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엔 오직 죽음만이 있었다.

 

인구 일만 명이 살던 도시, 오트레인.

 

하지만 지금 살아남은 인구는 1천명도 채

되지 않을 터였다.

 

역병이 돌았다. 하지만 평범한 병은 아니었다.

도시엔 금이 넘쳐났다. 바닥에도 벽에도,

온 사방에 금덩어리가 굴러다녔다.

 

하지만 그걸 줍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웩, 으어억……!”


어느 소년이 바닥에 금을 뱉었다.

작은 돌멩이만한 금덩어리, 하지만 그걸 본

소년이 몸을 오들오들 절규했다.

 

“나, 나도 걸렸어. 나도 걸려버렸어.”

 

모두 그렇게 죽고 말았다.

 

소년이 고개를 돌려 광장을 보았다.

 

분수대에도 금이 쌓여 있었고, 무수히

많은 시체가 산더미 같은 금에 파묻혀 

천천히 썩어가고 있었다.

 

“나도 죽을 거야…….”


언제부터였을까, 그리 오래 되진 않았다.

얼마 전, 누군가가 금을 토했다.

모두가 그 금에 눈이 팔려, 그 사람이

토한 금을 주워 부자가 될 생각에 기뻐했다.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 가지 않았다.

다음 날엔 10명이 토했고, 그 다음 날에는

100명이 토했다. 몇 주가 지났을 무렵에는

금을 토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토하고, 또 토하다가, 끝내 쓰러져 죽었다.

그의 부모님과 하나뿐인 남동생도 그렇게

죽고 말았고, 이번엔 그의 차례였다.

 

“으아아, 아으아아아아……!!”

 

소년이 절규하며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입에선 자꾸만 금이 흘러나왔다.

 

어째서 이렇게 됐을까.

대체 이 도시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아직 12살에 불과한 소년이 이해하기엔

너무나도 끔찍하고, 난해한 사건이었다.

 

“신이시여, 제발……구해주세요…….”


소년이 무의식적으로 교회를 향해 갔다.

그곳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신의 자비와

구원을 바라던 시체들이 쌓여있었다.

 

수녀도 신부도 이미 모두 죽었다.

모두가 금을 토하다가 죽어버렸다.

 

“우윽!”


촤르륵! 소년이 또 금덩어리를 토했다.

점점 양이 많아지고 있다.

 

게다가, 토할수록 몸에 힘이 빠지고 시야가

흐려졌다. 도끼에 맞은 것처럼 머리도 아팠다.

 

“엄마…….”


죽고 싶지 않다.

이런 식으로 죽고 싶지는 않았다.

 

소년이 교회의 문 앞에 주저앉아, 자꾸만

쏟아져 나오는 금덩어리를 틀어막았다.

 

“웩, 으에엑……!”


그러나 막는 건 불가능했다.

죽음이, 금빛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아요.”

 

이토록 간절하게 기도했던 적이 있을까?
소년은, 성인의 조각상을 향해 기어가

그 앞에 엎드려 절했다.

 

“살려주세요, 제발. 우으에에엑……!”

 

틀렸다.

더는 기도할 기운조차 없었다.

 

털썩, 소년이 하늘을 보고 드러 누웠다.

하늘은 회색이었다. 햇볕도 들지 않고,

주위엔 까마귀 우는 소리만 들렸다.

 

죽으면 그 뒤엔 어떻게 되는 걸까.

 

정말, 엄마가 말한 것처럼 천국에 갈까?

거기서 먼저 떠난 가족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천국은 정말 존재하는 것인가?

 

소년이 두 눈을 서서히 감았다.

 

적어도 죽고 나면 고통은 없어지리라―

 

“오호라, 생존자가 아직 있었을 줄이야.”


“어?”

 

누군가가 그의 앞에 서 있었다.

저승사자인가? 어쩌면 그럴지도 몰랐다.

 

그야, 이렇게 새까만 옷을 입고, 얼굴엔

새를 닮은 가면을 쓰고 있으니―

 

“저승사자님?”


“아니. 오히려 반대지.”


양동이 안에서 말하는 것처럼 웅웅 울리는

목소리였다. 

