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행사 시작까진 좀 남았으니까 아빠가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해 줄게. 

잘 들어봐.


옛날에 연이라는 아이가 있었는데, 연이는 하피인데도 날지 못했어. 

그녀의 날개는 다른 하피들에 비해 깃털도 별로 없었고, 크기도 너무 작아 날기에 적합하지 않았지. 


또래 친구들은 연이를 날지도 못하는 모자란 아이라며 놀려댔고, 연이는 항상 눈물을 머금은 채 혼자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오는 게 일상이었어. 

그런 연이가 유일하게 웃을 때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그녀의 아빠와 함께 공터에서 야구를 하는 시간이었어. 


아빠가 던져주는 말랑말랑한 고무공을 오른손에 낀 글러브로 받아내고 그걸 다시 힘껏 아빠를 향해 던지는 단순한 놀이였지만, 연이는 야구를 할 때만큼은 평소와는 달리 밝게 웃으며 얼굴에 함박꽃을 피웠지.


아빠는 그런 연이를 야구선수로 키우기로 다짐했고, 

유소년 야구단을 거쳐 야구부가 있는 학교 근처로 이사를 갈 정도로 열정적으로 연이를 성심성의껏 서포트했어.


그러나 연이는 고등학교에서 그렇게 주목받는 선수는 아니었어. 

잠재성은 있다고 인정받긴 했지만, 그 시절 야구부에는 연이 정도는 우스울 정도로 뛰어난 아이들이 차고 넘쳤거든.


그럼에도 연이는 개의치 않고 꿋꿋이 공을 던졌어. 

자신이 올라가는 경기는 항상 팀이 크게 지고 있을 때뿐이었지만, 마운드 위에서 로진백을 만질 수 있다는 점 하나로도 그녀는 행복했으니까.


그렇게 고등학교를 끝으로 연이의 야구인생은 끝나는 듯싶었지만, 연이의 재능을 알아보고 끝까지 그녀를 주목한 사람이 하나 있었지. 

바로 하피 이글스의 스카우터였던 몬붕이야. 


몬붕이는 그녀의 피칭을 보며 하피 특유의 강한 어깨와 지치지 않는 체력을 눈여겨봤어.

몬붕이는 연이에게 대학에 진학해 야구를 계속할 것을 권유했고, 

계속해서 주저하고 망설였던 그녀는 몬붕이의 적극적인 모습에 이기지 못하고 다시 한 번 꿈을 머금고 야구공을 잡았어.


대학에 진학한 이후 그녀는 놀라울 정도로 성장했어. 

물론 그 배경에는 몬붕이가 있었지.

과거 고교의 에이스로 이름을 날렸지만, 불의의 사고로 선수생활을 접어야 했던 몬붕이는 원래 그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연이의 재능을 자신이 만개해주고 싶었어.


그는 대학 야구에서 뛰고 있던 연이를 종종 만나 자신의 경험담과 노하우를 이것저것 알려주었고, 

연이는 그의 조언을 토대로 투구 폼을 바꾸고 끊임없이 노력해 팀의 에이스로 거듭나기 시작했어.


그렇게 그녀는 대학리그를 제패한 유망주로 주목을 받게 되었고, 

여러 구단은 연이에게 매력적인 제안을 하며 어떻게든 그녀를 입단시키기 위해 발버둥 쳤지.


그러나 그녀가 선택한 팀은 현재 리그에서 최약체라 일컫는 ‘하피 이글스’였어.


고등학교가 이글스를 연고로 두고 있긴 했지만 더 좋은 조건으로 타 팀에 입단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을 이렇게 만들어준 몬붕이가 있는 이글스로 갈 것이란 마음뿐이었지.


그렇게 하피 이글스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지만, 역시 팀은 그녀를 돕지 못했어.

괴물 같은 기세로 상대 타선을 박살내도 수많은 실책들과 조용한 방망이가 환상적인 조화를 이뤘거든. 

연이는 뼈 빠지게 9이닝을 채워 던지고도 패전을 하거나 승리가 날아가 버리는 경기가 한두 번이 아니었지.


그러나 팬들은 연이가 등판하는 날마다 힘껏 그녀를 응원했고, 

연이는 그 모습을 가슴 속 깊이 새기며 모자를 질끈 눌러 쓰고 포수의 사인에 집중했어.


