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언제나처럼 맑았고, 구름 한점 없이 따사로운 태양빛이 비추는 곳이었다.


소설이나 대중매체에서 처럼 따뜻한 태양광을 받으며 여유로운 삶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없겠지만, 따사로운 태양빛을 받으며 잠깐의 여유정도는 챙길 수 있을만큼 화창한 날씨였음에도 도시는 평화로움과 여유라는 단어와 전혀 관련이 없는 장소가 되어 있었다.


어느날 부터, 하늘에 때때로 검은 구멍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검은 구멍에서는 날개달린 악몽들이 기어나와 세상을 파괴하기 시작했고, 정부와 군대는 이상현상을 통제하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투자했음에도 제대로 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도시가 쑥대밭이 되고 나서야 간신히 상처뿐인 승리를 즐겨야 하거나, 그 마저도 못한 체 시민들을 간신히 탈출시키기만 할 뿐.


사람들은 날개달린 악몽이 하늘을 뒤덮기 전에도 행복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 행복하지 않다고 느꼈던 세상이 진정으로 행복했던 시절이었다는것에 동의하고 있었다.




"레티, 출발해야 해요"


".....먼저 가 봐. 조금만 있다가 따라 갈 테니까."


알리나는 나를 잠시 쳐다보다가 먼저 덱으로 가 있겠다는 말을 남기고서 자리를 떠났다.

차가운 금속제질의 감옥이나 마찬가지인 방에서, 유일하게 말을 나눌 수 있는 상대였지만 알리나와 나는 너무나도 많은 차이가 있었다.

그 차이가 나와 알리나 사이에 골을 만들었다는것 또한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그 골을 매울 생각은 없었다.

그녀는 선택은 받았지만 추락을 겪지 못했고. 나는 선택 받았음에도 추락했다.


추락이 주는 경험은 겪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니까.




"전 오퍼레이터에게 알린다. 공역에 차원균열 감지. 2분 내로 갑판으로 집결할것. 반복한다..."




감정이 전혀 담기지 않은 남성의 목소리가 확성기를 통해 기지에 울려퍼진다.

내 추락으로 인해 잃어버린 과거에게 기도를 하고 싶었지만, 오늘은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미안해. 오늘은 못할 것 같네."


나는 함깨 찍은 사진 앞에 놓여있던 브로치를 집어들어 머리에 달고서, 해맑게 웃고있는 사진을 향해 웃었다.


"오늘도 열심히 할게."

울음을 참고서, 나는 덱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스트라이커 003, 영력 생성기 재조정 완료. 비행준비 완료했으니 발사 덱으로 가 봐."


"감사합니다 엘버트."


"아냐, 이번엔 망가트려 먹지 말고 잘 다녀와라. 아니, 망가트려도 되니까 살아만 돌아와."


"절 믿으세요. 이제 17회 출격인데 아직 멀쩡하잖아요?"


알리나는 평소처럼 웃으면서 출격갑판 위의 정비병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교성이 뛰어난 알리나와 다르게 나는 내 정비병과도 대화를 나눠본 기억이 별로 없었다.


"레티시아. 저번에 요청했던 물건 설치했으니 확인해봐."


"확인했습니다."


".....너도 알리나 처럼 말 좀 곱게 해주면 안돼? 정비 요청도 문자로 남기고 그러면 좀 섭한데."


"......"


"괜한 말이지. 내가 미안해."


내 전담 정비병인 "허" 는, 특이한 이름을 가진 동양계 였다.

다들 꺼리는 나를 향해 유일하게 관심을 보이는 직원이었고, 그 결과 기피대상인 내 전담 정비병으로 선정되어 항상 출격전 나를 귀찮게 만들고 있었다.

실력은 나쁘지 않았지만 항상 나를 향한 지나친 관심을 표출했기에 상당히 거북해, 상부에 교체가 가능하냐고 요청한적이 있었지만...


"그 태도부터 고치는게 어떤가. 자네를 챙겨주려고 자발적으로 나선게 허 상병 뿐이기에 상병을 대체할 인력을 구해줄 수 없네. 다른 인력들은 전부 널 담당하기 꺼려하고 있으니까."


라고 직설적인 반려를 당한 이후 그냥 그의 지나친 관심을 무시하기로 정했다.

내가 무슨일을 했었는지 알고 있다면, 그런 관심따위 가지지 않을텐데.

모르니까 저러는것일까, 아니면 알면서 저러는것일까.


별로 궁금하지 않았지만, 가끔식 머릿속에 떠오르곤 했다.


"전 오퍼레이터에게 알린다. 현 상황이 매우 좋지 않음을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작전에서 자네들이 활약해주리라 기대한다."


당연히 상황이 좋지 못하겠지.

저번 격전에서 8명이나 죽었으니까.

3명은 균열에 끌려들어간거지만, 차라리 그녀석들은 죽는게 나을 미래만 남았으니까 죽은거나 마찬가지였다.


"레티시아, 살아돌아와."


"......"


허는 나를 향해 멋적게 웃으면서 엄지를 치켜올렸지만, 나는 그에게 딱히 호응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웃음은 쓸데없이 그 사람과 겹쳐보였고, 어째서인지 이번만큼은 그의 호의가 싫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왠일로 대답을 다 한다냐? 맨날 쌩 까면서."


"......"


"말을 말자. 이만 가 볼테니까 잘 싸워."


허와 다른 정비병들이 떠나고, 발진실에는 네명의 소녀만이 남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군대따위와는 전혀 연이 없어보이는 나이대에, 국적도 각자 다른 소녀들이었지만, 공통점은 분명히 있었다.

나를 비롯한 이 미성년의 소녀들은 자신들을 천사라고 소개한 사기꾼들에게 낚여서는 일반인이 다루지 못하는 이능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군대는 그런 이능력을 가진 소녀들을 징집해 무장을 설치하고 날아다니는 괴물들과의 전쟁에서 싸우는 전쟁병기로 만들었다.



