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중편이라 분량 조절이 안되고 산으로 가는 것 같은 느낌)



유니콘을 쫓는다는 표현이 있다.

원래 의미는 불가능한 것을 유니콘에 빗댄 것이지만, 진짜 유니콘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진짜 유니콘을 쫓는다는 의미도 다시 쓰이게 되었다.

몬붕이는 3년째 유니콘을 쫓고 있었다.

몬붕이는 종종 자신이 유니콘이라는 유니콘을 쫓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의미없었던 몬붕이의 삶은 유니콘을 만난 뒤에야 의미가 생겼다고 할 수 있기에, 몬붕이는 유니콘이 남긴 희미한 실마리를 가슴에 새기고 여정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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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붕이가 기억하는 유니콘은 2주에 한번 몬붕이가 지내던 고아원을 찾아와 봉사활동을 했었다.

우중충한 회색 뿐인 곳에서 몬붕이는 유니콘을 통해 처음으로 눈부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았다.

자기 나름대로 수수하게 입었다는 하얀 원피스는 영롱한 진주처럼 빛났다.

자기를 언니, 누나라고 부르는 무릎까지 오는 아이들을 안고 등에 태우며 환하게 웃는 모습에 공기는 비 온 다음날처럼 생쾌해졌고 색이 바랜 잔디는 에메랄드처럼 빛났으며 항상 구름 낀 하늘은 모처럼만에 웃으며 햇살 한 줄을 내려다주었다.

하지만 어린 동생들에게 유니콘과 놀 기회를 주려고 조금 멀리 떨어진 벤치에 앉아 바라보던 몬붕이의 눈에 유니콘은 순수한 행복이 아니라 무언가로부터 위안을 얻는 것처럼 보였다.

자기도 모르는 새 유니콘과 눈이 마주친 몬붕이는 찰나의 순간동안 눈빛에서 드러난 우수를 보았다.

자기 자신은 통제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고, 지금은 무언가가 없는 곳에서 잠시동안 위안을 얻지만, 고아원 문을 나서면 그 무언가와 다시 마주해야 하는, 고아인 몬붕이는 너무나도 잘 아는 감정이었다.

몬붕이가 그 때 짓고 있던 표정도 유니콘과 같았으리라.

몬붕이는 유니콘과 서로 고개를 끄떡이며, 무언가 말할 필요 없이 통하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저녁 시간이 되었을 때 검은 선글라스를 쓰고 검은 양복을 입고 허리춤에는 무전기처럼 생긴 물체를 -훗날 알아낸 바로는, FMG-10 10mm구경 접이식 기관권총- 찬 아저씨가 유니콘을 이끌고 고아원을 나설 때 몬붕이는 유니콘의 빈자리만큼 가슴이 허전해질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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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콘은 한달에 두번 고아원을 찾아왔다.

몬붕이와 아이들이 특히 기다리던 순간은 매달 네번째 일요일에 아이들을 모아놓고 동화책을 읽어주는 것이었다.

몬붕이가 기억하기로는 그림 형제의 동화, 그 중에서도 순화되지 않은 판본을 자주 읽었다.

유니콘은 순수해보이는 외양과는 걸맞지 않게 어둡거나 무서운 내용은 아이들이 벌벌 떨 정도로 더욱 무섭게 읽어주었다.

신데렐라를 순화된 판본으로만 읽은 사람은 못된 언니들이 유리구두를 억지로 신기 위해 발가락이나 발뒤꿈치를 잘랐다는 묘사를 처음 들어봤을 것이다. 시로헤비가 엄연한 종족으로 존재하는 세상에서 검열되기 마련인 하얀 뱀을 먹는 이야기도 처음 들어보았을 것이다. 고슴도치와 경주한 토끼는 창피해서 도망간 것이 아니라 이겨보겠다고 오기로 덤비다가 탈진해서 죽었다는 이야기도 처음 들어봤을 것이다.

네번째 동화인 꿀을 훔쳐먹은 아이가 끝난 뒤 몬붕이가 왜 순화되지 않은 판본을 읽어주는지 묻자, 유니콘은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이 세상은 그림 형제 동화를 자장가로 들리게 할 정도로 무섭거든. 그런 세상에 조금이라도 빨리 익숙해지게 하는 게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도움이라고 생각했어."

유니콘과 몬붕이는 검은 양복 아저씨가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라미아용 플랫폼에 걸터앉았다.

"몬붕이는 날 봤을 때 무슨 생각을 했니?"

너무나도 눈부셨다고, 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고나니 무언가 슬퍼보였다고 대답했다.

아이들과 노는 게 즐거워보이는 건 맞는데, 혹시 뭔가 걱정하는 게 있는 것 아니냐고.

"그렇구나..... 몬붕이 눈에는 보이는구나."

첫날 보았던 우수어린 웃음을 짓자, 몬붕이는 다짜고짜 유니콘의 손을 잡았다.

걱정되는 게 있으면 말하면 되지 않냐고.

자기가 들어줄테니까 말하고 싶으면 말하라고.

자기가 할 수 있는 게 있으면 뭐든지 할테니까 말해달라고.

