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 때는 아포칼립스로 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이야기 같은 게 종종 있었는데 챈 와서는 보기가 힘들다.


가끔은 그런 것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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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기 위해선 뭐든지 하고 남을 쉽게 믿어선 안 되며, 생존에 있어 불필요한 것들은 냉정하게 쳐내야 제 몸 온건히 보존할 수 있다가 상식이 되어버린 세계에서.


주인공 몬붕이는 오늘도 의뢰를 받아 한 끼를 먹기 위해 쓰레기의 산에서 잡동사니를 뒤지다가, 더미 안에 파묻힌 웬 벌레 하나가 꼬랑지만 내민 채 버둥거리고 있는 걸 발견한다.


크기가 큰 것이, 아무래도 변이가 일어난 웜 계열 같은데 저기가 흙인 줄 알고 들어가다 걸린 것이거나. 아니면 먹을 게 있어서 들어가다 못 빠져나온 것이라 생각했다.



" 보아하니 먹을 수 있는 놈 같군. 횡재했다. "



그리 말하며 몬붕이는 마체테를 빼내들어, 웜의 꼬랑지를 베어내 숨통을 끊을 작정이었다.


그러나 높이 치켜든 칼이 내리찍혀, 웜의 특징인 초록색의 체액이 사방에 튀는 일은 없었다.


그가 휘두르기도 전에 잔해더미 속에서 누군가의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 자, 잠시만요! 공격하지 말아주세요! "

" …? 안에 누가 있나? "



곤란하게 됐군. 그가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마체테를 어깨에 걸쳤다. 여차하면 언제든 휘두를 수 있게 대비하는 자세였다.


잔해 속에 누구인지 모습이 보이지 않아 지칭할 순 없으나, 듣기로는 여자아이 같은 목소리였기에 아마 벌레를 피하려다 묻힌 생존자로 보였다.


세상이 망해 오락거리가 현저히 줄어든 이 빌어먹을 생활에 가끔씩 생기는 해프닝에서 즐거움을 찾는 몬붕이로서는, 어쩌다 이렇게 갇히게 된 것인지 흥미담긴 말투로 자초지종을 물어보았다.


겸사겸사 어미를 찾아 보상도 타내면 더 좋고.



" 저… 저는 여기에 맛있어 보이는 게 있길래 먹으러 왔다가, 잔해가 무너져서 안에 갇힌 거에요. "


" 그렇구만. 이 벌레는 줍던 중에 공격해와서 깔린 거고? "


" 버, 벌레라니요! ! 저도 어엿한 아가씨인데…. "


" …? 그래 꼬마 아가씨. 그래서 이 벌레는 어쩔까? 아직 살아있는 거 같은데 지금 죽여? 말어? "



안돼요!!! 잔해 속에서 울린 외침일 터인데도 밖에 있는 그의 귀가 찌잉 울릴 정도의 울화통 같은 빼액 소리에 그가 무심코 귀를 틀어막았다.



" 아이고 귀딱지야. 대체 뭘 처먹었길래 이렇게 크게 질러대. "

" 아무튼, 그… 최대한 안 다치게 조심해서 빼주실 수 있나요? "

" 안 다치게? 뭐 키우는 놈이라도 되나? 아니면 허리가 반 쯤 물리기라도 해? 귀찮게. "



그는 얼얼한 귓가를 파며 귀지를 떼내 훅 불며 퉁명스럽게 답했다. 대가 없는 노동은 그의 방식이 아니다. 요구를 할 거라면 정당한 보수를 지불해야 한다며 소녀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를 물었다.



" 지금 당장 드릴 수 있는 건 없는데… 대신, 제가 가야할 곳에서 많은 보상을 해줄 거라 봐요. "


" 가야할 곳? 거기가 어딘데? "


" 그게… 어딘지는 몰라요. "


" 앙? "



그가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애매모호하고 확실하지 않은 발언. 수상하리만치 시선을 끄는 이 경광이 이제는 슬슬 함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직은 이 구역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놈이 없으니 안전은 하겠다만….



" 뭔가 아는 거 없어? 이름이라던가. 근처면 웬만한 건 아는데. "


" 들은 거라곤… 『날개』를 찾으라고 했어요. "


" ……! "



그는 날개라는 말에 눈을 크게 뜨고는, 혹시나 싶어 자신이 아는 선에서의 정보를 물어 대조해보니. 자신이 생각한 그것이 맞는 듯 했다.



" 이런 시발…. "


" 뭐, 뭐예요? 갑자기 욕을 하시고…. "


" 니가 거길 왜 가는 거지? 똑바로 말해. 대답여하에 따라선 지금 당장 죽일 수도 있어. "



히익―, 소녀가 두려워하는 낌새를 보이건 말건 지금은 한시가 급했다. 당장 여기를 떠야할 지도 모르는 일에 휘말려들 수도 있는 셈이었다.


죽인다는 건 그저 위협이다. 제정신이 박혔다면 ' 그 집단 ' 과 관련있는 것에 손댔다간 무슨 일을 당할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 저도 잘은 몰라요! 저를 꺼내준 사람은 그저 거기로 가야만 한다고 했어요! "


" 그러냐. 모른다면 별 수 없지. 잘 있어라. "


" 아앗! 적어도 꺼내주고 가세요! 피해 안 가게 할 테니까! "



소녀의 절박한 외침과 그럴 때마다 꼬불거리는 벌레의 꼬랑지가 묘하게 신경쓰이던 그는, 자리를 뜨려다 그래도 아이를 못 본 체 하고 저대로 두기에는 그나마 있는 일말의 양심이 버리고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몬붕이는 그렇게 한숨을 쉬곤 잡동사니의 산을 솜씨 좋게 파내어 벌레의 몸통을 끄집어내는 데에 성공했다. 몬붕이는 여자애가 대체 어떻게 있길래 벌레랑 같이 있는가 하고 쳐다보자, 벌레가 소녀의 허리를 물고――









――있다기 보단, 허리가 벌레와 이어져있는 벌레 그 자체인 소녀가 헤롱대고 있었다.



" 엉…? 뭐야 이 벌레 새끼는? "


" 벌레라니 너무하네요! 저는 어엿한 숙녀라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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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느낌의 아포칼립스물 써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