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결혼하자고 조르던 옆집 여자아이에게 했던 

약속이었다.


그 아이의 아버지는 그녀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 마족에게 당해 돌아가셨고, 생계를 책임지게 되신 어머니는 너무나 바쁘게 일할 수밖에 없었기에


늘 혼자 있던 그녀를 어릴 때부터 챙겨주었던 나를 진짜 가족처럼 여기는 듯 점점 더 스스럼없이 다가왔었다.


하지만 그 정도가 심해지며 나와 관련된 일이라면 사사건건 귀찮게 굴기 시작했다.

내 옆에서 전혀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고집스런 꼬마 녀석에게 벗어나기 위한 스쳐가는 농담과 같은 말이었지


진지한 서로의 미래를 약속하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4년전에 마을을 떠났었던 그녀가

어느새 훌쩍 자라나 버린 모습이 되어 돌아와선

그 약속을 입에서 꺼내었다.


“오빠가, 마왕이 사라지고 평화가 찾아오면 저랑 결혼하기로 약속 했잖아요오~!!”


기억 속의 어린 소녀에 비해 겉모습은 몰라볼 정도로 성장을 거쳤지만, 여전히 앳된 얼굴과  여리여리한 목소리를 간직하고 있던 그녀는 수줍은 듯 나에게 무언가를 조심스레 내밀었다.


“이건...”


나한테는 여전히 어린 동생처럼만 느껴지는 

그녀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분명 마왕의 머리었다.


...  


저녀석이 용사가 되었다는 소식은 이 마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지겹도록 들었겠지만,


용사로서 위대한 여정을 써 내려간다던 그녀가

말끔하게 잘린 마왕 모가지를 들고 와선

10년 전 약속을 들먹이며 나에게 결혼요구를

할 것이라곤 누구도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오빠, 우리 결혼식은 언제로 할까요? 저는 조금 조촐하게 하더라도 최대한 빠른 시일안에...”


정말로 해맑은 아이와 같은 미소를 지으며 혼자서 주절거리는 그녀를 황급히 저지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잠깐만! 미안하지만 결혼 같은 건 할 수 없어... 그게 말이지...”


순간 설레임 가득한 소녀의 눈망울 같았던

그녀의 눈 안에는 살기가 가득 들어찼다. 


마치 갑작스레 마법이라도 걸린 것처럼

내 몸이 굳어버리는 듯한 중압감이 몰려왔다.


그와 상반되듯 빠르게 요동치는

나의 머릿속 세포들이 한마디를 전해온다.


[죽는다.]


나도 곧, 저 손에 들려있는 

마왕처럼 될 것이다.


“오빠, 우리가 함.께. 했던 약.속. 

지키실 거죠?”


조금 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딱딱한 말투와

차갑도록 식은 표정이 나의 온몸을 짓눌러왔다.


“자...잠깐만 내 이야기를 들어줄래?”


“싫어요. 약속을 지키기 싫다면, 힘으로라도 약속을 지키게 만들 거에요.”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라도 당장 결혼을 받아드렸을지도 모르지만...


저런 약속 같은 거 기억하지도 못한 나는...

이미 얼마 전에 결혼했다.


그리고 그 결혼 상대는

저녀석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그녀의 엄마다.


즉, 나는 지금

피는 한 방울도 섞이지 않았지만

몇 년 만에 만난 딸에게 

결혼해달라고 목숨을 위협받고

있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