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암타병이라는 말을 알고있으세요?

만약 당신이 지나가는 아무 사람을 붙잡고 이런 질문을 한다면 아마 백이면 백 그들은 당신을 정신병자 취급하며 도망칠 것이다.


물론 암컷타락하는 병은 실제로 존재하는 병명이 아니고 이와 비슷한 증상의 병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그야 이 병은 내가 어젯밤 완결냈던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병맛 설정이기 때문이다.


그래 그건 잘 알겠는데 갑자기 이런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흥미도 없는 암타병 이야기는 왜 하느냐고?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한손으로 내 멱살을 잡고 들어올리고 있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소녀는 거친 숨을 내쉬며 얼굴을 살짝 붉히고 있었다.

전형적으로 분노한듯한 모습이다.


보다보니 꿀꺽 하고 내 침 넘어가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내가 가벼운 편은 아닌데..


겉으로는 호리호리해 보여도 70KG 정도는 나가는 몸이다.

그러니까 이 소녀는 거의 쌀 한가마니의 무게의 나를 두 손도 아니고 한 손으로 가볍게 그것도 멱살잡기로 들어올리고 있다는 말이다. 그야말로 미친 괴력이다.


아마 저 힘으로 내 면상에 펀치를 날리면 내 코뼈는 그대로 부러지고 전치 4주는 나오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흐르는것 같았다.


어떻하지..? 어떻게 해야 이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벗어날 수 있지?

나는 내가 평생 쓸 머리카락을 다 끌어모아 심각하게 고민해 보았지만 그래도 답은 군대영장을 받은 내 앞날 마냥 어두컴컴하여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

나는 내 인생 최대..는 아니고 두번째로 위험한 위기에 한가지 결심을 하고 얼굴을 굳혔다.


그 결심이란 인생에 다섯번 있던 위기중 무려 세번의 위기를 넘기게 해준 영어 농담이다.

나는 굳은 표정을 최대한 풀며 어색한 미소와 함께 내 인생에 큰 도움이 되었던 되도 않는 영어농담을 씨부려 보았다.


"하하.. 커..컴다운 플리즈..?"


"닥쳐! 당장 치료약이나 내놔!"


그런 내 말에 그녀의 분노가 더욱 자극된 것인지 소리치며 더더욱 높이 내 멱살을 잡아 올렸다.

이런 전혀 통하지 않았다.


그럼 이제 여섯번중에 세번인가? 나는 이 어줍잖은 방법의 승률이 아직도 50%나 된다는 사실에 새삼 굉장함을 느꼈다.

아무튼 내가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흥미도 없는 암타병에 대해 설명한 이유는 지금의 상황에서 기인한다.


내가 소설속 개그 설정으로 썼던 암타병에 진짜 걸리셨다는 분이 지금 내 멱살을 잡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것도 힘이 무슨 황소신지 존나 쌔신분이 말이다.


자 이제 우리는 여기에서 어떻게 빠져나가야 할지 고민해야한다.

물론 방금처럼 장난스러운 방법이 아닌 진지하게 말이다.


치료약? 생각해보면 그녀는 나를 처음 마주쳤을때부터 내게서 치료약이라는것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병에 치료약이 있을리가 없을 뿐더러 설령 있더라도 그것이 꼭 내게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있을터.


그렇게 생각한 나는 그 이유라는게 무엇인지 떠보기 위하여 상대를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 약한 미소를 지으며 내 멱살을 잡고있는 소녀에게 물었다.


"치료약? 왜 저한테서 치료약을 찾으시는거죠?"


"뭐..? 그건 니가 더 잘 알고 있겠지!"


"워워 진정해 주세요 전 정말로 이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일단 진정하시고 이 멱살부터 풀어주시고 천천히 얘기해보는건 어떨까요?"


"..내가 뭘 믿고?"


"만약 풀어주시면 그 치료약이라는걸 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진심이에요"


그런 내 말에서 진심을 느낀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던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약속을 들은 소녀가 허공을 보며 잠시 멍을 때리더니 한숨을 쉬며 내 멱살을 천천히 놓아주었다.