깜짝 놀란 유니콘은 기특하다는 표정으로 몬붕이의 손을 엄지손가락으로 어루어만지더니, 곁에 있던 검은 양복 아저씨에게 고개를 끄떡였다.

검은 양복 아저씨는 폼에서 구식 핸드폰처럼 생긴 물체를 꺼내 몬붕이에게 건네주었다.

"만약 아가씨께서 필요로 하신다면, 여기서 연락이 올 겁니다. 그 때까지 잘 간직하고 계십시오."

몬붕이는 통신기를 받으면서도 긴가민가했다. 마치 50년 전 스파이 영화에서나 나올만한 장면이 아닌가.

아직 어린 자신을 가지고 장난치려고 하는 것인지 반신반의했지만, 유니콘과 아저씨는 사뭇 진지했다.

어쩌면 유니콘의 집안은 깔끔한 드레스와 양복을 볼 때 상당히 부잣집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전용 통신기를 만들고 거기로 신호를 보낼 수 있을만큼.

납득한 몬붕이는 통신기를 옷 안에 품고 유니콘과 자리를 나섰다.

둘은 더 이상 이 건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은 채로 한달에 두번씩 정기적으로 서로 얼굴을 보았다.

유니콘은 몬붕이를 볼 때마다 얼굴이 밝아졌지만, 이내 무언가를 기억했는지 다시 몬붕이는 아는 예의 그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을 맞이했다.

마지막 스물 네번째 만남, 열두번째 일요일에서 유니콘은 유학을 가야 하니 떠나지만 그 동안 즐거웠다 말하며 아이들과 눈물젖은 작별을 고했다.

몬붕이에게 자기를 다시 만나고 싶으면 통신기를 간직해달라는 말을 남긴 채, 유니콘은 몬붕이의 삶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렇게 몬붕이의 눈부셨던 한 때는 회색빛 현실의 무게에 밀려 추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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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 밀수꾼들은 몬붕이가 왜 스마트폰이 있는데도 구식 무전기를 허리에 차고 다니는지를 묻고는 했다.

소중한 사람이 준 선물이라는 말에 남자들은 그런가 하고 혀를 찼고, 몬무스들은 왜인지 애틋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질문을 듣고 난 뒤 트럭의 운전석에 누운 채 고아원 시절을 추억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몬붕이가 고아원이 주선해준 첫 일자리를 마다하고 밀수꾼이라는 밥벌이를 택한 이유는 유니콘의 행적을 수소문하기 위해서였다.


유니콘에 대한 정보는 이상하게도 매트릭스에서 찾기 힘들었다.


단순히 이름으로 검색하면 동명이인이 너무 많았고, 유니콘으로 기준을 줄이면 결과가 출력되지 않았다.


몬무스와의 미팅 앱에서도 시도해보았지만, 유니콘은 상대적으로 희귀한 몬무스였기에 역시 별다른 결과를 얻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있는 집안 출신인 유니콘이 그런 미팅 앱을 쓸 이유는 없었다.


기억하는 얼굴을 검색 엔진에 입력해도 다른 종족의 몬무스들만 검색될 뿐, 유니콘은 없었다.


이쯤 되면 누군가 유니콘의 기록을 매트릭스로부터 의도적으로 지웠다고 의심해야 할 정도였다.


절박해진 몬붕이는 고아원으로부터 떠나기 직전 서버실에 몰래 들어가 CCTV 기록 드라이브로부터 유니콘이 있던 영상을 복사하려고 하였다. 


이번에는 무언가 심상치 않았다.


분명 유니콘이 아이들의 배웅을 받으며 떠났던 시간대의 영상에는 고아원의 배경 위에 섞여있는 희미한 노이즈만이 보였다.


지난 스물 네번동안 찾아왔던 시간대에서도 유니콘은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 보이지 않았다.


제일 마지막 영상으로 다시 돌아가 노이즈를 분석하려 지정해보자, 이름을 입력하라는 프롬프트가 떴다. 의도적으로 누군가 유니콘과 아이들의 모습을 영상에서 지우고 그 위에 스크립트를 덮어씌운 것이다.


몬붕이가 혹시나 해서 프롬프트에 자기 이름을 입력하자, 영상의 메타데이터에 숨겨져있던 메세지가 출력되었다.


// 만약 다른 사람과 먼저 맺어지게 되었다면 케이스를 뜯고 빨간 버튼을 세번 눌러줘. 그 게 아니라면, 지금은 만날 수 없지만, 언젠가 다시 볼 날이 올거야.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

 

그 날 이후로 몬붕이는 유니콘과 다시 만날 날을 기다려왔다. 


하지만 프롬프트를 본 것은 어느덧 4년, 트럭을 몰고 유니콘을 직접 찾아다니기 시작한 것은 3년,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합법적 운전사와 밀수꾼 동료들은 대부분 몬무스 아내를 맞았다. 


자신이 찾던 유니콘과 비슷한 나이대인 다른 유니콘들은 이미 결혼을 했거나 결혼식을 올리고 있었다.


아직 버튼을 누를 생각은 없었지만, 외로운 것은 어쩔 수 없다며 통신기를 만지작거리던 그 때.


몬붕이의 심장은 터질듯 뛰기 시작했다.

손에 들고 있던 통신기가 수년간의 침묵을 깨고 진동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