념글거 기반으로 초반만 써봄. 빌드업 가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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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할 수 있지?


그녀는 복잡한 눈빛의 청년에게 가뿐 숨을 몰아쉬며 이야기했다.

청년은 떨리는 눈빛으로 피를 흘리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래, 지금은 죽어가는 그녀를 보면서 그는 갈등중이었다.


그녀는 청년의 심정을 지레짐작이라도 하듯이 그에게 말했다.

"나도 알아 에드. 당신이 평범한 기사가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목적이 있어서 나를 따라왔다는 것을."

그리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 목적이 무엇인지 아직도 헷갈리지만, 날 사랑해서 쫓아왔다고 생각하고 말할게.

사랑하는 그녀의 마지막 부탁이야. 늦기 전에 그 녀석의 뿌리를 뽑아줘"


청년은 그녀의 곁에서 마지막을 지키고 있었다.

보이는 것은 거대한 악룡의 시체와 그에 비하면 턱없이 작은 그녀의 몸.

그녀는 청년에게 악룡의 마지막 흔적을, 악룡의 자식을 처리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그리고 청년은 지금도 갈등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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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겠니 에드? 이 세상은 수많은 파벌로 갈려있단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남국의 살아있는 자와 저 북방의 언데드, 

저 동쪽의 마을연합과 서쪽의 왕정제국, 그리고 선과 악.

결국 파벌은 사라질 수가 없단다. 한 쪽이 우세하면 앞으로 일어날 일은 대학살 뿐이야.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모든 종류의 씨앗을 보존하는 거란다.

선과 악의, 힘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바로 우리의 일이란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조율자'라고 불리는 이유란다.

스승은 만물을 포용하는 미소를 지으며 손에 담긴 씨앗을 골고루 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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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동료인 그녀는 청년을 보며 마지막 말을 뱉었다.

"빨리가, 그리고 가서 '우리'의 일을 끝내. 마지막을 부탁해 에드. 너에게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

자신을 길러준 스승은 청년을 보며 마지막 말을 뱉었었다.

"그 어떤 존재도 사랑하고, 존재를 부정하지 않으며 아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할 일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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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룡은 왕국의 마지막 몬스터였다. 아니, 그녀를 '몬스터'라고 부르기에 그녀는 너무나도 뛰어나고 고고한 존재였다.

하지만 신화시대가 저물어가자 인류는 자신들이 미약했을 때 숭배하던 존재들을 경멸하기 시작했다.

마치 자신들의 과거의 연약함을 애써 회피하고 경멸하려듯이, 신화시대의 파편들을 퇴치했다.

더 이상 인류는 인류가 아닌 것의 존재를 용납할 수 없었다, 하물며 그것이 인류보다 뛰어난 존재라면 말이 필요할까.


청년은 그것에 대해 심히 걱정했다. 때로는 인류의 발전을 도왔던 그들이 괴물이라는 이름아래 퇴치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제도가 형성되고 국가가 행정력으로 사람들을 결집시키자, 인류와 비-인류의 사슬과 유대는 급속도로 끊어지기 시작했다.

세상의 기준은 인류가 되었고, 비인류의 연결고리로서 그들의 지식을 빌려 인류를 돕던 부류는 마녀사냥이라는 이름아래 스러졌다.


비인류 중에서도 지고의 존재, 용들은 더욱 인류에게 실망하며 심산유곡으로 숨어들거나 중간계를 떠났다.

그리고 중간계에서 숨을 마감한 용들은 그 뼈와 살과 재물마저 샅샅이 인류의 것이 되었다.


이윽고 중간계의 마지막 용, 마지막까지 인류를 사랑해서 중간계에 남았으나, 

몇번이고 배신당하고 모든 인류가 노리는 '최후의 대박'이 되어버린 가엾은 용에 대한 토벌이 결정되었다.

청년은 비인류의 마지막 상징이 인류에게 스러지는 것을 허락할 수 없었다.


청년은 입대해서 기사서약을 받고, 끝끝내 이곳까지 이르렀다.

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그리고 비인류의 마지막 씨앗의 보존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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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은 운명을 원망했다. 차라리 자기가 순수한 왕국민이었다면 그녀의 말을 따르면 될텐데.

청년은 용을 원망했다. 차라리 마지막에 자신에게 저주를 남겼다면 그녀의 유언을 들어줄텐데.


용은 청년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마지막 싸움에서 유언을 남긴 것은 단장만이 아니었다.

최후의 전투 직전, 용은 청년을 바라보며 메세지 마법으로 말을 남겼다.

마지막 씨앗을 수집하는 당신이 올 것을 알고 있었다고. 인간은 믿을 수 없지만 당신들은 믿을 수 있다고.

용의 마지막 씨앗은 레어 가장 깊은 곳에 있으니, 부디 '정원'에서나마 행복하게 해달라고.


청년은 전투가 벌어진 거대한 공동을 나섰다.그리고 악룡의 가장 깊은 심처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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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은 레어 가장 깊숙한 곳의 문을 열었다. 락이 해제되어 있다는 것은 용이 그를 믿고 있었다는 것일까?

정작 왕국은 믿어주지 않았는데 말이야, 라고 청년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불화살이 날라왔다. 보통의 불화살이 아니었다. 피하기는 늦은 상태.

아마 권능이 함유되있겠지, 생각하며 청년은 칼을 놓고 손으로 불화살을 잡았다.

조율의 권능은 화합과 조화. 잡힌 불화살은 따듯한 불길로 청년의 손을 덥히고 사라졌다.


날아온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녀가 있었다.

아직 자그마한 체구에 흰 머리칼과 피부, 그리고 빨간 옷과 진홍색 눈.

애써 당찬 모습을 보이지만 그녀 역시 어미의 끝을, 아니 종족의 끝을 짐작했는지 울먹인 흔적이 보였다.


"네 녀석이 조율자인가 뭔가 하는 인간이냐?"

그녀가 청년을 보자마자 뱉은 첫번째 말이었다. 청년은 끄덕이며 그녀를 탐색했다.

용족의 씨앗을 거둘 것인지, 말 것인지. 과연 고고한 그녀가 '정원'에서 살아갈 수 있을지.

그 눈빛을 알아차린 탓일까, 그녀의 눈빛 역시 변했다. 

고고한 용이 아니라, 상처받아 쉼터를 찾는, 그러나 경계하는 고양이의 눈빛으로 변했다.


서로를 30초간 바라봤을까, 그녀가 먼저 가라앉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저는 중간계에서 나고 자란 마지막 용족으로, 중간계에 존재할 이유와 의무가 있어요.

어머니의 뜻을 따라 당신을 따라가겠어요 조율자."


청년은 그녀가 악룡이 아님을 알았다. 아니 애초에 악룡이라는 것은 없다.

 그저 인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용이 악룡일 뿐이지.

청년은 쓴웃음을 지었다. 눈 앞의 그녀는 그저 쉼터를 찾는, 상처받은 아이에 불과했다.

청년은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말했다.

"가자, 새로운 집으로"

그녀는 끄덕이며 청년의 손을 꼭 잡았다. 마치 잃어버린 어미를 다시 찾은 것 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