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야, 시발."

누군가 내 머릿속을 통해 직접 의지를 보내는 감각.

목소리? 겨우 그런 의사소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으로서, 생물로서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의지라고만 표현을 할 수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반응은 소름따위를 돋게 하는 것일 뿐.


[내가 좋은 거 해줄게... 혹시 시간 좀 내줄 수 있어?]

내 의지가 아닌 헤아릴 수 없는 무언가가 나를 잠식, 통제, 지켜보는 듯한 어두컴컴한 기운에 나는 모든 힘을 끌어모아 나에게 의지를 보내는 존재에게 나의 뜻을 보낸다.

[안 사요.]
[뭐야, 어떻게 말로 안하고 의지로 대화 하는거야?]
[안 사요.]
[나 잡상인 아니야! 잠깐 내 이야기 좀 들어봐!]

[안 사요.]

[아 진짜!!]


짜증을 내는 의지를 받은 순간, 세상은 어두워졌다.
아니, 세상의 어둠이 내 앞으로 꿈틀거리며 모여들었고 무언가가 헌신을 하였다.
오타쿠라고 불리는 존재나 좋아할 듯한 검은 니삭스와 허벅지보다 한참 위에 있는 정말 짧은 검은 치마.

내가 어둠의 자식이오, 라고 주장하는 듯한 갈색의 피부.
겨드랑이가 다 보이는 검은 민소매에 붉은 브로치를 목에 걸고 있는 나의 명치보다 약간 큰 작디작은 소녀가 나를 올려다보고 있다.

"안녕! 오랜만에 헌신이라 어색하네!"
" "
"이 옷 어때? 너한테 처음으로 선보이는 건데? 이거 잘 먹힐 거 같지?"
"전 페도 새끼가 아닙니다"
"아니 그 뜻이 아니라! 흠흠... 아무튼 반가워! 어둠의 여신이야!"

정말 미친년이 꼬였다.
우리,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웬 이른 중2병 걸린 갈색 로리 꼬맹이가 어둠의 여신이라고 소개하면 니들이라고 안 그럴 거 같아?


진심으로?


좀 분위기 있게 등판했다고 해도 신이라면 가오가 있지

[나는 어둠의 여신이다. 인간이여]

라고 소개못할 망정!

[반가워! 어둠의 여신이야!]

너네 같으면 믿어?


그것도 저런 복장에?


"너 지금 내가 이런 옷 입었다고 신이냐고 의심하지! 그렇지!"

"..."

"다른 신이면 몰라도 나같은 하꼬 신들은 괜시리 가오잡으면 있던 신도들도 다 떨어져 나간다니까? 그래서 우리 신도들도 그렇고 겸사겸사 다른 인간들이 나한테 친밀감 느끼게 하려구 꾸며봤는데 별로야?"

"의도는 좋고 귀엽기도 한데... 참 그게..."

"그치! 귀엽지! 그러면 혹시 어때, 어둠에 관심 있어? 내가 진짜 잘해줄게!"


작은 몸짓, 높은 목소리, 가벼운 말투.

겉으로는 정말 하찮아 보이지만 나의 정신을 잠식하였던 그녀의 의지를 다시 한 번 떠올리니 그녀의 행동이 역으로 나에게 크나큰 공포를 안겨주었다.


"안합니다."
"아니 왜! 너도 그 빛의 힘인가? 그거 섬겨?"

"섬긴다던지 딱히 다른 신을 섬기지는 않는데 솔직히 어둠 섬기는건 좀 힙스터같고 그렇잖아."

"야!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는게 당연하지! 어둠이 뭐 어때서!"

"에이~ 말이 그렇지 솔직히 연극이나 소설 같은 거 보면 늘 타락하거나 악에 잠식된 존재는 흑화했다고 표현하잖아, 그렇지! 당연히 용사가 있으니까 마왕도 있고 막말로 어둠이 그래서 있는거 아니에요?"

"야, 솔직히 마왕이 뭐 어때서! 꼭 지들 정의에 맞지 않으면 악이라고 규정짓는게 더 악랄하지 않아?"

"아 됐어요~ 돼지 내장 같은거 안가를거에요~ 저리 가세요~"

"야! 그거 다 걔네가 이상한거야!"

"어둠 섬기면 이상해진다고? 응 알아~"

"...내가 진짜 장담하는데 니 손으로 제단쌓고 나 부르게 될거야."

"절대 그럴리 없으니까 안심하시고 당장 떠나주세요."


어둠의 여신이라는 존재와 결국 말싸움을 해버렸다.

솔직히 만만해보이기도 하고 여신이 직접 전도하더라도 어둠을 섬기라는건 니가 생각해봐라, 너 같으면 섬기냐?

전 빛의 신을 섬깁니다! 라고 말하면 음 그럴 수 있지, 뭔가 성스럽고 고귀해보이는데 전 어둠의 신을 섬깁니다! 라고 말하면...

