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쩍은 메이드와 무면허 의사 (4)

 

 

 

 

 

M880은 1880년에 개발된 관형 탄창식 펌프액션 산탄총으로, 적당한 가격에 뛰어난 내구성을

 

자랑하여 미국뿐만 아니라 해외, 그 중에서도 중앙아시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총이다.

 

값싸지만 위력적이고, 12게이지 벅샷은 단발로도 사람을 죽이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리고 그런 총이, 지금 내 머리를 조준하고 있었다.

 

“다, 당신 뭐야!?”


“призрак.”

 

죽는다- 그렇게 직감한 순간, 내 몸이 뒤로 끌렸다.

 

총성과 동시에 내 머리카락을 스치고 탄이 벽에 박혔다. 말 그대로 종이 한 장 차이였다.

 

“머리 조심하세요!”

 

“으아아-”


키리프가 내 뒷덜미를 붙잡은 상태로 창문 바깥으로 뛰어내렸다.

 

나는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그러나 아파할 틈도 없이 총알이 날아와 내 머리 옆에 박혔다.

 

“Стрелять!”

 

“머리 숙이고 따라와요!”


키리프가 내 뒷덜미를 잡고 끌어당기면서, 한 손으론 권총을 뽑아 2층의 남자를 쐈다.

 

그 때, 우리 주위로 달려오는 남자들이 보였다. 전부 총을 들고 있었다.

 

“대체 뭐야!? 저것들 뭔데 갑자기 총질이야!”


“기차역까지 도망치죠!”


기차역엔 군인과 경찰들이 상주한다, 저 괴한들도 거기까진 쫓아오지 못하리라.

 

키리프가 나를 엄호하면서 달렸다. 나도 그 뒤를 쫓아갔다.

 

“Людмила! не убегай!”

 

“거기 서라고 소리치면 누가 멈춰주나!”


우리는 골목으로 들어갔다. 괴한들이 뒤를 바짝 쫓아와 총알을 갈겼지만 길이 좁은 탓에

 

아까 전처럼 마구 쏘진 못했다. 그 틈을 타 우리는 재빠르게 길가로 나왔다.

 

“마차다!”


“거기서 내려!”


키리프가 말 위에서 졸고 있던 마부를 바닥에 끌어내린 후, 말 위에 올라타 고삐를 잡았다.

 

“올라타세요!”

“이거 마차 강도 아냐!?”

“지금 그딴 거 신경 쓸 때가 아니잖습니까!”

그건 그래! 나는 마차에 올라탔다. 

 

“제 총 받으세요. 총 쏘는 법은 아시죠!?”


“사람을 죽여본 적은 없는데!”


“잘 됐군요, 이번에 한 번 해보세요!”


말은 쉽지, 나는 권총을 장전하고선 마차의 창문을 깼다.

 

우리 뒤로 말을 탄 괴한들이 쫓아오는 게 보였다. 총알이 날아와 마차에 박히는 것도.

 

“평범한 강도는 아니군!”

“그걸 이제 아셨습니까? 얼른 입 다물고 쏘기나 해요!”


나는 말을 조준해 방아쇠를 당겼다. 말이 고꾸라지며 흙먼지를 날렸고, 비명 소리가 울렸다.

 

쨍그랑!

 

“뭐야?”


바닥에 무언가가 불타고 있었다. 심지가 달린 갈색 관이었는데, 보통 이걸 ‘다이너마이트’라고

 

부른다는 게 떠올랐다. 

 

“씨발!”


나는 얼른 다이너마이트를 주워 창 바깥으로 던졌고- 동시에 폭발했다.

 

마차가 크게 흔들렸고, 그 충격으로 마차와 말을 잇던 쇠고리가 끊어져 날아갔다.

 

“주인님!”


“난 신경 쓰지 말고 계속 도망쳐! 얼른!”


마차가 쭉 굴러가다 벽에 처박혔다. 충격과 함께 몸이 붕 떴고, 나는 마차 바깥으로 튕겨졌다.

 

“으으……!”


정신이 없다. 마치 꿈처럼 느껴졌다, 이게 지금 현실인가? 흙먼지를 뚫고 간신히 벽을

 

붙잡고 일어섰다. 그리고 뒤통수에 느껴지는 서늘함을 느꼈다.

 

“잡았다.”


“……항복.”


나는 얼른 권총을 버리고 손을 들었다. 내 주위로 괴한들이 모였다.

 

“이봐, 뭘 바라는지 몰라도 키리프한테는 손대지 마.”


“키리프? 아, 지금은 그런 이름을 쓰는 건가.”


지금은? 그게 무슨 뜻-

 

그렇게 물어보려고 한 순간, 둔탁한 충격이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기절했다.