그렇게 하피 이글스의 1선발로 8시즌을 보낸 연이는 FA 자격을 얻었고, 

많은 사람들은 그가 시궁창 같은 이글스를 떠나 더 좋은 구단으로 이적하리라 생각했지.


실제로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여러 구단에서도 오퍼가 들어왔고 특히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도 연이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보였어. 


그러나 연이는 계속해서 말을 아꼈어. 솔직히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거야. 

그저 자신은 공을 만질 때의 즐거움과 팬들의 응원만으로 야구를 해왔기에 자신을 이렇게 만들어준 구단과 팬들에게 차마 등을 돌릴 수 없었지. 


그러나 다른 구단들이 제시한 조건은 정말 매력적인 것도 사실이었어. 

기존 연봉의 10배가 넘는 금액을 제시한다는 것부터 마이너리그 강등 거부권을 비롯해 그녀를 매혹시킬만한 

각종 혜택들에 비해 이글스가 제시한 조건은 너무나 초라하기 짝이 없었지.

 

그날 밤, 심란해하고 있던 연이에게 이제는 남편이 된 몬붕이가 다가와 그녀의 옆에 앉았어.


“오빠, 나 어떡해? 정말 모르겠어...”


잠시 고민하던 몬붕이는 이렇게 말했어.


”그냥 너 마음가는대로 정해. 

어디서든 공을 던질 수 있다는 점에 감사하는 게 가장 너다운 모습이니까.“


”피이~ 그게 뭐야? 진짜 무책임하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연이의 마지막 선발 등판 날이 밝았고 그녀는 평소처럼 몸을 풀고 마운드 위에 올랐어. 

그 순간 그녀의 두 눈에 믿지 못할 광경이 펼쳐졌지.






팬들이 한자 한자 정성껏 적은 대형 플래카드가 펄럭이고 있었어.

그들은 목 놓아 어쩌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연이의 등판을 응원했지.


순간 연이의 마음속에서 무언가 커다란 응어리가 터져 나왔고, 그녀는 구슬 같은 눈물방울을 흘리며 공을 던졌지. 

물론 그 날도 실점 없이 완벽한 투구로 이글스에서의 마지막 승리를 따낸 건 덤이야.

그 후 인터뷰에서 그녀는 펑펑 눈물을 쏟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해.


”반드시... 돌아갈 거예요. 지금의 날 만들어 준 건 이글스니까. 

내 마음속 영원한 고향은 이글스니까... 

언젠가는 꼭 돌아가서 보답할 거야. 돌아간다면 힘이 있을 때 돌아가고 싶어요. 흐으윽...“ 


그리고 연이는 메이저리그로의 여정을 시작했지.

연이가 굉장한 투수인건 사실이지만, 사람들은 걱정이 앞섰어. 

온갖 괴수들이 모이는 메이저리그에서 과연 그녀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지.

얼마 못 가 다시 돌아올 거라 예상하는 기사들도 여럿 쏟아져 나왔고 메이저리그에서도 충분히 성공할 것이라는 낙관론 또한 많았어.


그리고 다음 해, 이글스가 아닌 벌처 양키스의 유니폼을 입은 연이는 정말 놀라운 모습을 보여줬어. 

그녀의 공은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했던 거야.

국내 리그에서 하던 것처럼 타자들을 찍어 누르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팀에 정말 큰 도움이 되었고 무엇보다 잔부상 하나 없이 정말 많은 이닝을 소화해 양키스의 기대에 부응하는 성적을 냈지.


일찍이 몬붕이가 알아본 강철체력과 무명 시절을 겪으며 이른 혹사를 당하지 않았던 점이 

그녀의 메이저리그 행을 성공적으로 장식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고 해.


그런데 신기한 건 뭔지 알아? 그 메이저리그에서도 연이에게 승운은 따르지 않았다는 거야. 

신기하게도 그녀가 등판하는 경기마다 수비진들은 실책을 연발했고 방망이는 침묵했어.

참 웃기지? 그 메이저리그에서 답이 없는 하피의 수비를 보며 데자뷰를 느끼는 연이의 모습이.


그렇게 연이는 7년 동안 착실히 기록을 쌓아올렸고 그녀의 가치는 메이저리그에서도 하늘을 찔렀어.

양키스와의 계약이 끝나가던 시기, 수많은 구단들이 그녀에게 거액의 러브콜을 보낸 건 당연한 일이야.

그러나 그녀의 마음속에 행선지는 정해져 있었지.


바로 자신의 친정 팀 ‘하피 이글스’였어.

