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림표--




카트리오나의 앞을 막아선것 자들은 꾀죄죄한 난민들 중 일부였다.


루델리아 내부에 형성된 갱에 들어갈 정도로 나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남의것을 뺏는데 주저하지도 않는 자들.


자신보다 약해보인다면 서슴치않고 착취할 준비가 되어있는, 어디에서나 볼수있을 인간들이었다.


카트리오나는 후드를 뒤집어 쓴 채로, 그들을 찬찬히 훑어보며 말했다.


"...흐음. 내 앞을 막아선 이유는 뭘까?"


".....그 가방 안에 있는걸 좀 나눠주면 좋겠는데."


주춤거리며 불안한 눈빛으로 자신의 앞길을 막고있는 난민중에 한명이 말했다.


그녀의 손에 들려있는 몽둥이가 덜덜 떨리고있다.


"....어머나...당신들 지금 도적질을 하려는거야?"


"............"


사실, 그녀의 앞을 막아선 자들 중 도적질을 원하는 인간은 아무도 없다.


정당한 노동의 대가로 돈을 받아 살아가는 정직한 시민들이었지만, 전란의 화염 속에서 제대로 된 일 따위는 존재하지 않을 뿐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분수에 맞지도 않는 도적질을 해보려 하는것이다.


여자의 몸으로는 전쟁에 나갈수도 없기에, 언제나 병사들에게 몸을 팔아왔지만, 그렇게 살아가는것엔 한계가 있었다.


'홀몸으로 돌아다니는 마도사는 평범한 검사보다 약하다'...는, 병사들의 시답잖은 대화를 들었기 때문이다.


"....흠...잘 보니, 여자들 뿐이네?"


"....몸을 파는것도, 일단 뭐라도 먹고 건강해야 하는거지. 우리는 병에 걸려서 누구도 상대해주지않아."


"...그래서, 내 음식을 빼앗는다면 다시 여기서 몸을 팔면서 살수있을거다, 이런거니?"


카트리오나는 어처구니가 없다는듯이 말했다.


"...우리는 아트리아에서 태어나, 아트리아에서 죽을 운명이야. 이곳이 좋든지 싫든지.....이곳에 묶여서 빠져나갈수 없는거지."


"....운명..."


".....자진해서 음식을 준다면, 금방 비켜줄게. 하지만..."


".........흐음."


카트리오나는 평범한 마도사가 아니다.


선천적으로 마법을 사용할수있는 '마안'을 타고난 아울메이지인 그녀가 마법을 사용할 때엔 평범한 마도사가 읊는 '영창'따위는 필요가 없다.


앞길을 막아선 사람이 어지간히 강한 실력자가 아니고서야, 그녀와 제대로 싸우는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선택권따위는 없이 이 전쟁에 휘말려 원치도 않는 피난민이 된 몸이 망가진 여인들을 보자니, 그녀는 힘을 쓸 생각이 들지않았다.


"...결국 '진짜 약자'들은 이렇게 고통받고 있음에도...전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질 않는거구나."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그녀가, 앞을 막아선 난민들을 보며 말했다.


"너희들. 나이는 몇이니?"


고작 해야 셋. 모두 카트리오나보다 어려보이는 얼굴들이었다.


".......그건 왜 묻지?"


"이 보기만 해도 끔찍한 전쟁에 휘말린 너희들을 도와주고 싶거든."


카트리오나는 자신이 나왔던 가게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서 먹을걸 살수만 있으면 되는거잖아. 그렇지?"


그리고는,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조금 남아있던 금화 중 하나를 그녀들에게 던져줬다.


마력으로 만든 손가락으로 튕겨낸 동전이 팅- 소리를 내며 선두의 난민에게 날아갔고, 이내 그것을 받아낸 난민.


"....이건..."


"그걸로 저기 들어가서 음식을 사둬. 좀 바가지가 심하긴 해도 금화 두닢 정도면 그래도 당신들 셋이 먹기에는 충분할거야."


카트리오나는 다시한번 더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주변의 갱단 녀석들은 내가 두려워서 가까이 오는 녀석이 하나없는데도, 너희들은 용기를 내서 내게 다가왔지. 그 상으로 주는거야. 뭐, 순수한 의도는 아니었지만."


그리 말하는 카트리오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언니. 저기 들어가서 빨리 뭐라도 사먹자. 나 배고파..."


무리 중 한명이 선두의 난민에게 말했다.


"나도 배고파...빨리 가자."


받아든 금화를 꼭 쥐는 난민이 카트리오나를 바라봤다.


"....고마워."


"...이제 도적질할 생각은 하지마. 너희는 절대 무사하지 못할거니까 "


"....그럼 어떡해야해?"


"너희는 운명으로 여기 묶여있다고 했었지?"


"...빠져나갈 방법같은건 없으니까."


"아니. 빠져나갈 방법은 언제나 있어."


"...뭐?"


