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미가 알다시피 여기저기 싸늘한 세상에도 따뜻한 곳은 있다구~



35일 째.


나는 오늘 빌딩 한 채가 무너지는 것을 목격했다. 아마도 온도 때문이었을 것이다. 콘크리트가 화학반응을 일으켰다.


나는…치직치직… 무작정 순찰을 돌다가 문득 유리가 깨지는 소리를 들었다.


얼마 후 그 빌딩의 바닥 창문이 부서져 인도 위로 떨어졌다.


그러다가 마치 보이지 않는 두 손에 떠밀리는 듯,


그 건물은 마치 블록을 쌓듯이 내 눈앞에서 무너졌고, 거리 곳곳에는 광풍이 들고 온 여러 가지 파편들로 가득 찼다.


그때까지 이곳에 살던 사람들이 이 건물을 짓는데 얼마나 걸렸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대자연은 그것을 삽시간에 되찾아갔다.


먼지는 먼지로, 흙은 흙으로 돌아간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하얀 눈이 쌓였고, 고층건물이건 길가의 공공시설물이건 그 위는 일년 내내 얼어붙은 얼음으로 뒤덮여 있어 인류가 살던 거주지는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뒤였다.


스나이퍼-PK43은 처음 옥상을 떠나 그가 지키던 도시를 걸어다녔다. 도로 위 눈 한 톨 한 톨 제자리에 가만히 누워 있었고, 그가 두터운 눈 위를 밟는 순간 미약한 중력에서 벗어나 그의 발끝에 작은 하얀 수수께끼의 안개를 일으켰다.


그는 이 별을 밟아 망가뜨릴까 봐 조심스럽게 걸었다. 도로 앞에는 눈알 같은 파도가 일렁였다.



??

어흥~~!!


??

말 안 듣는 꼬맹이 잡으러 왔지롱!!


눈앞에 있는 거대하고 압도적인 기계가 Sniper-PK43을 향해 걸어왔고, 기계 위쪽에서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Sniper

이것이 바로 당신이 저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물건입니까?



나나미

맞아! 멋있지?


Sniper

이 물건을 타고 저의 감시범위에 들어왔는데, 뜻밖에도 전혀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당신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나나미

이미 말했잖아, 나나미는 그냥 나나미라고!


Sniper

그럼 이것은 도대체 어디서 구한 겁니까?


나나미

파워 말이야?


나나미는 몸체 밑의 기갑을 툭툭 쳤다.


나나미

나나미도 몰라. 내가 왔을 때 파워가 내 옆에 있었거든.


Sniper

그 괴상한 이름을 멋대로 붙이신 겁니까... 그것이 말을 할 수 없는게 참 아쉽군요.


나나미

힘이 넘치는 이름이지 않아? 나나미가 무척 애를 써서 겨우 생각해 낸 거라구.


나나미

나나미, 파워 폼으로 출격!


나나미는 정체불명의 구호와 함께 기갑은 앞의 눈밭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나나미

이제 어떻게 할까...


Sniper

그래서 사람을 찾아주겠다고 했지만 갈피를 못 잡았나요?


나나미

방법은 이미 전부 생각해놨어. 나나미는 옛날에도 여행 도중에 많은 문제를 해결했으니까 걱정하지 마. 나나미가 꼭 도와줄게.


Sniper-PK43 역시 묵묵히 기갑에 탄 소녀를 따라 목적 없는 여행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둘은 거의 똑같아 보이는 세 블록을 지나갔고, 가는 곳마다 건물 옥상에서 Sniper-PK43이 바라보던 모습과 다를 바 없을 정도로 침울한 광경이 이어졌다.


무너지지 않은 건물을 발견할 때마다 둘은 인간의 활동 흔적을 찾아 들어갔지만 어김없이 소득은 없었다.


Sniper-PK43은 이곳이 종말을 맞이한 세계이며, 그와 그의 병사는 세계에 단 두 개의 물체로 지구는 옥상의 확대판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나미

아, 어서 봐봐… 앞에 뭔가 있는 것 같아...!


두 사람이 성긴 숲을 뛰어넘자 나나미는 놀라서 소리쳤다.


나나미의 호들갑을 떨게 한 것은 바로 앞이 아련히 보이는 건물이었다. 앞서 지나간 지역들과 달리 눈앞의 건물은 눈으로 덮이지 않고 커다란 하얀 돔으로 덮여 있었고, 주변에는 기계체 모양의 모습이 보였다.


Sniper

잠깐, 그게 감염체인지 아닌지 확인부터...


나나미가 파워를 조종해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자 Sniper-PK43은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건물 밑에서 잔설을 치우고 있던 기계체가 그녀를 발견하고 순간적으로 작동을 멈추자 머리 위 모니터에서 노란 빛이 뿜어져 나왔다.


