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은 늘 끔찍하다. 주말에 신나게 달려서 숙취에 시달리는 것도 아니건만, 월요일 아침만 되면 형언할 수 없는 불쾌감이 몰아치고는 한다.

그러나 출근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밥벌이를 해야 할뿐더러, 내 적성에 꽤나 잘 맞는 직장인지라 다른 직장에 만족하지 못할 것을 아는 까닭이다.


출근을 하는 길에는 나와 비슷한 수많은 이들이 함께하고는 한다. 개중에는 나와 꽤나 가까운 이도 있는지라, 짓궂은 장난을 치기도 한다.

안녕~ 오늘은 기분이 좀 어때?

...지금처럼. 달큰한 냄새가 뒤에서 훅 풍기며, 그녀는 내 엉덩이를 주물럭거렸다.


평소대로였죠. 필리아씨가 제 엉덩이를 만지기 전에는.

그녀의 손을 떼어냈다. 그녀가 성적인 생각이 없다고 해도 서큐버스와 밀접하는 것은 좋지 않으며, 성적인 생각이 100퍼센트 확실하게 있을 여자니까.


에잉~ 이제 같이 일한 게 몇 달째인데, 찐-한 관계가 될 때도 되지 않았어?

그래서 어제는 몇 명이랑 그 찐한 관계를 맺으셨는데요?(세 명이었어~) 성병이라도 걸리면 저는 어쩌고요? 서큐버스야 성병에 걸리지 않는다지만, 저는 인간이라구요.

또, 또! 그렇게 딱딱하게 살면 무슨 재미야? 좀 즐기며 살자구~


그런 대화를 하며 그녀의 옆에서 걷자니, 저편에 낯익은 날개가 보인다.

랴난시답지 않게 검게 탁한 날개-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담배와 커피 때문이라고 했다-가 가까워지면, 필리아씨의 희롱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그녀에게 먼저 말을 붙이고는 한다.


아프리샤씨, 좋은 아침이에요. 주말에 전시회를 갔다면서요. 그나마 나은 사람이니까 갔을 텐데, 좀 어땠어요?

말도 마. 그녀는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말했다.

진부하고, 감정이 과잉하고, 그 감정마저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서 말라붙은 형식에 겨우 달라붙어 있는 꼴이라니!

게다가 그따위 쓰레기를 자랑스럽게 전시해놓고, 내가 가니 대놓고 알랑대는 꼴이란! 정말 꼴불견이었어!

화내시는 거 보니까 꽤나 기대했던 모양인데, 팔 만한 수준은 아니었던 모양이죠? 아쉽네요.

아니- 아예 팔아먹지 못할 수준은 아니야. 다시 상종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사장이라면 만족스럽게 팔아먹겠지. 하지만 정말, 그런 걸 자랑스레 내놓는 사람이나 돈을 주고 사는 사람이나...


하하, 아프리샤씨 눈이 너무 높은 거라니까요. 그건.

그러게 말이야! 아무리 랴난시라고 해도, 남자 보는 눈이 얼마나 높으면 몬무스라는 애가 지금까지 한 번도 사내를 만난 적이 없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이야?

그건 내가 아니라, 저 허섭스레기 같은 자칭 예술가들 문제지. 나라고 짝을 만날 생각이 없는 줄 알아?

다행히, 필리아씨의 관심이 나에게서 아프리샤씨에게로 넘어간 것 같다.


둘이 투닥대는 걸 적당히 듣고 있자니 어느새 직장이다. 옛 성벽을 허문 대로에 바로 면한 자리라 교통도 편리하고, 외관도 꽤나 화려하다. 돈깨나 있는 이들은 이런 외관을 중히 여기니까.

'성벽 패트론'. 옛 성벽 자리에 건물을 내어서 지은 이름이라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대충 지은 것 같다. 뭐 고객에게는 예술은 어떤 성벽도 뛰어넘는다느니 어쩌느니 말을 지어내지만.

그렇다-패트론은 예술가의 후원자. 이 도시에서는 예술가의 작품을 사서 상류층에 파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결국 예술가에게 돈을 주는 건 같으니까.


정교한 부조(전속계약을 맺은 조각가 한 명에게 맡긴 것이었다)가 새겨진 문을 열면, 옅은 색의 정갈한 인테리어에, '발굴된' 작품들이 전시된 화방이 나를 맞이한다.

걸려있는 작품이 바뀐 것을 보니 주말 간에 또 계약을 맺은 모양이군.

화방 한구석에는 사무실이 있다. 문은 닫혀있지만, 분명 그 안에 사장이 있겠지.


바뀐 작품들을 대충 둘러보고 있자니, 필리아씨가 사무실 문을 열어젖힌다. 불이라도 난 마냥 연기가 문밖으로 흘러나오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콜록, 콜록! 세상에, 창문 좀 열고 담배를 피우라니까. 아니, 열고 피운 거였네. 대체 담배를 얼마나 피워댄 거야?

뭐 자주 이러잖아요... 채리티씨 또 퇴근 안한거에요? 아무리 돈이 좋아도 그렇지, 그러다가 몸 축나요.

지금 돈이 굴러다니는 게 눈에 보이는데, 퇴근을 어떻게 해? 벌 수 있을 때 바짝 벌어놔야지.

그 '바짝' 이 하루 이틀이 아니니까 그러죠. 제가 여기서 일한 몇 달 간 퇴근 안 한 게 몇 번인지 알아요? 이 아가씨는 대체 누굴 홀리려고 돈을 이리 버는지 몰라...


그을쎄... 그래, 셋이 같이 왔지? 아프리샤는 주말에 뭘 좀 건졌어?

쯧... 솔직히 눈에 차지는 않는데, 그래도 팔 수는 있을 거야. 딱 벼락부자들 좋아하는 스타일에, 쓰잘데기없는 상징도 집어넣어 놨으니.

-남들에게 으스대기 좋다는 거지. 좋아. 그러면 필리아가 먼저 가서 그놈 애간장 좀 녹여놔. 잘하는 거 있잖아.

그럴 필요도 없어. 전시회에서 날 보자마자 대놓고 다가오던데. 돈만 맞으면 바로 팔 것 같은 눈치야. 오히려 필리아를 보내면 시간 끌기로 생각할 거야. 바로 신입을 보내는 편이 나을걸.

하. 그 정도야? 하긴, 신입도 이제 홀로서기 할 때가 되었지. 그러면 신입이 바로 영업하러 가고, 필리아는 얼마 전에 알게 된 그 상인 있지? 그 양반하고 인맥 좀 이어봐. 그 양반도 얼마 전에 사교계 입문했으니, 거부는 안 할 거야. 아프리샤는 뭐 알아서 잘할테고.

이렇게 우리 패트론의 네 명이 각자의 장소에서 자기 일을 하는, 그런 평범한 하루가 시작된다.



전역 후 첫 글이다. 어쩌면 첫 장편이 될 수도 있겠다. 옴니버스같은 느낌이겠지만, 그래도 한 소재로 여러 편의 글을 쓰는 것은 처음이다. 어쩌면 쓰지 않을지도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