좀 어둠의 자식같고 성격 안 좋을 거 같고 부정적인 이미지만 쌓이고 더해?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어디서 협박질이야?


"비나이다... 비나이다... 제발 다시 강림해주세요..."


라고 생각할때가 저에게도 있었습니다.

절대란건 없군요.

어둠의 신을 향해 5분 정도 빌었을까, 드디어 강림해주셨다.


"ㅋㅋ"

"이건 경우가 아니죠, 여신님 씨발..."

"니가 먼저 어둠 혐오했잖아. 그래서 뺏어봤지."

"아니! 그래도 자는거로 그러는건 경우가 아니죠!"


그가 잠자리에 들기 전, 눈을 뜬 상태에서는 밤의 편안함과 새카만 어둠이 반겨주었는데 눈을 감자...

밝은 빛 아래에서 눈을 감은 듯한 환한 기운이 그를 덮쳤다.

밝은 빛의 기운에 당황해 눈을 뜨자 무슨 일이 있었냐는둥 자연스러운 어둠이 또다시 그를 반겨주었지만 눈을 감으면...


그는 3일간 잠을 설쳤고 질 낮은 수면과 고통에 신음하다 결국 돌로 제단을 쌓으며 돈과 음식을 올려두고 정말 간절하게, 이렇게 간절한 적이 없었다는 듯이 손이 발이 되도록 정말 싹싹 빌었다.


여신님 제발 강림해주세요, 아니 응답해주세요, 여신님 제 말 들리시죠? 제가 다 잘못했어요...

하면서 말이다.


잠시 쓰잘데기 없는 설명을 해본다.


다른 신들의 경우엔 자신의 신도가 있든 없든 자기 할 일을 하는 케이스도 있긴하다만 그래도 인기에 따라 자부심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지사.

빛의 신도 중요하지만 어둠의 신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지만... 중요도에 비해 인기는 닉값따라 가려진것일까, 우주의 균형을 위해 인기가 없는 것일까.


신도들 좀 모아보려고,

그래 막말로 인간들의 관심 좀 받아보려고 치렁치렁한 어두운 보라색의 드레스를 벗어던지고 노출도를 확 올렸는데 반응은


"야, 인기 좀 없을 수도 있지, 뭐 그런거로 신경쓰고 그러냐! 그... 그 야! 내가 술 사줄게, 그러니까 정신 좀 차려봐...."


라고 대장장이의 신에게 술을 얻어 마시거나 평소 대화도 안하던 꽃의 신에게 


"머리 괜찮아? 같이 꽃놀이나 갈래?"


라는 권유를 받고


"...오 빛이여 맙소사... 오랜 친구여..."


라고 빛의 신에게 머리에 힐을 받는 상황에 저 나이만 쳐먹은 꼰대 새끼들이라 이러는 거다, 우리 귀여운 인간들은 나를 보고 이쁘다, 귀엽다, 어울린다 등등 많은 칭찬과 관심, 사랑을 줄 것이다!

라는 희망을 안고 자신의 몇 없는 신도들이 아닌 자신을 공정하게 봐 줄 사람.


다시 돌아와서,


다른 메이져한 신의 경우엔 들을까말까, 아니 전혀 응답도 안할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어둠의 여신은 어떤가.

신도들이 별로 없다.

이는 즉슥 할 일도 기도를 들을 일도 별로 없다는 뜻.

까놓고 말해서 이 여신은 남는게 시간이라 다른 신도들에게 늘 응답할 준비만전이다.

만, 이 새끼들은 도대체 뭘 보고 배운건지 응답 좀 해주면 여신님이 제물을 받아주셨다!! 라고 돼지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응답 오랫동안 안해주면 여신님이 분노하셨다! 제물을!!! 이라며 돼지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진지하게, 우리 애들이 나 섬기다가 미친게 아니라 미친놈들이 나를 섬겨..."


정말 억울하고 답답한 상황에 이 시국에 따로 종교도 그렇다고 뭘 믿는 것도 없는, 정말 신비로운 남자를 발견, 직접 강림까지 하였으나 막말만 듣고 부들부들 거리며 돌아왔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일주일동안 응답도 안하려고 했는데 기도하는 사람도 없고 정말 제단을 쌓아 멀쩡한 제물을 받는 것에 감격을 하여 순식간에 응답해 주었다.

5분간 왜 답 안했냐고?

신이 그래도 가오가 있지 좀 튕기는 맛이 있어야하지 않겠는가?


"제가 잘못했습니다... 잠 잘 자게 해주세요..."

"그게 소원이야? 진짜?"

"네, 제발요... 신한테 개긴 제가 잘못한거에요."


정말 오랜만에 멀쩡한 제물, 물욕은 별로 없지만 돈과 음식을 받고 기분이 정말로 좋아진 이 어둠의 여신은 그에게 서비스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좋아! 기분이다! 내가 가호 하나 내려줄게! 진짜 별건 아니긴한데... 음... 잠 잘자게 해주는거 맞지?"