잠시 후 기계체가 소리를 냈다.


기계체

손님이 오셨다! 손님이 오셨다!


그 소리와 함께 사방에서 모델이 전혀 다른, 다양한 기계체들도 하나 둘씩 동작을 멈추었고, 마치 스피커처럼 '손님이 오셨다'는 말이 끊임없이 전달되어 온 구역에 울려 퍼졌다.


나나미

엄청 친절해!


나나미는 파워에서 뛰어내려 앞으로 나가자 귀여운 용모의 로봇이 다가왔다.



눈덩이

안녕하세요. 사랑의 집 공동체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는 눈덩이입니다. 이곳은 인류를 위한 따뜻한 공동체 입니다. 혹시 관광을 하러 오셨나요?


나나미

이런 곳이 있었나? 너무 좋은걸, 나나미는 인간을 찾고 있었거든, 혹시 여기 인간에 인간이 있니?


눈덩이

아직 인류는 이곳에 입주하지 않았어요...


작은 로봇은 낙담한듯 머리의 귀를 흔들고 곧 이어 다시 기운을 차렸다.


눈덩이

하지만 저희는 항상 인간이 올 때를 기다리며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1등급의 서비스와 건전한 생활과 놀이기구를 갖추고 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손님도 들어와 보세요.



이 작은 구역의 꼭대기에 돔이 만들어져 있어 '공동체' 안에서는 바깥처럼 폭설이 내리지 않았고, 바람은 여전히 눈발을 휘몰아치기 때문에 거리 곳곳에서는 눈을 치우고 시설을 정비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Sniper-PK43은 곰인이 커다란 냉장고를 옮겨다 놓고 길을 건너는 모습까지 목격했다.



나나미

여기 기계들이 많이 있잖아. 너희들은 쭉 여기에 있었던 거야?


눈덩이

저희는 그냥 모였을 뿐이에요. 모두들 다양한 장소에서 활동했던 기계들이었고, 저도 원래 놀이공원의 공연로봇이었는데 서로 공통적인 소원이 있어서 모두를 이곳으로 데려왔어요.


Sniper

소원이라고요?


눈덩이

인류가 돌아오길 바라는 것이에요.


나나미

그러고 보니 인간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나나미는 아무리 돌아다녀도 인간은 보지 못했는데...


눈덩이

어느 순간 갑자기 눈이 내리기 시작한 순간부터 지상의 인간은 점점 줄어들었고, 그 이후로 저는 인간을 다시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저를 필요로 하는 곳이 없는지 찾기 위해 놀이공원에서 떠났어요...


이때 나나미의 옆을 지나가던 곰인도 멈춰 섰다.



곰인

아, 나도... 나는 원래 북극 연합항로 쪽에 있던 생체공학 기계였어. 그곳에 있던 다른 곰인들과는 좀 다를 수도 있지만, 평소에는 어민들과 협력해서 일을 도왔는데…. 그런데 겨울이 지나면서 극지방마저 원래보다 더 추워지자 어민들은 하나둘씩 자리를 떴어.



유적 탐사자

그래, 내 쪽도 그래, 나는 원래의 사막에서 왔어. 내가 그곳을 떠났을 때 사막은 이미 설원이 되어버렸어.



나나미

왜 이렇게 된거지...


기계들이 이러쿵저러쿵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을수록 나나미의 표정은 점점 굳어졌다. 이런 기후는 이 도시에만 있는 게 아니었던 것 같았다.


눈덩이

도착했습니다. 손님 들어오세요.


공동체의 수장은 나나미를 건물로 데리고 온 다음 함께 들어가라고 손짓을 보냈다.



건물 안에 들어서자 나나미는 감탄했다.


나나미

와…! 이런 곳도 있다니! 이거 다 너희들이 만든 거야?


건물 내 홀은 말끔하고 아늑한 모습으로 꾸며져 있었고, 소파와 카페 테이블이 놓여 있는 휴게공간이 있었으며, 밝은 색상의 놀이공간도 있었다. 홀 한가운데에는 거대한 기계가 자리해 훈훈함을 물씬 풍기고 있었다.


눈덩이

네, 원래는 여기에 녹색 식물들도 올려놓으려고 했는데, 밖에서는 이미 살아 있는 식물을 찾기 힘들었어요...


Sniper-PK43은 홀에 놓여 있는 녹색 식물이 고분자 합성물에 의해 모방된 모조품일 뿐임을 식별했다.


로봇은 홀 안을 빙글빙글 돌면서 나나미에게 이 시설들을 하나씩 소개하기 시작했다.


눈덩이

이쪽은 인간들이 편하게 쉴 수 있도록 저희가 조성한 놀이공간입니다. 


눈덩이

이곳은 인간 아이에게 전문적으로 제공되는 놀이시설로 인간이 오면 아이도 데려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어요.


