 그토록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아왔건만, 너는 아직도 이 어미를 모르는구나."


...페나르핀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색이 다른 두 눈동자를 빛냈다.


"나는 이미 발검을 했단다. 이대로 무언갈 베지않으면....이 자리는 제대로 매듭지어지지가 않겠지."


"....무언갈 베지 않으면이라니...것 참. 숲에선 그러신 분이 아니셨잖습니까."


"나는 원래부터 이런 사람이었단다."


페나르핀은 야츠후사를 들어 게르트를 가리켰다.


"비켜서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하아..."


게르트는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저 칼때문에 이게 뭔 고생이람."


"아가야. 어서...비켜서렴. 차마 널 베고싶지는 않구나."


페나르핀은 서늘한 웃음기를 머금고 게르트를 바라봤다.


마치 유령처럼 웃는 그 모습에서, 전에는 보지 못했던 광기가 느껴진다.


".....하아아아아아......"


게르트는 또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진짜, 저 칼때문에 이게 뭔 고생이람."


그의 머릿속에서 코토네가 말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는 타치바나 코토네였던 여인의 일부일세. 그녀는 스스로의 영혼을 잘게 찢어내 죽음을 맞이하려 했으나, 검에 갖힌 영혼은 어디로도 갈 수 없었지.


오히려 그녀의 조각난 영혼의 조각들은 검 자체의 힘에 이끌려 검과 하나가 되었네.


생전, 그녀가 가지고 있었던 다양한 기억과 감정이 담긴 가 조각들은 도신에 깃들어 야츠후사의 힘을 변이시켰고...


행복했던 기억, 긍정적인 감정을 제외한 어두운 기억과 감정들은 모조리 검에 깃들게 되었지.


즉, 지금의 야츠후사는 혼을 담아 봉인하는 힘 뿐만 아니라...타치바나 코토네의 악의가 검 자체에 깃든...말하자면, 자아를 가진 칼이 되었다는 걸세.'


페나르핀은 음침하게 웃으며 광인처럼 중얼거렸다.


"자, 어서. 어서...어서 비켜서렴. 나의 주군...나의...나의...."


그녀의 푸른 마력에 검붉은 빛이 더해지며 흉흉한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그래서, 저 사람은 어머님인거야, 아니면 코토네씨인거야?"


곡검의 폼멜에 손을 얹은 코토네가 심상치 않은 마력을 내뿜는 페나르핀을 보며 나지막히 물었다.


"...나도 몰라....아이고오...그나저나, 저 상태면 코토네가 몸을 차지하고 있는 편이 차라리 나을 지경이구만..."


게르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타이펀을 바라봤다.


"미안하지만, 혹시 도와줄수 있지?"


"...흥. 아깐 그만 하라며?"


"그러고 싶었지. 근데 말로 해결이 안되는 모양이라."


게르트와 타이펀은 페나르핀을 바라봤다.


왼손에 들린 야츠후사의 도신에 검붉은 마력이 스물스물 퍼지며 흉흉한 빛을 내뿜었다.


"....여기서 칼부림을 일으켰다간 큰일이 날거야. 그러니까..."


게르트는 왼발을 들었다 내리찍었다.


그러자 게르트를 중심으로 투명하고 둥근 구체가 붕- 하며 주변을 감싸며 퍼져나갔다.


프로텍트.


무속성의 방울을 주위로 퍼뜨려내 결계를 형성하는 마법.


"...되게 오랜만에 보네."


야영을 위해 주위에 펼쳐줬던 게르트의 마법을 자주 봐왔던 타이펀은 쓴웃음을 지으며 곡검을 뽑아냈다.


"방음마법도 추가로 걸어뒀으니까...밖에는 들리지 않을거야."


게르트와 타이펀, 페나르핀을 감싼 마력의 돔은 건물과 건물 사이, 도로 전체를 감싸고 퍼져 그 범위를 유지했다.


"어떻게든 빨리 해치우고 잠이나 자자."


타이펀은 곡검을 쥔 채, 불처럼 타오르는 노란 마력을 뿜어냈다.


"그래야지."


그녀에 말에 맞장구를 치며, 게르트는 녹색과 청색이 뒤섞인 마력을 태워내며 엘레메실을 고쳐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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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티에라 대륙


주신교국이 존재하는 대륙의 먼 서쪽에 위치한 광활한 대륙.


본래 무역을 위해 항해를 하던 도중, 잘못된 해역에 들어선 '크리스토스 콜름버스'에 의해 발견된 대륙이다.


광활한 삼림지대, 산악지대, 늪지대, 평원지대, 사막 지대 등 다양한 환경이 펼쳐진 광활한 대륙으로,


새로운 삶을 원하는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은 이 신대륙을 향해 떠나왔다.


크고 작은 무리가 이루어져 많은 마을이 생겨났고, 이윽고는 국가마저 생겨났으나,


본토에서 이어져온 주신교도들과 타 종교를 가진 사람들간의 불화와 경쟁이 심화되어 남과 북으로 갈라진 전쟁을 겪게된다.


주신교도를 주축으로 일어선 '레티에라 왕국'과,


여러 신앙이 합쳐진 다신교도 '아트리아 제국'의 충돌.


끝없이 이어졌던 대륙 내의 전쟁은, 결국 레티에라 왕국의 승리로 돌아가게 되었고,


아트리아 제국의 사람들은 모두 대륙 가깝게 붙어있던 커다란 섬, '삭스'로 이주하게 된다.


그리고, 레티에라 왕국은 승전을 축하하며, 당시 왕국의 초대 국왕이었던 '베르너 레티에라'의 성을 딴 '레티에라'로 짓게 되었으며,


대륙 정 중앙에 큰 성을 짓고 수도성 '레티에라'를 짓게된다.


레티에라 대륙은 너무 커다란 탓에, 아직까지도 개척되지 않은 지역이 존재한다.


중앙 및 동부는 처음 발을 디뎠던 사람들로 인해 도시와 성이 들어찬 곳이 많지만, 저 멀리 서부, 북부, 반절 이상의 중앙 대륙엔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지역이 많다.


그렇기에, 아직까지도 새로운 삶에대한 기회를 갈구하는 많은 이들은 이 레티에라 대륙의 국민이 되기 위해 다양한 곳에서부터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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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입니다 몬붕쿤들


한동안 설정글만 쭉 쓰다보니 늦었읍니다...


거의 2주간격마다 하나씩 올리는데


전보다 속도가 안나와서 참 ㅈ같읍니다


존나 길기만 하고 야스도 안나오는 노잼소설이 되고있는걸 알고는 잇지만


아사나기, 신도에루, ,판노히토리, Terasu MC등 순애따윈 없는것에만 꼴리다보니


순애야스를 쓰는게 힘듭니다


아마 이래서 모쏠아다인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씨발


아무튼, ㅈ노잼 망상글에 개추도 주고 관심도 주고 그림까지 그려주는 몬붕쿤들 너무 고맙읍니다


솔직히 몬붕쿤들 아니었다면 이렇게 길게 싸지르지도 않았을건데


덕분에 9개월동안 망상글을 싸지르고있읍니다


늘 저에 망상쓰레기통이 되어줘서 고맙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