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시야에 드넓은 설원이 담겼다.


 까마귀 지휘관 눈 앞에 펼쳐진 은빛 세계, 그 광활한 백색의 대지, 이 순백의 정토는 인류가 발견한 마지막 대륙인 남극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겨우 인간의 뇌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경치. 그것은 예술협회의 오페라로 표현할 수 없고, 황금시대의 유물도, 극비서류에 간간히 등장하던 겨울 계획 마저도 ‘따위’로 만들어버릴 압도적인 경관을 자랑했다. 이해를 아득히 넘어선 광경은 단순히 '아름답다'라는 말로는 설명이 불가능했다.


 지휘관은 넋을 놓을 수 밖에 없었다. 자연경관에 압도당할 일은 훗날 어떤 금발 구조체와 남극이라도 가지 않는 이상 불가능할 줄로 알았지만, 지금 지휘관은 자신의 지적오만함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것도 잠시, 의식링크의 주인공이 발을 움직여 뽀드득 소리를 내자 지금이 임무도중이라는 걸 깨달았다. 지휘관 쪽에서 먼저 인사를 건내려했지만.


 “…지휘관?”


 감정이 메마른 소녀의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안녕, 21호.”


 “와줬구나.”


 “뭐야, 까마귀 지휘관이야? 진짜 왔잖냐! 야 37, 뭔 짓 한거냐?”


 “21호, 메세지 보냈어.”


 21호의 시선에 잡힌 구조체는 녹티스였다. 나무를 잘 탄다고 소개받았던 구조체였지만 이곳에는 나무가 없으니 녹티스가 진짜 맞는지 확인하기엔 애매했다.


 하지만 그 붉은 머리에 송곳니, 그리고 금방이라도 앞으로 뛰쳐나갈 것 같은 쾌활한 분위기의 남자는 지휘관 기억 상 녹티스가 유일했기에, 지휘관은 케르베로스 소대에게 실행한 의식 링크가 성공했다 판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 없는 사람이 있다.


 “…베라는?”


 지휘관이 그런 당연한 의문점을 제시하자 21호의 시선이 땅을 향했다.


 붉은색.


 붉은 얼룩이 설원에 넓게 퍼져있었다. 비산흔, 그리고 과다출혈. 그런 단어들이 연상되는 불길한 징조가 선명한 형태로 존재했다.


 이건 구조체의 혈액, 순환액이 분명했다.


 “잡혀갔어.”


 시선이 순환액으로 얼룩진 붉은 눈을 넘자, 거대한 건물기둥으로 시추한 것 같은 싱크홀이 있었다.


 “저 아래로.”


 그렇다.


 케로베로스의 대장, 베라는 21호의 말대로 끌려들어간 것이다.


 이 순백으로 덮인 암흑 속으로.





1.



 시간은 꽤 전으로 돌아간다.







 - 지휘관님, 많이 바쁘신 건 알지만 방 청결은 조금만 신경써주시지 않겠어요?


 리브에게서 온 연락에, 지휘관은 뒤통수가 괜시리 가려웠다. 그건 흘러가는 안부인사 같은 말이기도 했지만, 일종의 충고이자 요구사항이기도 했다. 이걸 어디서 들어봤더라, 지휘관은 생각했지만 머리에 한 대 얻어맞은 것 마냥 도통 기억이 나질 않았다. 끔찍한 기억이라도 있었던가.


 ‘그러고보니.’


 분명 얼마 전에 일어났던 상황과 정확히 일치했다. 왠지 모를 데자뷰를 느낀 지휘관이었지만, 별 일 일겠냐며 발걸음을 옮겼다.


 지휘관의 현 마음씨는 직설적으로 말해서, 태평양보다 더 넓었다. 아직 남은 일이 많긴 해도 가장 지루하고 고단한 작전 보고서 제출을 끝마쳤기 때문이었다. 지금이라면 어떤 상황이던 다 받아들일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고개를 실시간으로 들이밀고 있었다.


 그러나 지휘관은 자신 방문을 열고 뒤늦게 깨달았다.


 이 방, 21호가 어지럽히고 나서 청소를 안했었다. 리브의 메세지는 그런 의미였구나, 뒤늦게 자각한 지휘관이었다.


 ‘…청소해야지.’


 지휘관은 한숨을 푹 내쉬고 느릿하게 몸을 움직였다.


 왜 지금에서야 하느냐는 까닭에는 바다와 같은 넓은 이유가 있었는데, 그 이유를 단 한 줄로 요약하자면 결국 ‘시간이 없었던 탓’이었다. 직전 임무의 보고서, 비품 및 부품 사용 내역, 그레이 레이븐 팀 정기 보고서, 추가 보급품 리스트 작성 등 할 일이 잔뜩 쌓여있었기 때문이었다.


 더 정확히 설명하자면, 21호가 어질러놓은 방 안을 치우려고 했다가 너무 많아 보류해뒀던 지휘관은 작전 보고서를 작성할 때 그레이 레이븐 휴게실에서 작성을 했는데, 그 때마다 리의 잔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물론, 그 덕분에 보고서 제출이 단 한 번의 반려 없이도 일사천리로 끝나긴 했지만, 차라리 반려당하는 게 나았을 정도로 리의 지적은 지휘관에게 있어서 침식체들 비명소리보다 더 심했다.


