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직… 하, 오늘의 기록이다.


오늘은 황금시대 육아소를 찾았고, 아이들이 이곳에서 자고 쉬었던 흔적도 볼 수 있으나 지금은 텅 비어 있다.


이곳의 유리창은 모두 망가졌지만, 방에는 여전히 거주자가 있다.


내가 창턱에서 두 개의 둥지를 찾아낸 것으로 보아, 새들이 이곳으로 날아와 창턱에 내려앉은 것 같다.


이들은 음식물과 털가죽을 물고 뼈와 깃털을 남긴다. 그래서 이 방은 그래도 생기가 있다.


나는 항상 내가 꾸고 있는 꿈, 차갑고 어처구니없는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모체는 점점 고갈되어가고, 나는 많은 생명들의 운명과 마찬가지로 어머니의 뱃속에 있는 한 마리의 어린 아이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내가 볼 때마다 이 육지에는 아직도 잉태되고 있는 새로운 생명이 있어서 다시 꿈에서 깨어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기특한 녀석들, 나중에 다시 보러 올게.



나나미

자~ 꼬마 저격수, 치~즈!


나나미

화면에 웃는 얼굴 좀 보여줄래?


Sniper-PK43 꼭대기의 신호등이 노란 불빛을 반짝였다.



Sniper

만약 저에게 그런 기능이 있었다면 분명 썩은 표정을 내밀었을 것입니다.


다시 여행길에 오른 두 사람은 공동체를 벗어난 방향을 따라 며칠 더 걸어갔고, 지금 나나미는 기계 한 대를 들고 기갑 위에 엎드려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Sniper

아까부터 계속 그 기계를 들고 있었는데… 도대체 무엇을 할 생각입니까?


나나미

이거 말이야? 이건 나나미가 매장에서 찾아낸 카메라인데 나나미는 그 자리에 교환할 값어치가 있는 물건을 남겨뒀어! 그러니까 나나미는 남의 물건을 몰래 가져가는 나쁜 아이가 아니라구.


Sniper

당신이 그걸 가져가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카메라로 무엇을 하려는 겁니까?


나나미

나나미는 조사하고 있어...


Sniper-PK43에게 영상 기록을 남긴 후, 기계 위에 누워 있던 나나미는 Sniper-PK43의 인식으로는 모두 비슷했지만 다른 장면을 사진에 담았다.


나나미

그리고 나나미 일지를 기록 중이라서, 나중에 돌아갈 때 지휘관과 친구들에게 보여주면서 나나미가 어떤 특별한 일들을 겪었는지 다 말해줄 수 있어!


나나미

어쩌면 지휘관은 나나미의 일지에 충격을 받아 다음번에는 나나미에게 지휘관을 데리고 여행해 달라고 부탁하러 올지도...


Sniper

당신이 그 이름을 언급하는 것을 들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인간입니까?


나나미

맞아, 지휘관은 나나미의 유일한… 아, 아니, 나나미 세어봐… 아무리 그래도 두 명, 세 명... 아무튼 좋은 인간 친구야!


나나미

하지만 나나미가 제일 좋아하는, 유일한 인간이야! 지휘관은 나나미에게 엄~청 많은 걸 가르켜 줬거든. 지휘관을 만나고 싶으면 나나미가 추천해줄게. 그래도 지휘관 마음속에는 나나미가 제일 귀여운 착한 아이일걸.


Sniper

전 당신에게 귀여움을 당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 지휘관은 당신이 가지세요.


나나미

나나미도 작은 비밀을 말했으니까 꼬마 저격수도 자신이 좋아하는 인간에 대해 말해볼까요?


Sniper

이미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제 기억 라이브러리에 있어요.


Sniper

저의 창조자에 대해 아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고, 그때만 해도 제가 있던 도시는 인간의 거점이었고, 창조자에게도 다른 인간 동반자가 있었다는 것만 알고 있었습니다.


Sniper

그는 띄엄띄엄 말을 했는데…


Sniper

극한의 겨울 그리고 고갈 때문에... 인류의 처지가 너무 어려워졌다고 합니다.


나나미

나나미가 꼬마 저격수의 눈에 비친 그 인간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기억을 열람하는 것으로는 알 수 없어.


나나미

그리고 나나미는 혹한과 고갈이 도대체 뭔지 계속 조사하고 있는데… 새로운 바이러스야?


나나미

그 와중에 아무런 감염체도 만나지 못했어…. 너무 쓸쓸해서 나나미가 기억하는 감염체까지 이제는 사랑스러워보여…


Sniper

무언가에 의해 이곳에는 쉴 새 없이 눈이 내리도록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나나미

왜 나나미는 그런 얘길 한 번도 못 들어본거지? 지휘관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하는데… 내가 이 소식을 가져와서 지휘관에게 알린다면 지휘관은 분명 이 문제를 해결했을 거야.


