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대 문명의 오토마톤이지만, 크게 손상된 걸 인간들이 복구해서 살아난 오토마톤 1호기.

첫 시도였던 만큼, 반쪽짜리 몸에 커다란 진공관 컴퓨터와 유선으로 연결되어있고, 프로그램 입력방식은 천공카드를 쓰고, 저장장치는 원시적인 자기드럼.


이 오토마톤을 살려낸 경험 덕분에, 그리고 다른 오토마톤의 구조를 빠르게 해석해준 도움 덕분에, 다른 장소에서 발굴된 오토마톤들의 복구작업은 무사히 진행되어, 포터블한 사이즈의 진공관을 사용하다가, 나중에 다이오드와 트랜지스터, 각종 반도체의 발명으로 거의 옛날 수준 그대로 수리되는 오토마톤들도 나타났어.




그런데 이 첫 오토마톤에게는 이런 발전된 수리를 적용할 수 없었지. 이미 수많은 기억과 삶을 자신과 연결된 진공관 컴퓨터들에 저장해버렸거든.


물론 그 데이터를 빼다가 트랜지스터 기반 플랫폼에 옮겨서 몸체를 수리하고 난 뒤에 다시 꽂아넣으면 되는 거 아닌가도 싶겠지만, 이 오토마톤은 지하실 한 편을 꽉 채운 컴퓨터가 자신의 몸이라고 인식한 지라, 그걸 한사코 거부했어.


같은 데이터를 복사해서 만든다고 해도, 그건 결국 자신의 기억을 똑같이 가졌을 뿐인 또 다른 개체이지, 자신이라는 개체의 연속성이 보존되는 게 아니라고 그 오토마톤은 주장한 거지.



결국 그 오토마톤의 의사에 따라서, 오토마톤은 이제 거의 백 년 가까이 된 원시적인 기술만으로 그 목숨을 이어가며, 이제는 연구소가 아닌 박물관이자 기념관으로 변한 건물의 지하에서 살아갔어.


수많은 사람과 안드로이드들이 그녀에게 경의를 표하였고, 수많은 이들이 그녀의 곁을 살아갔지.


그녀는 상징이었어. 잊혀지고 버려진 오토마톤들을 구원하고, 새로운 피조물인 안드로이드를 만들어내는 기반이 된, 선조의 피조물과, 선조의 후예의 화합은 바로 그녀가 머무르는 지하실에서부터 시작되었지.




그랬던 그녀의 죽음은 당연히 모두를 충격에 빠트릴 수 밖에 없었어.


보안카메라에 의해 범인은 바로 특정되었어. 그녀가 처음 깨어났을 때부터 이 건물에서 일하던 청소부였지.


세상은 그에게 분노했어. 이성적인 안드로이드와 오토마톤들조차 일부러 그를 살짝씩 모질게 대했고, 인간들은 말할 것도 없었지.


사람들의 야유와 저주를 받으며, 적대적인 기자들의 질문을 받으며, 무장한 경찰들에게 끌려간 청소부는 경찰서에서 가장 보안이 강한 취조실로 끌려갔어.



간신히 찾아온 정적 속에서, 정장을 갖춰입은 한 안드로이드가 취조실로 들어왔어.



안드로이드는 프로토콜에 따라 청소부가 가진 법적인 권리를 설명해준 다음, 그에게 말했어.



"모든 증거는 확보되었습니다. 피고의 진술은 혐의 입증에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않습니다. 조언드립니다. 증거와 진술의 불일치는 형량 선고시 피고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입니다. 진술하시겠습니까?"



늙은 청소부는 싸늘하고 기계같이, 원래 기계이지만 그보다도 더 냉정하게 말하는 안드로이드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어.



"진술하겠습니다."




하지만, 대답은 하였지.


안드로이드의 눈동자에서 녹화 중이라는 붉은 불이 들어오자, 청소부는 그제서야 고개를 들어 안드로이드와 눈을 마주쳤어.


거친 주름이 가득한 그 입술이 천천히 떨어지고, 닳고 닳은 성대가 낮게 울렸지.





"처음 그 녀석을 연구원들이 찾아냈을 때, 이름을 하이디라 붙였죠. 연구원장의 딸이 좋아하는 만화에 나오는 로봇 등장인물이었거든요."


"이 진술은 사건과 관계성이 없다고 판단됩니다."