 

“나는 종족 없는 의사회, 이하 MSR에서

파견된 마이스터, 닥터 크로우다.”

 

이게 다 무슨 뜻일까.

소년은 말의 절반도 알아듣지 못하고,

그저 콜록거리며 금덩어리만 토했다.

 

새까만 슈트 위로 금속 재질 외골격이

붙어있었다. 머리엔 새를 닮은 가면을

썼고, 커다란 금속 가방을 들고 있었다.

 

마치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처럼

기이하고도 독특한 모습이었다.

 

“이런, 자기 소개할 때가 아니었지.”


새 가면을 쓴 의사가 가방에서 주사기를

꺼냈다. 이어서 푹! 하고 주사기를 소년의

왼팔 정맥에 꽂았다.

 

“아참, 말을 안 했군. 많이 아플 거다.”


“네?”


동시에,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격통이

그를 덮쳤다.

 

“우웨엑, 웨에엑! 커흑, 꺼어억……!!”

 

달칵, 달그락― 무수히 많은 금덩어리가

소년의 입에서 끝없이 쏟아졌다.

 

구토는 거의 3분이나 이어졌고, 그제야

금덩어리가 거의 나오지 않게 됐다.

 

“좋아, 약이 효과가 있군. 휼륭해.”

 

“허억― 콜록, 콜록!”


구역질이 멈췄다. 

금덩어리도 더는 나오지 않게 됐고,

몸도 아까 전보다 훨씬 가벼워졌다.

 

“이, 이건?”

 

“혹시 환각, 환청, 혹은 뱃속에서 이물감이

느껴지나? 아니면 너도 설명하기 힘든

고통이나 살인 충동 등을 느끼진 않고?”

 

크로우가 수첩과 펜을 꺼내들며 말했다.

 

“괘, 괜찮아요.”


“훌륭하군, 부작용이 없다는 건 참 좋지.”

 

탁! 크로우가 다시 수첩을 접었다.

 

대체 이 사람은 누구일까.

소년이 겨우 용기를 내 입을 열었다.

 

“저, 저기! 당신은 누구신가요?!”


“응? 말했을 텐데, MSR에서 파견된

마이스터 닥터 크로우라고.”

 

“그, 그게 대체 뭔가요?”


“이런, 이런. 이런 무지렁이 같으니라고.”

 

크로우가 혀를 차며 손가락을 까닥였다.

 

“뭐, 일단 여기서 설명할 건 아니지.

따라와라, 임시 본부로 데려가주마.”

 

“네, 아― 네!”


누군지는 모르지만 날 살려줬다.

그것만으로도 이 정체 모를 괴인을 믿을

이유는 충분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도시 정문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탑에 도착했다.

 

그곳은 본래 봉화를 올리는 탑이었는데,

현재는 버려진 상태였다.

 

“우와, 이게 다 뭔가요?”

 

“의료 도구라고만 해두지.”


소년은 처음 보는 온갖 신기한 도구와

설비에 눈동자를 반짝였다.

 

플라스크가 수십 개나 달려있는 화학대,

커다란 냄비나 알코올램프, 도시의 하수

시설을 그린 지도도 벽에 걸려있었다.

 

“너, 이름이 뭐지?”


“저, 저요? 베, 벨이라고 합니다!”


“벨, 베엘― 마음에 안 드는 이름이야.”


크로우가 의자에 털썩 앉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벨, 미다스병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알고 있나?”

 

“미, 미다스병이요?”


“이런, 네가 무지렁이라는 걸 깜빡 했군.”

 

왠지 비꼬는 듯한 말투였지만, 자기 목숨을

구해준 은인에게 화내고 싶진 않았다.

 

“이 도시에 퍼진 병의 이름이다. 미다스병.

내장이 금속으로 변하는 전염병이지.

MSR에서도 1급 위험 역병으로 분류했고.”

 

“내, 내장이 금속으로 변한다고요?”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그렇지.”


세상에 그런 병이 있었던 말인가.

벨은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흔히 금을 토하는 병이라고도 부르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그건 틀렸다.”

 

“틀렸다고요?”


“네가 토한 건 금이 아니니까.”


금이 아니라니, 그럴 리가 없었다.