Sniper

대단한 사람입니까?


나나미

지휘관은 대단하지만 나나미는 못 당해내지~


Sniper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이 같은 전 세계 기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면 이곳은 진작 이런 광경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Sniper-PK43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Sniper

당신도 다 보지 않았습니까? 그 기계들이 온 곳마다 이미 인간은 사라지고 사방에는 변이된 동물들이 생겨났으며 빌딩에 유일하게 남은 인간의 흔적도 그들의 얼어붙은 시체뿐, 어쩌면 인간은 멸종했을지도 모르는데 왜 당신은 그들을 다시 만나리라는 기대를 갖고 살아온 것입니까?


나나미

...나나미도 그냥 보고만 있지 않았어.


나나미

더구나 꼬마 저격수도 계속 나나미와 함께 찾아다녔잖아?


Sniper

창조자는 이미 사망했을 확률이 크고, 그가 남긴 메시지를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더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뿐이었습니다.


소녀는 고개를 저었고 목소리는 보기 드물게 매우 진지해졌다.


나나미

나나미는 아직 이곳까지 진상을 조사하지 못했어.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때까지 나나미는 다른 사람을 찾으려고 애쓸 거야.


이 같은 진지함은 0.5초도 이어지지 못했고, 나나미는 갑자기 호들갑을 떨며 기갑에서 뛰어내렸다.


Sniper

무슨 일입니까?



나나미

나나미가 기막힌 걸 발견했어!


나나미

빨리 봐봐ㅡㅡ


나나미

여기에 공원이 있어!!


다시 신이 난 나나미는 두 팔을 벌리고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멀지 않은 앞쪽에는 눈으로 뒤덮인 시설들이 있어 이미 본래의 기능을 알아보기 어려웠다.


그 중 한 눈더미 앞에 이르자 나나미는 힘차게 헤집으며 밑바닥의 선명한 빛깔의 시소를 드러냈다.


나나미

와우, 나나미 일등상에 당첨되었구나, 이거 시소잖아!


Sniper

여기 공원으로 보이나요?


나나미

흥흥, 나나미는 공원 레이더가 있어서 정확도가 100분의 1에 달하거든.


Sniper

그동안 이런 곳은 볼 수 없었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별 소용이 없었고, 이미 이곳에 놀러 올 어린이는 없을 것입니다.


나나미

아마도 모두가 못 알아봐서 그럴 거야. 나나미는 공원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여기에 눈사람을 만들기로 결정했어!


Sniper

질렸다고 하지 않았나요?


나나미

지금은 나나미와 꼬마 저격수가 함께 있어 나나미 혼자 눈사람을 만드는 것과는 달라.


말하는 사이 나나미는 벌써 농구공만한 눈덩이를 굴리고 있었다.


Sniper

...


Sniper

...당신은 저를 그렇게 쳐다보고 무엇을 하십니까? 전 두 손이 없어서 쌓지 못합니다.


나나미

나나미는 꼬마 저격수가 어떤 눈사람을 좋아할까 생각해봤어~


Sniper

이걸 어떡합니까…. 제 프로그램에는 좋아하는 개념이 없습니다.


나나미

흥흥, 곧 너의 프로그램은 나나미의 기발한 아이디어로 수정될 거야.



잠시 후 나나미는 진짜 길가에 눈사람 두 명을 만들었다.


나나미

나나미가 너에게 덧붙여 준 만남의 선물이야, 너는 마음에 간직하고 나에게 감사하면 돼.


Sniper

왜 두 개입니까?



나나미

이것은 《우주급 최고의 인류 집단》, 나나미의 새로운 작품이다!


나나미

큰 눈사람은 나나미의 지휘관으로 지휘관의 가슴에 반짝반짝 빛나고 기품있는 메달이 많이 달려 있어


나나미

작은 눈사람은 꼬마 저격수의 절친한 친구, 나나미는 이 아이에게 꽃 한 송이를 상으로 줬어.


Sniper

사실 남자였는데...


나나미

나나미는 네 친구를 많이 보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 나나미가 나나미의 친구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나나미

나나미도 지휘관을 찾을 수 있어. 최고의 인간과 함께, 나나미의 막강한 힘에 맞춰 어떤 문제든 해결될 수 있어!


소녀의 미소는 Sniper-PK43이 자신의 추론을 표현하는 것을 막았다. 이번에는 나나미의 기도를 방해하지 않았고, 희미한... 거의 불가능한 기대를 마음에 숨기지 않았다.


나나미

그래서 나나미는 너가 소중히 여기는 인간을 찾도록 도와줄 거야.


Sniper

...


