챈에 좋은 글이 올라와서 나도 이어서 써본다. 이번 주제는 프티야, 야오의 캐릭터성에 대한 해설이다.
리브, 페니 때와 달리 배경지식을 동원하기보단 '문학적 맥락'에서 이들을 설명하며, 스노우 브레이크가 다루고 있는 한 주제에 대해 말을 꺼내보고자 한다.
그건 바로 현대인의 죄책감이다.
확신하건데, 프티야와 야오는 게임이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다른 원년멤버들 이상으로 작가진이 집중한 캐릭터들일 것이다.
그리고 미리 경고하자면, 이번 편은 왜 스노우 브레이크의 캐릭터들과 이야기가 우릴 끌어당기는지,
왜 야오의 이야기가 그토록 감정적으로 우리에게 와닿았는지 설명하기 위해
역대급으로 길고 현학적이니 감안해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넷플릭스 드라마 '죄인' '베이비 레인디어' 그리고 영화 스파이더 맨에 대한 설명이 포함돼있습니다.
목차
1. 프티야 - 자신으로부터의 형벌
2. 현대인의 죄책감
3. 야오 - 누군가와 함께하는 구원
1. 프티야 - 자신으로부터의 형벌

필자는 스노우 브레이크의 스토리를 정확히 위의 장면을 본 후부터 정주행을 시작했다.
유독 카툰풍의 연출이 많이 들어간 '힙한' 컷씬들, '확밀아' 시절에 머물러있던 필자의 가챠겜에 대한 인식을 뒤바꾼 '사막의 비밀'의 스테이지들...
번역의 질이 워낙 떨어져서 잘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프티야는 인간다움과 과학자로서의 마음가짐에 대해 성찰하고 있었고, 이 장면을 통해 스노우 브레이크가 어느 게임이나 만화에서도 보기 힘든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고 알 수 있었다.

프티야를 구성하는 키워드엔 아래와 같은 것들이 있다.
과학자
프로메테우스
죄책감
불을 다루는 과학자가 인류에게 문명을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란 설정은 스노우 브레이크 특유의 신화적 세계관에 잘 부합하는 배경서사이다.
그러나 프티야는 미련없이 인류에게 불을 선사하고 고통에 처해진 프로메테우스와 달리, '죄책감'이란 또 하나의 테마를 가지고 있다.
프로메테우스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제우스라는 타인이지만, 프티야를 괴롭게 만드는 죄책감은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분명히 선의를 가지고 과학이라는 힘을 베푼 프티야가 오롯한 악인인 축광단에 의해 고통받는단 아이러니는
물리적인 폭력이 아닌 정신적인 압박을 통해
'죄책감'이라는 내면의 형벌을 부과하는 현대사회의 부조리를 은유한 것 같다고도 생각된다.
2. 현대인의 죄책감

'죄인'은 넷플릭스에서 방영한 미국 드라마이다.
평범한 주부였던 '코라'는 가족들과 함께 해변에서 휴식하던 중 어떤 음악을 틀은 남자를 우발적으로 살해한다.
자기 자신조차 왜 그랬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코라는 항변하긴 커녕 이상하리만치 징벌만을 요구하나,
무언가 사연이 있음을 감지한 형사 '해리'의 설득을 통해 유예를 받고,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는다.
어린 시절 코라는 남자와 데이트를 했단 이유만으로 '창녀'라 부르며 학대하는, 종교적 광신과 권위주의에 물든 가정에서 자랐으며
동생의 병약함이 '네가 동생의 생명력을 빨아먹고 나온 탓'이라는 궤변을 들으며 자존감을 박탈당한다.
자신을 학대하는 부모와, 병약한 탓인지 신경질적이고 의존적인 동생에게 시달리던 주인공은 독립하여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나
그녀를 쫓아온 여동생이 살해를 당하자, 가해자인 남성의 부모에 의해 마약을 투여받고 기억을 잃게 된다.
형사와 함께 당시의 범인들을 추적하던 주인공은 그들을 죽이는 데 성공하고, 무죄로 풀려나면서 이야기는 끝나게 된다.

코라의 삶에서 그녀가 잘못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가 죄를 짓지 않았음에도, 부모들이 주입한 죄의식이라는 화약은 동생의 죽음이라는 불씨를 만나며 터져버렸고, 그녀의 정신을 새하얗게 불탄 백지로 만들었다.
사실 가까운 사람을 잃게 된다면 자기 탓이 아니어도 자연스레 죄책감이 생기게 마련이다.
까마득한 어릴 적부터 죄인으로 살길 강요받은 코라는 동생의 죽음이 자신의 책임임을 무의식 중에 떠올리며 자신의 잘못도 아닌 것에 대해 무기력하게 '형벌'을 내려주기만 바라고있었던 것이다.
남자를 찔러서가 아닌, 어릴 적부터 강요받은 죄의식에 대해서 말이다.