금을 자주 본 건 아니지만, 그 감촉이나

색감, 심지어 강도마저도 금처럼 무르고

연했다. 사람들도 모두 금이라고 불렀다.

 

“미다스병에 걸린 사람이 토한 것은

금을 닮은 유사한 금속이다. 실제 금과

같은 가치는 없어, 오히려 접촉하면 절대

안 되는 위험물이지.”

 

크로우가 마스크 밑에 달린 필터를 뽑아,

새 필터로 갈며 말했다.

 

“왜냐고? 왜냐하면 네가 병에 걸린 이유가

바로 그 가금(假金)을 만졌기 때문이지.”

 

“설마, 그 금이 전염병의 원인인가요?!”

 

“정답. 100점 만점 중에 80점이다.”

 

크로우가 흐흐 웃었다.

뭐가 웃긴 건지는,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

 

“참 악질이지. 금을 닮은 금속으로 사람을

현혹해, 그걸 만진 사람에게 병을 옮기고

또 다른 사람이 병에 걸리니까.”

 

그랬던 거구나.

벨은 어째서 이 도시가 이 꼴이 됐는지

그제야 깨달았다.

 

“잠깐, 다른 사람들도 구해줘야해요!”


“미안하지만 그건 안 돼.”

 

“네!? 저, 저도 구해주셨잖아요!”


“그건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크로우가 빈 주사기를 보여주며 말했다.

 

“그건 내가 비상용으로 가지고 온 약이었다.

더는 약이 없고, 만들 시간도 재료도 없어.”

 

“그럴 수가―”

 

그럼, 이 도시 사람들은.

벨이 절망하여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럼, 그럼 이 도시는― 사람들은―”


“조만간 다 죽을 테지. 뭐, 미안하게 됐다.”
 
“미안하다는 말로 넘어갈 게 아니잖아요!!”

 

그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사람이, 만 명이나 되는 사람이 죽는 건데.

그런데도 크로우는 너무 느긋해보였다.

 

“착각하고 있군, 소년. 나는 구세주가 아니다.

인간에 불과한 내가, 이미 병이 완전히 퍼진

도시를 구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니까.”

 

크로우의 눈이 렌즈 너머로 보였다.

차갑고, 무감정한 눈빛이었다.

 

“내가 오든 오지 않았든, 이 도시는 병이

퍼지기 시작한 시점에서 끝났다. 오히려

이렇게 될 때까지 살아남은 넌 상당한

행운아라고, 나는 그렇게 판단한다.”

 

행운아라니.

혼자 살아남았는데, 행운아라고?

 

그가 눈물 흘리며 땅을 쳤다.

 

“으, 으으으―!”


“분한가? 슬픈가? 좋은 감정이다. 인간에게

감정이란 필수불가결한 개념이므로, 너는

그것을 소중하게 여겨야 할 것이다.”

 

“왜, 어째서!? 왜 이렇게 된 건가요!?”

 

“운이 나빴다. 대다수의 비극이 그러하듯,

단지 운이 나빴던 것뿐이다.”

 

크로우가 후후, 필터를 시험 했다.

 

“눈물을 그쳐라, 벨. 살아남은 이들이

그러하듯, 단지 살아갈 뿐이니까.”

 

벨이 흘러넘치는 눈물을 삼켰다.

그 말이 옳았다. 어쨌든 살아야만 했다.

 

“병은, 대충 3주 전에 시작됐어요. 누가

금을 토했다는 소문이 돌았거든요.”

 

“3주?……흐음, 흥미로운 대답이로군.”


“네?”


“본래 이렇게 빨리 퍼지는 병은 아니다.

보통 이렇게 되는데 세 달이 넘게 걸리니,

몇 배는 더 빨리 퍼졌다고 봐야겠지.”

 

크로우가 새부리를 톡톡 치며 말했다.

 

“아무래도 조사를 좀 해야겠군. 벨,

너는 어째서 이 병이 퍼졌다고 생각하나?”

 

“그 가금이라는 걸 만져서―”


“이게 나머지 20점이다. 미다스병은 평범한

역병이 아니라, 어떤 존재가 일부러 퍼뜨리는

인공적인 병으로 분류할 수 있다.”

 

누군가가 일부러 퍼뜨렸다.