 

 

 

 

 

 

 

 

*****

 

 

 

 

 

 

 

지금이 몇 시인지 모르겠다. 뭐가 됐든, 내가 좆됐다는 사실 하나는 알 수 있었다.

 

나는 어디론가 끌려와 감금당했다. 어두컴컴했고, 눈이 아플 정도로 건조했다.

 

“아주 꽁꽁 묶어놓으셨군…….”


팔과 다리를 밧줄로 묶였고, 그것도 모자라 입에 재갈까지 물렸다.

 

평범한 강도는 아니다. 그럼 누가 우리를 습격한 걸까? 그 남자는 분명 러시아어로 말했다.

 

“깨어났군, Доктор.”

 

“으읍.”


“재갈은 풀어주지. 세르게이!”


덩치 큰 남자가 내 재갈을 풀어주었다.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웬 남자였다.

 

구부정한 허리에 콧수염이 인상적인 중년의 남자였다. 짙은 갈색 군복……구소련의 군복이다.

 

“우선 자기소개부터 할까? 이름하고 소속.”


“레프. 의사다. 당신은 누구지?”


“당신이 누구냐고? 그건 중요치 않아. ‘나’는 중요치 않다. 중요한 건 ‘우리’지.”


그 남자가 내 맞은편에 쭈그려 앉았다.

 

“……구소련의 망령.”


“우릴 알고 있군.”


“소문을 들었지. 정말 있는 줄은 몰랐는데.”

 

10년 전에 망한 소련의 잔당. 어제 일병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한테 무슨 볼 일이 있는 거지?”


“댁한텐 볼 일 없어. 우리가 찾고 있는 건 류드밀라지.”


“……류드밀라? 그건 또 누구야?”


“네가 늘 옆에 데리고 다니는 마물의 본명이다.”


키리프? 이 남자들, 키리프를 쫓고 있는 건가?

 

“키리프를 건들지 마. 그녀는 아무것도 안 했어.”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나? 댁이 알고 있는 그 마물은 정말로 ‘키리프’인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남자가 기분 나쁘게 웃더니 내 뺨을 잡았다.

 

“그럼 ‘Беспилотная земля’에 대한 것도 모르겠군. 무인지대, No man's land,”

 

“몰라.”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군. 그 마물은 널 신뢰하지 않는 모양이야.”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세르게이라 불렸던 거한이 무언가를 들고 왔다.

 

……집게다. 나는 저걸로 무슨 짓을 할지 바로 감이 왔다.

 

“하지 마.”


“뭘? 이보게 доктор, 꼭 해줬으면 하는 일이 있네만.”


“뭔데.”


“최대한 크게 비명을 지르시게나.”


세르게이가 내 손톱을-

 

“아아아아아아아악!!”

 

“그래 그거야! 거 성량 한 번 끝내주는군. 혹시 성가대라도 다녔나?”

 

손톱이 뽑혔다- 너무 아파서, 참으려고 해도 비명이 터져 나왔다. 다리가 떨리고 구역질이 

 

올라온다. 손톱이 뽑힌 자리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게 느껴진다.

 

“Людмила! 다 듣고 있지!? 당장 튀어나오지 않으면 이 남자를 죽이겠다!”


정적. 방 안에 들리는 건 내 흐느낌뿐이었다. 정신을 붙잡아라, 정신 차려야 돼-

 

“그냥 이용할 뿐이다 이거군? 그래 좋아! 세르게이, 꼬챙이로 해봐!”


무슨 꼬챙이? 세르게이가 긴 송곳을 가져왔다. 씨발, 씨발 진짜 이건 아니야-

 

“그만, 그만해! 멈춰!”


“이제 시작인데 뭘 멈추나! 자, 테너처럼 시원하게 소리 질러!”

 

꼬챙이가 내 뽑힌 손톱을 찔렀고- 나는 아까 전보다 더 크게 비명을 질렀다.

 

“끄으으으윽……! 아아아아악……!!”


“류드밀라! 듣고 있다는 거 다 알아! 5초 안에 안 나오면 이번엔 거시기를 뽑아버리겠어!”


“키리프, 나오지 마! 도망쳐, 제발……!”


그 순간.

 

머리 위의 전등이 꺼졌다. 

 

“왔군.”


두 남자가 문을 박차고 나갔다. 나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창고 같은 장소였는데, 거의 20명이나 되는 남자들이 랜턴을 들고 주위를 경계하는 모습이

 

보였다. 안 된다, 이건 너무 많다. 이길 수 없다.

 

“вы будете сожалеть об этом. Никто не может навредить моему народу.”

 

그녀는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 양손에 권총을 들고 있었고, 처음 보는 옷을 입고 있었다.

 

새까만 옷이었다. 광택 없는 가죽으로 만든 것 같았고, 곳곳에 탄창이 걸려있었는데

 

나는 저 옷이 뭔지 알고 있었다. 저건 구소련의 특수부대원들이 입는다는 침투복이었다.