나나미

와, 나나미가 가장 좋아하는 게임 콘솔도 있어!


눈덩이

이쪽은 해양관이 배치되어 있지만, 살아 있는 물고기를 찾지 못해서 우리의 생체공학 파트너가 연기하고 있어요.


유리 안에 있던 소형 생체공학 물고기가 유리 쪽으로 다가와 나나미가 유리에 얹은 손가락을 향해 다정하게 붙었다.


눈덩이

이것은 저희가 만든 '모닥불'인데, 인간을 따뜻하게 해줍니다. 저희는 너무 추워서 인류가 더 따뜻한 곳을 찾으러 갔다고 생각하지만, 이곳을 꾸준히 지켜온다면 언젠가는 인류가 이곳을 찾아서 들어올 거예요.


작은 로봇이 안내하는 동안 접시를 든 또 다른 로봇이 다가왔다.


마티니

손님, 저희 음식 드셔 보세요.


눈덩이

저희 로봇은 미뢰가 없기 때문에 이 음식들의 맛이 어떤지 알 수 없는데… 아마 아가씨라면 저희에게 조언을 해 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나미는 이미 접시의 케이크를 집어 입에 넣었다.


나나미

음음~ 나나미는 아주 맛있다고 생각해!


Sniper

이래도 정말 괜찮은지...


엄지손가락을 치켜든 소녀를 바라보는 Sniper-PK43은 못 본 척 할 수 밖에 없었고, 건물 구석구석을 계속 뒤졌다.



나나미는 건물 속 각종 시설을 정신없이 체험한 뒤 곧바로 지쳐 로비의 소파에 주저앉았다.


눈덩이

손님께선 저희가 제공한 서비스가 마음에 드셨나요?


나나미

좋아 좋아, 나나미 마음에 쏙 들어~~


피드백을 받은 로봇은 열심히 메모를 했다.


나나미

뭐 하는 거야?


눈덩이

피드백을 기록해야 앞으로도 제가 여기를 개선할 수 있거든요.


Sniper

그녀도 인간이 아닌데...


눈덩이

왠지 아가씨가 아주 특별한 존재라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아가씨의 피드백도 중요...



나나미

나나미는 특별하지! 흥흥, 나나미는 역시 나나미 님이야~


눈덩이

나나미 아가씨가 저희에게 준 느낌은 마치 인간과 같았어요.


나나미

인간답다고? 나나미는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너희들 참 좋은 녀석들이구나. 나나미는 아주 즐겁게 놀았지만, 아직도 좀 모자라는걸!


눈덩이

음...? 혹시 개선할만한 부분이라도 있나요?


나나미

너희들이 즐겁지 않아서 더 이상 즐겁지 않아! 나나미를 즐겁게 하기 위해 나나미가 너희들에게 몇 가지 알려줄게.


Sniper

...



잠시 후 벽면에는 나나미 특제의 채색 낙서가 그려졌다: 여기는 사랑의 집이다. 그리고 로봇을 비롯한 몇몇 기계는 낙서 앞에서 다소 뻣뻣한 모습으로 팔을 흔들며 환호하는 자세를 취했다.


눈덩이

짜잔, 짜잔ㅡㅡ 웰컴 투 사랑의 집!


나나미

맞아, 바로 그거야!


옆에서 감독으로 지켜보고 있던 나나미는 만족스러운 듯 턱을 만졌다.


눈덩이

이러면 인간을 기쁘게 할 수 있을까요?


나나미

하! 하! 하! 완전 따스하고 귀여워, 나나미 기준에서 만점이야!


눈덩이

따스하다는게 아직도 약간 이해가 안 가요. 이곳 실내 온도는 인간이 '따뜻함'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가장 쾌적했던 온도와는 아직 차이가 많이 나는데….


나나미

따스하다는 온기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가득 채웠다는 뜻이야...


나나미는 두 손으로 작은 로봇의 이마를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나나미

마음을 전달하면 마음을 받은 상대방도 마음이 따뜻해진답니다~


이마를 맞대고 마치 의식을 올리는 듯한 고요함 속에서 로봇은 나나미가 전하는 '마음'을 받는 듯했다.


눈덩이

그렇군요... 이게 바로 따스함인가요?


눈덩이

고맙습니다, 나나미 씨...


나나미

고마워할 것 없어~ 흥흥, 이건 나나미 님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노라!


눈덩이

네, 그러면 리허설도 일상 유지보수 작업 목록에 넣도록 하겠습니다. 나나미 아가씨,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나나미

응응! 나나미는 꼭 인류가 올 거라고 믿어!


나나미

그나저나 너무 오래 놀았나...


Sniper

여기서 인류의 활동 흔적을 찾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계속 나아가야 합니다.