스르륵 하고 천천히 내 발이 땅에 닿는다.

거의 3분만에 바닥에 발이 닿는것 같았다.


휴 아슬아슬 했어.

조금만 더 시간을 끌었다간 분명 무슨 일이 터졌을 것이다.


내 직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남들이야 모르겠지만 나는 내 직감을 꽤나 신용하는 편이다.


그렇게 얻은 잠시간의 아름다운 평화가 끝나고 이내 날 올려다보던 소녀가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이익.. 그래 거짓말은 아닌것 같네 만약 지금 이 상태창도 니가 조종하는게 아니라면 말이야"


"...상태창이요..?"


"어디서 모르는 척이야? 니가 직접 이 세계에서 살아남으라면서 매번 이상한 퀘스트나 주던 그거 말이야!"


그렇게 소리치는 그녀는 진심인것 같았다.

혹시 내가 잘못 걸린것일까.


나는 매우 걱정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 소녀가 어디 아픈곳은 없는지 곳곳을 살펴보는 시늉을 하였다.

그런 내 행동에 소녀의 얼굴이 점점 붉어지더니 이내 홍당무처럼 붉어지며 내게 소리쳤다.


"뭐..뭔데! 왜 그렇게 쳐다보는데!?"


"아니 혹시 어디 아프신 분이신가 싶어서요."


"뭐라는거야?? 내가 확인도 안했을줄 알아!? '무지성 야설에 빙의했다.' 이 소설 니가 쓴거 맞잖아! 작가 '태어난 김에 삼' 이거 너 맞잖아!"


소녀가 수치심에 얼굴을 붉히면서도 자기말은 절대 틀리지 않았다는듯이 말했다.

흥미로웠다. 소설 무지성 야설에 빙의했다. 필명 태어난 김에 삼. 둘다 내 것이 맞았다.


내 소설이 그렇게 인기있던 편은 아니었다.

끽 해봐야 선호작 3000에 최신회차 조회수 300명 정도?


물론 선호작 3000에 최신 회차 조회수가 300이라면 꽤나 연독률이 좋은 편이고 또 모두가 하나하나 소중한 독자님들이긴 하다만 그 성적이 먹고 살기 편할 정도로 돈을 잘 벌 수 있는 성적인건 아니었다.


당장 나 또한 예전에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아니었다면 밥을 쫄쫄 굶으며 살아가고 있었을것이니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 내 소설의 애독자님이신가?

애독자님께서 무슨 코스프레 이벤트라도 준비하신 것일까?


솔직히 말도 안되는 생각이었지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런 상황을 목도했다보니 그런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지금 자세히 보니 내 눈앞의 소녀의 외모는 내 소설속 주인공을 꼭 닮아있었다.


푸른머리에 보라색 눈동자, 160 후반대로 보이는 키에 커다란 크기의 가슴.

지나가다가 마주치면 한번쯤은 뒤돌아 볼 만큼 수려한 외모까지 말이다.


가슴이나 머리카락 눈동자까지는 어느정도 코스프레 용품으로 커버칠 수 있다지만 키나 외모는 어떻게 잘 맞춘지 모르겠다.

나는 약간의 의문과 반쯤의 확신을 담아 물었다.


"혹시 코스프레?"


"제정신?"


"내가 할말인데요"


"잠깐만. 너 진짜 몰라?"


"그렇게 앞뒷말 다 자르고 물어보면 당연히 모르죠?"


"니가 나 빙의시킨거 아니야..?"


"빙의요..? 혹시 코스프레를 정신까지 하신건지.."


"내가 니 연중작에 악플 쓴거보고 니가 날 빙의시킨게 아니라고..?"


"네?"


전혀 모르겠다는듯한 내 대답에 소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마치 이정표를 잃은 여행자 같았다.


그때부터 소녀는 불안한듯 방 안을 이리저리 배회하기 시작했다.

내가 슬금슬금 움직여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게 아마 무의식적인 행동인것 같았다.