 그렇게 싫은 소리 죄다 들어가며 보고서를 작성하던 지휘관 머릿속에 ‘방청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리가 없었기에, 지휘관은 그 대가를 지금 치뤄야만 했던 것이다.


 방바닥에는 수많은 것들이 떨어져있었다. 오버클럭 재료라던가, 아니면 얼마 전 새로 나온 인간용 의존형 전해액이라던가, 파오스 군사학교 교재들 등등이. 특히 인간용 전해액은 나오자마자 구했는데, 그 이유는 간단했다.


 구조체들의 술은 어떤 느낌일까 했던 것이다.


 구조체는 일반인들과 다르다. 공중정원의 중요자산이기도 하며, 그 몸체의 정신은 인간이지만, 같은 인간으로는 취급하지 않는 미묘한 분위기가 공중정원 내에 팽배했다. 그렇기에 그 기계와 인간 사이의 간극을 매꾸는 것이 지휘관이며, 전해액 또한 구조체를 이해하기 위해서 필요한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건 표면상 이유였고, 그냥 궁금해서다.


 어쨌건 그러한 방 안, 어지러진 물건들 중에서 지휘관의 이목을 끈 것은 다름아닌 책이었는데, 그건 표지만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한, 황금시대로부터 전해내려오는 동화책이었다.


 빨간 망토.


 ‘…아, 이거 그립네.’


 파오스 군사 학교 입학 전 선물로 받았던 동화책이었다. 자연스럽게 펼쳐보자 힘내라는 메시지가 책 첫 페이지에 쓰여있었는데, 지휘관 부모의 필적이었다.


 선물이라고 조심스럽게 손에 쥐어주었던 그 감촉이 지휘관 머릿속에 새록새록 들어왔고. 그 어머니 손의 온기를 다시 되살려보기도 전에.


 “까마귀 지휘관 관찰기록, 오늘도 평소와 같이 왔다.”


 무미건조한 여자애 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분명히…


 “…21호?”


 “대장이 기록하래.”


 지휘관이 등 뒤를 돌아보자 21호가 서있었다. 왜 이곳에 왔어? 라 말하기도 전에 지휘관은 예전 기억이 떠올라, 몸을 빠르게 움직였다. 금방이라도 21호가 고양이 자세를 취할 것만 같았다.


 “일단 들어와.”


 황급히 문을 닫고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도 보는 사람은 없었다.


 “여긴 왜 온거야?”


 “오면 안돼?”


 “그건 아닌데….”


 “지휘관은 욕망에 충실하라고 했어. 그래서 보러 왔어.”


 21호는 까마귀 지휘관을 빤히 바라보았다. 관찰하는 것 같기도, 21호의 협력기계로 사진을 찍으려는 것 같기도 해보였지만 새로운 것이 금세 시선이 뺏기고 만 21호였다.


 “그건 뭐야?”


 “…이거?”


 지휘관이 자신이 들고 있던 책을 흔들자 21호의 시선이 위 아래로 따라움직였다.


 “동화책이야. 빨간 망토.”


 “동화책?”


 “어린 아이에게 읽어주는 이야기지.”


 “꼭 어린 아이만 들을 수 있는 거야?”


 “듣고 싶어?”


 지휘관이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자 21호의 머리가 천천히 기울어졌다. 신체의 한계를 시험하는 마냥 이상하리만치 기울어지더니, 연산이 끝난 듯 다시 원래 위치로 되돌아갔다.


 “응, 21호, ‘듣고 싶다’는 감정을 느꼈어.”


 “좋아. 들려줄게.”


 확실히 21호는 나날이 성장하고 있었다. 비록 ‘동물의 왕국’에서 배운 카멜레온의 구애행각을 따라한다거나, 베라의 살인적인 어투를 따라한다던가 하는 작은 해프닝들이 있었지만, 21호는 스스로의 감정을 자각해나가고 있었다.


 21호는 일주일에 꼭 한 번은 지휘관에게 들리곤 했다. 맡고 있는 임무가 많은 까마귀 지휘관이었지만, 21호가 찾아오면 거의 ‘반드시’라고 해도 될 정도로 시간을 내곤 했다.


 책임.


 그건 어른으로서의 책임 때문이었다. 지휘관은 스스로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 너무나 잘 파악하고 있었다. 신이 흙으로 빚은 형상에 마음을 불어넣듯 21호에게 감정을 불어넣었고, 케르베로스와는 다른 따뜻함도 느끼게 해주었다.


 그러나 따뜻함이란 엔트로피다. 결국 그런 온정도 바스러져간다는 세상의 법칙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경험하지 못했다면 차라리 나았으리라. 그러나 마음 속 한 켠에 따뜻함을 겨우 싹 틔운 이상 지휘관은 그것을 보호해야 했다. 만일 그 싹이 죽어버린다면 마음을 다시는 데울 수 없을테니까.