눈앞의 소녀가 과연 자신이 말하는 이 모든 것을 해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지만, Sniper-PK43을 위해 무슨 일을 하려는 다른 사람이 있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Sniper

고맙습니다, 나나미.


나나미

나를 천상천하 유아독존 나나미 님이라고 불러 달라구.


Sniper

거절합니다. 그리고 그 이상한 코드네임도 붙이지 마시길.



대화를 끊은 것은 공원의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이상한 소리였다.


Sniper

나나미, 저기 감염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나나미

어, 감염체라고?


알람을 들은 나나미는 공원 너머를 바라보았다.


나나미

우리 눈덩이 파티에 나쁜 애들도 끼려고 하는 모양이구나!


나나미가 다시 기갑에 올라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기품 있는 공격 자세를 취했다.


나나미

이렇게 된 이상 파워는 명령에 따라 나나미 님으로 하여금 눈덩이로 나쁜 아이를 잘 대접하도록 하거라!




전투 개시




나나미

추워! 꼬마 저격수, 나나미는 추워서 감기 걸릴 것 같아.


Sniper

기계는 "감기"에 걸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저온에서는 완충액이 굳어 운동에 지장을 줄 수는 있겠지요….


Sniper

가만히 있지 말고 빨리 감염체를 제거하세요… 뭐하는 겁니까?


나나미

하나 둘...하나 둘! 나나미는 몸을 풀었는데 감염체를 못 찾겠어...


Sniper

어쩌면 우리뿐만 아니라… 감염체도 저온에 얼었을지도 모릅니다.




나나미

꼬마 저격수, 와서 봐봐, 앞에 작은 새가 한 마리 있는데, 다 얼어 버렸어. 불쌍해!


Sniper

아무리봐도 이건 "작은" 새가 아닙니다.


Sniper

아니, 접근하지 마세요. 퍼니싱 농도 검사 결과 감염체라는 경보가 울렸습니다.


나나미

어!? 쓰러뜨리지 않으면 안 돼! 꼬마 저격수와 파워, 우리 올라가보자!




나나미

앞에 인간이 있다! 우리한테 인사하는 것 같아!!


Sniper

사람이 이렇게 옷을 얇게 입고도 이 기온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나나미

헬로, 안녕하세요~ 꼬마 저격수, 우리 한번 가보자!


Sniper

당신의 청각 시스템이 고장난 것이 심각하게 의심됩니다. 수리를 받으러 가십시오.



나나미

이 인간은 원래 기계체…. 죽은 것 같아.


Sniper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죽음'이 아니라 완전히 멈췄으니 복구도 안 될 것 같습니다.


Sniper

온몸이 얼어붙었으니 필요하다면 파괴하고 그의 기억 소자를 꺼내 조사해 봅시다.


나나미

음…그건 싫어. 그냥 눈보라 속에 있게 놔두자.



전투 종료




나나미

봐봐, 이 기계에 뭔가 이상한 게 걸려 있는 것 같아.


나나미는 기갑에서 뛰어내려 길가에 뻣뻣하게 서 있는 '여행자' 옆에 쪼그리고 앉아 기계 몸에 걸린 옷감을 손가락으로 찔렀다.


나나미

마치 자루 하나를 메고 있는 것 같아...


Sniper

나나미, 그런 정체불명의 물건은 먹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요?


열린 배낭에서 미확인물을 꺼내 입에 넣는 나나미의 모습을 지켜보던 Sniper-PK43은 소리를 내며 그녀를 제지하려 했다.


나나미

쩝쩝쩝... 꿀꺽, 맛이 좀 이상한데...


Sniper

먹지 말라니까요.


나나미

근데 확실히 인간의 음식이 맞아! 이곳의 특산물로 가지고 돌아가서 지휘관에게 줘야지.


Sniper

그 인간에 대해 걱정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나나미

가자, 이쪽 방향으로!


나나미

감염체가 음식물을 가지고 다니려 하지 않았을 거야. 어쩌면 이 아이가 집을 나선 것이 이 음식물을 위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길에서 약간의 사고를 당해 다시 돌아가지 못했을 뿐…. 아마 그의 집에는 음식이 필요한 다른 인간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전투로 누더기가 된 검은 배낭을 파워의 무기에 걸고 나나미는 배낭의 꾀죄죄한 옷감에 얼굴을 갖다댔다.


나나미

...그리움, 나나미는 그리움을 느꼈어.


Sniper

인간의 형용사로 말하면 당신의 지금 행동은 비교적 선무당에 흡사합니다.


나나미

그만좀해! 너 아까부터 계속 투덜거리고 있잖아!


Sniper

절 만들어낸 인간은 외롭기 때문에 끊임없이 말을 걸 수 있는 성격으로 설정했었습니다.


나나미

어쨌든, 나나미는 특수한 사건의 냄새를 맡았으니까 조사를 시작하자!



