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붕은 심성이 곱고 그 능력이 비범하여 뭇 사람들의 마음을 얻곤 하였다. 늙은 부모를 정성 어리게 공양함은 물론이요, 하루 종일 일해도 지치지 않고 더욱 부지런히 움직이니, 몬붕은 고장에서 효자로서 이름을 크게 떨친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런 몬붕에게도 한 가지 부족한 점이 있었으니, 바로 나이 30줄이 넘어가도록 장가를 들지 못했다는 것이다. 몬붕은 욕심을 부리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인간이었으나, 자신이 노총각이라는 사실만은 못내 신경쓰고 있었다. 그러던 몬붕은 어느날 산길을 넘어가다 거대한 구렁이를 만나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사람말을 할 줄 아는 그 구렁이는 온몸에 상처가 가득한 상태로 돌무더기 밑에 깔려있었다. 몬붕이 이를 기이하게 여겨 무슨 일인고 하고 물어보니, 구렁이가 구슬픈 목소리로 호소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저는 본디 평범한 동물로, 어느날 기이한 과실을 먹게 된 이후로 말문이 트여 여러 지식을 쌓아올렸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어떤 못된 신선이 저에게 돌을 던지니, 정신을 차려보니 이 꼴이 되었습니다."
몬붕이가 그 사정을 들어보자 구렁이가 매우 불쌍하기 그지없어 그는 구렁이의 몸을 덮은 돌더미를 치우기 시작했다. 구렁이는 이런 몬붕에 말에 감읍하여
"내 이를 벗어난다면 반드시 보은 할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몬붕은 밤을 홀딱 새어가며 돌더미를 치웠고, 마침내 구렁이는 몸을 움직일 수가 있게 되었다. 몸이 자유로워진 구렁이는 감격스러운지 몸을 몇번 휘휘 움직이더니 그대로 그 커다란 아가리를 벌려 혀로 몬붕을 감아올렸다.
"속았구나! 나는 본디 용 밑에서 수련하던 뱀으로 몰래 용이 애지중지하던 금단을 훔쳐먹고 벌로서 지상에 유폐되었다. 그런데 네가 나를 자유로히 해줬으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네 나를 풀어준 공을 보아, 특별히 아프지 않게 잡아먹어주마."
이에 몬붕은 당황하지 않고 조목조목 이유를 들어 구렁이를 설득하니, 구렁이는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몬붕이 말하길,
첫째, 자신을 잡아먹는 일은 은혜를 원수로 갚는 일이요
둘째, 스스로 보은하겠다는 말을 어기는 건 부덕한 일이요
셋째, 자신을 먹지 않고 놓아준다면 기꺼히 꾸준하게 공물을 바쳐 자신을 먹는 것보다 이익이 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렁이는 특히나 마지막 조항을 듣곤 곰곰히 생각하고 말하길
"네 말을 그대로 믿기는 어려우니 너를 따라가 손수 공물을 받아내야겠다."
하며 아리따운 여성의 모습으로 둔갑했다. 이에 몬붕은 크게 놀라며 여성으로 변한 구렁이를 안내해 집으로 돌아왔다. 몬붕이의 부모는 하룻밤새 돌아오지 않던 몬붕이가 참한 처자와 돌아온 것을 보곤 기뻐하며 한 상 걸하게 차리니, 구렁이는 이를 먹곤 만족해 하더라. 이리하여 구렁이는 몬붕의 집에 눌러살게 되었고, 둘은 머지않아 눈이 맞아 정을 맺게 되었다. 그리하야 둘은 혼례를 올렸으니, 혼례를 올림과 함께 하늘에서 상서러운 오색빛이 흐르며 둘의 위를 축복하듯 비추었다. 이에 구렁이가 깨달은바 있어 하늘을 보고 큰 절을 올리니
"용께서는 금단을 훔쳐먹은 나를 용서하실 뿐만 아니라 이런 귀한 인연까지 내려주셨구나!"
하고 감사를 올릴 뿐이었다. 그러자 몬붕의 손에 콩만한 크기의 금색 단환이 생겨났으니, 이를 금단인줄 알아본 구렁이는 그를 몬붕에게 먹여 둘은 오랫동안 백년해로하여 행복하게 지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