"스트라이커 편대. 발진 준비."




정해진 자리에 서서 발진과정을 준비하자, 등에 설치된 인공의 날개가 전개되기 시작하고, 날개와 다리에 달린 추진기에서는 엔진이 돌아가는 파열음이 점점커지기 시작했다. 사출장치는 다리와 결합되어 우리를 창공으로 날려버릴 준비를 마쳤다.


"이번 전투에서 부디 살아돌아와라. 너희가 마지막 희망이다."


시답잖은 소리. 살아돌아오고 싶다고 생각해서 다 살아돌아왔다면 저번에 8명이 때죽음당하지도 않았겠지.

물론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건 나 뿐이었는지, 나머지 셋은 웃으면서 알겠다고 대답하고 있었다.

발진기는 뜨거운 열기를 방출하기 시작했고, 금속의 날개는 어느세 활짝 펴저, 창공을 향해 날아갈 준비를 끝내고 있었다.


수백번이나 해왔던 일이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작은 기대감이 심장을 채우는 것 같았다.


날개를 꺾인 내게 날아갈 방법을 준 기계날개와의 연결을 느끼면서, 나는 하늘을 향해 내던져졌다.














"여기는 게일 3, 전방에 XFM 12기 발견. 크기는 헤트 등급으로 추정됩니다."

"확인. 케스트럴 2는 하르마탄 4랑 함께 교전을 개시하겠습니다. 게일과 나이트호크는 먼저 이동하세요."


"확인했음. 알리나, 움직이자."


"레티시아씨? 작전중에는 게일이라고 불러주셔야죠?"


"......귀찮아. 그런 병정놀이."


애초에 나라가 우리를 통제하기 위해서 군이라는 신분에 우리를 묶어버리고 그 대신 무기를 쥐여준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그 무기들 덕분에 놈들이랑 싸우는게 훨씬 쉬워지긴 했지만 이런게 없어도 충분하던 시절이 있었다는걸 생각하며 전혀 달갑지않았다.


신세대들은 모르는 이야기겠지만.


"그래도요, 군인 신분이라고요? 아무리 프리랜서 출신이라고 하셔도 그렇지..."


"임무에 집중해."


"이럴때만 군인같다니까요..."



알리나는 한숨을 쉬면서 이야기했다.

높은 사람들은 알리나가 신세대 중에서 제일 경험이 많은 애라서 나랑 합을 맞출수 있을거라면서 같은 방에 집어넣었지만, 솔직히 합은 별로 맞지 않았다.


"하르마탄이랑 케스트럴이 잡졸들을 처리해준다니까, 그 동안 이야기나 좀 하실래요?"


"......"


"저는 여기 오기 전부터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살았어요."


"......"


항상 이렇게 이야기했지만, 그때마다 나는 침묵을 지켰다.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지만, 알리나는 항상 그 기억을 끄집어내고자 했다.


"당신이 그... 뭐더라? 여튼 자경단 활동을 하면서 엄청 유명했었다는걸 사람들은 전부 다 알아요!"


"그거 말하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하르마탄과 케스트럴이 교전하기 시작하면서 폭음이 평화롭던 하늘을 가득 매우기 시작하고, 날개달린 악몽들이 내지르는 괴성이 화음을 내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편대간 통신은 깔끔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그 변신하면 생기는 옷말이에요, 저는 마음에 안드는 드레스 같은거였는데..."


"그만."


알리나는 계속해서 나를 귀찮게 만들고 있었다.

그 시절 언급을 할때마다 별로 좋지 않은 기억만 떠오르는데, 왜 사람들이 그걸 궁금해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럼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요?"


"뭔데. 이것만 대답해줄테니까 듣고 다물어줘. 절대로 그시절관련은 묻지말고."


알리나가 계속 옆에서 떠들어댈때는, 이런식으로 하나를 미끼로 던져주는게 정답이었다.

그럼 더이상 귀찮게 굴지 않았으니까. 최소한 그날 하루만큼은 평온하게 보낼 수 있었다.


"......균열에 끌려들어가는건 무슨 기분이에요?"


알리나는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순간적으로 바로 욕지거리가 튀어나올뻔 했지만, 나는 그녀의 친구였던 아야카가 저번작전때 균열로 끌려들어갔었다는걸 간신히 생각해냈다.

그녀가 던진 개같은 질문의 동기를 겨우 생각해내고, 그녀의 말에 나를 향한 악의가 없다는것을 상기하고 나서야, 그녀를 용서 할 수 있었다.


"별로 말해주고 싶지 않은데."


"알려주시면 안될까요? 균열에 끌려들어갔다가 살아서 나오셨잖아요?"


"......차라리 죽는게 나아. 내가 내가 아니게 되고, 내 몸이 내 것이 아니게 되는 곳이 균열이니까."


그녀의 친구가 지금도 그런 고통을 겪고 있었겠지만, 사실을 숨길 생각은 없었다.

알리나에게는 거짓된 위로보다는 진실을 말해줄 필요가 있었으니까.


"게일, 나이트호크. 3단계 경보 발령이다. 작전에 최대한 주의를 가하도록."


"3단계요? 갑자기? 하르마탄과 케스트럴이..."


"둘은 로스트당했다. 이유를 알 수 없어. 그리고 적 개체중 폴른들이 감지되었다. 교전에 극도의 주의가 필요하다."


무전으로 통제실에서 적당한 때에 새로운 정보를 알려줬다. 알리나랑 더 떠들지 않아도 되는 명분을 만들어준 통제실에게 처음으로 고마움을 느낄 뻔 했지만, 통제실이 들려준 사실이 별로 즐겁지 않은 정보였기에 감사는 나중으로 미루기로 했다.


"균열이야."


"......저희 둘 뿐이네요 나이트호크. 반드시 이기죠."