나나미와 Sniper-PK43의 수색을 통해 과연 인근 눈밭에서 또 다른 단서를 찾아낼 수 있었다.


눈을 조금 쓸어내리자 그 깊숙한 곳에 흩어져 있는 유아동 장난감과 사탕 껍질이 발견되었다.


그 흔적들을 따라가서 나나미가 파워를 조종해 무너진 건물 천장을 들추자 두 사람 앞에 나타난 것은 짧고 음침한 계단이었다.


나나미

어어...


나나미

파워는 따라오면 안 돼!


파워를 옆에 세우고 나나미와 Sniper-PK43은 앞뒤로 좁은 입구에 들어갔고, 계단 끝에는 문이 있었다.


Sniper

그냥 들어갈까요?


나나미는 손가락을 들어 입술 언저리에서 쉿하는 자세를 취하며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나나미

안녕안녕? 나나미는 나쁜 사람이 아니야, 대답 안하면 나나미 그냥 들어간다?


Sniper

응답이 없으니 그냥 들어가세요.


문에 기계 자물쇠가 하나 있었으나 나나미가 잠깐 조작을 가하자 자물쇠가 금방 풀렸다. 문을 밀어젖히고 나나미는 안에 발을 들여놓았다.



나나미

여기는 지하에 지어진 육아시설로 보이는데......


방 안에는 약간의 빛이 들어왔을 뿐이지만, 기초적인 생활 시설, 철제 침상 여러 개가 놓여 있었고 좁고 어둡지만 깨끗했다.


나나미

얼마 전에 여기를 청소하는 사람도 있었을 거야.


나나미

저기요~ 누구~ 있어요?


나나미는 이상한 곡조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여 방 안을 이리저리 휘저었다.


Sniper

그러고 다니면 사람들이 도망치지 않겠습니까.


나나미의 뒤를 따라 들어온 스나이퍼는 열원 스캐너를 켜고 넓지 않은 이 공간을 스캔하면서 구석에서 몇 가지 미약한 열원을 발견했다.


Sniper

나나미, 제가 발견한 게 있는데...


나나미

숨바꼭질은~나나미가~제일 잘해~아 깜짝이야!!


철제 침대의 뒤로 간 나나미가 벌떡 일어나 가슴을 손으로 두드렸다.


나나미

나나미 깜짝 놀랐어… 하마터면 새 옷을 찢어버릴 뻔했잖아!


Sniper

.……바로 당신 앞에 있었어요.


Sniper-PK43은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나서 철제 침대 뒤로 몸을 숨기고 있는 인간 여성의 모습을 한 기계체를 발견했다. 그녀는 녹슨 주방기구와 나이프를 양손에 쥔 채 바닥에 주저앉아 나나미와 Sniper-PK43을 바라보며 공포에 떨고 있었다.


Sniper-PK43은 빠르게 데이터베이스에서 이 기계체를 검색했지만, 그의 데이터베이스 정보는 업데이트 된 적도 없고 네트워크 연결도 되지 않았고, 비슷한 모델의 황금시대의 육아 도우미 로봇 한 대만 검출할 수 있었다.



나나미

후후…괜찮아. 나나미는 화나지 않았답니다. 무서워하지 마.


나나미는 몸을 구부리고 상대방이 놀랄까봐 걱정한 듯 손을 뻗어 낯선 기계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칠실의 동작이 정말로 효과가 있었는지 아직 떨고 있지만 눈 앞의 기계체는 식칼을 움켜쥐고 있던 두 손을 살짝 내려놓으며 나나미와 Sniper-PK43 사이를 맴돌았다.


낯선 기계체

너... 너희들은 누구야...


나나미

나는 나나미, 내 뒤에 있는 친구는 꼬마 저격수라고 해. 나나미는 인간을 찾고 있는데 혹시 인간을 본 적 있어?


낯선 기계체

...인...간?


낯선 기계체

그....그래, 아참, 우리 아이…너희들도 도와줄 수 있겠니…?


나나미

어, 여기 아이도 있었어? 왜 못 봤지?


스나이퍼-PK43은 인간의 존재 흔적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는 표시로 '머리'를 흔들었다.


'아이'를 언급하자 눈앞의 기계체 얼굴 표정이 부드러워지고 슬퍼졌다.


낯선 기계체

걔를 숨겨놨었는데 바깥 온도가 너무 낮고 감염체도 있고… 상처받지 않고 보호하기 위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어.


낯선 기계체

원래는 마리아가 그날 식량을 찾아 나갔는데…. 마리아가 돌아오지 않았어. 집에 혼자 둘 수도 없었고, 계속 춥다고 말을 해서…. 그와 함께 있어야 했어.


나나미

이거 니꺼야?


나나미는 앞서 감염체에서 떼어낸 배낭을 눈앞에 있는 기계체에 보여주었다.


