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프 부족을 토벌하기 위한 기습작전은 완전한 실패였다. 같이 온 부대원 반이 배로 돌아오지도 못했다. 엘프들이 쓰는 화살은 이상한 마법이 걸려있어서 날아오는 힘에 비해 깊이 박히지도 않게 되어있어, 살상력은 없지만 몸을 마비시킨다. 


산 채로 끌고가 무슨 끔찍한 짓을 하려는 것인가. 덕분에 우리는 쓰러진 이들의 비명소리를 고스란히 들으며 배로 간신히 올랐다.


설상가상, 우리 배는 얼마 못가 좌초되었고, 바위에 걸려 구조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어, 저기 좀 봐!"


수병 한 명이 외쳤다. 몇몇이 그 곳을 보더니 탄성을 울렸다. 모두들 그 쪽으로 모여들었다. 비늘이 반짝이는 인어가 바다를 가르며,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모두들 그 미모에 탄성을 울리는 동안, 나는 머스킷에 총알을 쑤셔넣었다. 


계속 움직이는데다 총을 들이밀면 멍청이들이 막으려들테니 조준을 할 수도 없다. 눈으로 조준을 한 뒤, 잽싸게 총을 들어올려 자세를 잡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


정신빠진 놈들이 깜짝 놀라, 몇몇은 물에 빠질 뻔했다. 총알은 수면을 때렸고, 인어는 깊이 잠수해버렸다.


"뭐하시는 겁니까, 대위님!"


"싸이코아냐?"


"육지서 싸우다 정신이 나갔나?"


인간구역에서 해전만 줄창 벌이다 온 수병 놈들이 몬무스를 모르는 모양이다. 나는 답답하게 소리쳤다.


"멍청이들아! 우린 좆됐어! 저게 온 바다 마물들을 다 끌고 올거라고!"


뒤늦게 상황을 전해들은 선장은 그나마 아는게 있었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즉시 여섯 개의 보트를 타고 뭍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육지는 육안으로도 보였지만 노 저어가기는 고된 노릇이다. 게다가 저 땅에서 엘프들이 우릴 반길 수도 있고, 다른 마물들이 우글거릴지도 몰랐다.


모두 고된 노젓기로 욕할 힘도 없어질 무렵 해변이 가까웠다. 그때 뒤처져있던 보트에서 비명소리가 났다. 뒤를 돌아보니 보트가 와지끈하며 동강나고 문어다리들이 바다에서 튀어나오고 있었다.


"빨리 저어!"


급하게 노질을 시작했지만 이미 늦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모두에게 엄습했다. 옆과 뒤에서 다른 보트들이 잇따라 박살나고, 뒤집히고, 세 척의 보트만 남았다. 해변에 거의 닿았지만 뭍으로 오른다고 우리가 안전할까? 나는 일어서서 모두가 들리게 소리쳤다.


"우리 부대원들은 보트에서 내리면 바로 모래사장 위에 대열을 갖추고 총을 장전한다! 수병들도 권총을 가진 자는 대열에 서고, 나머지는 대열 뒤에서 칼을 뽑든, 노라도 들어라, 숲으로 도망쳤다간 목에 밧줄이 걸릴 줄 알아!"


물이 얕아지자 우리는 보트에서 뛰어내려 해변으로 달렸다. 가장 먼저 모래사장에 올라 달리던 하사관이 우뚝 멈춰섰다. 


"멈춰, 멈춰라! 전투 준비!"


기특한 친구였다.


내 말대로 모두 해변에 대열을 갖췄다. 내 부하들은 바다를 향해 총을 겨눴고 수병들도 칼과 노를 들고 뒤에 서있었다. 손에 뭣도 없는 불쌍한 친구도 있었지만 아무튼 대열을 벗어날 수는 없다.


방금 수십명을 집어삼킨 바다는 너무나 잠잠했다. 사거리 밖에서 인어들이 머리를 간간히 빼고 이 쪽을 볼 뿐이다. 먹이를 더 먹지 못해 입맛을 다시는 물귀신들...