잠깐의 침묵 끝에 알리나는 나지막히 중얼거린 뒤 비행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눈 앞에, 균열이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차라리 나았다.





"전방에 달레트 등급 대량 감지. 그리고... 폴른으로 추정되는 목표가 하나 감지되었어요 나이트 호크."


"달레트 등급은 내가 모조리 처리할테니 폴른은 니가 처리해."


"대량전투는 당신이 저보다 훨씬 우월하니까요. 제가 폴른을 요격하겠습니다!"


나는 알리나에게 명령을 내리고서 추진력을 올리기 시작했다.

더 빨리, 더멀리, 더 높이. 날개를 꺾이고서 다시한번 날아오를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비행의 속도에 중독되어 버린 것 같았다.


유성과 같이 날아들어, 날아드는 악몽들을 향해 달려들면서, 나는 전투 태세에 들어갔다.

날개는 순간적으로 붉게 물들어 진홍색으로 빛나고, 날개 밑에 설치된 미사일포드에서 대량의 마이크로 미사일들이 사출되기 시작한다.

,붉은 섬광을 일으키며 하늘을 수놓는 미사일들은 하나하나 악몽들에게 꽂히며 폭발을 일으킨다.


"케이이에에에엑!"


날개달린 악몽들은 미사일 파편에 날개를 찢기고, 날개를 잃은것들은 지상을 향해 추락한다.

하지만 여전히 수많은 악몽들이 하늘을 지배하고 있었고, 악몽들은 이빨을 들이밀면서 나를 찢어발기기 위해 날아들었다.


악몽의 아가리에서 역겨운 분출물이 내 날개를 녹여버리기 위해 날아들었다.

정면으로 날아드는 분출물은 분명 직격했다간 내 뼈도 못추리고 사라질 만큼 유독성이었지만, 저정도 따위에게 배리어를 사용할 만큼 여유롭지 않았다.


그리고 저 따위놈에게 비행경로를 변경할 만큼, 내가 우스운 놈도 아니다.


몸을 살짝 기울여 분출물의 비행경로에서 빗겨나간다. 나를 조준한 악몽을 향해, 진정한 악몽을 보여주기 위해 날아간다.

놈은 공포를 느끼고서 내게 분출물을 난사하지만, 단조로운 탄막은 조금씩만 궤도를 수정해도 회피하기에 충분하다.


저따위 놈에게는 무기를 쓰기에도 아깝다.


나는 팔에 장착된 블레이드를 펼쳐 놈을 칼날로 배어갈랐다.

깊숙히 박혀들어간 블레이드는 비행경로를 따라 놈을 갈라버리고, 두동강난 악몽은 그대로 불살라진다.


블레이드는 놈의 채액을 뒤집어썼음에도 멀쩡하게 작동했다.


"돌아가면 고맙다고 인사정도는 해야겠는데."


자신의 동료가 반으로 갈라져버린것을 목격한 악몽들은 특유의 듣기싫은 괴성을 질러대면서 포효했지만, 그들이 내지르는 포효에서 나는 공포와 분노를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그 감각이, 너무나도 기분이 좋았다.


"난 말이야, 니들이 예전부터 제일 좆같았어."


저놈들 따위에게 미사일을 낭비한 방금전의 내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미사일을 전부 소진한 체 텅 비어버린 미사일 포드를 때어버리고, 놈들을 향해 칼날을 치켜들고 날아가기 시작했다.


놈들은 분출물과 발톱으로 나를 죽이려들었지만, 나는 놈들에게 칼날으로 대답했다.

칼날은 놈들의 적색 혈흔과 녹빛 채액으로 얼룩덜룩해졌지만 여전히 살상력을 유지했고, 여전히 놈들을 반으로 갈라버리기에 충분했다.


"캬아아악!"


뒤에서 접근한 녀석이 나를 향해 발톱을 휘둘렀지만, 나는 궤도를 수정해 놈의 바로 뒤로 날아들어 목 뒷덜미를 붙잡았다.


"키에에에에익!"


뒷덜미를 잡힌 녀석은 당황한듯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이 녀석들이 만들어내는 공포가 너무나도 즐거웠지만, 이제 사냥놀이도 슬슬 질리기 시작했다.

뒷덜미를 잡은 녀석의 목에 칼날을 박아넣은 뒤, 그 대로 날아오는 다른 녀석을 향해 검격을 가하듯 집어던지자, 칼날이 박혀들었던 악몽이 갈라지면서 채액을 흩뿌렸다.


흩뿌려진 채액은 나를 향해 날아드는 악몽을 향해 날아들어 악몽을 적셨고, 악몽은 그대로 녹아내리며 추락하기 시작했다.


"이정도로, 나를 죽일 수 있을거라 생각한거냐?"


악몽들은, 더이상 소리를 내지 않았다.

녀석들은 자신들이 이길 수 없는 상대를 앞에 두고서 절망을 느끼고 있었다.


악몽의 이름을 달고서 절망을 느끼다니, 정말 즐거운 일이었다.


"나이트호크. 알레프등급 1기가 추가로 전장에 출몰했다. 극도의 주의를 기울여라."


"확인."


사냥의 마무리단계를 초치는 무전에, 고개를 들어 균열을 바라보자, 균열에서는 하나의 어둠이 익숙한 형상을 갖추면서 존재를 구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알리나는 폴른 하나와 대치한 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알리나, 뭐하는거야."


무전을 넣어도 말 많던 알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알레프 등급이 출몰했다. 빨리 폴른을 처리해야 수적 우세를 유지할 수 있어."


대답은 없었다.


"......게일3. 임무에 집중해."


코드로 알리나를 호출하자, 알리나는 흠칫 놀라면서 나를 내려다 봤다.

그 잠깐의 행동을 놓치지 않은 폴른은, 알리나를 향해 검을 치켜든체 날아가기 시작했다.


