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성의 거주민 여러분에게 알립니다, 본 행성은 통합 차원관리국(Unified Dimension Bureau)에 의해서 매수되었습니다. ]


열차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중, 갑자기 눈앞의 홀로그램 메시지가 떠오르더니 믿기 힘든 사실을 내게 전달했다.


몰래카메라인가? 그런데 어떻게 내 눈앞의 이런. 엄청 대단한 몰래카메라 기획인가?


머릿속으로 온갖 망상을 이어가던 와중, 다음 메시지가 떠오르자 나는 더는 이걸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라 확신하게 되었다.


[카운트 다운을 시작합니다, 타이머가 종료될 경우 차원 보호막의 시스템이 회수되며 생존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행운을 빕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차원 포인트를 통해 거주민 여러분의 재능 한계를 최대치까지 올리는 것으로 작별입니다.]


[ 카운트 다운 시작 : (30:00) ]


-딸깍. 딸깍.


주변의 웅성거림이 점차 커진다.


나 이외에도 모두가 이 메시지를 보고 있다면, 지금부터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저 장난으로 넘길 수도, 혹은 진지하게 여기고 혼란에 대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분명하게 후자에 속한다.


"비켜!"


최대한 안전한 구석 칸으로 향해야 한다, 다음 역의 도착하기까지 시간이 꽤 남았기 때문.


거대한 혼란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정면으로 맞서는 것보단 몸을 숨기는 게 최선이다.


열차가 도착할 때까지 남은 여분의 시간 동안, 문을 잠글 수 있으며 구석진 공간을 찾아야 한다.


화장실? 아니다.


사람 생각하는건 비슷한 건지, 벌써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잠그는 놈들이 보인다.


조종석으로 간다, 그곳의 문은 안쪽에서 잠가버리면 바깥에서 함부로 열 수 없다.


나는 앞의 걸리적거리는 남자를 몸으로 밀어붙여 떨궈버렸다.


-퍽!


"으악! 미친 뭐 하는.."


나를 제외하고도 몇 승객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조금 늦었지만 자신의 살길을 찾기 위해, 안전한 장소를 찾아 각자 흩어지기 시작했다.



.

.

.


[카운트 다운 : 00 : 00]


-딸깍.


카운트 다운이 끝나자 잔뜩 긴장했던 나는 예상외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자 김이 팍 새버렸다.


"뭐야, 설마... 진짜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고?"


이렇게 되면 아까 사람을 밀쳐버렸는데, 이 부분은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너무 설레발을 친 건가, 혹시 나는 정신병자인가?


-끼이이익.

열차가 역에 도착하기 위해 서서히 속도를 내리는 소리와 함께 . . .

서서히 저 멀리 역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크에에에엑!──"


"키야아아아악!──"


한눈에 봐도 멀쩡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것들.


팔다리가 어딘가 찢겨나가고, 어떤 놈은 상반신만 존재하고 하반신은 어디에 유기하고 왔는지


피와 내장을 질질 끌면서 먹잇감을 찾아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오 맙소사.


차라리 유치장에 잠깐 갇히는 게 낫지... 이건 좀 아니라고 본다.


참고로 조종사 아저씨는 이미 내가 두들겨 패서 쫒아냈다.


슬슬 속도를 낮췄고 멈춰야겠다.


그냥 쭉 밟고 지나가면 되지 않냐고?


여기서 더 나아가면 내 집으로 갈 수가 없다.


아무리 내가 미친놈이라도 부모님은 챙겨야 하지 않겠는가.



물론, 관심에 목매는 사람으로 활약해줄 다른 사람들은 죽든 말든 내 관심사가 아니다.


충분히 소란이 가라앉은 후 나는 나갈 것이다.


그러면 다들 화이팅!



"꺄아아아악! 도..도와줘요!"


허나 거절하겠다.




.

.

.


한바탕 소란이 끝나고 주변이 조용해졌을 즈음,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얼마나 잠든 걸까.