나나미

나나미한테 안 알려줘도 돼!


나나미

나나미는 원래 여행을 계속할 예정이었으니까 너희들이랑 작별인사를 해야겠어.


눈덩이

그렇군요... 다른 기계들이 여기에 머물러 있지 않았으면 저도 당신들과 함께 인간을 찾으러 가고 싶었어요.


나나미

괜찮아, 나나미는 널 데려가도 상관 없어!


눈덩이

하지만 제가 이곳을 떠나면 공동체를 찾는 인간들을 맞이할 수 없어요. 인간을 귀순시키는 것이 제 역할이고, 저는 여기 모두를 마지막 날까지 이끌어 갈 것입니다.


나나미

나나미 감동했어...


Sniper

어떤 성분인지 알 수 없는 눈물 콧물을 제 몸에 문지르지 마십시오.




공동체 입구에서 나나미는 기계들과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했다.


나나미

다들 고마웠어!


눈덩이

나나미 아가씨, 귀중한 건의에 감사드립니다. 다음에도 또 방문해주세요.


나나미

후, 나나미 잘 놀았다!


그제서야 나나미와 Sniper-PK43은 건물 바깥에 어둠이 내려앉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밤이 찾아온 탓인지 바람은 점점 거세지고 끊임없이 휘파람을 불며 '공동체'로 향해 눈을 쓸어내렸고, 거대한 원형 공간에 소용돌이치는 바람은 울음 같은 소리를 냈다.



Sniper

왜 그럽니까?



나나미

아니야, 그냥... 여기 바람이 우는 것 같아서.


나나미는 건물 벽에 손을 얹고 무언가를 느끼는 듯했다.


나나미

...


나나미

꼬마 저격수, 너의 창조자, 그리고 지휘관과 모두를 찾으면, 우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여기 멋진 공동체가 있다고 알려 줄 거야!


나나미

그때가 되면, 여긴 반드시 진짜 행복으로 가득할 거야.


Sniper

지휘관은 무엇입니까?


Sniper

그리고 아까 행복하지 않았나요?


Sniper-PK43은 이 말을 한 스스로에게 놀랐다. '행복'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저절로 인간의 감정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눈앞에 있는 소녀를 판단한 것이다.


나나미는 웃음을 지었다.



나나미

모두가 기원을 하고 또 기원을 하면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 되는 것을 봐서 나나미도 매우 행복했어!


소녀는 손을 흔들었고, 건물 밖을 지키고 있던 기갑이 그리움을 느끼듯 소녀를 향해 다가왔다.


나나미

꼬마 저격수, 우리 계속 가보자.




이미 공동체를 떠난 지 십여km가 지난 나나미와 Sniper-PK43은 높은 언덕 위에 누워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정확히 칠실이는 누워 있다. 저 멀리서 보이는 밝고 고요한 도시는 마치 어두운 밤의 유일한 별 같았다.


나나미는 손을 들어 얼굴 위로 흩날리는 눈을 막으며 손가락 사이로 외로운 공동체를 바라보았다.


나나미

꼬마 저격수는 거기가 좋았어?


Sniper

그 공동체 말입니까? 저에게 특별한 의미는 없습니다.


나나미는 시큰둥하며 손을 내리고 눈을 힘껏 깜박거렸는데, 그 빛나는 별들은 아직도 잔상이 남아 있었다.


나나미

나나미는 지금 내가 어디 있는지 시간 구분이 잘 안가... 


나나미는 바닥에서 몸을 뒤집고 두 팔을 벌려 눈밭에 얼굴을 묻고 마치 대지를 끌어안는 듯 했다.


나나미

나나미는 집을 떠난 후에도 혼자 여행을 했지만, 외로움을 느껴본 적이 없었어.


나나미

그런데 지금은...나나미는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소녀가 땅바닥을 툭툭 치며 튀긴 눈덩이가 Sniper-PK43에 떨어졌다.


나나미

흐~흐~ 지구할머니가 한 거라면 이제 그만 화내세요...


Sniper

설마 지구를 위로하는 건 아니겠지요?


눈밭에 머리를 파묻은 소녀가 잘 들리지 않는 대답을 수군거렸다.


Sniper

데이터베이스는 갱신되지 않았지만, 저도 알고 있습니다…. 지구는 강하고, 어떤 인간이나 기계체보다도 강력합니다.


연설 도중, Sniper-PK43의 다이나믹 뷰파인더는 그의 아래쪽에서 이상한 모양의 붉은 사슴 한 마리가 밤의 어둠 속을 뛰어 지나가는 모습을 포착했다.


인간을 제외한 다른 생물들은 점차 이런 기후에 적응하기 시작한 것 같다.


Sniper-PK43은 스스로에게 진지한 질문을 던졌다.


이 별에… 정말로 인간은 존재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