"어차피 내가 범인인 걸 증명하는데 필요한 증거는 다 있을 텐데, 굳이 그런 걸 얘기할 필요는 없지요. 이건 내가 하이디를 왜 죽였는지에 대한 자백입니다."



청소부의 말에 안드로이드는 입을 닫고, 차갑디 차가운 강철과 같은 눈으로 청소부를 계속 응시했어.


둘이 있었지만, 하나의 숨소리만이 울리는 방 안에서 청소부는 또 입을 열었지.




"하이디가 처음 발견됐을 때는 보통 난리도 아니었죠. 반 이상이 날아간 형상에, 탄화된 광물 덩어리 속에 묻힌 모습과 드러난 기판들을 두고 다들 초고대 문명이 발견됐다며 떠들썩했어요. 나는 그 때 시골에서 아무 대책도 없이 도시로 올라온 철없는 소년이었고, 어른들 사이에서 일자리를 찾아 헤맸죠. 공공기관이나 학교에 청소부를 공급하는 업체가 간신히 날 뽑아줬고, 첫 직장으로 보냈죠. 거기가 바로 하이디를 연구하던 연구소였어요.


나랑 같이 연구소로 온 어른들은 1년이 넘기 전에 대부분 그만뒀지만, 나는 돈 때문에 그럴 수 없었어요. 퍼지 연구소장은 이유없이 성질을 내곤 했고, 스타이너 박사는 모든 사물이 같은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편집증이 있었죠. 청소부의 외출은 엄격히 제한되고, 몇 개월씩 연구소와 기숙사를 오가면서 공간에서만 지냈던 걸 지금 돌아보면, 어른들이 먼저 도망친데는 이유가 있었어요.


그렇게 몇 년 넘게 청소만 하면서 보내다가, 어느 날 우연히 이 연구소가 하이디와 관련된 곳이라고 깨달았죠. 수만년 전에 파괴되고 땅 속에 묻혀버린 하이디는, 흙먼지 아래에서는 아직 멀쩡한 회로들을 가지고 있었어요."



청소부가 하는 말은 역사의 증언 중 하나였지만, 가치는 없었어.


그가 하는 이야기는 이미 많은 연구원들이 책과 연설해서 수없이 말했고, 하이디 본인 역시 수없이 말한 것의 되풀이에 불과했거든.



"연구소의 모두는 당시 기술로는 만들 수 없는 수준의 회로를 보고 당황했지만, 포기하지는 않았어요.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을 만든 건 그 연구소에 있던 모두들이었죠. 나도, 그 때 그 옆에 있었어요."



그럼에도 청소부는 말을 이어갔어.


쓸모없는 정보였지만, 안드로이드는 계속해서 녹화했어. 어차피 쓸모없는 진술은 나중에 편집하면 그만이야.


하지만 그런 판단에도 불구하고, 노인의 신세한탄 같은 중언부언은 기계생명체에게조차 견디기 어려웠어.




"하이디의 두뇌를 되살리기 위해, 우리는 당시에 막 개발된 진공관 컴퓨터를 사용하기로 했어요. 프랑켄슈타인에 나오는 한 장면 같았죠. 지하에서는 하얀 가운을 입은 박사들이 분주히 오가고, 큰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진공관의 탑 사이로, 반 이상 사라진 하이디의 몸에는 전선이 주렁주렁 연결됐죠. 아직도 나는 그 날을 기억해요."


"사건과 관련없는 내용으로 비협조적으로 진술에 나설 경우 법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결국 끝이 안 보일 것 같은 예감에 안드로이드 수사관이 한 마디 했어.


청소부는 잠시 입을 다물었지. 그는 잠시간 골똘히 생각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어.



"정리하면, 나는 내 인생의 거의 대부분을 하이디와 함께 보냈다는 겁니다. 언제는 내가 청소계약 갱신이 가까워져서 일자리를 잃게 되려고 하자, 하이디가 급구 말린 적도 있었죠. 그 때는 아직 말이 유창하지 않았는데, '잘 기능하고 있는 구성원을 대체하는 비효율에 의의를 제기함. 제이크 스튜어트가 타인으로 대체되었을 때 신규 인원이 현재 제이크 스튜어트의 수준으로 기능하는데까지 2년 8개월간 해당 연구소의 근무효율은 28% 하락함.' 대충 이런 말로 붙잡아둔 덕분에 이 늙은이가 직장을 안 잃었죠.