"뭐하는거야, 정비병들한테 살아서 돌아가니 뭐니 떠들어대놓고 뒤지고싶어졌어?"


"....레티시아씨?"


엔진의 토크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알리나의 멱살을 부여잡고 자리를 이탈하자, 정신을 놓고있던 알리나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서 나를 놀란듯 쳐다보기 시작했다.


"뭔 귀신이라도 본 눈으로 날 보고있어,"


"지금 레티시아씨를 보면 누구라도 그렇게 이야기할걸요...?"


"농담할 정신머리는 박혀있고 폴른을 죽일 정신은 덱에 놓고 왔어?"


"......."


알리나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위화감에, 고개를 돌려 폴른을 확인하자, 나는 알리나의 침묵에 대한 합당한 이유를 찾아냈다.


일본식 전통복을 개량한듯한 노출도 강한 복장.

검게 물든 마력의 날개와 피로 물든 흑빛 나기나타.

그리고 검은 생머리와 마력으로 물든 보라색 눈동자.


"아우스테르 16."


"오랜만이에요 레티시아씨? 평소에는 항상 이름으로 부르시더니, 이제와서 코드로 부르는걸 보니 섭섭하네요~"

눈 앞에 서 있는 폴른은, 바로 저번 전투에 로스트 당했던 아야카였다.



"타겟의 이름따위 기억하지 않아."


"어머어머, 제가 이제 당신의 사냥감인가요? 그러기엔 당신은 오퍼레이터로서도 퇴물에, 선택받은자로서도 퇴물이고, 하다못해 추락자로서도 퇴물이잖아요?"


"그래? 그 퇴물한테 항상 밀리던 녀석이 남이 쥐여준 힘에 취해서 웃고있는꼬라지를 보고있자니 내가 다 즐거운데. 입고있는 옷을 보니 군인에서 창녀로 전업했나봐?"


"당신은 항상 전투할때만 말이 많아졌죠. 항상 마음에 안들었지만 이제는 그 기분을 알것같아서 당신을 용서하기로 했어요."


"그래?"


"힘이 몸을 타고도는 고양감... 살갖을 찢을때의 쾌감... 그따위 기계고철을 걸치고서는 절대로 느낄 수 없는 기쁨이죠."


"그따위로 정신 나가는 년들이 많으니까 힘을 못쓰게 막고 총을 들려준거야."


"그래요? 당신도 그 '정신 나간 년' 이었어서 잘 알고 있는건가?"


"거기 까지 하렴, 내 귀여운 벌새야,"


형상을 갖추기 위해 꿈틀거리던 어둠은, 이제 완벽한 여인의 형상을 완성해 존재하기 시작했다.

그 익숙한 모습에, 나는 절로 미소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드디어 만났다."


"나도 너를 찾고 있었단다. 내 최고의 걸작품인 때까치가 새장을 벗어나 도망칠줄 어떻게 알았겠니?"


"개같은 씹소리나 항상 달고사는 미친 중년여성밑에서 노래부르기도 지쳐서, 사랑찾아 인생찾아 도망쳤지."


지금에 와서야 이야기 할 수 있겠지만. 나는 저 보라색 피부 아줌마가 항상 마음에 안들었다.

저런년 밑에서 주인님이니 뭐니 하면서 교태를 부렸다고 생각하면 속이 다 뒤집어진다.


"그래? 여전히 눈은 내가 세공해준 아름다운 보랏빛으로 물들어있는걸 보아하니, 아직 내 애완동물로 돌아오기에 충분할 것 같은데, 혹시 이 가련한 주인님을 위해 돌아와주지 않으련?"


개같은 소리였다.

저 씨발련의 명령으로, 나는 내 손으로 그 사람을 죽여야했다.

가장 증오스러운건 그 좆같은 소리를 웃으면서 따른 나였지만, 그 자기파괴적 분노가 저 씨발련을 증오하면 안될 이유가 되진 않았다.


"그건 돌아가서 니 개소리 좋다고 들어주는 정신나간 창녀들한테나 이야기해 이 이세계 창녀년아."


그 말에, 알레프급 악몽, 네메아는 웃음을 거두고서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흥이 식었어. 벌새야? 저 버릇없는 때까치를 찢어주련?"


"구경만 하고 계셔도 됩니다 주인님, 주인님이 명하신다면 그 어떠한것도 해드리겠어요~"


"그래 그래 착하지 내 귀여운 아이야, 나는 그럼 사냥놀이를 지켜보도록 할까?"


아야카, 아우스테르 16은 창인지 검인지도 모를 무기를 나를향해 겨누며 웃음짓기 시작했다.

나는 저 여자가 느끼고 있을 감각을 이해하고 있었다.


명령을 따르면서 얻어지는 상애, 살육에서 느껴지는 기쁨......

그 모든것을 여전히 느끼고 있는 내가 증오스러웠지만, 저녀석을 썰어버렸을때 내가 얻을수 있을 쾌락에 관해서는 저 창녀년을 고마워 할 수 밖에 없었다.


"알리나. 나는 니 친구를 구할 수 없다."


"......당신도 추락했다가 다시 돌아오셨잖아요?"


"한번의 요행이 두번이나 일어나진 않아. 알레프급과 폴른을 눈앞에 두고서 그런 요행을 바라는건 어리석은 일이고."


"......저는 아야카를 공격하지 못해요. 아시잖아요."


"그럼 돌아가. 이제 기지에는 너랑 나만 남았어. 새 사기계약 피해자들이 들어오기 전까지 너라도 살아남아서 기지를 도와."


"그건 싫어요. 당신을 돕고 싶어요."


답답하게 구네. 아야카를 죽일수 없지만 나를 돕고싶기에 떠나지도 않겠다.

모순되는 소리에 진심된 짜증이 통제되지 않고 그대로 올라왔다.