낯선 기계체

맞아... 틀림없어! 이게 바로 마리아가 가지고 간 배낭이야! 마리아는? 식량은?


나나미

너가 말하는 마리아라는 친구는 이미 이곳을 떠나버렸어……하지만! 이 안에 음식이 들어있어. 마리아 씨는 그것을 위해 열심히 노력했겠지… 이제 나나미는 그것을 돌려줄게.


낯선 기계체가 들고 있던 식칼이 바닥에 떨어졌고 그녀는 떨면서 배낭을 받아들고 그 안에서 남은 음식들을 뒤졌다.


나나미

으, 나나미가 실수로 그 위에 한입 물어뜯었는데…. 하지만 상관없을 거야!


낯선 기계체

고마워.... 정말 고마워.


그녀는 일어서서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지만 기계처럼 흘릴 눈물이 없었다.


나나미

이것은 나나미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거든... 그래서 지금 너의 아이를 만나러 가도 돼?


낯선 기계체

응. 그 사람 아직도 낮잠을 자고 있을 텐데... 집에 남은 식량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너희들이 와줘서 다행이야. 그렇지 않았다면 나도 식량을 찾아 나갈 수밖에 없었을 거야.


기계체는 실제 가정주부처럼 앞치마에 손을 문질러 나나미와 Sniper-PK43을 데리고 방 한구석으로 데려왔다. 천과 나뭇가지로 간이 천막을 친 그녀는 조심스럽게 누런 천을 들추고 그 속을 드러냈다.


천막 안에는 아기 침대, 아기 침대보다 훨씬 커 보이는 사람 그림자가 잔뜩 웅크린 채 누워 있는 무거운 국방색 외투가 놓여 있었다.



Sniper

...!


Sniper-PK43의 발성을 기다리지 않고 나나미는 사람의 얼굴을 누렇게 덮고 있는 옷감을 살짝 젖혔다.


두 사람 앞에 펼쳐진 것은 어느 것 하나 예상했던 광경이 아니었다.



나나미

으아악...!


옷감 밑에서 인간의 시체를 본 나나미의 손은 떨려왔고 목도리와 코트가 다른 쪽으로 미끄러지면서 아기의 침대에 이상한 자세로 웅크리고 있는 남성의 시체가 드러났다.


나나미

이...건...


낯선 기계체

쉬, 쉬, 아직 자고 있잖아.


나나미

이건... 아이도 아니잖아!


나나미는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돌려 자애로운 기계체를 바라보았다.


스나이퍼-PK43은 순식간에 공격 모드를 가동했다. 그의 총구는 낯선 기계체를 겨누고 있었고, 그 순간 인간 여성의 얼굴과 똑같은 기계체의 얼굴이 낯설고 무섭게 보였다.


Sniper

무슨 짓을 한겁니까? 그를 죽였습니까?


낯선 기계체

무슨 소리야... 아직 멀쩡하잖아? 생명의 신호도 감지되는데...


기계체의 얼굴에 일그러진 당혹감이 감돌면서 그녀는 아기 침대를 덮었던 코트를 벗기고 죽은 지 오래 된 차가운 몸의 품에 안겨 있는 앳된 새 몇 마리를 가만히 눕혔다.


낯선 기계체

아직도 가슴이 뛰고 있고, 얼마 전에도 추웠다고 얘기해줬는데...따뜻한 걸 많이 찾아봤는데...


Sniper

얼마 전이 도대체 얼마 전이었습니까?


낯선 기계체

난...난 몰라...


눈앞의 '여인'은 마치 누군가가 이 사실을 알려준다는 말을 처음 듣는 듯 점점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그녀가 정성껏 보호하고 있는 아기의 요람을 바라보며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내려고 했다.


낯선 기계체

내가 이렇게 만들었다고…? 그가 나타났을 때는 아주 어두운 밤이었어…. 그는 문 앞에서 문을 두드렸고, 나는 오랫동안 인간을 만나지 못했어…. 그는 큰 상처를 입었고, 그래서 나와 마리아는 그를 간호했는데….


낯선 기계체

나중에는 왜 이렇게 된거지? 난 원래 아이를 잘 돌봐야 하는데, 내가 잘 돌볼 수 있는데, 다음날 밤 갑자기 춥다고 말했지만 그의 몸은 계속 뜨거워지고 있었어...


낯선 기계체

어디에도 약은 없어서…. 졸린다고 밤새 끌어안고 있었는데 다음날 새벽이 되자 더 이상 가슴이 뛰지 않았는데...


기계체는 망연히 자신의 두 손을 바라보았다.


낯선 기계체

내가 뭘 했지...? 나는 그가 돌아오기를 원했는데, 왜 그를 잘 보살펴 주지 못했을까, 내가 그를 잘 보살펴 주어야 하는데, 그는 아직 어리고 연약했는데...