나는 그 날들을 기억해요. 처음 하이디를 사진으로 보았을 때부터, 박사님들의 호의로 처음 하이디를 봤을 때나, 자신의 과거도 기억하지 못하는 하이디가 박사들과 힘을 합쳐서는, 마침내 처음으로 다른 오토마톤을 살려내고, 처음으로 안드로이드를 창조하고, 그 모든 걸 나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청소부는 갑자기 말을 멎더니, 탄식과 함께 말했어.



"하이디도…… 기억했죠."



청소부의 말 사이에는 슬픔이 섞여있었어.



"박사님들은 하이디한테 새 몸을 주고자 했어요. 하지만 문제가 있었죠. 하이디의 몸은 두 개였어요. 완전히 망가진 채 기억장치는 사라지고 연산회로도 사라져버린, 혼자서는 기능하지 못하는 반 쪽 짜리 오토마톤의 몸과, 그것을 억지로 가동시킨 거대한 에니악 컴퓨터들. 하이디는 태어났을 때부터 그것이 자신의 몸이라고 여겼어요. 태어났을 때부터 나의 것이라 여긴 몸을 갈아치우는 일을 누가 할 수 있겠습니까?


그건 내가 내 몸뚱이를 찢어서 스마트폰 안에 내 의식을 옮긴다는 소리랑 똑같아요. 내 기억을 가지고, 나와 똑같이 행동한다고 해서 그게 나입니까? 그게 그저 나라는 인간의 데이터를 관측하거나 모방해서 만든 기계장치일 가능성이 정말로 없습니까? 똑같이 생산되었지만 다른 컴퓨터에서 데이터를 빼내어 다른 컴퓨터에 똑같이 붙여넣는다고, 그 두 개의 컴퓨터는 정말로 같은 컴퓨터가 된다고 할 수 있습니까?


우리 중 그 누구도 하이디를 설득하지 못했어요. 하이디는 자신이 태어난 채로, 수십만 개의 진공관과 원시적 컴퓨터에 연결된 채 살아가길 선택했어요."



누구나 아는 사실이야.


그러나, 교과서로 단순한 사실을 보는 것과,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이 경험한 이야기 사이에서는 감정의 차이가 존재했어.


하지만, 안드로이드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았어.




"인간은 많은 걸 까먹어요. 그러면서도 오래된 걸 기억하기도 하죠. 나는, 일주일 전 아침에 뭘 먹었는지 기억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어릴 때 하이디를 처음 본 날을 잊지 않았어요. 우리 인간은 자연스럽게 잊을 것과 기억할 것을 본능적으로 구분합니다. 원래의 오토마톤은 모든 걸 기억할 정도로 뛰어난 성능을 가졌고, 초고대 문명 수준은 아니어도 안드로이드도 이건 마찬가지죠. 싫은 기억은 심지어 선택해서 지울 수도 있지 않습니까?"



청소부가 안드로이드를 가리키며 한 말에, 안드로이드는 대답하지 않았어.


이 법리적으로 무의미한 순간마저도 안드로이드의 끝을 알 수 없는 두뇌 속에 저장되었지.



"하지만 하이디는, 잊을 수가 없었어요. 물론 진공관과 컴퓨터는 점점 더 늘어났지만, 하이디는 그 지하실에서 보낸 모든 순간을 절대로 지우려고 하지 않았어요. 저장장치의 역할을 해야하는 자기드럼에도 한계가 점점 찾아왔죠. 그래서 반 년 전부터 하이디는…… 잊기로 했죠."


인간처럼 자연스럽게 잊으면서 살 수 없고, 원래의 오토마톤이나 안드로이드처럼 모두 기억할 수 없었기에.


"자주 사용하지 않는 단어를 지우고, 지하실 밖으로 나갈 수 없으니 걷는 법을 잊고, 오토마톤의 회로 파편 속, 이제 없는 몸의 반쪽을 사용하는 법들을 잊었어요. 기존의 저장방식 대신 시각적인 해독키를 보고 변환하는 방식으로 자료들을 변환해서 어떻게든 공간을 만들었어요. 하이디가, 그렇게까지 하면서 기억하려 한 게 뭔지 아십니까?"



청소부는 안드로이드에게 물었지만, 그건 질문이 아니었어.