그 말을 듣자, 벨은 털이 거꾸로 서는 것

같은 격노를 느꼈다.

 

“누구죠, 그게!?”


“미다스. 금빛 괴물이다.”


철컥, 크로우가 가방을 등에 멨다.

그리고 입고 있던 슈트를 점검했다.

 

“슈트 이상 무, 장비도 챙겼고. 벨, 너는

이 도시의 지하 수로에 대해 알고 있나?”

 

“네? 아아, 네. 어릴 적에 종종 내려가서

놀았거든요.”

 

“훌륭하군. 목숨 값을 갚을 기회가 왔다.

날 위해 길잡이가 되어다오, 벨.”

 

“그럼― 그럼 그 괴물을 잡을 수 있나요?”


벨의 질문에, 크로우가 피식 웃었다.

 

“물론이다. 우리 둘이 협력한다면 말이지.”

“그럼 돕겠습니다! 돕게 해주세요!”


“복수심은 훌륭한 감정이지. 정의와 복수엔

항상 분노가 함께하니까.”

 

어쩌면 이번에야말로 죽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괴물을 죽이지 못하면, 또 누군가가

병에 걸려 죽을지도 몰랐다.

 

무엇보다도, 부모님과 동생을 죽은 괴물을

용서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가자, 벨.”


“네!”


그 괴물을 찾아, 반드시 죽이고야 말 테다.

벨이 그리 다짐하며 길을 나섰다.

 

 

 

 

 

“윽, 냄새―”

 

“정확히 무슨 냄새지? 나는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냄새를 맡지 못한다, 벨.”

 

“가스 냄새……시체 냄새랑 섞였어요.”


“과연 그렇군.”


철퍽, 철퍽.

두 사람이 어두컴컴한 수로를 걸어갔다.

 

크로우는 허리춤에 랜턴을 달았고,

벨도 한 손에 랜턴을 들고 있었다.

 

그럼에도 너무나도 어두컴컴해서,

다섯 발자국 앞조차 제대로 보이질 않았다.

 

“윽.”


그때, 벨이 발걸음을 멈췄다.

시체다. 그리고 금덩어리가 또 있었다.

죽어가는 사람들이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금을 만지지 마라, 또 감염되면 이번엔

정말 살릴 방도가 없다.”

 

“네.”


크로우가 시체를 무시하고 앞으로 걸어갔다.

 

‘이렇게 어두컴컴한데 무섭지도 않나?’


“이보시오, 의사양반! 아래쪽에 감각이

전혀 없으니, 이게 어떻게 된 거요!”

 

이젠 노래까지 부르네.

벨이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고 말았다.

 

“아, 안 무서우세요?”


“어둠과 시체, 죽음이? 이런, 이런. 벨!

죽음과 시체는 의사의 친구라고.”

 

크로우가 카하하, 크게 웃었다.

그 소리가 마치 까마귀가 우는 것처럼 들렸다.

 

“아무튼 시체가 있는 걸 보아하니 제대로

가는 것 같군. 좋아, 훌륭해.”

 

“대체 어디가요……?”

 

두 사람이 지하 수로의 중심부를 향했다.

가는 길마다 시체와 금덩어리가 있었고,

쥐와 바퀴벌레가 그걸 파먹는 게 보였다.

 

‘조용하니까 더 무서워…….’

 

“심심하군, 벨. 뭔가 질문해도 좋다.”


크로우가 앞만 보고 걸으며 말했다.

 

“그, 그럼 질문 있습니다!”


“훌륭하군, 질문이 뭔가?”

 

“그, 종족 없는 의사회라는 게 뭔가요?”


흐음, 크로우가 턱을 매만졌다.

그마저도 마치 까마귀가 자기 털을 손보는

것 같다고, 벨은 생각했다.

 

“이름 그대로, 우린 종족을 가리지 않고

의술을 행하는 자들이지. 종족, 성별, 종교,

나이, 신분, 고향, 빈부, 인종, 범죄, 뭐든

상관없이 치료하는 게 우리의 사명이다.”

 

“머, 멋지네요! 진짜 멋있어요!”

 

“그렇지? 좀 더 칭찬해도 좋다, 벨.

훌륭한 일에는 훌륭한 칭찬이 따르는 법이니.”