기계체가 비뚤어진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는지, '울음'이 논리 프로그램에 들어가지 않아 본능적으로 인간 흉내를 내면서도 유난히 쉰 목소리, 듣기 싫은 낮은 울음소리를 내었다.


낯선 기계체

나는 그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를 안고 창가에서 계속 기다렸고,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는지도 몰라. 그를 잃고 난 모든 의미도 잃었어.


낯선 기계체

하지만 나는 다시금 그의 몸에서 생명의 징조를 느꼈어...


비좁은 공간을 빙빙 돌다가 실수로 보육원에 우연히 들어간 것은 눈보라 속에 갈 곳 없는 새였을지도 모른다. 지쳐서 기력을 다 잃은 듯 따뜻한 옷감 속에 내려와 머물며 인간의 몸 위에 둥지를 틀었다.


낯선 기계체

당황스러워...


'여자'는 가슴의 옷을 힘없이 움켜쥐고, 끊임없이 자신에게 묻고, 그 속에서 영혼을 치려는 듯 두들겨 댔다.


낯선 기계체

내가 뭘 했기에…왜…이건 도대체 무슨 느낌이지…


Sniper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추락 후 그의 창조자는 죽지 않고 여기까지 왔었다. 어둡고 좁은 이 육아실은 인류의 마지막 귀결이 되었다.


나나미

...


나나미는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두 손으로 닦아냈다.


나나미

그랬구나...


나나미는 바닥에 나동그라진 기계체에 다가가 이번에는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고 가볍게 토닥였다.


나나미

...


그리고 은발의 소녀는 바닥에 있는 작은 돌멩이를 주워 담벼락에 무언가를 한 획 한 획 그렸다.


Sniper

뭐하는 겁니까?


나나미는 대답 대신 벽에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잠시 후 벽에는 난해한 기호로 된 그림이 나타났다.


Sniper

이건 뭡니까?


여성 기계체도 고개를 들어 멍하니 벽에 그려진 그림을 바라보았다.



나나미

여기에 인간이 새가 되어 날아가는 모습이 그려져 있어.


나나미는 여성 기계체의 손을 잡고 존재하지 않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나나미

그 인간도 너를 걱정해서, 그래서 작은 새가 되어 널 만나러 갈거야…. 그러니, 더 이상 자신을 여기에 얽매지 말아줘.


낯선 기계체

하지만 이제 뭘 해야 되는거야...?


나나미

너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돼.


낯선 기계체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없고,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이 아이들을 돌보는 것뿐인데...


나나미

아니야… 너의 속마음을 더듬어 봐.


나나미는 여성 기계체의 손을 잡고 가슴에 붙였다.



나나미

난 여기에서 슬픔을 느꼈어… 넌 매우 괴로울 거야. 그렇기에 즐겁고, 설레고, 좋아할 수도 있어. 그래서 이 세상에는 그 인간이 추구했던 것처럼, 너가 추구할 수 있는 가치가 존재해.


기계체는 나나미의 동작을 따라 움직였고, 소녀를 바라보고 '깨달음'을 받은 듯 멍한 눈에 물빛이 번쩍이는 듯하다.


나나미

그것을 찾아서 자신을 자유롭게 만들어봐.


고요함 속에 지하실에서 새가 지저귀고, 여성 기계체가 가볍게 노래 한 구절을 부르기 시작했다


낯선 기계체

변덕스러운 사막의 평야를 날아… 성난 산들을 넘어….*


낯선 기계체

울부짖는 바람과 폭우를 뚫고 그대 곁으로 향하네...*


*Nick Cave의 노래 To be by your side 가사




눈발은 어느새 다시 거세지기 시작했고, 창백한 하늘이 부서져 가루가 되어 대지를 덮고 있었다.


나나미는 폭설의 한 가운데에 서 있었고, 기갑의 건장한 몸집이 그녀를 받쳐 들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한 천지의 압박 속에서 전에 없던 보잘것없는 것을 경험했다. 그녀가 귀를 기울여도 전 세계 어디서도 심장 소리가 울리지 않는 것 같았다.


바람소리만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었다.


Sniper

나나미...


Sniper

어쨌든 우리는 확실히 그를 찾았습니다.


나나미는 기갑에서 뛰어내리고 앞으로 다가와 손에 들고 있던 녹음기를 들어보였다. 육아소에서 떠나기 전 그 기계체는 그것을 그녀에게 가져다 주며 인간이 항상 지니고 있던 물건임을 알려주었다. 그녀의 두 눈은 잔잔하게 Sniper-PK43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나미

여기 정보도 있을텐데... 들어볼까?


Sniper-PK43은 조용히 받아들였고, 나나미는 재생 키를 눌렀다.