그녀의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연이의 결정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

이글스로의 복귀를 선언한 날 한 기자가 이렇게 질문했어.


”연 씨, 꿈을 이루기 위해 간다고 말씀하셨는데 메이저리그가 아닌 한국 프로야구로 가는 것이 꿈이라고요?“


그녀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지.


”제 딸들은 야구를 아주 좋아해요. 제 경기가 끝나고 나면 항상 ’멋진 엄마 힘내세요!‘ 라고 말해줘요. 

이처럼 스포츠선수는 아이의 정신과 사고에 큰 영양을 주고 있어요.


다시 말해서 정정당당하게 싸우고, 꾸준히 노력하고, 정직하게 사는 것 등 인생의 기본을 전해주는 역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포츠 선수는 아이들에게 「꿈을 주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고 아이들의 모범이 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해요. 

제가 이렇게 많은 연봉을 받는 것도 어린이와 팬들 덕분이니까요.


훗날 제 인생을 돌아볼 때, 가족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이게 제 진정한 꿈이랍니다.”


평소 수줍음을 많이 타 말을 길게 하지 않는 그녀였지만, 이 말을 하는 그녀의 눈동자는 빛나고 있었어. 

어느 누구도 그녀의 결심을 막을 수 없었지.


그렇게 연이는 7년 만에 다시 이글스의 마운드 위에 올랐어.

형편이 좋지 못한 이글스였지만, 국내 프로야구 선수들이 받는 연봉을 아득히 뛰어넘는 금액을 그녀에게 지급하며 레전드에 대한 예우를 했지.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공은 여전히 위력적이었어.

과거 신인 시절 타 팀 타선을 요리하던 그 모습은 여전했지.


그러나 어김없는 하피의 수비 덕택에 정말 아쉽게도 가을야구는 하지 못했어.

그럼에도 각종 상을 휩쓸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지.

그렇게 그녀의 프로야구 인생은 마무리가 되는 듯 했지만...


“올해는 반드시 이글스가 우승할 겁니다. 제가 그 길의 발판이 되고 싶어요.”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노망이 들었나? 사실 그건 중요하지 않아.

연이는 자신은 아직 뛸 수 있다는 의지를 보였어.

그녀가 작년에 보여준 모습을 보면 올해도 충분히 가능할 거란 생각이 들었는지 구단은 그녀와 1년 더 계약했어. 

팬들은 살아있는 전설과 1년 더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에 환호했지.


그리고 정말 하늘이 도운 걸까?

그 해 영입한 선수들과 기존 선수들의 기량이 폭발하며 작년의 그 답 없는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정말 환골탈태한 모습으로 준수한 기록을 세웠고,

연이 또한 살아있는 전설이자 주장에 걸맞는 활약을 펼쳤어.

결국 연이는 자신의 손으로 포스트시즌이 걸린 마지막 승리를 따내며 이글스의 가을야구를 결정지었지.

이 때 개인 한·미 통산 200승을 달성한 건 덤이야.


그리고 대망의 한국시리즈. 장장 10여년 만에 가을야구를 하게 된 하피 이글스는 마지막 경기에 연이를 선발로 내보냈고 

그녀의 마지막 선발 등판에 이글스 팬 뿐만 아니라 다른 팬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응원했어.


하지만 연이의 운은 여기 까지었나봐.

7이닝동안 완벽한 피칭을 보여준 연이였지만, 하나의 아웃카운트만 남겨둔 상황에서 상대편 유망주의 경쾌한 스윙에 맞은 공은 

오른쪽 담장을 넘어가고 말았고, 결국 이글스는 패배해 한국시리즈 우승은 그저 꿈으로만 남고 말았어.


그러나 사람들은 승패를 떠나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연이에게 끊임없는 찬사를 보내주었고, 

수많은 사람들의 열렬한 환호 속에서 빛나는 선수생활을 마감할 수 있었어.


자, 이제 이야긴 그만하고, 저기 엄마 보이지?

바보같이... 아직도 모래바닥에 얼굴을 박고 있네. 그래도 정말... 엄마는 대단해.

여기 모인 모든 사람들이 엄마의 이름을 부르고 엄마를 위해 눈물을 흘리고 있으니까.


“아빠... 울어?”


“으응? 아니~ 그냥 더워서 땀이 흐르나봐.

자, 이제 우리도 슬슬 일어나 볼까? 엄마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 장식하자꾸나.”








라는 내용으로 누가 소설 좀 써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