"그따위로 행동할거면 너부터 썰어버릴거야. 난 분명히 저 미친년을 구할 수 없어. 죽여버리거나, 저년의 사냥감이 되거나 둘중 하나야. 그러니 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저년을 죽여버릴거야. 저년에게도 그게 이로울거고."


"알아요. 그러니까 당신을 돕겠어요."


"뭔 씨바..."


"화력은 제가 쌔다고 분명히 이야기 했잖아요?"


알리나는 멋적게 웃었다.


그리고서, 그녀의 손에 들려있는 거대한 블래스터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제가 아야카를 직접 공격하지는 못해도. 당신을 도울수는 있어요......그게 위선이란건 알아도, 최선이란것도 알아요."


"어설프게 굴기는....."


"어쩔수 없어요. 친구인걸요."


"너 때문에 나는 핸디캡 달고 싸우는거야. 내가 죽으면 바로 튀어."


"알겠어요 나이트호크. 아니, 레티시아."


그녀의 눈에 분명히 눈망울이 맺혀 있었지만, 나름대로의 결의가 깃들어있는것 정도는 나도 알아볼 수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응원도, 격려도 할 수 없다.


"다시 임무에 집중해 게일. 방금전처럼 멍때리면 그냥 죽게 내버려둘꺼야."


그렇기에 나는 충고정도를 선택했다.







"그래 그래, 눈물겨운 회의는 끝난거야? 너무 슬퍼서 못봐주겠더라~"


아우스테르 16이 박수를 치면서 조롱조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손모가지 잘리면 박수도 못칠텐데, 여차하면 게일이 원하는대로 살려서 대려가는수가 있다."


"어머, 어떻게? 너네 둘이서 날 이길 수 있다고 진심으로 생각하는거야?"


"팔다리 다잘라서 실험실에 던져주면 최소한 연구원들은 좋아 죽겠네."


나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추진기를 가동한 체 아우스테르에게 날아들기 시작했다.


사냥감은 저녀석이었다.




나는 다시는 사냥감따위가 되지 않을것이었다.









엔진을 최대로 돌리면서, 나는 사냥감을 향해 날아든다.

사냥감이 한때 아군 전력이었건, 알리나랑 가장 친한 인원이었던 간에 그건 내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오른팔에 설치된 블레이드를 다시 한번 꺼내들고, 최속으로 타겟을 향해 달려들어 칼날을 내지르자 아우스테르는 창날을 휘둘러 블레이드를 막아냈다.

물론, 막힐걸 예상한 공격이었다. 가속도를 이용해 그대로 옆으로 빗겨나가 날아간 뒤, 바로 추진력을 반전시켜 급기동으로 목표의 뒤를 잡고 날아간다.


정상적인 날개달린 것들이라면 불가능한 기동이지만, 이능을 이용해 법칙을 바꾸는 자들에게 이정도 급추진은 익숙해진다면 누구에게나 가능한 것이다.

그대로 칼날을 사냥감의 목덜미를 향해 겨누며 날아가지만, 아우스테르는 몸을 뒤집으며 자연스럽게 칼날을 휘둘러 블레이드를 다시한번 막아냈다.


"당신의 그 급기동, 너무 뻔해요."


"그래? 이 허접한 기동에 모의전투에서 15연패 당한 년이 할 말은 아니지."


나는 그대로 다리에 설치된 블레이드를 사출시켜, 검날 째로 아우스테르를 향해 걷어차기를 날렸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순간적으로 당황한 흔적이 보이는 아우스테르였지만, 예전과는 다르게 빠르게 평정심을 찾은 타겟은 뒤로 몸을 젖혀 발차기를 피하고서, 빠르게 거리를 벌리며 뒤로 날아갔다.


"언제나 처럼 추잡하게 싸우네요...... '쉬라이크'"


"그래 그래, 니 주인이 새 이름 지을게 다 떨어져서 너한텐 벌새같은걸 쥐여주더니. 그게 좀 부러운가봐?"


"글쌔요, 짐승같이 싸우는 꼴을 보고있자니 천박하기 그지 없다고 생각합니다?"


"천박한건 니가 입고있는 그 창녀같은 기모노가 천박한거고, 그리고 난 이제 때까치가 아니라 쏙독새니까 그냥 니가 때까치 하던가."


천박한 년이 천박 타령하기는. 나는 더 말할 것도 없이 반대쪽 손에 장착된 블레이드까지 사출한 뒤, 사냥감을 향해 날아들었다.

녀석도 새로 받은 창날을 내게 겨누면서, 나를 향해 미소짓기 시작했다.


저 표정은 남이 쥐여준 힘에 취해서 대가를 두려워하지 않고 설치는, 꼴 보기 싫은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 힘에 취해서 지금 자기가 누굴 상대하고 있었는지도 망각한 것 같은 상황이, 우습기 그지 없었다.


내 공격을 막기 위해 자세를 잡던 아우스테르를 향해 흰 섬광의 격류가 쏟아진다.

아우스테르는 물론 공격을 피하지 못할만큼 둔하지 않았지만, 폭력적인 광채는 너무나도 막대했고, 회피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애너지의 폭풍에 휘말릴 수 밖에 없었다. 사각에서의 갑작스러운 공격에도 회피할 수 있을만큼 녀석의 반응속도가 증강된건 대충 알겠다만.


그 공격을 회피하기 위해서 자세가 무너진 순간, 그 반응속도는 의미가 없었다.

가까스로 폭풍에서 벗어난 아우스테르를 향해 칼날을 뽑아들고서, 목표를 향해 급강하를 하며 사냥감을 내리찍는다.

검날은 녀석의 목을 내리치기 위해 날아들고, 사냥감은 그제서야 맹금의 발톱을 발견하고서 살아남기 위해 몸을 비틀어댄다.


그 발버둥이 통했기에, 일격은 아우스테르의 모가지가 떨어져나가는것이 아닌 복부에 자상을 입는 정도로 끝났다.