 

크로우가 또 까마귀처럼 웃었다.

 

“아무튼, 우린 세계 각지에 파견되어 각종

질병에 대응하는 숭고한 임무를 맡고 있다.

참고로 나는 마이스터다, 잊지 말도록.”

 

“마이스터……?”

 

“의사회의 계급이다. 위에서부터 그랜드 마스터,

마이스터, 게젤레, 노비스로 나뉜다. 노비스로

6년, 게젤레로 최소 3년 이상 수련해야만

마이스터 자격을 얻을 수 있지.”

 

벨은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어쨌거나 그게

참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추가로, 나는 무려 최연소 마이스터다.

나의 천재성과 성실함으로 거둔 성과지.

자, 나를 더 칭찬하도록! 벨!”

 

“대단해요! 멋있어요!”


“카하하! 물론이지! 난 멋지고 훌륭하니까!”


뭔가 재미있는 사람이구나.

벨이 큭큭 웃으며 생각했다.

 

“여하튼 나는 이 도시에 뭔가 문제가 생겼단

제보를 듣고 달려왔지. 내가 왔을 때는 이미

답도 없는 상황이었지만.”

 

“……크로우 씨 잘못은 아니에요.”


“물론, 내 잘못은 아니지.”

 

크로우가 옆을 슬쩍 보며 말했다.

 

“하지만, 더 빨리 왔으면 좋았겠지.”

 

“…….”

 

철퍽.

 

그때, 크로우가 멈춰 섰다.

 

“이런, 이런. 아무래도 도착한 모양이군.”


“네?”


“저길 봐라, 어둠 속을 응시하도록.”

 

뭐가 있다는 거지……?

그 순간, 벨이 소스라치게 놀라 뒤로 넘어졌다.

 

“저, 저, 저게 대체 뭔가요!?”


“네 가족의 원수이자, 이 도시에 퍼진

역병의 주범, 황금의 괴물 미다스다.”

 

그것은 정말 산더미처럼 거대했다.

흘러내리는 노란색 살과, 그 주위에 흩어진

인간의 뼈가 보였다.

 

“꾸룩, 꾸루루…….”

 

포옹, 그것이 입에서 뼈를 빼내 바닥에 휙

던졌다. 그리고 또 다른 시체를 잡아 입에

쑤셔넣고선 우걱우걱 씹었다.

 

“저게 미다스인가요?”


“100점 만점이다, 벨. 저 녀석의 배설물이

바로 가금이며, 그 가금에 오염된 병자는

저도 모르게 미다스가 있는 곳으로 가지.

미다스는 습하고 어두운 곳을 좋아해서,

이런 지하 수로에 곧잘 숨어 지내곤 한다.”

 

크로우가 흥분된 목소리로 빠르게 말했다.

 

“실물을 직접 본 건 나도 처음이로군.

해부하고 싶군, 대체 무슨 몸이 어떤

구조이면 금속을 배설할 수 있는 것이지?”

 

“지금 그럴 때가 아닌 것 같은데요…….”

 

“나도 알지만, 그래도 해부하고 싶군.

아아, 아쉬워. 심히 아쉽도다!”

 

“꾸루룩?”


그때, 미다스가 두 사람을 발견했다.

 

“이런, 내가 너무 떠들었나?”


“크로우 씨!”

 

쿠루루룩! 미다스가 입에서 금덩어리를

쏟은 뒤, 그걸 힘껏 던졌다.

 

“오, 이런.”


콰앙! 금덩어리가 두 사람 앞에 떨어졌다.

동시에 크로우가 몸을 돌려, 벨을 감쌌다.

 

“괘, 괜찮으세요!?”


“물론,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철컥, 크로우가 들고 온 가방을 펼쳤다.

그러자 가방이 스스로 조립되며 커다란

전기톱처럼 변했다.

 

“벨, 너는 물러나 있도록.”

 

“하지만!”

 

“괜찮아. 나 혼자서도 아무 문제 없다.

왜냐하면 나는 훌륭한 마이스터니까.”

 

기이이이잉― 톱날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럼, 수술을 집도해보실까!”


“꾸루러러럭―!”

 

콰앙! 또 금덩어리가 날아왔다.

