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어째서 아빠를 땅에 묻는 거야...? 그럼 나나랑 못놀아주잖아... 응...? 엄마...?"


"끄흑... 나나야.... 여보.... 흐으으윽....."


어린 소녀가 어머니의 손을 흔들며 물었지만, 어머니는 그저 조용히 아이를 껴안을수밖에 없었다.


어린아이에게 어제까지만 해도 같이 웃으며 놀던 아버지의 죽음이란, 너무나 어렵고 잔인한 것이니까.



킬리우스 백작.


그는 언제나 가난한 이들을 생각하는 참된 귀족이자,

가족을 진심으로 아끼는 따뜻한 남편, 그리고 아버지였으며,

지금은 수많은 사람들을 슬픔에 잠기게 한 시체였다.



그와 그의 가족들은 마차를 타던 도중 갑자기 나타난 오크에게 습격 당했고,

킬리우스 백작은 가족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이 직접 미끼가 되어 오크를 유인했다.


백작은 찢어진 옷조각만 남긴채 실종됐고,

살아남은 가족들은 그를 찾기 위해 근처 일대를 샅샅이 뒤졌지만,


그들이 찾아낼수있던건 온몸의 뼈가 부러진 백작의 시체뿐.


그의 죽음에 많은 이들이 애도를 표하고 장례식에 모였으나 그 누구도 함부로 눈물을 흘리거나 목이 터져라 울지 않았다. 


지금 이 자리에서 울수있는 이는 오직,


"아버지... 이 못난 아들내미가 대신 죽었어야 했는데, 저,저, 저 같은거 때문에.... 으흑으으으...."


"아빠아아.... 일어나... 내, 내 결혼식, 와줘야지.... 얼른, 로베르트 보고... 딸도둑이라고... 욕...하란 말이야... 으으윽...."


"안돼! 아저씨 멈춰요! 그만하라고요! 우리 아빠 땅에 묻지 마요! 그러면 나나랑 못놀아요! 아빤 내일 저랑 놀기로 했다고요!!"


"오오... 아가... 신이시여, 아직 어린 핏덩이도 있는 그 이를 어째서 데려가신 겁니까.... 흐으윽....."


백작의 가족들뿐이니까.


모든 이들이 떠나고 날이 저물고도, 가족들은 한동안 비석을 붙잡고 그가 묻힌 땅을 눈물로 적시며 목놓아 울었다.


살아있을때 잘해주지 못한 후회와,

한심한 자신을 향한 자책과 혐오,

이렇게 떠나보내는 것에 대한 슬픔을 담아,


눈물이 마를때까지 슬픔을 토헤냈다.


한 사내가 자신들을 빤히 쳐다보는지도 모른채.


.

.


늦은 밤, 킬리우스의 무덤 앞.


가족들은 밤새 무덤 앞에 있을 생각이었으나 왠지 모를 졸음과 집사의 요청에 결국 저택으로 돌아갔고, 웬 두건을 뒤집어쓴 사내와 소녀가 무덤 앞으로 다가갔다.



"이제 안전하네. 얼른 나오게나."


"....푸하아아아악!!!"


사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백작의 무덤을 뚫고 시체가, 아니, 시체인'척'했던 존재가 튀어나왔다.


"어우, 시발. 이봐요, 백작 나으리. 관은 분명 오크나무관이라면서요? 근데 시발 미스릴이네? 나 진짜 뒈질뻔 했어!"


"나도 놀랐다네. 우리 가문은 오크나무만 쓰는데, 아무래도 가족들이 신경 썼나봐."


"시신경이 뒤졌는데 신경이라니, 빌어먹을. 그 관 뚫느라 장비 망가지고 손도 다 까졌으니까 추가비용 청구할줄 알아요."


"보스, 여기 옷."


"고맙다 리빙. 관이랑 땅 잘 매꿔라."


"응."