 지휘관은 책을 펼쳐 빨간 망토 이야기를 해주었다. 빨간 망토를 쓴 소녀가 할머니께 병문안을 가다가 늑대와 만났고, 늑대에게 병문안을 가는 중이라고 말했으며, 늑대가 할머니 댁으로 앞질러 가서 할머니를 잡아먹고, 그 뒤에 온 빨간 망토까지 잡아먹었다는 이야기.


 그러나 지나가던 사녕꾼이 코 고는 소리를 듣고 할머니 집에 들어와 봤다가, 늑대의 배를 갈라 할머니와 소녀를 구하고, 그 후 늑대의 뱃속에 돌을 가득 채워서 죽이는… 그런 내용을.


 “…그래서 빨간 망토는 어떻게 됐어?”


 “다시는 가지 말라고 한 숲길로 다니지 않겠다고 결심했지. 이게 이 이야기의 끝이야.”


 “사람은 잡아먹히면 죽는 게 아니야?”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건가, 지휘관은 머리가 아파왔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하나 고민하던 지휘관은.


 “이건 어린아이를 위한 이야기야. 이러면 안되니까 하지 마세요, 를 각색해서 말해주는거지.”


 “21호, 이해 불능.”


 “하지만 21호, 동화책이란 건 현실을 귀엽게 그려내기에 재미있는거야. 너도 몇 번 더 들으면 분명히 알게 될거야.”


 “그럼 21호에게 알려줘. 21호는 지휘관에게 동화를 듣고 싶어.”


 “…잠깐만.”


 지휘관은 단말기를 꺼내 일정을 확인하고, 이마를 찌푸렸다. 다음 주 부터는 ‘정기 휴일’이 없었던 탓이다. 어느 특정한 날을 잡기에는 상황이 따라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21호의 말을 거절하자니 그건 또 안될 노릇이었다.


 그러니 지휘관은, 하는 수 없이 그 방법을 택했다.


 “21호, 내 말 기억할 수 있어? BPC07*21947B37A”


 “BPC07*21947B37A. 21호 기억했어.”


 “이건 내 공용메일주소야. 리, 루시아, 리브, 카레니나, 비앙카…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구조체가 이 주소로 내게 메일을 보내.”


 “메일? 21호는 그런 거 몰라.”


 “하고 싶은 말을 문자로 전할 수 있는 거야. 21호가 나한테 메시지 보내면 내가 이번 주 일정을 말해줄게. 어떻게 사용하냐면….”


 “지휘관, 여기 있지? 들어갈게.”


 지휘관이 말을 다 하기도 전에 날카로운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해마에 칼자국이라도 난 것처럼 잊을 수 없는… 베라의 목소리였다.


 무슨 말을 채 하기도 전에 방문이 열렸다. 타오르듯 강렬한 붉은 머리칼의 구조체가 지휘관을 부른다.


 “노크라도 해줘서 고맙다는 표정이네 지휘관. 꽤 즐거운 시간 보냈나봐? 아쉽게도 21호는 데려가야겠어.”


 “야 37 나와!”


 “21호, 상시대기중.”


 녹티스의 그 말에 21호는 빠릿하게 움직여 베라의 옆으로 이동했다. 베라는 그 붉은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 정리하며, 지휘관을 향해 미소지었다.


 “장래희망이 보육원 사장님이라도 되나 봐?”


 “난 내 말에 책임을 느끼고 있을 뿐이야.”


 “제 소대도 아닌 구조체에게 느낄 책임이 있었나? 설마 고맙다는 말 기대한 건 아니겠지? 천만에, 얘가 마음에 들었으면 나한테 직접 와서 요구하는 게 좋을거야.”


 “그건 오해….”


 “그럼 안녕 지휘관, 나중에 다시 봐.”


 베라의 가벼운 손 인사와 함께, 지휘관이 뭐라 말할 틈도 주지 않은 케르베로스 소대는 저 복도 너머로 유유히 사라졌다. 지휘관은 한숨을 푹 내뱉었다.


 ‘…일단 정리부터 할까.’


 지휘관은 몸을 움직였다. 어느 정도의 일은 이제 지휘관에게 타격을 주지 못한다. 베라의 가시돋힌 말에 어느 정도 적응한 지휘관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 직후 알림소리가 들려왔다. 메일을 수신했다는 의미였다. 케르베로스 소대가 떠나간지 얼마나 됐다고, 지휘관은 그런 생각을 하며 단말기를 꺼내 확인을 해보았다.


 [ 발신자 : 불명 ]


 [ 내용 :낳ㄴ아ㅣㅓㅈ두,ㅊ ]


 …21호에게서 제대로 된 메시지를 받으려면 오래걸릴 것만 같았다.




 ****


*원래 리묵 이벤트로 참가할 거였는데 도저히 못 맞출 것 같아서, 그냥 느긋하게 쓰기로 함

약 8~10화 정도 될 것 같은데 짬내서 간간히 써봄

지적환영


**리묵 메감도 스토리 이후라 지휘관 신뢰도가 상승해있는 상태,


***욕망에 충실하라는 대사는 21호 음성 '일상안부 15`에서 들을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