나는 그런 소녀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소녀의 행동에서 이상한 기시감을 느꼈다.

이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그 고민은 길지 않았다.

얼마안가 이 장면을 어디서 본 것인지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 기원이란 소설이었다.

지금 저 소녀의 행동은 내 소설인 무지성 야설에 빙의했다 속 주인공의 불안한 심리를 표현하는데 자주 썼던 방법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 완전히 불가능한 가정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설마 정말로 내 눈앞의 이 소녀는 내가 쓰던 소설속 주인공이 맞는것인가.. 하는 생각이 말이다.


하지만 그 생각이 마냥 불가능 하다고 생각하기엔 불가능한것은 지금 내 눈앞에 소녀가 있다는 사실 또한 마찮가지였다.

되짚어 생각해보면 내 방은 애초에 누군가가 들어오거나 나가려면 다른 이의 도움이 필요한 방이라 누군가 마음대로 들어올 수도 없고 나갈 수도 없는 방이었다.


완전히 잊고 있었다.

애초에 밖으로 나가질 않다보니 그런걸 신경쓰지 않은지가 오래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완전히 밀실살인의 트릭과 같았다.

들어올수도 나갈수도 없는 방에서 누군가가 살해당하는 대신 누군가가 들어왔다는 점만 빼면 말이다.


나는 아닐거라 생각하면서도 혹시 라는 생각으로 여전히 방을 빙빙 돌고있는 소녀 붙잡아 물었다.


"혹시.. 아일렌..?"


아일렌은 내 소설속 주인공의 이름이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그 이름을 들은 소녀는 무의식적으로 빙빙돌던 걸음을 멈춘 채 나를 쳐다보았다.


그녀와 눈을 마주친 후 처음으로 든 생각은 내가 글을 쓸 때 텅 빈 눈동자라는 표현을 꽤 많이 사용했었는데 앞으로는 자중해야할것 같다는 점이었다. 진짜 현실에서 마주한 텅 빈 눈동자는 거짓말 하지 않고 존나게 무서웠다.


내가 그런 소녀의 눈동자에 쫄아 움찍 떨었을때 그녀는 내게 말없이 다가왔다.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이내 그 거리가 딱 한 발자국만 내게 더 다가오면 서로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가 되기 직전 그녀가 멈춰섰다.


내 키가 170 후반정도 되었기에 이렇게 되면 그녀가 나를 올려다 볼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런 상황에서 나를 멍하니 올려다 보던 그녀는 눈씨울을 약간 붉히더니 퍽 하고 내 가슴을 때렸다.


"이..이 개새끼야.. 왜..왜 모르는척 한건데.. 난 또 내가 좆된거인줄 알았잖아.. 이 시..시발아아.."


그렇게 말하며 내 가슴어림을 한대 친 그녀는 거의 힘을 빼고 때린것 같았다.

하지만 존나 아팠다.


내 인생에서 제일 아픈 펀치인것 같았다.

애초에 누군가에게 맞아본게 거의 4~5년 전이었으니 기억이 가물가물하기도 했다.


나는 애써 그 고통을 내색하지 않기위해 최대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왜 좆됐다고 생각하셨는데요"


"그걸 지금 몰라서 물어? 겨우 현대로 귀환했다고 생각했는데 깨어나보니 난생 처음보는 집인데다 처음 보는 남자가 침대에 누워있어."


"또 가족들이랑 전화도 안되고 문자도 하나도 되는게 없고 인터넷 사이트는 접속도 안되고 문은 열리지도 않아!"


"너..너 이 개자식아 너 같으면 안 좆됐다고 생각하겠어!?"


소녀는 그렇게 소리치며 직접 보란듯이 자신의 핸드폰을 들어 내 얼굴 앞에 가져다 대었다.

근데 이렇게 가까이 가져다대면 대체 어떻게 보라는건지..


내가 약간 인상을 찌푸리고 고개를 뒤로 빼서 다시 한번 쳐다보자 데이터 끊김 표시가 떠올라 있었다.

하긴 소녀 입장에선 매우 불안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도 이런곳에서 살고싶어서 사는게 아니었다.