나는 검날을 집어넣고 다시한번 거리를 벌렸다. 원하던 결과는 아니었지만 충분히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자만심에 빠져있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드는것은 언제나 즐거웠다.


"......천박하고, 추잡하고, 비천한 싸움법은 예전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그래? 그러던지."


나는 사냥감하고 진솔한 대화를 하는 취미 따위 없었다.


"방금 사격 좋았어 게일."


"어때요, 분명히 도움 된다고 했죠?"


"한참동안 언제쏘나 기다렸다."


"당신이 매번 근접전을 하고있으니 오폭 우려때문에 못쏘는거라고요?"


"앞으로는 그냥 쏴. 알아서 피할테니까."


게일은 거대한 입자포를 적을 향해 조준하면서 웃고 있었다.


"어머 어머, 한치의 망설임도 없구나? 알리나한테도 기분 좋은걸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는데... 이거 힘들겠는걸...?"


"저는 추락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당신이 겪은일에 비통함을 느끼지만, 그렇다고 당신처럼 될 수는 없다고요."


"하고싶지 않다고 해서 안 할 수 있는게 아니라고? 하지만 너는 이번에도 선택받았어. 주인님이 네 육신을 원하시니, 내가 그걸 취하리라."


이성이 고장나고 있는 아우스테르를 보자, 헛웃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균열에 끌려들어가, 정신을 왜곡당하고 애첩이 되어,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웃음을 감출수가 없었다.

과거의 내가, 저렇게 추한 모습이었구나.


저렇게 추한 모습으로, 때까치의 이름을 달고 하늘을 날았구나.


차라리, 볼품없는 쏙독새로 살다가 죽는것이 훨씬 나을것이라는 확신을 다시한번 심어주는 아우스테르에게 나는 처음으로 감사했다.



"실망인걸... 역시 때까치를 넘을 수 있는 아이는 없는걸까?"


"확실히 저년이 날 이길수는 없을 것 같은데. 요즘따라 애완동물 고르는 감각이 떨어졌나봐, 네메아?"


"그러게 말이야, 내 귀여운 때까치? 역시 난 네가 없으면 안되나봐~"


"그런데 어쩌나, 나는 니 애완동물을 나뭇가지에 꽂아버린다음 찢어버릴건데."


나는 저 멀리서 자기 새 애첩이 찢기는것을 관망하고 있는 창관주인에게 더이상 관심을 주지 않았다.

저 자는 애초에 나를 놀려먹기 위해 이 자리에 온것 뿐이다.


굳이 더 강한 추락자들을 대려오는것이 아니라 사람 신경을 긁어대기 위해서 아우스테르를 선정한 것 까지도 그 계획의 일환일 것이다.

저년의 수하로서 그 누구보다 오래 살아왔던 내가, 확실하게 장담 가능하다.


"네마아님......"


"아아... 내 귀여운 벌새야, 나를 실망시켜버렸구나."


"아닙니다... 아니란말입니다.... 저는 아직 지지 않았습니다!"


"때까치라면, 다섯도 한번에 썰어버렸을텐데."


네메아의 탄식 섞인 말에, 아우스테르는 실이 끉어진 인형마냥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간듯 주저앉았다.

애초에, 저 여자에게 "애첩"이란건 그냥 어여쁜 장난감일 뿐이다. 말은 번지르르해도 진심으로 사랑을 주지 않아.


그걸 인지하지 못하고, 진정한 사랑을 찾기 위해 그녀에게 기댄 시점에서 저 미래는 언젠가 다가올 필연이었다.

그저, 네메아가 나를 자극하기 위해 그녀를 선택했고. 그렇기에 그 필연이 빠르게 다가왔을 뿐.


"아니란말이야.... 아니라고!!"


이성을 놓아버리고 실성해버린 아우스테르는 빠르게 날아들어 창날로 목을 치기 위해 접근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의 속도를 능가한, 날개없는 타락자가 낼 수 있는 극한의 속도.


그 속도로, 아우스테르는 내가 아닌 알리나를 노리며 창날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포격을 위해 입자포를 충전하고 있는 알리나였지만, 입자포의 충전보다 아우스테르의 접근이 빠르다는것 정도는 당연히 알 수 있었다.






나는 발에 장착된 추진기를 최대한으로 가속해, 그대로 수직으로 솟구쳤다.

최단 궤도를 설정해, 아우스테르의 참격을 향해 몸을 내던진다.


자신과 알리나 사이에 내가 갑자기 끼어들자, 아우스테르의 갈곳 잃은 분노는 바로 나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고, 창날은 바로 내 옆구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레티시아?!"


창날이 옆구리에 박혀들어가자, 고통이 느껴졌다.

내 몸이 더럽혀진 이후로, 감각이 없어졌다.

왠만한 고통은 내 신경을 자극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정신적인 고통을 제외하고서는 한동안 아픔이란걸 느껴보지 못했었는데.


오랜만에 느껴지는 고통은, 오히려 반가울 지경이었다.


"그래, 속이 좀 시원하냐?"


"네년만 아니라면... 인정받을 수 있어..."


"그래? 그런데 어쩌나."


그녀가 내지른 창날은 분명히 내 옆구리를 내리찍었고, 내 살점에 박혀들어갔다.

하지만 그녀가 간과한것은 이것마저도 내 노림수라는 것이었다.


"너는 예전부터 나한테는 냉정하라고 하루종일 떠들어놓고, 정작 본인이 제일 감정적이란건 모르고 살았었지. 그게 니 패인이다."


