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arca.live/b/monmusu/6048259 전편링크


동족이라니.. 내게 그녀와 같은 마물이 되기를 권하는 건가? 아무리 마음이 꺾였다 하더라도 용사인 내가 주신의 적인 마물이 되겠다고 할 리가 없잖아.. 들을 가치도 없는 제안이다 .


"......."


"무시하는거야? 뭐, 두서없이 본론부터 꺼냈으니 그런 반응이 나오는게 당연하겠지. 그치만 말야. 마물이 되버리면 사랑하는 그이와 당당하게 이어질 수 있는걸?"


"...전 이제 그의 곁에 있을 수 없어요."
알렉스가 무사히 살아있던 것은 천만다행이다. 하지만 그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면 교단은 다시 손을 쓰겠지. 나는 무엇을 하려 여기에 왔을까? 그를 찾아 봤자 나는 알렉스를 지켜낼 수 없는데..


"아... 그랬지? 그 재수없는 아저씨가 네 남자한테 한 짓이 있었지.
인간은 참 이상해. 별 같잖은 이유로 사랑을 가로막잖아? 신분이 달라서 안돼. 가문이 차이나서 안돼. 피가 이어졌으니까 안돼... 그런건 전부 사랑 앞에선 무의미한 것들인데. 너도 용사따위를 하고 있으면 그와의 사랑이 가로막혀 버린다구."


"....읏."
모든 인류와 주신의 가르침을 수호하는 용사는 영광스러운 직책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직책이 나와 알렉스의 사이를 갈라놓은 것도 분명하다. 10년 전의 시골소녀였던 내가 알을 연모했듯이 지금의 내가 평범한 여성이었다면 알에게 키스받는 건 그 켄타우로스 마물이 아니라 내가 아니였을까.


"어울리고 싶은 사람은 그 남자 한명뿐인데 어울리는 상대를 찾으라고? 사랑에 빠진 여자아이에게 특별한 사람이 허락되지 않는다고? 그런 멍청한 규칙은 대체 왜 만든 건지. 인간의 규칙은 널 옭아맬 뿐이야. 용사 따윈 그만두고 그의 여자가 되자..♡"

풀벌레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오는 고요한 숲속에 데몬의 속삭이는 목소리가 울린다. 숲이 고요해서 그녀의 목소리가 크게 들리는 것인지 나의 마음이 흔들려 크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알 수 없을 만큼 나는 동요하고 있었다.

"으읏..."
안돼. 마물의 유혹에 마음이 흔들려서는... 주신의 가호를 받는 용사가 마물의 달콤한 말이 넘어가서는 안되는데... 용사의 의무와 교단의 가르침을 모두 버려버리고 알렉스에게 달려가 안기고 싶다는 불경한 생각이 점점 머리를 쳐든다.


"교단이 네게 해준게 뭐가 있어? 주신이 널 위해 한게 뭐가 있지? 네 사랑하는 남자에게 칼을 꽂은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 주신을 버리고 이 마력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그 한심한 놈들이랑은 영원히 작별할 수 있단다? 그리고 그이와는 영원히 맺어질 수 있지.."


"아...아아...."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는 그리도 흉흉해 보였던 검은 마력이 지금은 영롱한 빛으로 느껴진다. 검은 광택을 두른 마력 덩어리에 무심코 팔을 뻗어버리려는 것을 필사적으로 억누르면서도 시선이 그곳에 고정되는 것은 막을 수가 없었다.


"무서워할 필요 없어. 네게 주신과 그 똘마니 교단은 사랑을 방해하는 장애물일 뿐이야. 장애물을 치워버리는 건 전~혀 나쁜 짓이 아니잖아? 내가 도와줄 테니까 말이야... 자. 이제 넌 어떻게 하고 싶은 지 말해주렴?"


"나...나는..."
알과의 만남을 방해했던 그 기사도, 나를 위해서라며 알을 죽이려 했던 그 주교도, 용사는 특별한 사람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바보같은 규칙을 만든 주신님도...

전부 치워버리고 싶어.


"흐흐흣... 거의 다 왔어. 네 입으로 네 바램을 직접 말해봐."


"저는... 저는.. 사랑을 이루고 싶어요. 알에게 안기고 싶어요.. 그걸 방해하는 것들은 다 없애버리고 싶어..."


"그러며언... 내 마력을 받아들여. 몸뿐만 아니라 마음속 깊은 데까지 빠짐없이..♡"
내 말은 들은 그녀는 손에 두르고 있던 마력을 더욱 크게 끌어모으면서 나에게 점점 가까워져 왔다. 그모습을 보며 조금 전까지 느껴졌던 마물에 대한 적의와 불안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알 수 없는 고양감이 몸을 감싸기 시작한다.


"네... 부디.."
용사 세라리드와 마물 세라리드. 둘 중 어떤 내가 알과 사랑을 이룰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마치자 나에게는 그녀의 손길을 거부한다는 선택지는 남아있지 않았다.

진작부터 이랬어야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