상황이 종료되고, 해변의 낙오자들은 넋이 빠져 제각기 주신께 기도를 올렸다. 



* * *


수병들 중에 있던 항해사가 말하길, 근방이 전부 미개척지라 도보로 빠져나갈 환경이 못 된다고 했다. 숲에 초라하게나마 진지를 세우고 버티며 구조를 바라는게 유일한 희망이라고 판단했다. 


엘프건 뭐건 몬무스 부족이 떼거지로 몰려오면 그걸로 끝인 상태에서, 우리는 수풀을 걷어내고 목책을 세웠다. 장비도 부족한 상태에서 목책은 영 믿음직스럽지 못했다.


그때 하늘에서 하피들이 날아왔다. 우리는 총을 겨눴지만 하피는 총이 뭔지도 모르는지 목책 위에 앉아 뻔뻔하게 웃었다.


"헤헤, 오빠들 뭐해요? 나무를 열심히 베네?"


"너희야말로 무슨 용건이지?"


"나무 필요해요? 갖고 싶으면 갖다드릴게요~"


그것들이 어디에서 나무 장대들을 들고와 우리에게 던져주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덕분에 목책을 탄탄히 두를 수 있었고, 거기에 작은 감시탑도 건설했다. 이 인원으로는 본래 불가능한 일이었는데, 덕분에 한숨 돌릴 수 있었다.


* * *


사냥을 나갔던 대원이 급하게 돌아왔다. 숲속에서 오우거를 봤다는 것이었다. 오우거는 혼자 사니까 큰 위협은 안 되겠지 했는데, 감시탑에서 오우거가 나타났다는 외침이 들렸다. 오우거는 사슴을 질질 끌고 왔다.


"이거, 그 남자가 먼저 발견했는데, 도망쳐버려서..."


"...전해주러왔다고?"


뭐하는 녀석이지? 그 여성의 몸으로 우리보다 근육질인 오우거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그 남자, 다음에도 사냥보내. 내가 사냥감이 어딨는지 잘알거든. 도와준다고 해."


그 대원은 그 후 항상 사냥을 나가 오우거와 함께 사슴이나 멧돼지를 잡아돌아왔다. 오우거에게 답례를 할 것이 마땅치 않았지만 '이미 받았다'며 은근히 웃어댔고, 지친 대원은 말이 없었다.


* * *


어이없는 일이 생겼다. 무장한 리자드맨이 목책 앞에 나타났다.


"이 마을에서 가장 칼을 잘 다루는 남자를 내보내라!"


그녀는 대문 앞에서 호기롭게 외친다. 하사관이 코웃음을 치며 칼을 뽑고 나갔다.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모습속에, 둘은 여러 합을 겨뤘고, 결국 리자드맨의 목이 떨어진...건 아니고 칼이 떨어졌다. 우리는 환호했다. 멋진 구경거리였다. 리자드맨이 하사관에게 무릎을 꿇었다. 


"소녀에게 검술을 전수해주십시오! 제 모든걸 바치겠습니다!"


예상밖이었다. 우리는 그녀를 쫓아내려했지만 몇 날 며칠을 목책 앞에서 버티기에 결국 받아주어 대문 경비일을 맡겼다. 주신교단의 방침에 맞지 않지만, 우리에겐 무기를 잘 다루는 아군이 하나라도 더 필요하다.


* * *


숲에서 부하들이 슬라임을 주워왔다. 뭐하는 짓이냐고 펄쩍 뛰었지만, 놈들은 그냥 창고로 쓰는 건물에 슬라임을 넣었다. 귀여워서 기른다는데, 아마 자기들 욕구를 풀려는 것이겠지. 슬라임은 위험한 마물은 아니니 별 일 없을 것이다.


* * *


진지를 짓는데 여러모로 도움을 줬던 하피들이 날아와 인근에 아마조네스 부족이 왔다고 알렸다. 경계를 강화하라고 모두에게 알렸다. 