배속에서 사정없이 춤을 추며 영양분을 달라고 하는 공복을 달래야 하는 막중한 임무가 내게 주어졌다.


그러나, 지금 가진 게 딱히 없다.


무엇보다 잠들기 전에 한참 난리가 있었던 만큼, 바깥은 아주... 볼만하지 않을까.


-덜컥.


조용히 문을 열고 나가자, 눈앞의 펼쳐진 핏빛 물결만이 존재할 뿐, 그 외에 다른 건 없었다.


굳이 있다면 누군가의 살점, 내장, 먹다 남은 뼈 정도?


"토할 거 같군 . . . 아, 사실 거짓밀이다."


딱히 누군가 앞에서 지지고 볶던, 뒤져서 살점이 되어도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그런 걸 신경썻다면 맨 앞칸에서 최대한 버티기를 탈 생각을 했겠는가.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살쾡이처럼 걸음을 이어간다.


역 중앙쪽은 완전히 내장으로 파티를 벌이다니, 정말 노는 걸 좋아하는 친구들이구나.


예상대로 더 큰 소란과 먹이를 찾아서 괴물들은 전부 바깥으로 나간 것 일까.


" 집까지 택시 타고 5분이면 . . .  아! 이 상황에서 택시가 날 태워줄리가 없나? "


차량 그 자체가 대단한 권력이라고 볼 수도 있을 정도로 문명과 사회가 개판 5분 전인 상황.


이제 와서 화폐 쪼가리 몇 개 쥐여준다고 낯선 타인, 그것도 성인 남성을 태워줄 리가 없겠지.


우회해서 가는 선택지도 있지만, 빨리 나는 집으로 가고 싶다.


"적당히 아무 차량이나 훔치면 되겠지..."


고민될 땐 간단하게 생각하면 된다.


태워주지 않는다? 훔치면 된다.



"세상에, 이보다 간단할 수가 있을까"

역시 나는 천재가 틀림 없다.


.

.

.


이리저리 내가 머무는 멘션 근처까지 도착했을 즈음, 


문 앞 근처에서 괴물들에게 쫒겨 달아나고 있는 여자가 보인다.


그리고 여자는 그 와중에 날 발견했는지, 이쪽으로 노선을 바꿔 달려오기 시작한다.


"저... 저기요! 도와줘요! 도와주...!"


"오 반갑습니다, 여기 제 선물을 받아주세요!!"


나는 여자가 더 엉겨 붙기 전에 안면을 향해 드롭킥을 날리고 저항을 이어갈 수 있으니 목에다 나이프를 꽂아버렸다.


"켁... 끅..!"


"크흣... 날 위해 괴물들의 시선을 끌어주신다니, 이 희생 잊지 않겠습니다...!"


이 얼마나 감동적인 장면인가.


생면 처음 보는 사람을 위해 희생하는 이름 모를 여성의 희생에 나는 그만 터질듯한 비웃음... 아니 눈물샘을 부여잡고 


내가 머물던 맨션을 향해 올라 나섰다.


-삑. 삐삑.


다행히 올라오는 와중 마주치는 괴물은 없었고, 아무래도 아까 그 괴물들이 이 마지막 이였나보다.


-철컥.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정겨운 내 집으로 귀환했다.


아, 어머니와 아버지는 다행히 무사한 듯 하다.


" . . . . "


"다녀왔어요,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


" . . . . "

" . . . . "


두 분 다 과묵하시기 때문에, 이런 난리에도 입 한번 열지를 않으신다.


괜찮다, 나는 다 이해하니까.




그나저나 이제 앞으로 어떻게 버텨야 할까, 천운이 따라주었는지


집까지 오는 동안 괴물과 정면으로 맞닥뜨린 건 방금을 제외하곤 없었다.


그러나 이내 먹잇감을 찾아 괴물들이 다시 왔던 곳을 되돌아오거나, 추가로 배회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턴 싫어도 만날 수밖에 없겠지.






아포칼립스 오면 빠르게 자살 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