"...궁금하면, 일단 밥 먹고 날 찾아와. 내가 어디있는진 알지? 저쪽 여관으로 쓰던 건물이야."


카트리오나는 날개로 자신이 돌아갈 장소를 가리켜주고선, 그들을 지나쳐 나아갔다.


비가 쏟아지는 루델리아의 거리의 난민 소녀 세명은 지나치는 카트리오나를 바라보다, 받아든 금화를 들고 가게로 들어갔다.
















그 시각, 니콜라이의 방.


".......으으음.....?"


잠에서 깬 니콜라이는 멍한 얼굴로 천장을 바라보다, 주변을 둘러봤다.


"........."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와, 벗어놓은 옷가지와 갑옷들이 눈에 보였다.


".....으음...."


창 밖을 바라봐도 비가 내리고 있어 현재 시간을 알수없었지만, 아침이 아닌것은 분명해보였다.


흐릿한 그의 머릿속에, 잠들기 전에 있었던 기억의 조각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하아...."


분명 카트리오나를 향해 무언가 큰 실수를 하고나서가 기억나질 않는 니콜라이.


"...분명 뭔가를 했던것같은데..."


니콜라이는 자신이 가져온 보드카-같이 생긴 스피리터스-를 바라보며 기억을 찬찬히 되짚어갔다.


"...분명...어제 저녁을 먹고 저걸 한모금 한 다음에....."


니콜라이는 머리를 감싸쥐고 머릿속을 떠도는 조각들을 모아봤다.


"....그러다....어쩌다보니 녀석에게 실수를 해서 사과를 하고있었는데....녀석이 마안을 썼던...것 같은데..."


마안의 힘으로 인해, 어젯밤 있었던 일과 아침에 있었던 일의 기억이 뒤섞인 니콜라이는 마지막으로 기억하는걸 떠올려보며 기억의 조각들을 맞춰보았다.


"......하아...."


하지만, 그 기억들은 모두 자신이 웃옷을 벗고 자고있는 이유로 적절하지 못했다.


하지만, 분명한것은 하나 있었다. 그가 카트리오나에게 무언가 큰 실수를 저지른것이다.


"....혼자 생각해봐야 해결되는건 없지..."


니콜라이는 가볍게 한숨을 쉬고, 침대에서 일어나 장비를 만졌다.


우선 니콜라이는 벗어둔 얇은 더블릿과 흉갑에 무언가 이상이 있는지를 살폈다.


끝없이 계속되는 아트리아의 전쟁 속에서 그가 살아남을수 있었던 이유는 항상 무언가에 홀린듯 매일같이하는 장비점검 덕분이었다.


더블릿이 헤지지는 않았는지, 흉갑이 찌그러지거나 찢어져있지는 않는지를 살펴보는 니콜라이.


".......음."


작게 고개를 끄덕인 니콜라이가 벗어둔 더블릿을 입고 이번엔 침대 옆에 벨트와 함께 벗어둔 검을 바라봤다.


"......."


전쟁에 참여한지 2년이 약간 넘은 어느날, 부대를 지휘하던 장교를 쓰러트리고 빼앗은 검이었다.


검은칠이 된 가죽이 덧대어진 검집에 꽂힌 한손으로 잡아도 조금 여유가 남는 검자루를 쥐고, 살짝 뽑아내는 니콜라이.


하얗고 투명한 도신에 살짝 푸른빛이 감도는 얼음같은 광택이 느껴지는 청아한 도신이었다.


마치 유리같아서 깨질것같지만, 손가락으로 건드려보면 금속의 질감과 쇳소리가 느껴지는 신기한 검이었기에, 주변의 전우들이 탐내하던 물건이기도 했다.


세르게이, 이반, 보리스. 니콜라이의 머릿속에서 마치 개처럼 죽어갔던 가족같은 전우들을 떠올렸다.


마치 창처럼 길고 거대한 화살로 몸을 꿰뚫려 즉사했던 이반, 중대장의 자살돌격에 휩쓸려 시체조차 찾지못했던 보리스, 적군을 죽이기 위해 아군을 방패삼으라는 명령에 불복해 목이 잘렸던 세르게이까지.


니콜라이는, 그들 모두를 기억했다.


"................."


니콜라이는 침울한 얼굴로 검을 손질하며 자신이 탈영을 시작했던 그날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때, 문이 열리며 카트리오나가 들어왔다.


"...어머, 깨어있었구나? 니콜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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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카테린 제 2 보병여단


'칼린카'의 고향, 예카테린의 가장 무용이 뛰어난 부대인 보병으로만 이루어진 부대.


일명 "흑곰부대" 라는 별명으로 유명하다.


니콜라이는 이곳의 3중대 소속이었고, 뛰어난 능력으로 많은 관심을 받고있었다.


흑곰부대에 관한 여러 이야기들 중,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바로 "한번 전우는 영원한 전우"와, "탈영은 곧 죽음."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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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 존나빡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