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도 빈부격차는 존재했고 안좋은 일은 많았다.

하지만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감각으로 전해지지 못했다. 상류사회가 어떤식으로 삶을 사는지, 세계에선 어떤 ㅈ같은 일이 일어나는지, 나는 남들보다 무엇이 부족한지.

무지가 곧 평화를 유지케 하였고 시선의 최고점이 높아지지 못한 채 여생을 삶아가게 될 뿐이었다.


지금은?

손가락을 몇 번 까닥거리는 것 만으로, 부자들이 오늘 아침에 무엇을 먹었는지, 어디서 휘황찬란한 삶을 사는지 알 수 있다. 끊이질 않는 범죄 중에서도 가장 안좋은 범죄들을 전 세계 버전으로 실시간 확인할 수 있다. 내 삶의 디테일 하나하나, 공부의 성적까지 조금도 놓치지 않고 전부 '비교'할 수 있다.

유지가 인식과 비교를 만들고 슬픔으로 인도한다.


분명 과거에도 차이를 인식할 수 있었다. 허나 몸이 '인식'할 정도로 자주, 그리고 확실하고 생생히 전달되지 못했다. 부럽다, 나도 꼭 저런 삶을 살아야지.


지금은 너무 쉽게 반복적으로, 아주 생생하게 '인식'할 수 있다. 노력만이 전부가 아니며 환경이 시작선과 끝선을 정해준다는 것을.


그렇기에 과거는 죽을 각오로 살았고.


현재는 살기 위해 죽는다.


더 지리는 기술력으로 무장되어 안전한 삶을 살 수 있는 현재에서 오히려 자살을 선택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비교에는 엄연히 우월도 있다. 헌데 부족에 초점을 둔 이유는 우리는 욕망을 가지고 더 나아감을 향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나은 점을 보고 안주하는 것이 아닌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에 자신의 부족함을 찾고 그것을 해결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