메시지

아... 여기는 오자키(尾崎)다.


그 속에서 젊은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메시지

어...음, 지금... 소대가 주둔지에... 지직 지지직... 도착한지 21일이 지났다. 나는 그 동안의 일지를 기록하고 있다.


남성의 목소리는 전류가 섞인 노이즈로 왜곡되어 메시지가 간헐적으로 끊기면서 들렸다.


메시지

...혹한의 확산으로 지구상에 금시초문의 추운 겨울이 찾아왔다… 다행히 기후와 환경의 영향으로 퍼니싱은…. 줄어들 것 같다…. 인류는 아직도 희망을 찾고 있다.


첫 번째 메모는 여기서 끝이 났고, 녹음기의 모니터에는 남은 시간이 표시되었다: 12:37:21.


나나미는 계속 재생을 눌렀다.



메시지

오늘은 26일째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감염체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길 끝에서 가동이 멈춘 것을 찾아냈는데……… 고칠 수 있을지 모르겠다.


Sniper-PK43은 자신이 곧 인간의 메시지에 등장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녹음기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지친 목소리를 자신의 라이브러리에서 기억하고 있는 목소리와 연결시키려 했고, 왠지 모를 서글픔이 그를 사로잡았다.



메시지

35일 째.


메시지

나는 오늘 빌딩 한 채가 무너지는 것을 목격했다. 아마도 온도 때문이었을 것이다. 콘크리트가 화학반응을 일으켰다. 나는…치직치직… 무작정 순찰을 돌다가 문득 유리가 깨지는 소리를 들었다. 얼마 후 그 빌딩의 바닥 창문이 부서져 인도 위로 떨어졌다.


메시지

그러자 보이지 않는 두 손에 떠밀려 그 건물이 마치 블록을 쌓듯이 내 눈앞에서 무너졌다. 나는 놀라서 멀리 뛰쳐나갔으나 방호복을 입기에는 힘이 들었고, 거리 곳곳에는 광풍이 들고 온 여러 조각들로 가득 찼지만 다행히 나를 내리치지는 않았다.


메시지

그때까지 이곳에 살던 사람들이 이 건물을 짓는데 얼마나 걸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자연은 그것을 삽시간에 되찾았다. 먼지는 먼지로, 흙은 흙으로 돌아간다.



메시지

오늘 찾아간 황금시대의 육아소는 아이들이 자고 쉬었던 흔적도 볼 수 있었으나 현재는 텅 비어 있다. 나는 행크에게 가져갈 물자 하나를 찾으려 했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하지만 의외의 수확이 있었다...


메시지

이곳의 유리창은 모두 망가졌지만, 방에는 여전히 거주자가 있다. 내가 창턱에서 두 개의 둥지를 찾아낸 것으로 보아, 새들이 이곳으로 날아와 창턱에 내려앉은 것 같다. 이들은 음식물과 털가죽을 물고 뼈와 깃털을 남겼다. 그래서 이 방은 그래도 생기가 있었다.


메시지

짹짹ㅡㅡㅡ


새의 지저귀는 소리가 녹음기를 통해 흘러나왔다.


메시지

그래, 기특한 녀석들, 나중에 다시 보러 올게. 아마 다음에는 통조림을 삶아 남은 국물을 챙기고 올 것이다.



메시지

나는 그 육중한 기계를 고쳤다. 자비에르가 도와준 덕택이다.


메시지

개인적인 욕심 때문에…나는 자비에르에게 부탁해서 인간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탑재했는데, 지금 말하는 것이 약간 소나와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하하…꼭 닮지는 않았지만, 일단 소나가 함께 있다고 생각하자.


메시지

나는 그것을 우리가 담당한 구역의 가장 동쪽 가장자리에 둘 것이다. 그것은 또한 나를 도와 그 자리를 감시하고 방황하는 일부 감염체를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메시지

행크의 극한증은 점점 더 심해졌고…아마도 그는 공중정원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그곳에는 적어도 생명의 별에서 그를 돌볼 수 있을 것이다.



메시지

행크가 철수할 때까지 버티지 못해서 나는 너무나 슬프다.


메시지

자비에르도 떠나고 싶어했지만, 이곳에 남은 피난민들은? 나머지는 어떻게 할 것인가? 퍼니싱 생명체가 이미 이러한 기후에 적응하기 시작했다고 들었고, 전선전쟁이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고 하니, 아마도 나는 상부에 요청하여 가장 한파가 심한 지역으로 이동해야 할지도 모른다.



중간에 긴 공백이 있었고, 그 속에 자글자글한 부분들이 섞여 있는데, 나나미는 빨리감기로 그 엉망진창인 부분들을 다시 되짚으며 들었다. 그것은 쉰 목소리로 부르는 몇 마디의 띄엄띄엄한 가사였다.