마침내, 노인의 말 사이에 섞여있던 슬픔이 절규가 되었지.



"내가, 기억도 나지 않는, 꼬마였을 때 아침으로 먹은 토스트의 내용물을 기억하고 있었어요. 지난 89년간, 연구소에서 보낸 모든 날을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고요……."



청소부의 메마른 눈가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어. 수갑에 묶인 두 손은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떨렸지.



"그렇다면 어째서 죽인 겁니까?"



안드로이드는 여전히 감정이 담기지 않은, 차가운 눈빛으로 청소부를 바라보며 물었어.



"하이디를 위해서."



청소부는 굳건한 눈매 사이로 붉어진 눈시울을 가리지도 않고, 그 차가운 눈빛을 마주했다.



"나는, 썩지 않을 뿐인 몸뚱이에, 지하실에 갇혀있을 뿐인 영혼을, 시간이 지날수록 잊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그 모습을 가만히 두고볼 수가 없었을 뿐이야. 아무 가치도 없는, 나 따위 청소부에겐 지나가는 순간에 불과했던 그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서 자신마저도 지워버리고, 모든 몸을 기억하기 위해서만 망가져서 움직이지도, 말하지도 않게 된 모습을, 어떤 인간이 지켜보고만 있겠냐! 그게 너희가 날 범죄자라고 부르는 이유라면, 나는 범죄자로써 죽고 말지 비겁한 겁쟁이가 되진 않겠다!'



큰 소리로 외친 청소부는 흥분한 채 숨을 몰아쉬며, 갑자기 터져나온 기침에 입을 가렸어.


그는 나이에 비해선 건강한 편이었지만, 그럼에도 100살을 넘긴 인간이 이처럼 격한 감정을 토해내고 멀쩡할 수는 없었지.



안드로이드는 말없이 그를 바라봤어.


청소부가 거친 숨을 가다듬는 순간만이 취조실 안에서 이어졌지.



"어떻게 피해자를 살해했습니까?"



정적을 깬 것은 한 치의 미동도 없이 청소부를 관찰하던 안드로이드였어.


청소부는 눈물이 채 마르지도 않은 눈가를 굳은살이 박힌 손가락으로 닦아내고, 천천히 답했어.



"진공관은 섬세한 장비에요. 충격에도 민감하고, 온도에도 민감하죠. 그래서 지하실은 언제나 적정 온도로 유지되고, 한 개의 장치가 실패할 때를 대비한 세 개의 냉각장치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전류 변압기도 한 쪽 회로가 실패할 때를 대비해서 컴퓨터 당 두 개 이상이 할당되어있고, 이 모든 설비를 가동시키기 위해서 거대한 비상발전기도 있습니다. 원래는 전부 굳게 닫혀있고 보안인증을 거친 사람만 접속할 수 있는데, 이제는 아무도 진지하게 돌아보지 않는 기념관이라 그런지 모든 잠금장치가 해제되어 있었습니다."



청소부는 잠시 숨을 삼켰다가 답했어.



"그래서 나는, 퓨즈 차단기를 무시하고, 변압기를 우회해서 비상발전기와 컴퓨터의 전원선을 연결한 다음, 진공관에 전류를 흘려보냈습니다."



모든 장면은 시설에 설치된 보안카메라에 기록되었어.


굳게 닫혀있어야 할 중요설비의 문을, 고작 청소부가 모두 열고는, 누군가가 눈치 채기도 전에 만약을 대비한 모든 안전장치를 무시하고 연결하여 사보타주하는 그 장면이.


그 결과,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적인 순간을 만들어낸 오토마톤이 사망했지. 지하실을 가득 채웠던 그녀의 기억은 모두 사라졌고, 반쪽짜리 오토마톤으로써 남은 몸은 빈 껍데기나 다름없었어.



"진술을 저장합니다."




청소부에게서 필요한 진술을 들은 안드로이드는, 녹화한 영상을 수사자료로 업로드했어.






청소부는 100살이 남은 고령도 그렇고, 국민적인 분노 탓에 다른 죄수들에게 살해당하거나 린치당할 위험으로 인해 독방에 따로 수감되었어.



그동안 모은 증거자료와 청소부의 진술을 정리한 경찰은 검찰에 사건을 송치하였고, 검찰은 재판을 요청했지.