변위장을 최대한으로 가동해 근처의 물리법칙을 왜곡한다. 비틀린 공간으로 인하여 창날은 내 몸에서 뽑히지 않았고, 아우스테르의 손에서 창이 떨어지지도 않았다. 분노속에서도, 이성을 잃어버리고도 전황을 파악하는 감각만큼은 남아있을 아야카에게, 나는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나는 그대로 오른손의 블레이드로 그녀의 팔을 잘라냈다.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에서의 일격에, 블레이드는 마력과 타락으로 코팅된 피부를 갈라버리고, 단련된 근육을 절단한다.


이계의 힘에 침식된 팔은, 주인을 잃고 추락하자 형상을 유지하지 못하고 그대로 불타타오르다가 소멸한다.

창을 붙잡고 있던 팔 한쪽이 사라지자, 창날은 힘 없이 내 살점에서 떨어져나와 지상을 향해 추락하기 시작한다.


"흐악....!"


아무리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몸이 되어도, 이정도 공격을 당하면 피드백이 올 수 밖에 없다. 순간적으로 팔이 잘려나간 격통에 당황한 틈을 노려, 나는 다리에 장착된 블레이드를 다시한번 휘둘러 그녀의 한쪽 다리를 잘라낸다. 이어지는 공격과 처음느낄 고통에, 아야카는 버티지 못하고 무력하게 피격을 허용한다.


이제 재미 볼 일은 끝났다.

나는 칼날을 집어넣고 등에 부착된 라이플을 꺼내들어 아야카의 머리를 조준했다.


"잘가라."


고통에 몸부림치며 일그러진 얼굴을 바라보면서, 나는 무감각하게 방아쇠를 당기기 위해 손가락을 움직였다.






"조심해요 레티!"


그 순간, 나와 아야카를 가르는 공역에 거대한 입자광선이 지나갔다.

공기를 태워버리며 지나가는 광선에, 나는 순간적으로 시야를 확보할 수 없게되었고 사냥감이 힘 없이 추락하는것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무슨짓이야?!"


"살려드린거에요!"



살려줬다고?

그녀의 한마디에 바로 상황을 파악한 나는 바로 회피기동을 시작했다.


"네메아 이 썩을년이..."


"내 애완 새를 망가트려버렸으니, 더이상 구경만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내 귀여운 때까치야?"


"첩한테 새 이름 붙히는거, 진짜 이상해보이는거 알지?"


네메아는 자신의 장검을 뽑아들어 내가 방금전 까지 있었던 공역에 선 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방금전의 공격은, 분명 나를 노리기 위해 날아든 네메아의 일격을 저지하기 위해서 였겠지.


"그리고, 저 아이도 내 첩이 되면 참 좋을텐데. 재능이 매우 뛰어나구나~"


"저는 당신같은 것들에게서 세상을 지키기 위해 이 힘을 얻은거에요. 당신의 수족따위, 되지 않아요."


"그럼 그럼~ 내 귀여운 아이들도 전부 그런식으로 힘을 얻었지......네 친구가 찢어버린 아야카도 그렇게 이야기 했었던가?"


"......당신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어요."


"안타깝게도, 균열이 약해지고 있어. 이제 돌아가봐야 할 시간인가봐~ 용서할 필요 없으니 증오를 삼키고 있어주렴? 내가 너를 권속으로 만들때 그 증오가 무너지는걸 꼭 두 눈으로 지켜보고 싶으니까 말이야 ♡"


"저 개소리에 일일히 신경 쓸 필요 없어."


네메아에게 휘둘리려고 하는 알리나를 향해 제지하자, 알리나는 이를 악물고 말을 아끼기 시작했다.

확실히, 이번 균열로 알레프급인 저 창부가 이곳에 나타나는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저 년이 나타나준 덕분에 다른 놈들이 나타날 수 없었으니 이득이라면 이득이었지.


"그래 그래, 집나간 애완동물이 잘 살고 있는가 찾아보러 직접 왔더니, 여전히 잘 살고 있어서 정말 다행이란다. 내가 준 선물에 고통받는걸 보고 있으니 너무 행복해지는거 있지?"


"이제 닥치고 집에 들어가보는게 어때. 아니면 이별선물로 입자포라도 얻어맞고 싶은건가?"


"사양하겠어, 그런 무지막지한 물건을 들고다니다니, 요즘것들은 너무 흉흉한걸~♡"


네메아는 나를 향해 부담되는 진득한 미소를 지으면서,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더는 저 좆같은 얼굴을 안 봐도 된다는 점에서, 너무나 좋은 상황이었다.



















"레티시아?"


"뭔데."


"아야카, 살려줘서 고마워요."


"죽이려 했었어."


"알아요. 그래도 일부러 마지막에 평소에 쓰지도 않던 전투소총으로 바꿔들었잖아요?"


"그게 어때서."


"전투소총따위로 아야카가 죽지 않을거란걸 아시고 하신거 아니에요?"


"......마음대로 생각해."


전투가 끝나고, 추락한 샘플을 포획한 편대는 안전하게 베이스로 복귀할 수 있었다.

순간적으로 로스트 되었던 케스트럴과 하르마탄도 격전 도중 통신마비로 인해 연결이 끉어진것이었을 뿐, 죽지 않고 살아있었기에 결과적으로는 이번 작전에서 사망한 인원은 없었다. 2명이서 이짓거리를 어떻게 해야하나 걱정했었는데, 솔직히 엄청나게 안도했다.


포획당한 아우스테르 16은 비록 팔한짝과 다리한짝이 날아간 상황이었지만 여전히 살아 있었다.

패배의 후유증과 버림받았다는 사실에 정신이 반쯤 나가버린 것 같았지만, 저 여자가 진정으로 강인하다면 극복할 수 있을것이었다.


"것보다, 안 씻으셔도 상관없어요?"


"왜. 냄새나?"


"피비린내 엄청나요..."


"작전 끝나자마자 니가 아야카 걱정된다고 여기에 망부석마냥 박혀있으니 나도 너 걱정되서 같이있어줬더니. 그러기야?"


"오늘따라 왜이리 말도 많고 친절하실까?"