메시지

강과 바다를 날아올라;*


메시지

나무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숲들을 넘어;*


메시지

...침묵하는 고요한 산골짜기를 날아;*


메시지

그대 곁으로 향하네...*


*Nick Cave의 노래 To be by your side 가사



메시지

...


메시지

……얼마 전 선배가 전사했다는 전선의 소식을 받았다. 이 전사의 시신은 공중정원에 인계되지 않고, 지구상에 영구히 남았다.


메시지

지구상에 머물면서 나는 수많은 문명의 깨진 단편들을 만났다.


메시지

황량한 도시에 새들이 이동하고 짐승들의 흔적이 잇달아 나타났다. 우리가 이 모든 것의 전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동물들은 점차 이 환경에 적응해나아갔다.


메시지

파오스의 수업시간에…. 교수는 황금시대의 과학자들이 우리의 문화와 역사가 전파와 TV 방송을 통해 영원히 지속될 수 있고, 광활한 우주를 향해 무한히 뻗어 나갈 수 있다고 예측했으며, 어쩌면 어떤 별의 지혜로운 생명체는 이런 메시지를 받게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우리는 여기에 있다. 이것은 우리의 문명이다.


메시지

그러나 인간의 기술이 진보하면서 이사회 과학자들은 이 전파가 2광년이 지나면 영원히 소음으로 변할 것이라고 계산했다. 계산이 정확하다면 우리의 전파는 태양계에서 가장 가까운 신성에도 미치지 못한다.


메시지

그렇다면 10,000년 후, 우리가 한때 이 행성에 살았고 찬란한 문명을 창조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강철은 이미 녹이 슬고 콘크리트는 부서지고 책도 썩어버렸다.


메시지

【지휘관 이름】 선배는 모든 이야기에는 이면이 존재한다고 말했었다.


메시지

'생명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탄력 있고, 비록 내가 더 이상 싸울 수 없다 하더라도 희망은 계속 이어지고, 만물이 흥망하고, 생명의 궤적은 계속될 것이다. 나는 여전히 거기에 속해 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도 만물의 일부이기 때문에, 내가 없어지더라도 생명의 연속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메시지

...


메시지

공중정원은 더 이상 인간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행성인 지구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나는 생명의 연속이 될 수 있도록 남아 있기로 결심했다.


메시지

ㅡㅡ하늘에는 날개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지만 나는 이미 날아갔다.


남은 시간: 00:00:00



녹음이 끝나자 바스락거리는 전기음이 조용히 동화의 끝을 알리는 듯 했다.


차가운 설원 끝에 포복해 있는 이 도시의 끝자락에서 자줏빛으로 얼어붙은 반원형의 차가운 태양이 수축하면서 가라앉았다.


혼미한 세계에서는 힘들이지 않고 나나미를 끌어내리는 무언가가 존재했고, 명백한 현실은 소녀가 만들어낸 환상의 이야기를 산산조각 내버렸다.


나나미

...【지휘관 이름】...?


소녀는 댓글에 단 한 번 등장한 그 이름을 낮게 반복했고, Sniper-PK43은 그녀의 표정을 볼 수 없었고, 감정도 판단할 수 없었다.



Sniper

저는 이미 알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얻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나미.


Sniper

우리는 이미 자유로워졌습니다. 인간이 없으면 우리는 무의미합니다. 그녀가 한 말은 옳습니다.


이때까지 소녀와 동행하던 기계는 망설임없이 말하며, 돌아서서 떠날 준비를 했다.



나나미

너 어디 가려고?


나나미가 그를 잡으려 하자 두 명의 기계체가 서로를 마주보았다. 기로에 선 채 둘 사이를 가로질러 마치 빙하처럼 거센 눈보라가 스쳐지나갔다.


Sniper

전 이미 창조자의 행방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저라는 기계와 연관된 인간은 없으며, 우리의 협력관계도 여기서 종식되는 것입니다.


나나미

너 나나미를 두고 혼자 갈 생각이야?


Sniper

제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 근무를 계속할 것입니다.


나나미

왜 그렇게까지....


Sniper

우리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습니다, 인류는 떠났습니다.


Sniper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Sniper

인류가 내린 명령을 계속 수행하는 것입니다.


Sniper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당신 스스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나미

만약, 만약 그게 사실이라도, 아무리 그래도...


소녀는 눈을 닦은 뒤 얼굴을 들었다. 소녀의 눈을 들여다본 Sniper-PK43은 눈앞의 소녀가 자신의 모든 이야기를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은 그녀의 이야기를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나미

나나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직 남아 있어.


Sniper

...당신의 이야기가 부디 좋은 결말을 맺길 바랍니다.


스나이퍼-PK43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돌아서서 먼 지평선을 향해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