그러나 크로우는 벌써 미다스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빠, 빠르다!”

 

“네 아랫도리에 작별 인사 하도록!”


카아앙! 전기톱이 미다스의 고간에 달린

뭉툭한 살덩어리를 베었다.

 

“꾸루루루룩!?”

 

“이런, 덩치만 크지 순 허풍선이로군!

이래서 비만이 사회의 해악이라는 나의

견해가 옳다고 하는 것 아니겠나!?”

 

크로우가 쉴 새 없이 떠들며 미다스의

다리를 그었다.

 

‘가, 강해. 완전히 압도하고 있잖아!’

 

덩치가 저렇게 큰 괴물을 상대로, 마치

새처럼 날아다니며 농락하고 있었다.

벨은 그 광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런, 이런! 왜 그러지!? 하기야

그렇게 많이 먹었으니 몸이 무겁겠지!

걱정 말도록, 내가 직접 너의 살을

빼줄 테니! 물리적인 방법으로 말이지!”

 

“꾸루루룩!”


그때, 미다스가 입에 손을 쑥 넣었다.

뭔가 위험하다고 생각한 그때.

 

“푸어어억!”


“음, 젠장.”


쾅! 크로우가 낙하하던 금덩어리에 맞아

뒤로 튕겨나갔다.

 

“크로우 씨!”


“너무 설쳤군― 카하하. 훌륭하지 못했어.”

 

이어서, 미다스가 쓰러진 크로우를 잡아채

자신의 입을 향해 가져갔다.

 

“벨, 벨! 너라도 도망치도록! 적어도

내가 먹히는 동안엔 도망칠 수 있겠지!”

 

“네!? 그, 그렇지만!”


“괜찮아! 뭐, 살다 보면 죽을 수도 있지!”

 

그래선 안 된다.

살다보면 죽을 수 있다는 건 맞는 말이지만―

적어도 여기서 이렇게 죽는 건 아니었다.

 

‘뭔가 손을 써야 해!’

 

하지만, 벨에겐 아무것도 없었다.

힘도 지혜도 없고, 다리는 후들후들 떨렸다.

 

“어?”

 

그때, 벨이 옆에 놓여있던 가방을 보았다.

아까 크로우가 바닥에 내려놓은 백팩.

 

‘혹시!’

 

벨이 허겁지겁 가방을 열어, 안에 있던

물건을 모조리 꺼냈다.

 

톱, 망치, 붕대― 그중에서도 이질적인

물건이 하나 들어있었다.

 

“이건 권총인가?”

 

하지만 묘하게 생긴 총이었다.

총구는 너무 크고, 색깔도 빨갛게 칠해

꼭 무슨 장난감처럼 보였다.

 

“제발, 뭐가 됐든 쏠 수 있으면 돼!”


잠깐 시선을 뺏는 정도도 괜찮다.

벨이 권총을 들고 미다스의 머리를 조준했다.

 

“받아라!!”


“꾸룩?”


푸슈우욱―! 조명탄이 붉은 빛을 내뿜으며

미다스를 향해 날아갔다.

 

“꾸루룩! 꾸루루루룩!?”


“오, 훌륭하군! 미다스가 빛을 싫어한다는

습성을 이해하고 응용했나? 아주 훌륭해!

진심으로, 너에게 갈채를 보낸다!”

 

기이잉! 촤아아악! 크로우가 미다스의

빈틈을 노려 손가락을 자르고 빠져나왔다.

 

“전세 역전이로군. 자, 전두엽 절개술이다!”


“꾸루룩!?”


크로우가 팔을 타고 달리다, 힘껏 뛰어올랐다.

키이잉― 전기톱이 미다스의 이마에 꽂혔고―

 

“꾸루루루룩!?”

 

콰차차차차차―!!

 

사방에 핏물이 튀며, 미다스의 이마와

얼굴이 쩌억 갈라졌다.

 

쿵! 미다스가 뒤로 넘어갔다.

 

“해, 해치웠나?”


“이런, 이런. 그 대사는 말하지 말도록.

뭐, 이번엔 해치웠으니 괜찮지만.”

 

푹! 크로우가 전기톱을 뽑았다.