나는 반쯤 강제로 이곳에 가두어졌고 예전에 알고있던 친구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이 방에 갇혀서 겨우겨우 죽지 않을 정도의 밥만 먹으면서 인터넷도 사람들도 없이 살았을 것이다.


아마 정말로 그랬다면 금세 미쳐버리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이 드니 지금 생각해보면 대체 예전에 나는 무슨 깡으로 학교의 졸업식을 거부하고 뛰쳐나왔는지 싶다.


오랜만에 드는 옛날 생각에 나는 상념에 빠진채로 말없이 그녀의 휴대폰을 쳐다보았다.

그리 좋은 기억은 아니었고 돌아가고 싶냐고 물어본다면 절대로 돌아가고 싶은 기억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추억이었다.


내가 옛 기억에 빠져있자 그녀는 곧 내 시야에서 휴대폰을 치워 자신의 치마 뒷 주머니에 넣더니 말을 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암타병 초기증상은 슬슬 올라오지 사람은 난생 처음보는 남자밖에 없는데 암타병 해결 퀘스트도 안뜨고."


"겨우겨우 컴퓨터를 찾아서 보니까 아마 니가 내가 빙의한 소설의 작가인것 같아서 일단 깨워서 멱살부터 잡았는데 아니라고 하니까 내가 얼마나 당황했는지 알아?"


"일단 깨워서 멱살부터 잡았다는 부분이 좀 아닌것 같지 않아요..?"


"니가 쓴 소설 내용부터 생각하고 말하지?"


그녀가 살짝 붉어진 눈씨울을 문지르며 하는 말에 나는 내가 썻던 내용을 떠올려 보았다.

오크와 마주치면 범해지고 싶어지는 욕망.. 슬라임과 마주치면 옷을 벗고싶어지는 욕망.. 늑대와 마주치면 수간 당하고 싶어지는 욕망..


하하.. 멱살로 끝난게 용한데 이거..?

쓸때는 개그요소로 썼던 내용이 현실로 옮겨진다니까 그냥 끔찍함 그 자체였다.


내가 웃으며 미안하다고 말 하려 할때 였다.

그녀가 눈꼬리 끝에 맺힌 눈물을 닦아내고서 물었다.


"근데 여기선 어떻게 나가?"


"못나가는데요?"


"...뭐?"


"못나간다구요"


"니가 집 주인인데..?"


"저도 갇힌거에요"


말 그대로다.

내 집이라 생각하고 있긴한데 사실 난 여기 갇혀있는거다.


나가려면 다음달에 내 친구가 연락해오길 기다려야한다.

그렇게 말해주니 그녀가 거의 비명을 지르며 내게 물어왔다.


"그럼 암타병은!?"


"아 맞아 암타병"


암타병은 이성에 관해 일종의 비 정상적인 섹스충동을 느끼게 되는 병이다.

운이 좋으면 그냥 역강간만 하고 끝내겠지만 운이 없다면 본인의 사지절단은 물론 상대의 사지까지 동강내 버릴 수도 있는 무서운 병이다.


하지만 이 또한 해결법이 없었다면 개그 요소로써 쓰이진 않았을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그녀에게 물었다.


"근데 그거 퀘스트 안떠요?"


"어..난 이제까지 니가 퀘스트를 주는줄 알았는데..? 지금 퀘스트는 아까 니가 날 도와준다고 말한 퀘스트 말고는 아무것도 안 떴어."


그녀는 그 말을 끝내고 날 쳐다보았다.

나 또한 그녀를 쳐다보았다.


서로의 시야에서 보이지 않는 식은땀이 흐르는것이 느껴졌다.

암타병의 발병 주기는 2주에 한번씩이다.


...운이 없어서 사지절단 섹스를 당하기 싫다면 2주안에 어떻게든 해결방법을 찾아야했다.


"아잇 시발 어떻해!"


"내가 어떻게 알아요!"


"이 시발 무책임한 퀘락 작가 씹련아!"


"낸들 이렇게 될줄 알고 글을 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