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림표--





"...sá quet nahta ldë, vára hlócë."


페나르핀이 타이펀을 향해 엘프어를 말하며, 두사람을 향해 뛰쳐왔다.


챙-! 챙-! 챙-! 챙-! 챙-! 챙-! 챙-! 챙-!


"윽...!"


빠르고 강하게 휘몰아치는 페나르핀의 검격을 하나 하나 힘겹게 막아내는 게르트.


챙-! 챙-! 챙-! 챙-! 챙-! 챙-! 챙-! 챙-!


노도와도 같은 페나르핀의 묵직한 공격들을 전부 막아내는 게르트.


미친듯이 몰아붙였지만, 게르트는 쉽게 꺾이지 않고, 공방을 계속해나갔다.


챙-! 챙-! 챙-! 챙-! 챙-!챙-! 치지지직...


검을 튕겨내며 계속해서 공격을 흘려보내는 게르트의 움직임을 막아버리듯, 페나르핀이 검에 힘을 주고 그와 검을 맞부딪쳐 교착시켰다.


"...내게 단 한번도 반격하지않는 이유는 무엇이더냐. 너라면 충분히 할수 있을텐데."


격렬하고 빠른 움직임으로 검을 휘두름에도, 페나르핀의 호흡은 흐트러짐 없이 규칙적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공격 한번 한번에 많은 힘을 쏟아부어 막아내는 게르트는 점점 그녀에게 밀리기 시작했다.


"......내가 다치는것이 염려되어 그러는것이냐? 네 공격에 내가 상처입을것이 두려워서? 그래서, 내 공격을 막기만 하는것이냐?"


"....허억....허억....큭...!"


치지지지지직..!!!


게르트의 검은 롱소드와 페나르핀의 요도가 맞부딪치며 불똥이 튀어올랐다.


"....후후후...그런것이구나.....정말 다정하고, 또 상냥하구나..후후후."


페나르핀이 눈을 크게 뜨며, 게르트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큭...크으으윽...!!"


점점 힘에 부치는듯, 밀리기 시작하는 게르트.


"후후후...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힘이 떨어져 가는구나!..하지만 어쩌지? 힘이 더 떨어지면...hlócë 의 목이 떨어질텐데?...후후...후후후..!...의미없는 힘싸움은 그만 두고 비키려무나.....후후후후..."


페나르핀은 광소를 터트리며 게르트를 바라봤다. 그녀의 오른쪽 눈에서 검붉은 마력이 타올랐다.


그 순간,


"...저는 파충류가 아닙니다, 어머님. 자랑스런 용의 피가 흐르는 용인(드래고뉴트)입니다."


슉-!


게르트의 몸을 방패삼고, 휘어진 칼날이 페나르핀의 갑옷이 없는 왼쪽 어깨를 향해 날아들었다.


"뭣이....?!"


인챈트가 걸린 타이펀의 곡검은 판금이 없는 왼쪽 어깨에 정확히 들어갔다.


"윽....!"


페나르핀은 흠칫 놀라며 어깨를 틀어 공격을 가까스로 피했지만, 인챈트가 걸려있는 곡검은 사슬갑옷을 가볍게 찢어내고 그녀의 어깨에 찰과상을 입혔다.


페나르핀은 움찔하며 빠르게 뒤로 물러섰다.


페나르핀은 왼어깨에서부터 느껴지는 찌릿거리고 저리는 통증에 얼굴을 찌푸리며, 타이펀의 곡검을 바라봤다.


".....이 vára hlócë.... 네년의 그 cúna macil(구부러진 검)에 무슨 짓을 한거냐...!"


곡검의 도신에서 은은하게 빛을 발하는 게르트의 마력 사이로, 진득한 액체가 뚝뚝 떨어졌다.


".....hloirë(독)...?! 대체 어느 틈에...!"


"잘 참아줬어, 자기."


타이펀이 게르트의 어깨를 톡톡 치며 수고했다는듯이 말했다.