"가호요?"

"음... 솔직히 별 능력은 아닌데... 응..."

"..."

"낮은 내 힘이 약해져서 무리지만... 밤이 되면 자고 싶을때 바로 잘 수 있는 능력인데 역시 별로..."

"잠을... 마음껏?"

"아니... 그 은신을 한다던가 공간 이동을 한다던가 같은거 함부로 내려주면 나 혼날 수도 있어서... 좀 별 문제 없는거라... 실망 할 수 있는데... 그래도 잠 잘 자면 기분도 좋고..."

"오, 신이시여."

"어? 어?? 왜 그래 갑자기 어색하게~ 말 편하게 해~"

"위대한 어둠의 여신님 만세!"

"하지 말라니까!!"

"위대한 어둠의 여신님 만세!"

"뺏는다!"

"어둠이 최고야! 와, 진짜 대박이다. 어떻게 이런 대단한 걸 숨겨두고 계셨지? 다른 어떤 신 보다 니가 최고야!"


어둠의 여신의 입이 근질근질해진다.

웃음이 나올 것 같다.


아, 이 반응. 중독성 있어. 짜릿해. 최고야.

진짜 오랜만에 듣는 정상적인 찬양과 반응!

피를 튀기며 내장뜯는 미친놈들이 아닌 돈과 음식을 올려놓고 별거아닌 능력으로도 떠받들어주는 착한 인간!


아, 이게 신도지... 이게 멀쩡한 신도지...


"그럼 진짜 나 섬겨주는 거야?"

"안 섬긴다고 하면... 뺏어?"

"나 그렇게 쪼잔한 여신 아니야! 어... 어! 그래! 지금 하는것 처럼 가끔 제단 쌓아서 이런 제물 주기만 하면 오케이야! 정말로!"

"진짜 저런 저렴한 제단하고 제물로 좋은거야?! 솔직히 너무 쌈마이한데?"

"저게 뭐 어때서! 난 진짜 좋아! 행복해!"


서로 한창 물고빨고 설레발을 치느라 시간이 흘렀다.

어느정도 진정이 되고 그녀는 헛기침을 하며 남자에게 가호를 내려준다.


"자, 몸에 힘 빼고~ 음~ 일단 형식상 날 믿어야하니까... 난 어둠을 신뢰한다... 어둠을 신뢰한다... 정도로 생각하고 있어봐."

"어휴, 좋은거 해준다는데 하라는대로 해야죠! 난 어둠을 신뢰한다... 난 어둠을 신뢰한다..."

"좋아 좋아~ 일단 신앙심 연결되었고~ 오랜만에 넣는 가호라 어색하네? 자! [숙면 가호!]"


그녀가 영창을 하자 순식간에 그의 몸이 이완되고 모든 것이 감싸는 듯한 편안함이 느껴졌다.

그 뭐랄까, 작은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듯한 느낌?

포근한 이불에 안겨 펜이 사각거리는 소리를 듣는듯한 행복한 기분으로 성공적으로 가호가 들어왔다.


"아! 잠이 바로 오는 주문은... '잠들겠습니다! 얍!' 이야!"

"주문이 너무 유치한데."

"현 생활에서 안쓰는 단어에다가 명료하잖아. 좋지 않아?"

"...일리 있네. 그러면 언제 일어날 수 있어?"

"해 뜨거나 니가 마음 속으로 일어날 시간 정하면! 최소 5시간은 자야 개운하게 일어나니까 알았지? 아무튼! 나... 나 가끔 연락 할테니까 놀라면 안돼? 알았지?"

"옙!"


어둠의 여신은 싱글벙글 신계로 돌아갔고 남자는 밤이 되자 마자 영창을 하였다.

개운하게 기상을 하고 이불을 걷는 순간,


[신도야, 일어났어?]

"...?"


아니, 나 방금 일어났는데?

가끔 연락한다면 좀... 어제 이야기 했으면 못해도 다음주에 해야 하지 않나?


[그거 알아? 저기 동남쪽에 차원의 균열 열렸다? 혹시 마계로 산책 갈래?]

"..."

[오늘 쉬는 날이니까 빛도 좀 쬐다가 어둠의 품에 좀 안겨봐! 어때? 즐겁지!]

"......."

[너 악마 본 적 없지? 보고 싶지!! 이 종족과의 교류!!!!]

"...잠들겠습니다... 얍..."

[응? 지금 낮이라 가호 발동 안돼~ 그리고 방금 일어났잖아~]

"잠들겠습니다... 얍..."

[신도야?]

"잠들겠습니다... 얍..."

[내가 귀찮은거야?! 신도야!]

"잠들겠습니다... 얍..."

[하지말라!"고!! 야!!!"

"잠..."

"조용히 해!!!"


정말 한가한 어둠의 여신과의 악연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


다음 화 없다.

일단 쓰고본다.

아무튼 이종족 일테니 몬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