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님이 어디가셨지?"

"그러게요, 분명 방금 전까지 여기 누워계셨는데. 어디로 가신 걸까요?"

"그 바보같은 녀석, 분명 내일이 결전의 날이라고 잠깐 마음을 추스르러 갔을거야."


기사의 말에, 성녀와 대마법사가 안심하는듯 했으나 대마법사가 용사의 침낭에서 휘갈겨 쓴 듯한 쪽지를 발견하며 상황은 반전되었다.


"미안해, 내가 책임지고 모든 걸 끝낼게...? 이게 무슨 소리야?!"

"용사님이 위험해요! 빠, 빨리 마왕성으로 가야해요!"

"이 병신 머저리...! 내가 이럴 줄 알았다니까!"


그렇게 기사, 성녀, 대마법사가 마왕성으로 급히 진격할 무렵, 용사는 마왕과 대치하고 있었다.


"동료들은 어디에 놔두고 혼자 왔느냐, 용사여. 동료들에게 버림이라도 받았느냐?"

"아니, 동료들을 지키기 위해. 동료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서 혼자서 너를 단죄하러왔다."


용사의 말에, 마왕은 크게 광소하며 말했다.


"크하하하하!!! 여가 상당히 얕보인 모양이구나, 고작 너 따위로 나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네놈의 같잖은 배려로, 인간들은 파멸을 맞이할 것이다!"


"글쎄,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법이지. 그리고, 더 이상 동료들에게 용사 파티라는 책임을 지게 만들고 싶지 않아."


수도원에서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성녀님을 파티에 참가시켜, 하지도 않았을 고생을 하게 만들었다.


고작 '용사'인 나의 선택에 의해서.


마탑에서 즐겁게 마법 연구를 하며 순수하게 살아갈 수 있었던 한 아이를 끔찍한 살육의 현장으로 이끌었다.


이 또한... '용사'인 나의 선택에 의해서.


마지막으로, 내 소꿉친구를... 여행의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하게 만들었다. 오직 검에 재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시골에서 소박하고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었던 한 소녀를 철의 여인으로 만들고야 말았다.


'용사'인 내 욕심에 의해서.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통째로 망가뜨렸는데, 도대체 뭐가 용사란 말인가.

가는 길마다 사고가 터지고, 사람들에게 계속 피해를 주는 게 어떻게 용사란 말인가.


더 이상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줄 수는 없다.


"그러니, 최후의 결전이다. 마왕."

"...그 힘은?"


용사의 몸에서, 핏빛과 같은 마력이 들끓기 시작하자, 마왕은 대노하며 용사에게 일갈했다.


"미친 놈! 그 힘을 쓰면 너는 확실히 죽는다! 목숨이 아깝지 않은거냐?"

"이 미천한 목숨으로 세 명분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면, 목숨값으로는 비싼 편아닌가? 하하."


그 말을 끝으로, 마왕과 용사가 격돌하기 시작했다.


...


"제발 늦지 않기를...!"


세 명의 여인이 미친듯이 대전을 향해 달렸다.

주변은 이미 폐허. 오직 마왕이 있을 대전만이 오롯이 굳건했다.


"문의 잠금을 풀어! 언록(unlock)!"


대마법사의 주문으로 문의 잠금이 풀리자, 파티원들은 문을부수고 대전으로 들어갔고, 싸늘하게 죽어있는 마왕과 숨이 끊어지기 직전의 용사를 목격할 수 있었다.


"용사님!"


첫 번째로, 성녀가 용사에게 달려갔다.


"시, 신이시여... 이 자에게 생명의 가호를..."

"소용없어, 시아..."

"어, 어째서...? 왜 회복이 안되는거지? 이상해... 이럴 순 없어..! 무슨 짓을 하신 거예요! 용사님...!"


성녀의 말에, 용사는 나지막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난.. 성녀가 남을 위해 해야하는 기도를, 오직 나에게 빌어달라고 할 정도로 이기적이지 않아. 그렇게 고생을 시켰는데, 이제 남은 시간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면서 편안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용사의 말에, 성녀가 눈을 감고 억지로 울음을 참아냈다.


다음은, 대마법사 용사를 향해 날아왔다.


"용사님...? 도대체 왜 그런 선택을 한거야?"


"네가 대마법사의 칭호를 가졌다해도, 어린아이에게 고통을 감수하고 치솟는 불길을 쏘아내라고 재촉할 정도로 위험하지 않았어. 어린아이에게 살육을 강요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도 아니었고.... 쿨럭..."


용사는 피를 한 차례 게워내고, 다시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어쩌면, 내 욕심 때문에 순수하게 마법을 좋아했던 아이를 억지로 데려와 살육에 물들게 만든 건 아니었을까... 항상 미안했거든."

"...일린은 아이가 아니야. 이미 어엿한 어른이라고."

"그래, 처음 만날 때는 요만했는데... 벌써 이렇게 컸구나? 장하다, 장해. 앞으로는 너가 좋아하는 마법 연구, 마음껏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내 말에, 대마법사는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숨죽여 통곡했다.


마지막으로 다가온 건, 파티의 기사이자 처음부터 여정을 같이한 내 소중한 소꿉친구였다.


"...병신"

"그래"

"머저리"

"응"

"씨발놈"

"미안"


소꿉친구는, 다가와서 눈물만 흘렸다.


"진짜, 못생겼는데 우니까 더 못생겼네..."

"뭐? 너 할말 다했어?"

"하하하... 미안미안, 너무 슬퍼하는 것 같아서 장난 좀 쳐봤어. 웃어, 넌 언제나 웃는 모습이 아름다우니까. 마지막 모모습까지 못 생긴 모습으로 보여줘야겠어?"

"진짜... 멍청이..."


그제야 소꿉친구는 살며시 웃기 시작했고, 그녀는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내게 질문했다.


"있잖아? 대체 왜 그런 선택을 한거야? 내가 언제고 너를 지켜주겠자고 말했잖아!"


소꿉친구의 말에, 나는 점차 껴져가는 생명의 불씨를 느끼면서도 웃으며 답변했다.


"비록 기사라 할지라도, 나의 연인이 결심한, 나를 지키겠다는 결심을 이용할 정도로 나는 쓰레기가 아니니까. 그 동안 지켜준다고 고생 많았어, 엘린."


그러자, 내 소중한 소꿉친구는 울먹이며 말하기 시작했다.


"그건 내 결심을 이용하지 않은게 아니라 내 결심을 물로 만든거라고..이 바보 멍청아... 지킬 사람을 지키지 못해 죽게 만들면, 기사 박탈이라고..."

"다행이네, 앞으로는 그런 흉악한 무기 휘두르지 말고, 평화롭게 농사지으면서 살면 되겠어. 응... 다른 사람한테 휘둘리지는 않겠네."


이젠 정말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네.


"...다들 정말 고마웠어. 그리고 엘린?"

"응?"


"사랑해."


용사는 마지막 말을 끝으로  눈을 감았고, 마왕성에는 소리없는 통곡이 울려퍼졌다.




씨발 폰으로 쓰기 존나 힘드네.

무슨 폰으로 2800자를 썼노... 재밌게 봤으면 개추 '박아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