투덜대는 그에게 옷을 건넨 소녀는 익숙하다는듯 시체가 뚫은 무덤으로 다가가 마법으로 흔적을 지우고 구멍을 매꿨다.


구멍과 그 흔적은 감쪽같이 사라졌고 가족들이 어제 장례 치른 시체를 다시 꺼낼 일은 없을테니 앞으로 최소한 몇년은 안들킬 것이다.


"자, 백작나으리. 찌질하고 게으른 아들과 낭비벽이 심한 딸, 하인이랑 불륜물 찍는 아내한테서 벗어난 기분은?"


"...좀 천박한 단어를 써도 되겠는가?"


"그럼요, 이젠 귀족이 아니라 죽은 사람이신데 뭘."


"존나 째지는군. 벌거벗은 창녀들 가슴에 술 뿌리고 춤을 추며 놀고 싶을정도야."


"와... 진짜 천박하네. 크하하하하!!"


두 남자는 한동안 백작의 새 삶을 축복하며 크게 웃고 떠들었다.


.

.


"크로우바, 추가비용 2000골드 더하고 이번에 망가진 장비값, 가족들이 마신 물에 수면약 타고 데려가게 한 집사 인건비, 그리고 내 손가락 치료 비용 빼봐."


"다 합쳐서 16,000골드 썼고, 총 이익은 36,000골드야."


"좋아. 포르말린, 킬리우스 백작님 가짜 신분은 어때?"


"이름 빈 스미스, 나이 40대, 신분 평민, 거주지는 리벨이라는 작은 도시. 이름없는 작은 시골마을 토박이인데 최근에 그곳으로 이사왔다는 설정이야. 백작님이 살던 영지에서 먼 곳이니 백자님 얼굴을 아는 사람은 없을거야."


"우리 백작님 현재 상태는?"


"술집을 차리셨고, 비싼 엘프 창녀를 사서 매일 뜨거운 밤을 보내는중. 근데 지치긴 커녕 팔팔하시고 오히려 여자쪽이 정신을 못차리는거 같아."


"오오 우리 백작님, 그 나이 먹고도 잘 서시나봐? 수어사이드, 시나리오 준비됐지?"


"백작님께서 가족들이 정신차리거나 막내딸이 조금 크면 돌아갈거라고 했지? 시나리오는 이미 다 썼어. 시체는 도플갱어였고, 백작님은 운좋게 오크를 따돌렸지만 폭포로 떨어졌으며, 가까스로 살아남았지만 기억상실. 그리고 여기 이 부분은.."


"워, 워, 거기까지. 나머진 몇년 뒤에 생각하자고. 자, 기타 비용들 빼고 머릿수대로 돈 나누고, 저축도 좀 하면 남는게...에... 1,050골드."


"1,042골드야."


"그래, 암튼 꽤 거금이 남았으니 오늘은... 파티다아아아!!!!!"


""와아아아아아아아!!!!""



파티라는 말에 직원들 모두 소리를 지르며 술잔을 높이 들었다.




몇백년전 마왕이 나타난 이후, 세상에 몇가지 큰 변화가 생겼는데,


지성이 없거나 지능이 매우 낮은 몬스터들에게서 아주, 아주 드물게 인간 수준의 지성을 가진 변종들이 태어나기 시작한 것도 그중 하나다.


물론 지성이 있어 봤자 오히려 머리가 좋은 만큼 훨씬 사악하기에, 대부분 무리를 지어 흉악한 일을 저지르거나 마왕군에 들어갔지만, 난 예외였다.


도플갱어. 타인을 똑같이 따라하는 몬스터.


상대방을 따라한다는 특성 때문에 원래부터 머리가 상당히 좋은 몬스터인데, 나는 변종이라 그런지 태어났을때부터 웬만한 인간보다 훨씬 머리가 좋았다.


그리고 그 좋은 머리로 생각해본 결과, 인간의 삶이 몬스터의 삶보다 훨씬 낫다는걸 깨달았다.