그날 중, 아마조네스 족장이 진지로 찾아왔다.


"정말이군, 젊은 남자가 가득한 마을이 생겼다더니... 당신이 족장인가?"


"여긴 마을이 아니야. 우린 군대다. 당신들은 뭐하러 이 곳에 온 거지?" 


"우리가 자주 가던 마을들은 남자씨가 말랐어. 당신들이 우리 부족함을 채워줄까해서."


"선전포고인가?"


"호호, 무슨 말을? 그냥 적당히 서로 돕는게 어떠냐는거지. 당신들 가만있으면 어차피 다른 마물들의 먹잇감이 될거야. 오는 길에 오크부족도 봤다구. 걔넨 그냥 목책을 밀고 들어오려 할걸."


아마조네스 부족은 멀지않은 곳에 정착했다. 그들은 보기와 달리 우리에게 일절 적대적으로 굴지 않았고, 오히려 여러 선물들과 함께 진지로 들어와 밤을 보내고 가곤 했다. 구조되고나면 주신교단의 조사를 받을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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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 없는 일이 생겼다. 엘프 부족과의 전투에서 함께오지 못한 소위가 멀쩡히 나타났다. 그는 혈색이 좋아보였다.


"자네 어떻게 그렇게 멀쩡하지? 엘프들이 잡아가지 않았나?"


"물론이죠, 그리고 지금은 엘프 아내도 있습니다."


믿을 수가 없었다. 고문당하다 잡아먹히거나 노예의 운명을 맞았으리라 생각했는데.


"대원들 모두 잘지냅니다, 이 곳으로 오고싶어 하는데요."


머지않아 우리는 전우들과 재회했다. 그들은 모두 엘프 아내와 그 친구들을 데리고 왔다. 그들 또한 가까이 눌러앉았는데, 아마조네스 부족은 매우 탐탁치 않아했지만 우리 친구들의 아내들이라하자 어쩔 수 없다는 듯 넘어갔다. 우리는 어떤 이들을 죽이려 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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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대가 드디어 도착했다. 그러나 그들의 대장이 우리의 생활 모습을 보더니, 격분하며 '이단이다!'라고 소리쳤다. 그는 우리를 버려두고 그냥 넘어갈 수 없을거라 위협하며 떠났다. 


"인간들이 더 오는건가?"


타들어가는 내 속과 달리, 엘프와 아마조네스의 족장들은 들떠있었다. 


그런데 떠나버린 구조대의 배가 텅빈 채로 해안가에 돌아왔다. 인어들이 밀고 온 것이었다.


"당신들의 친구이자 우리의 남편들이 보냈어요. 이 배로 이 땅에 사람들을 더 초대해줘요."


나는 나의 역할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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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해가 지났다. 마을은 꽤나 커졌다. 아라크네의 옷가게, 알라우네의 꿀 공방같은 가게들도 들어섰다. 목책은 그냥 유적같은 존재가 되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며 지킬 이유도, 그럴 여유가 있는 남자도 이제는 없었다. 


그동안 물에 빠졌던 친구들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모두 건강했고, 바닷속의 집에서 반려와 잘 지내고 있다.


나의 일은 말하자면, 홍보대사이다. 여러 지역을 돌며 우리의 삶을 전파하고 고된 삶을 사는 이들에게 우리의 새 고향으로 이주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주신교단과 왕국은 몇 번이고 토벌대를 보냈지만 양측에 인명피해 하나없이 언제나 일이 끝난다.


이제 이 곳을 알리는 일은 그만둬도 될 것 같다. 머나먼 곳까지도 우리의 이야기가 퍼져나가고 있으니까, 그리고 임신한 아내에게도 미안하니까. 그녀는 아마조네스의 족장 답지않게 해안가에서 하루종일 기다리며 시간을 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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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마소도 세계관에서 머스킷 쓰면 오류인 것같지만 식민지 개척군대처럼 생각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