"그러게말이다. 괜히 너한테 참견하고 있는건가?"


"아뇨, 이런건 참견이 아니라 걱정이라고 하는거고, 저는 당신이 저랑 아야카를 걱정해줘서 너무 좋아요."


알리나는 나를 보면서 미소를 지으면서 이야기했다.

괜히 부담스러웠지만, 뭐라고 말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던가 말던가."


내 고민끝에 내린 대답에, 알리나는 그저 웃기만 했다.



"아 맞아, 허 상병이 엄청나게 당신을 걱정했어요."


"......그 사람이?"


"당신 걱정해주는건 저랑 그 사람 뿐일텐데, 좀 관심좀 가져주는게 어때요?"


"......그 사람은 귀찮긴 해도 좋은 사람이야. 볼때마다 옛날생각이 나는게 별로지만."


그 대답에, 알리나는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그래요? 허 상병이 들으면 좋아하겠네요."


그 말에,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문 쪽을 바라보자, 허 상병이 출입문의 창문을 통해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알리나, 대체 언제부터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방금전에 냄새 타령도 아마 허 상병때문에 한 이야기였겠지.



"들어와."


내가 이야기하자, 허 상병은 멋쩍게 웃으면서 방으로 들어왔다.


"그게... 미안, 걱정되서 찾아왔는데 심각해보여서 구경만 좀 하다가 돌아가려 했더니..."


"당신에게 할 말이 있으니까."


허 상병은 내 한마디에, 숨이 멎은것 마냥 긴장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또 그 사람이 겹쳐보였기에 괴로웠지만.


나는 입을 열어 허 상병에게 이야기 했다.



"저는 당신을 볼 때 마다 예전의 인연이 겹쳐보여요."


그 말에, 허 상병의 표정에서 실망감과 미안함이 섞인 감정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침묵이 대기실을 매우고, 알리나는 나를 대체 뭐하는거냐는 표정으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침묵은 내가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말하고 싶은것은 이게 아니었다.

하지만 망설임이, 내 혀를 묶어버린것 처럼 목소리가 형태를 갖추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사실을 고해야만 했다.


"저는 당신과 같은 사람을 과거에도 만났어요."


"......미안해. 내가 괜히 네 아픈기억을..."


"그걸 말하고 싶은게 아니에요. 제말을 들어요."


"...미안."


"미안하다고 말하지 마요."


그의 사과를 듣고싶은건 더더욱 아니었다.


"저는, 당신과 같은 사람에게 호의를 받아왔어요. 지금처럼 군에서 싸우는게 아니라 홀로 싸우던 시절 이야기에요."


그 말에, 허 상병은 침묵했다.

내 과거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허 상병 말고는 없을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반응으로 봐서는 아마 저 남자도 내 과거를 알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그때, 저는 추락해버렸고. 균열의 족속이 되서 악몽을 퍼트리고 다녔어요. 그리고 균열의 소리에 홀려서 그 남자를 제 손으로 죽여버렸고요."


내 고해에, 남자는 침묵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침묵이 듣기 싫다는 의미가 아니라, 경청하겠다는 의미임을 알게된 나는. 용기내서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저는 당신의 호의가 무서워요. 저는 완전히 균열에서 벗어난게 아니에요. 그저 증오심 하나만으로 의지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에요. 그렇기에 저는 언제든지 다시 무너져 추락자가 될지도 몰라요. 그렇게 되었을때, 저에게 호의를 준 사람들이 실망하는게 보고싶지 않아요."


"......미안해. 내가 너한테 부담을."


"사과 하지 말아주세요. 제 의미는 그게 아니니까."


나는 결심을 하고서, 마지막으로 하고싶은 본심을 이야기했다.



"저는 알리나의 호의도, 당신의 호의도. 너무 따뜻해서 잃어버리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언젠간 답할 수 있는 몸이 되어서 당신에게 답하고 싶어요."


응어리는 남았지만, 하고싶은 말은 꺼낼 수 있었다.

아직 그 사람을 잊을수는 없지만,


언젠가 그 사람의 복수를 할 수 있다면.

내가 영원히 자유로워 질 수 있다면.


그때라면, 저 호의에 답을 해도 괜찮지 않을까?








오늘따라 너무 감정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 것 같았다.

마치 과거의 내가 떠오르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알리나도, 허 상병도. 그 미숙함을 질책하지 않았다.

격리실로 돌아와서 사진을 바라본다.


여전히 웃고있는, 그 사람의 사진을 보면서 나는 머리에 단 브로치를 풀어 앞에 놓았다.

선물로 받은 소중한 물건이었지만, 매 출격마다 차고 다녔더니 상처도 입고 금도 간, 낡은 브로치였다.



"돌아왔어."


"오늘은 그 사람에게 사실대로 이야기했어."


알리나는 아야카를 지켜보겠다고 대기실에 남아 있었다.

방에 오직 나만이 남아 있었기에, 소리내서 이야기 할 수 있었다.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방금전에 그렇게 낯부끄러워지는 이야기를 두 사람에게 해놓고도. 나는 여전히 이 사람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도, 평생 이 사람과의 기억이 내 인생의 족쇄처럼 따라다니겠지.


"복수가 끝난다면, 이 모든게 끝난다면."


그렇게 된다면, 나는 그제서야 이 사람을 가슴속에 묻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게 너를 기억에서 지운다는 소리는 아니야."


영원히 기억할 수 밖에 없는 인연이니까.

하지만, 언제까지고 상처속에서 살아갈 수는 없다.


"그러니까, 응원해줬으면 해. 염치없겠지만."



나는, 복잡한 심정으로 사진을 바라보면서 웃었다.

눈에서는 뜨거움이 타고내려 볼을 적셨다.






메카무스메 타락 마법소녀물????

대충 꼴리는거 아무거나 막 붙혀놓은 누더기골렘인데 생각보다 별로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