 

“태어난 걸 후회하게 만들어주마.”


“죽여!!”


남자가 도끼를 휘둘렀다. 키리프가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서면서 그걸 피했고, 능숙하게 팔을

 

꺾어 도끼를 떨어트린 후 목을 감아 방패로 삼았다. 그 상태로 주위에 서 있던 남자들의

 

머리를 쏴 순식간에 4명을 죽였다. 너무 빠르고, 자연스러웠다.

 

“쏘지 마! 쏘지 말라고!”

 

남자를 방패삼아 날아오는 총알을 막았고, 키리프는 전진하면서 앞을 가로막는 남자들을

 

무자비하게 처리했다. 총알은 한 발도 빗나가지 않고 모두 머리를 꿰뚫었다.

 

“сука блять! 저 미친년 좀 막-”


키리프가 상자를 발판삼아 뛰어올랐다. 남자들이 총탄을 갈겼고, 그녀는 상자와 상자를

 

넘나들며 하나씩 남자들을 처리했다. 그들, 구소련의 망령들은 제대로 된 저항조차 못하고

 

하나, 둘씩 쓰러져 죽었다. 그 무시무시한 광경에 숨이 턱 막혀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둠 속의 랜턴이 하나씩 사라졌다. 그리고 완전한 어둠이 내렸을 때, 그녀가 마지막

 

랜턴 앞에 나타났다. 날 고문했던 남자가 벽을 등지고 마구 총을 쐈다.

 

“Пошёл ты! 오지 마! 나한테 다가오지 말란 말이다-!!”


키리프가 남자의 손을 쏴 총을 떨궜다. 그리고 천천히, 조용히 다가왔다.

 

“허억, 허어억……!”


“2년.”

 

그녀가 말했다.

 

“제 인생에서 가장 소중했던 2년이었습니다. 그와 함께 했던 시간들은 정말로 행복했어요.”

“류드밀-”


“날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마.”


그녀가 남자의 무릎을 쐈다. 비명이 어둠 속에서 울려 퍼졌다.

 

“당신은 제가 유일하게 사랑하는 인간을 해쳤어요. 그리고 ‘정말’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마저 보이게 했죠. 그 책임을 어떻게 지실 겁니까, Советское привидение?”

 

“이 빌어먹을 괴물! Россия тебяне забудет! 우리만 널 쫓고 있다고 생각하나!”


“온 세상이 절 쫓겠죠. 현 러시아 정부, 당신들, 테러리스트들……뭐, 상관없습니다.”

 

총성이 울렸다. 남자가 숨이 끊어지는 소리를 내며 무어라 말했지만, 들리진 않았다.

 

“저는 제 행복을 지킬 거니까요.”

 

“키리프.”


그녀가 내게 다가왔다. 피투성이였지만, 어딜 다친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주인님, 모시러 왔습니다. 다치신 곳은……?”

 

“괜찮아. 너야말로 다친 곳은?”


“없습니다.”


그녀가 나이프로 밧줄을 잘랐다. 나는 비틀거리며 일어섰고, 그녀가 날 부축해줬다.

 

“집으로 돌아가시죠. 상처는 알아서 치료하실 수 있으시죠?”


“손가락에 구멍 좀 났을 뿐이야.”


“그런 것치곤 꽤 요란하게 소리치시더군요.”


“시끄러.”


우린 창고를 나와 기차역으로 향했다. 아침이 될 무렵인지 저 하늘이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키리프.”


“네.”


“……네가 어떤 인생을 보냈든, 어떤 이름으로 살아왔든 난 상관없어.”

 

“…….”


“너는 키리프야. 류드밀라가 아니라.”


“알고 있습니다.”

 

그 때, 그녀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혹시 그 남자가 무인지대 이야기를 했습니까?”


“그걸 아냐고 물어보긴 했어.”


“주인님, 절 믿으십니까? 제게 목숨을 맡기실 수 있을 정도로 절 신뢰할 수 있으십니까?”

 

“물론이지.”

“그럼 그 이야기는 잊으십시오. 그건 아는 것만으로도 목숨이 위험한 정보입니다.”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울음을 참는 것처럼 보였다. 분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알겠어.”


“감사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갔다.

 

결국 알게 된 건 하나도 없이, 의문만이 늘어났을 뿐이었다.

 

 

 

 

 

 


 

오늘의 러시아어

 

призрак - 유령

не убегай - 도망치지 마라

Доктор - 의사양반

вы будете сожалеть об этом. Никто не может навредить моему народу

넌 후회하게 될 거다. 아무도 내 사람을 건드릴 순 없어

Россия тебяне забудет - 러시아는 널 잊지 않았다

Советское привидение - 소련의 망령

 


사실 번역기 돌리는 거라 어색한 표현이 있을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