미다스는 죽었다. 의사로서 사망 선고서를

내줄 수 있을 정도로 확실했다.

 

“후우, 이번엔 정말 죽을 뻔했군. 이거야 원,

훌륭하지 못한 추태였어. 100점 만점 중에

0점이다. 그래도 살아남았으니 됐다만.”

 

크로우가 미다스의 시체를 타고 내려왔다.

 

“고맙군, 벨! 아주 훌륭한 처치였다.

아무래도 너한테 의사의 재능이 있는 것

같군, 카하하하!”

 

“이게 의사랑 무슨 상관인데요?”


“그런가? 뭐, 훌륭했으니 상관없지.”

 

푸슉! 그때, 크로우가 가면을 벗었다.

 

“후아, 더워라.”


“어? 어어어?”


“왜? 혹시 내 얼굴에 뭐 묻었나?”

 

벨이 눈을 크게 뜨고 껌뻑거렸다.

 

여자다. 심지어 나이도 어려 보였다.

기껏해야 16, 17살 정도일까, 벨은 자기

눈을 믿지 못하고 비벼댔다.

 

“여, 여, 여자였어요?”


“응. 내가 말 안 했던가?”

 

“안 했어요! 전 당연히 남자라고 생각했죠!”

“카하하, 그래? 칭찬으로 받아주지!”


정말로, 까마귀 같았다.

 

새까만 머리카락과 눈동자, 눈 밑에는

커다란 점이 있었다. 헤헤 웃는 얼굴은

아직 어린 벨조차 첫눈에 반해버리게

만들 정도로 어여뻤다.

 

“아무튼 여긴 해결됐는데, 문제가 남았군.”


“무슨 문제요?”


“너, 아마 죽을 거야.”


―뭐?

벨이 입을 쩍 벌렸다.

 

“미다스병에 걸린 사람은 생사 불문하고

불에 태우거든. 전염성이 너무 강해서,

이 도시도 싹 태워버릴 거다. 치료했다지만

너도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태우겠지.”

 

그럴 수가.

벨이 두려움과 절망에 또 주저앉았다.

 

“저, 저, 저 죽는 건가요?”


“물론, 내가 그리 두지 않을 거지만.”


크로우가 피식 웃으며 앉았다.

 

“네가 마음에 들었다, 벨. 마침 나는

조수를 구하고 있었고, 너는 내 조수로

일하기 적당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니, 내 조수로 들어오는 건

어떠냐? 물론 거절하면 죽음뿐이지만.”

 

억지다. 완전히 억지였다.

하지만 벨에겐 이제 갈 곳이 없었다.

 

고향인 이곳은 곧 불에 타 사라질 것이다.

부모님도 동생도 이미 죽어버렸다.

그에겐 친척도, 돌봐줄 사람도 없었다.

 

“따라가면, 저도 의사가 되는 건가요?”

 

“목숨 값이라고 생각하고 배우면 되는 거지.

뭘, 내가 스승이니 게젤레가 되는 것도

순식간일 거다. 어때? 재미있지 않겠어?”

 

그녀가 벨에게 손을 내밀었다.

 

“―알겠어요. 저도, 의사가 될게요.”


“훌륭하군! 멋진 대답이다, 벨!”


“하지만, 제가 살기 위해서 하는 건 아니에요.”

 

또 어디선가 비극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역병과, 이런 괴물들에 의해서.

 

“또 저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저도 크로우 씨처럼 되고 싶어요.”

 

“그래? 흐음, 그렇군. 그런가.”


크로우가 큭큭 웃었다.

 

“동경은 멋진 감정이지. 누구에게나

동경하는 건 하나쯤 있는 법이니까.

좋아, 벨. 앞으로 열심히 굴려주마.”

 

“네!”


“카하하, 훌륭한 제자로 키워주마!

단단히 각오하라고, 벨!”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이리하여 두 사람은 스승과 제자가 되었고.

 

―벨은, 처음으로 사랑을 하게 되었다.

 

 

 

 




 

 





스팀펑크 판타지 오네쇼타 순애물 좋아...

소재는 매일 하나씩 쓰는데 매일 같이 소재가 떠올라...

그러니까 나 대신 아무나 연재해서 2화 좀 가져오십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