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그 비디오 돌려보고 있는게요?"

"그 노인네같은 말투 장난으로라도 안쓰면 안될까?"

"거 참 노인네가 노인네 말투 쓰겠다는데 왜 그러오?"

"그야 노인네는 맞겠지만 지금 외모랑 하나도 안 어울리잖아"

장난 칠 생각이었는데 진심으로 별로였나보다.

"그래서, 이젠 호환되는 케이블은 인류종사 박물관에나 있는 그 비디오 플레이어는 왜 아직도 갖고있는 거야? 여태 찍은 사진이랑 동영상은 결혼 하고부터 시간 날 때마다 서너개씩 복사해서 백업해두고 있다고"

"이걸로 보는 게 좋아"

"그 말 진짜 늙은이 같.."

쾅, 어디선가 자라난 나무기둥이 날 지나쳐 뒤의 벽을 때린다.

"...뭐라고?"

"하하하 아닙니다 누님 언제나 젊고 아리따우시군요 하하하"

죽을 뻔 했다. 아니 안죽겠지만

"그런데 넌.. 정말 이런 삶을 사는 거 괜찮은 거야?"

또 시작이다. 내 어릴 적 얼굴만 보면 저런다.

"십수년마다 그 비디오 꺼내보면서 항상 묻고 있다는 건 알지?"

"하지만, 괜히 널 힘들게만 한 건 아닐까 싶어서. 꼬박 50년을 나밖에 못드나들 고목에 틀어박혀서는..."

물론 나도 그녀가 그저 미안하고 불안할 뿐이라는 건 알고 있다.

내가 그녀를 따르며 그녀를 위해 '인생'을 바친 것에 대해.

"그 때 쓴 시간은 인간 기준으로나 긴 시간이잖아"

"넌 인간이고"

"아무렴, 인간이'었'지. '이젠 날 인간으로 대하는 사람 당신밖에 없어'라고 150살 넘기고서부턴 질리게 대답했던 거 같은데"

"..."

"항상 말하잖아. 불로장생은 불사랑 다르게 딱히 빡빡한 금기나 저주같은 거 없다고"

사실이다. 아니었으면 내가 이렇게 멀쩡할 리 없지

"하지만 그거 때문에 인간의 국가로 돌아갈 수 없게 됐잖아"

"뭐 그건 그렇지 인간의 국가는 자연마력농도가 없다고 해도 될 정도로 희미하니까 아무리 흡수해도 부족하거든."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채여도 좋아?"

"그 고향 내가 모르는 곳이 된 지 300년도 더 됐을 걸? 게다가 저번에 동생의 15대손인가 하는 노인네가 요양 겸 찾아와서 이미 고향은 커녕 고향 근처에도 내 후손은 안산다고 알려줬어."

"가족이 문제가 아니잖아"

"내 생각은 수백년 전 연구 완성하고 청혼했을 때부터 한 번도  안변했어. 나는 여기서 사는 걸 딱히 족쇄라고 생각 안한다고."

"하지만..."

"늙으면 주름이랑 걱정만 는다던데 엘프도 똑같.."

"...내 명은 벌써 다 갔지만 이번엔 진짜로 갈 뻔했어"

"너 농담으로라도 그런 말 하지 마"

거의 울먹이듯이 말하는 그녀 앞에서 '그럼 그 거목공격이나 하지 마'라는 말은 차마 입에 담지 못했다.

부스럭

"여전하시네요 어머니, 아버지."

언제왔는지 자연스레 구멍난 벽으로 들어오는 딸내미.

"오랜만이구나, 잘 지냈지?"

"겨울 연휴 때 보고 6개월 만인데 별 일 없죠. 아버지는 여전히 시간감각이 인간 기준이시네요"

나기를 그렇게 났는데 별 수 있냐는 말은 굳이 꺼내지 않는다.

"거 딸내미도 찾아왔는데 비디오같은 거나 돌려보면서 궁상떨지말고 밥이나 먹자고"

잽싸게 화제를 돌린다.

"구..궁상은 무슨!"

"딸도 왔으니 간만에 실력발휘좀 해볼까"

"다..당신!"

말이 길어지기 전에 빠져나와 부엌으로 향한다.


찬거리를 꺼내며 잠시 생각에 잠긴다.

이윽고 쌓인 적잖은 생각들은 한 데 뒤섞여서,

해맑은 어린아이에게 보낼 한 문장을,

결코 닿을 수 없지만 이미 수없이 닿았던 문장을 자아낸다.



'어른이 된 넌 누나랑 결혼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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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명 차이가 비극적인 수명물을 만든다구요?

어림도 없지 마법연구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