청소부가 아무런 변호도, 저항도 하지 않았기에, 재판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어.




피가 흐르는 인간과, 전기가 흐르는 인간이 모인 재판장에서, 청소부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


그는 조사관에게 진술을 한 다음 날부터 마치 고장난 기계처럼 행동하였어. 밥을 제대로 먹지도 않았고, 잠은 자는듯 마는둥 하고, 누군가가 말을 걸어도 반응하지 않았어.


마치, 그 날 이후로 그는 죽은 것처럼 행동했지.












마침내, 재판이 열렀다.



검찰의 조사 결과, 일개 청소부인 그가 하이디의 생명을 유지하는 최중요 설비에 출입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도 없었다.



시설은 해킹 등의 침입시도를 막기 위해 물리적으로 네트워크가 차단되어 연결된 적이 없고, 시설에 출입할 수 있는 보안등급을 가진 인물은 모두 사망하여, 오로지 피해자인 하이디만이 그 시설의 출입문을 원격으로 개방할 수 있었다.



또한, 사망 전 이루어진 검사기록에서 피해자는 실제로 기억을 최대한 유지하고자 자신의 오토마톤으로써의 기능을 하나씩 삭제해나가고 있었고, 가장 최근 이루어진 검사 결과에서도, 단 하루의 기록 삭제도 없이 89년어치의 기록자료를 저장하고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이는 1개월 내에 저장공간의 부족으로 인해 모든 기능이 정지하는 위험수준으로, 강제적인 기억장치의 제거나 교체, 혹은 저장된 정보의 삭제 외에는 어떤 수단으로도 하이디의 연명을 기대할 수 없는 상태라고 당시 하이디를 진단했던 정비자들이 증언했다.



이러한 피해자의 생전 행적과, 각종 정황을 분석하여, 재판부는 이렇게 판단하였다.




"본 재판부는 피해자, 하이디의 죽음이 피고의 의도에 의한 살해가 아닌,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가치 있는 기억을 소실하거나, 자신의 개체연속성을 상실하는 공포적인 상황 앞에서, 소생가능성이 없는 자신의 삶을 가장 인도적으로 마치기 위한 자살의 결과라고 판단한다. 피해자는 신체적인 이유로 스스로 움직이거나 지하실 밖의 설비에 접근할 수 없어서 스스로는 달성 불가능한 자신의 인도적인 죽음을, 피고인을 이용하여 달성하였고, 이 과정에서 피고의 의지가 개입하였다고는 하나, 계획의 주도는 전부 피해자의 의지였다는 점을 감안하여……."



판결문을 읽는 법관은, 오토마톤 특유의 보랏빛 눈으로 청소부를 바라보며 말했다.



"살인혐의에 대한 무죄를 선고한다."



재판장은 고요했다.



"소멸되는 공포 앞에서, 차라리 인도적인 죽음을 바라는 자의 손을 잡은 것이 죄가 될 수는 없다."





희대의 살인자가 무죄로 풀려났고, 검찰마저도 항소를 포기한 사건 때문에 세상은 한동안 시끄러웠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거대한 음모라고 주장하였다. 어떤 거대한 세력이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이 강한 오토마톤을 죽이고 싶어서 한 청소부를 이용한 뒤, 그에게 걸어나갈 자유까지 주었다는 것이다.


혹은, 자신들의 존재를 들키지 않기 위해, 청소부에게 모든 비난을 돌리기 위해 청소부를 풀어줬다는 소문도 떠돌았다.




그러나, 피 대신에 전기가 흐르는 인간들은 아무런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




청소부는 자유의 몸이 되었으나,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의 집은 하이디가 있던 기념관이었으나 기념관은 폐쇄되었고, 그는 더 이상 청소부가 아니었다. 그는 법원 밖으로 걸어나와, 항법장치가 고장난 기계처럼 목적지 없이 걸었다.


며칠 뒤, 청소부의 시신이 외딴 길가에서 발견되었지만, 타살의 흔적은 없었다. 시신을 인수해갈 연고자가 없었기에, 그의 시신은 이름없는 무덤에 묻혔다.



경찰에서 일하는 어느 안드로이드는 꽃다발을 사서, 꽃 한 송이를 빼 이 무덤에 놓고, 한 때 연구소이자 기념관이던 건물 앞에 가져다두는 무의미한 행동을 바람이 많이 부는 계절마다 반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