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어째서 한마디도 하지 않고 날 바라만 보는것일까? 네가 그렇게 찾아 해매이던 이 일의 원흉 이잖아?"


더 이상 그녀는 내가 알던 그녀가 아니었다.

웃음으로 나를 반겨주고, 어둠속에서 빛을 이야기하던 그녀는 이곳에 없었다.

그 여자의 거죽을 뒤집어쓴, 하나의 외신(外神), 외신(畏神)이  있을 뿐이었다.


"빛을 향해 나아가라고 이야기 하던 그 여자라서 베어넘기질 못하는걸까? 아니라면 또다른 꿍꿍이가 있는걸까?"


"나는 알고 있었다."


"뭘 알고 있었다는걸까? 내가 사실 네가 알던 그녀가 아니었다는걸? 이 모든 여정이 너를 이곳으로 인도하기 위한 꼭두각시 공연에 불과했다는걸? 아니면 이 거대한 체스판에서 너희는 고작해봐야 폰(Pawn) 이라는것이라도 알고 있었다는것일까?"


인지(人智)의 위에 선 존재는,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나를 잔인하게 조롱하기 시작했다.

성녀(聖女)의 탈을 쓰고 있던 존재는, 허물을 무너트리고서 본래의 형상을 취하기 시작한다.

별을 삼키는 것, 별 보다 오래된 존재는 그야말로 성녀(星女)라는 이름에 걸맞는 존재였다.


꿈틀거리는 광기가, 멈추지 않는 어둠이.

그것은 신이라고 불리기에 부족하지 않다는걸 보여주고 있었다.


" 인간이란건 나약하기 그지 없어서, 진실을 깨닫고 나면 쉽사리 무너지고 마는것을.  단번에 바스라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기특한 장난감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진실을 알고 있다는걸 장담하는 행위는 가소롭기 그지 없구나."


의지가 꺾여져나간다.

타오르는 촛불은 불어오는 바람에 꺼져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나는 마지막 남은 정신을 붙잡고서, 한때의 동료였던것에게 외쳤다.


"나는 알고 있었다."


"무엇을? 미물이여, 무엇을 알고있다고 내게 말하는것인가?"


"네가 성녀를 죽인것이 아니라는것을 알고 있다."


"그런 사실은 별의 먼지와 음항성의 존재보다도 무가치하다. 그것을 고하고 싶었던 것인가?"


"나는 성녀가 네 형상 중 하나였다는것을 알고 있다."


"그 또한 무가치 하다. 수많은 기억과 삶이 소용돌이치는 이형의 기억에, 수많은 것을 기만한 존재에게 단 하나의 이변에 불과하다. 그것이 네가 고하고 싶던 진실인가?"


"나는 네가 했던 모든 격려와 지원에, 거짓이 없었다는것을 알고 있다."


"그 또한 이 현상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내가 이 모든 일에 암약했다는것은 변하지 않으니. 너는 그저 내 안배에 따라 이곳에 왔을 뿐이고, 이곳에서 네 미래는 이미 사라졌다. 더이상 너라는 존재는 성립될 수 없으며, 너를 형성하던 모든 시간과 개념은 지금 순간에도 산산히 부숴지고 있다."


모든 말이 진실이라는것은 자명했다.

신이 나와 함깨 평원을 걷던 시간속에서도, 그녀는 한마디 거짓이 없었으니까.

웃으며 나를 응원하겠다고 말하던 그녀가 진심으로 나를 응원했던것 처럼.


지금의 그녀도 내게 사실만을 고하며 시험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모든 일이 네 소행이 아니라는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곳에 들어온 순간, 그런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다. 너는 내 음모에 놀아난 꼭두각시일 뿐이며, 이곳에서 사라져 그 누구의 기억속에서도 남지 못하리라."




외신은 자신의 껍질을 벗어내며 마지막 까지 남아있던 인간성을 벗어냈다.

그것이 자신의 본질이라는것을 들어내는것 처럼.

자신이 연기했던 모든것이 거짓이요, 기만이라는것을 내게 과시하기 위해서

자신이 흉내내던 인간성이란 것을 지워냈다.


"고대의 존재에게, 시간보다 먼저 존재했던 것에게. 그대는 무엇을 고하고자 하는가?"


이게 마지막이었다.

더이상 말하고자 하는것은 없었다.


"나는 그대가 날 죽음에서 되살렸고. 되살렸으며, 되살렸다는것을 알고있다. 내가 이 자리까지 올 수 있도록 나를 강하게 키워냈음도 알고있다. 애당초 스스로였더라면 이곳까지 오지도 못했을 운명이었던것이, 그대에게 운명을 가로채어졌기에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 인간으로서 신의 앞에 섰다는것에 만족하니, 나를 마음대로 조롱하라."





신은 침묵했고, 여인은 침묵했다.


그것이 입을 열었을때, 그것의 형상은 내가 기억하던 익숙한 여자의 모습이었다.

자애로운 미소와 청초한 수녀복은 비릿한 조소와 꿈틀거리는 검은 드레스로 변해있었지만

여전히 기억속의 그녀와 다른점은 없었다.


"역시, 재미있는 남자."


그녀는 쿡쿡 웃으며 뒤돌아섰다.

그녀의 뒷 모습에서 별과 은하가 내게 보여졌지만, 나는 여전히 제정신인것 같았다.

그녀의 손짓 한번에, 이 흉물스러운 장소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고풍스러운 목제 문이 나타났다.


"따라오세요. 아직은 함깨 해 드릴테니."


문이 열렸고, 다시한번 인세의 지옥이 눈에 들어왔지만, 나는 만족했다.












전사랑 성녀가 모험하는데 사실 성녀가 외신 그 자체였음 좋겠다 싶어서 한번 써봤는데 생각보다 별로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