".....후우."


일격마다 느껴졌던 묵직한 감각과 강한 충격에 게르트의 손이 저려오며 떨리고 있었다.


"....어머님 말야, 맨 처음에 뭐라셨던거야? 엄청 길게 말씀하시던데."


"...'너를 베어죽이겠다, 더러운 파충류'...라고 하셨어."


"하하....살벌하시네."


게르트와 타이펀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페나르핀은 백골이 된 오른팔로 어깨를 부여잡으며 소리쳤다.


"크으으! 으으으윽...! 대체 뭐냐...이것은...!"


"......게르트는 잠시 쉬고있어. 나머진 내게 맡기고."


힘이 빠져 가쁜 숨을 쉬고있는 게르트의 어깨에 손을 얹는 타이펀.


"...조심해."


게르트는 타이펀을 걱정되는 얼굴로 바라보며 어깨에 올린 그녀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걱정 마셔."


두사람은 서로의 손을 꼭 맞잡고는, 이내 손을 놓았다.


타이펀은 페나르핀을 향해 걸어갔다.


"내 질문에 대답해라, hlócë! 내 몸에 무슨 hloirë를 집어넣은게야!"


".....대답해 드릴 의무는 없지않습니까, 어머님?"


타이펀은 싱긋 웃어보이며 게르트의 뒤에서 천천히 걸어나와 자세를 잡았다.


"이....!"


"핫!"


타이펀은 꼬리를 땅에 박고 빠르게 튀어나갔다.


채애앵-!!!!


주변에 크게 울리는 금속이 강하게 맞부딪치는 소리가 나면서, 두사람은 강하게 격돌했다.


"....크으으으.....!!"


검을 쥔 왼손이 점점 저려오는것이 느껴지는 페나르핀.


"......아무래도, 남편처럼 왼손잡이시니, 왼쪽에 찌르기를 넣는게 정답이었나봅니다."


타이펀은 쓴웃음을 지으며, 마비독으로 인해 비등해진 페나르핀과의 힘겨루기를 계속했다.


"네....네년이....!!"


키기기기기기긱...!!!


맞닿은 검에서 귀를 찢는듯한 소음이 계속해서 나고있었다.


"...이 간악한 hloirëa lócë(독사) 같으니..!"


페나르핀은 이를 부득부득 갈며 표독스러운 얼굴로 타이펀을 노려봤다.


그런 페나르핀의 얼굴을 보며, 타이펀은 차갑게 정색하며 그녀에게 말했다.


"....어머님은 제 남편에게 찾아와, 대체 무엇을 하고 싶으셨던겁니까? 대체 무엇을 보여주고 싶으셨던겁니까?"


"다....닥쳐라...!"


"저는 당신에게서 저의 목숨과, 제 남편의 목숨을 지킬겁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빼앗기지 않을겁니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타이펀의 노란 눈이 타오르듯이 빛났다.


비록 뒤틀린 사랑이지만, 그럼에도 그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랑하고있는 그녀를 바라보며 타이펀은 안쓰러움을 느꼈다.


하지만 그녀는 죄를 지었고, 자신은 그녀를 잡기 위해 의뢰를 받은 모험가이다.


"....이대로 쓰러져서, 함께 성채도시로 가시죠..!"


어떤 사정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녀는 죗값을 치러야 한다.


타이펀은 페나르핀을 제압하기 위해, 맞부딪치고있는 검에 전력을 쏟아부었다.


"크으으으으으....!! 고작 hloirë 따위에 당할거라 생각하느냐!!"


페나르핀은 점점 밀리고 있었다. 오래 살아오며 그 능력을 갈고닦아온 검의 달인임에도, 게르트와의 사랑으로 넘쳐흐르는 타이펀의 마력은 페나르핀의 마력을 근소한 차이로 앞서갔다.


점점 힘에 부치며 밀려나는 페나르핀.


"크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 으으으으으으으으!!!!!!!!! 아아아아아아아!!!!!!!!"