현대인에게 있어 물리적인 위협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동물이나 약탈의 위험은 사라지다시피 했으며, 누군가 타인에게 폭력을 휘두른다면 법제와 사회가 응징할 것이다.
자연이 휘두르는 폭력인 재해에서조차 인간들은 어느 정도의 방어력을 갖추게 된 시대이다.
그러나 그 자리는 '보이지 않는 폭력'이라는 만만찮게 지독한 것이 대체하게 되었다.
경제적 수탈
사회적 매장
언어적 폭력
정신적 압박
드라마 '죄인'의 주인공 코라의 가정에서 보여지는 두 가지 양상-기독교와 가부장적 권위주의는
물리적 폭력을 뿌리뽑기 위해 사회를 '시스템화'해온 과정에서 탄생한 가치관들이다.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민주주의, 법치주의, 자본주의도 모두 같은 면이 있다.
이러한 가치관들의 아래에선 모든 이들이 '전체의 안전과 안정'을 위해 하나가 되어야 하며, 이 '시스템'에 거스르는 '소수자'와 '소수의견'들은 '세상은 이렇게 좋은데 넌 왜 그래?'란 식으로 위에서 나열한 '보이지 않는 폭력'들을 통해 침묵당한다.
(혹시나 오해할까봐 덧붙이는데, 여기서 말하는 소수자는 뭐 정치적으로 어떤 쪽, 아님 LGBT... 이런 의미가 절대 아니고 '따돌림 당하는 사람' '외면당하는 사람' 등을 모두 말하는 것입니다)
이 보이지 않는 폭력들은 보이지 않기에 고발하기 어렵고, 처벌할 수 없으며,
한 사람이나 집단이 다른 사람이나 집단을 지배하고, 권력과 사익을 추구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사용하던
전쟁, 강도, 체벌 등과 같은 물리적 폭력을 대신해 우리의 삶 곳곳에 베어들게 되었다.
그리고 현대사회의 이 보이지 않는 폭력의 희생자들은 '전체를 위한 가치관에 위배됐다'는 '죄목' 아래 일평생 욱신거릴 '죄책감'이라는 낙인이 지저진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제우스를 탓할 수 있었던 프로메테우스와 달리 스스로를 탓하며 육신의 고통 대신 '내 탓이야'라는 정신적 고통에 시달려야 한다.

현대인의 '죄책감'이 창작물에서 부정적으로만 묘사되는 건 아니다.
"만일 네게 선행을 할 능력이 있다면, 그걸 실천할 도덕적 의무도 갖게 되는 거야."
"그건 선택이 아냐. 책임인 거지."
스파이더 맨 시리즈에서 반복되는 '책임감'은 달리 말하면 삼촌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이며, 이는 피터 파커가 고통받게도 하지만 영웅이 되도록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영웅'의 대명사인 스파이더 맨조차도 '죄책감'을 큰 테마로 갖고 있단 점을 볼때,
아래의 대사와 같이 죄책감 자체가 현대인의 보편적인 정서이자 풀어내야 할 저주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보인다.
"삶이 아무리 폭풍처럼 다가와도, 난 이 말을 마음 속에서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말 말이다."
"이는 나의 재능이자 저주이다."
3. 야오 - 누군가와 함께하는 구원

'마음의 조화'에서 그려진 야오의 이야기는 왜 그토록 우리를 감정적으로 이끌었을까?
잘 쓰인 대사 덕분에? 감동적인 연출 때문에?
나는 좀 다르다고 생각한다.
'마음의 조화' 해설에서 그랬듯 다시 한 번 1주년 때의 스토리와 비교하자면, 필자는 사실 13챕터의 연출이 더 멋있고 웅장한 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전체 줄거리상으론 많이 아쉬운 '마음의 조화'와 달리, '부양도시의 추리극'은 서사적인 완성도도 굉장히 뛰어나다.
하지만 야오의 이야기가 다른 의미에서 우리를 이입시키며 깊은 감정적 울림을 주고, 카타르시르를 느끼게 해준 이유는 바로 야오의 모습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닮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닮은꼴의 모습이 바로 죄책감이다.


야오의 부모들은 부모가 자식에게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폭력 중 하나인 '유기'를 저질렀다.
이는 두 명의 먹을 입을 위해, 아주 작은 먹을 입 하나를 죽음으로 몰아넣는다는 보이지 않는 폭력이며
더 나아가자면, 전체 인류를 위해 약자들을 희생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로잔의 사상의 축약판과도 같다.
하나하나의 사람을 알아보고 소중히 여기는 대신 양화(숫자화)하여 '계산'하는, 현대사회의 보이지 않는 폭력성에 대한 은유로서
부모에게 버림받은 야오의 이야기는 단순한 가공의 스토리가 아닌, 게임 밖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가 처한 상황의 은유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스노우 브레이크의 제작진은 이를 극복하는 순간의 터져나오는 감동을 만들기 위해 4성 야오, 5성 야오의 이야기를 간결하지만 인상 깊게 씀으로써 세심하게 빌드업했다.
마치 흐린 하늘 속 동지의 태양이 눈에 띄지 않더라도,
이를 눈치챈 순간 곁을 지켜준 따스함에 깊게 감동하게 되듯...