지저분하고 야만적이며 무엇보다 위험이 많은 몬스터의 삶.

깔끔하고 문명을 이루며 편하고 안전한 사람의 삶.


딱 봐도 답이 나오잖아. 인간이 짱이다.


그래서 인간의 마을 근처에서 갓난아기로 변신해 크게 울었고, 날 거둬주신 노부부의 손에 편하게 자랐다.



근데, 어른이 되고 나서 보니 인간의 삶도 그리 좋지는  않더라.


세금 꼬박꼬박 내야 하고, 뼈 빠지게 일해야 하고, 월새 내고 빚도 갚고 일자리도 구해야 하고....


결국 인간의 삶에 지치고 돈에 쪼들리며 삶에 대한 의지 자체를 잃어버렸다.


아. 그냥 이대로 죽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더라.


여기서 죽고,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아....


....


....잠만. 죽어?


그때, 내 천재적인 머리가 아이디어를 쥐어짜냈다.


자살... 새 삶... 그래, 바로 이거야!


그때 처음으로 이 사업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난 바로 창업준비를 했다.


그 뒤로는 마치 이 일이 내 운명인것처럼 척척 풀려갔다.


 자금을 탈탈 털어 작은 아지트를 구하고,


회계 담당 고블린 크로우바,


완벽한 액션배우 오크 바루크,


정보수집및 작업도우미 좀비 포르말린,


시나리오 작가 스켈레톤 수어사이드,


그리고 뒷처리 담당이자 유일한 인간인 리빙.


뒷세계에서 나와 같은 변종들을 만나 회사를 차렸다.


[대신 죽어드립니다]

{대리 자살 전문 회사 리빙 데스}


처음엔 좀 삐걱댔지만 몇년이 지난 지금은 최고의 팀이 되었고,


""건배애애애애!!!!""


비싼 양복을 입고 제일 좋은 와인을 마시며,


으리으리한 아지트에서 큰돈을 만지고 있다.


평민은 보통 1년을 일해야 1000골드 정도를 만지는데,


우린 하루에 수천골드를 번다.


아 이게 인생이지. 이게 섹스지 시발.


창업하기 참 잘했어. 


"우린 돈 벌고, 고객님은 새 삶 살고, 남은 이들은 뼈 저리게 후회하고, 크으~ 얼마나 좋아."


앞으로도 이 삶이 영원하리.


.

.


"에.... 그,그러니까...."


"용사 미리네입니다. 여기, 이건 제가 용사라는 증거품인 성검과 왕실인증서."


"....."


시발. 어젯밤에 밤새 마시고 숙취해소하러 아지트 나오니까 이 미친년, 아니 용사께서 우릴 반겼다.


"현재 파티원들이 너무 좆같아요."


"....네?"


"그 개년들, 나 없으면 고블린 하나 못잡을 쓰레기들이 꼽주고 짜증나게 하고, 그렇다고 용사 때려치면 반역죄니 뭐니 잡혀가고... 그러다가 마침 이 곳에 대한 얘기를 듣고 찾아온겁니다. 할수있죠?"


"....."


용사의 자살.


백작이나 공작이면 몰래도, 이건 스케일이 다르다.


이 사람의 죽음은 수백명이 아니라 여러 국가를 통째로 속여야 하는 일.


절대 안돼. 이거 했다간 분명히 좆된다.


"...저기, 용사님. 이런 말씀 드리기 죄송하지만 아무래도 이번 일은..."


"아, 금액은 충분히 준비했으니 걱정마세요. 이거라면 3대가 평생 놀아도 될정도로.."


"아니, 아무리 그러셔도 이번 일은 도저히..."


"만약 거절하신다면 여길 날릴겁니다."


"....."



자살 대리 전문 회사 리빙 데스.


창업 이후 역대급 난관에 부딫혔다.



용사의 자살(가짜)을 도와줘야 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