타이펀을 씹어먹을듯이 바라보고 있었지만 점점 어깨에서부터 온 몸에 독이 퍼져가며, 그녀의 감각이 무뎌지고 있었다.


타이펀은 칼을 휘릭 돌려 위로 쳐올렸다.


채앵-!


그녀의 손에서 검이 빠져나가, 허공을 가르며 날아올랐고, 이내 나뭇가지에 부딪치며 땅에 떨어졌다.


"윽.....비...빌어먹을.......!"


붉게 물들었던 페나르핀의 오른눈이 다시 원래의 색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페나르핀은 마비독에 힘이 빠진듯,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큭...!"


"....후우우우우."


타이펀은 길게 한숨을 내쉬고, 떨리는 손에 힘을 주었다.


"....타이펀!"


힘이 회복되어 태세를 정비한 게르트가 그녀에게 다가섰다.


그리고는 떨리는 그녀의 손을 잡고 걱정된다는듯 물었다.


"...괜찮아?"


"....어머님, 진짜 무지막지한 분이시네."


"...작전이 잘 먹혀서 다행이군."


"한때는 어찌되나 했는데...잘 먹혀서 다행이야."







-애초부터 두사람이 맡았던 임무는 '정문을 공격해 위병을 살해한 범인의 체포'였다.


-범인을 체포시키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마비독을 이용해 무력화시키는 방법밖에는 없었지만, 만약 검에 미리 마비독을 바르고 그녀와 싸웠다면 페나르핀은 진작에 경계심을 느끼고 도주했을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게르트가 시선을 끌면 그 사이에 타이펀은 재빠르게 인챈트된 자신의 곡검에 강력한 마비독을 발라, 부서진 갑옷에 찔러넣는것이 가장 효과적이었다.


-뒤틀린 집착으로 게르트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무고한 사람을 해쳤다 하더라도, 그럼에도 게르트의 마음 속 페나르핀은 자신을 키워준 어머니였다. 그랬기에, 애초부터 그녀를 처치하는것은 게르트에게는 힘든 일이었다.


-그랬기에, 두사람은 위험한 도박과도 같은 작전을 세운것이었다. 교대로 돌아가며 그녀의 상대를 하면서 주의를 돌리다 완전히 시선이 한명에게로 바뀌었을 때, 타이펀의 독으로 무력화 시키는것. 여기까지가 둘이 세운 작전의 전말이었다.







페나르핀은 마비로 인해 제대로 된 움직이지도 못한 채로 게르트를 불렀다.


"읏...게르트...yonya...내 아들..."


"......저번의 그 곰보다 더 강한 마비독을 만들어냈는데... 아직도 말을 하고 계실줄이야."


타이펀은 페나르핀을 향해 감탄하며 말했다.


"............"


게르트는 잡은 손을 놓고, 주저앉아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어머니'에게 말없이 향했다.


".....아아아...게르트....yonya.."


"....ontaril(어머니)..."


".....왜...왜 그런 hlócë 연을 맺은것이냐...왜..."


온 몸이 저릿거리는 페나르핀의 모습에는 더이상 전투를 하고자 하는 의지는 사라졌다.


단지, 원망스럽다는듯 흐느낄 뿐이었다.


"흐흑...흑...왜....왜...나는....흑...흐흑..."


자신을 버려두고서 세상을 떠돌다 아내를 만나 자기만의 안식을 찾은 게르트에 대한 원망일까.


혹은, 그에게 용서받지 못할 죄를 저지른 자신에 대한 원망일까.


혹은, 사랑으로 키운 아들에게 욕정을 품은 자신의 추악함에 대한 혐오일까.


그것은 오롯이, 그녀만이 알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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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나르핀은 엘프라서 모든 종족들이 쓰는 공용어랑 엘프들이 쓰는 엘프어를 어린 게르트에게 가르쳤음


그래서 두사람은 엘프어로도 회화가 가능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