부모로부터 '유기'라는 극한의 폭력을 당하고도 스스로를 탓하며 괴로워한 야오...
그녀가 하루나 캐롤린처럼 '전체'와 '보통'만을 생각하는 이들의 비난을 꾿꾿이 견디다 극복해내는 모습은,
'능력이 없다' '사회성이 없다' '왜 더 열심히 안하냐' '감사할 줄 모른다' '진작 준비했어야지'
와 같은 말들에 시달리며,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에게 완성된 사회에 발맞추라며 채찍질하고 비난하는,
현대사회의 보이지 않는 폭력과 죄책감의 저주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을 향해
'조금은 나처럼 이기적으로 살아도 괜찮아. 내가 좋은 사람이듯 너도 좋은 사람이고, 내가 분석가를 만났듯 너도 널 알아봐줄 사람을 만날 거야'
라며,
잘 쓴 스토리인 걸 넘어, 햇살과 같이 따뜻한 손을 내밀며 위로를 건내는 이야기였던 것이다.

또한 야오의 이야기가 훌륭한 이유는, 우리를 '그대로 있어도 괜찮아'라는 식으로 정당화하는 게 아닌, '너도 해낼 수 있어'라고 격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베이비 레인디어'는 동성강간을 당한 트라우마 탓에 스토커에 시달리면서도 대처하지 못하는 남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은 성폭행의 피해자임에도 이를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죄책감에 시달리고, 이 죄책감으로 인해 명백한 가해자인 스토커 여성에게도 죄의식을 느껴 강경대응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스토킹을 해결한 후 유명 작가였던 가해자가 자신을 다시 찾았을 때, 한 바텐더가 자신에게 베푸는 호의를 보고선 어째선지 그를 단호하게 거부하고 고발할 수 있게 된다.
자신에게 서비스를 건낸 바텐더로부터, 바텐더 시절 자신이 스토커 여성에게 호의를 베풀었던 일이 겹쳐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바텐더로부터 자신이 갖고 있던 선하고 강한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분석가를 통해 과거의 자신을 마주하고 극복한 야오
자신처럼 죄책감을 갖고 있던 해리 형사를 통해 트라우마를 깨달은 '죄인'의 코라
타인의 선의를 통해 자신의 소중함을 깨닫고 스스로를 지킬 수 있게 된 '베이비 레인디어'의 주인공
이들의 서사는 놀랍도록 닮아있으며,
현대인의 죄책감을 다룬 이런 작품들은 항상 '함께라면 할 수 있어'라는 같은 메시지를 가리키고 있다.
일전에 어떤 댓글에서 '스노우 브레이크의 주제는 다민족 국가인 중국에 대한 의견제시 같다'라고 말해주었다.
스노우 브레이크의 주요 악역인 에다와 로잔, 반동인물이었던 군부나 켄트 박사, 사르트르 등은 모두 '보이지 않는 폭력'의 원인인 이성의 함정을 상징하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모두 누군가를 희생시키거나, '부적절한' 부분을 도려내서 눈에 보이는 성과를 만들고 생존자들끼리만 살아나가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그리고 이를 그릇되게 해결하려다 폭주한 윌이 스토리의 분기점에서 분석가의 성장에 큰 영향을 끼쳤단 점을 볼 때,
현대인의 고질병인 '죄책감'을 극복하는 야오의 이야기는 분열되고, 자포자기 중인 이 세상에 대해 스노우 브레이크가 내놓은 하나의 해답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바로 사람을 헤아리는 이-분석가가 보여주는, 죄책감이라는 저주조차 끊어내는 힘... 타인에 대한 신뢰와 사랑인 게 아닐까?

요약:
타인의 잘못에 대해 자신을 탓하게 되는 죄책감은 현대인의 저주와도 같은 고질병이며,
부모에게 유기되고, 타인들에게 비난받음에도 자신을 탓하던 야오가 분석가와 함께 이를 극복해내는 모습은
현대사회라는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내고 있기에 깊은 감동을 줄 수 있었고
그리고 스노우 브레이크의 스토리나 프티야와 같은 다른 예시들을 볼 때
스노우 브레이크가 현대사회에 제시하는 '해답'이라고도 생각된다.
뭔가 사담을 좀 적으면서 마무리하려고 했는데 챈에 쓸만한 얘기가 아니라 패스....
프티야 같은 경우, 프로메테우스=과학자란 사실상 신화 그대로를 모티브로 쓰면서도 '죄책감'이라는 현대적인 테마를 조합한 게 굉장히 센스있다고 생각됐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와 이로 인한 죄책감에 대한 이야기로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3'도 추천한다. 로켓 라쿤이 야오와 비슷한 면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