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너희들은 내가 이끌어주마.






탁ㅡ.


마침표를 누르자 울리는 키보드의 경쾌한 소리. 내가 쓴 이야기의 끝을 알리는 소리기도 하였다.


“으아... 드디어 다 썼다...”


나는… 별건 없고. 그저 독자다. ‘전지적 독자 시점’을 가장 좋아하는 독자.


더 나아가 ‘전지적 독자 시점’의 창작을 쓰고 있긴 한데… 이걸로 나를 작가라고 칭해도 괜찮으려나? 원작 작가님께는 너무 실례일 거 같은데.


뭐… 내가 쓰는 이야기라고 해봤자, 나의 이야기가 아닌 ‘전지적 독자 시점’의 창작이겠지만 말이다.


옛날부터 ‘전지적 독자 시점’을 보며 상상해온 이야기를 내가 만들어 나갈 수 있던 이 화면을 바라볼 때면,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고 자부할 수 있다.


나에게 있어서 ‘전지적 독자 시점’은 현실 외의 세계, 즉 상상 속의 세계라고 할 수 있었으니깐.


하지만 그 상상 속 세계에도 문제가 있었다. 아무리 많은 활자들이 모이더라도, 넘을 수 없는 벽은 존재했으니.


바로 결말이었다. 결말.


본래 작가가 만들어놓은 결말을 바꿀 수는 없었다. 개연성도 허락하지 않았고, 그 무엇보다 ‘독자’라는 신분은 그 모든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놓았다.


“김독자가 좀 특별한 케이스고.”


문득, 원작에 등장하는 ‘최후의 벽’이 떠올랐다.


「“모든 것은 이미 적혀있고, 동시에 적히고 있다.”」


작중에서 김독자는 이러한 ‘벽’을 넘으면서 그 이야기의 흐름과 결말을 모두 바꿔놓았다.


나도 물론 그 결말을 바꿔보려고 여러 이야기를 쓰는 등의 노력을 해보긴 했다만…


“헛된 노력일 뿐이었지. 아쉽게도.”


아직도 끝맺음을 이루지 못하고 버려진 창작들이 내 머릿속에서 맴돈다. 어떻게든 끝까지 끌고 가려고 했던 이야기들이.


‘아으. 이런 생각들을 해서 뭐해.’


나는 부정적인 상념을 떨쳐내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유난히 오늘따라 밤하늘에 떠오른 별이 빛나 보였다.


“만약, 내가 이야기 안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면...”


아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기나 하겠냐고.


“에잉. 잠이나 자자.”


.


.


.


.


그리고, 그때. 나는 플래그를 세워서는 안 됐다.



*



짹짹짹ㅡ!


아름답게 울려 퍼지는 새의 지저귀는 소리. 그리고 창가를 건너 따스한 햇볕이 나에게 비치고 있었다.


나는 그 따스한 손길을 거부하기 위해 몸을 뒤척이며, 어떻게든 그 햇볕을 피하려 안간힘을 썼다.


빠아아아암ㅡ!


두둥 두둥ㅡ


하지만 그것도 잠시, 멀리서 들리는 웅장한 나팔 소리와 드럼 소리가 나의 기상을 알리고 있었고, 나는 그 소리에 못 이겨·····


잠깐, 뭐라고?


나팔 소리와 드럼 소리?


나는 살짝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았다.


에? 여긴 내 방이 아닌데?


[여긴... 어디야?]


난 졸린 눈을 비비며, 다시 한번 방 안을 둘러보았다.


근데… 보이는 것이라고는 눈이 부실 정도로 순백(純白)으로 가득 찬 벽면과, 그 반대에는 수많은 책들로 가득찬 책장.


다른 건 없었냐고?


놀랍게도, 그게 끝이었다. 


내가 어제만해도 만지고 있던 노트북과 컴퓨터는 온데간데 없어졌고, 더군다나 창밖으로 보이던 도시는 어디 갔는지, 오직 새하얀 건물들만 가득했다.


모든 게 낯선 곳.


가장 큰 문제점은, 그 낯선 곳에서 홀로 잠들고 일어났다는 것.


[······조졌네.]


나는 이것이 꿈인지, 현실인지를 가늠하기 위해 팔을 들어 시계를·····


[······어라?]


내 손이 이렇게 작았던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마치 어릴 때로 회귀한 것 마냥, 몸 전체의 길이가 짧아져 있었다.


째깍. 째각.


그 와중에도 멀쩡히 돌아가고 있는 시계는 이것이 현실임을 자각시켜 주었다.


‘도대체 내게 무슨 일이...’


그렇게 엄청난 광경에 충격을 받고 있을 무렵, 내 방에 있던 문이 열렸다.


[누구······?]


[짜잔!]


내 질문에 문을 잡고 고개만 푹 내밀고는 해맑게 웃고 있는 여자아이가 보였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머리 위에 샛노랗게 빛나고 있는 링. 그리고 그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을 만큼 새하얀 천으로 만든 옷.


아름다운 외모와 함께 빛이 나는 에메랄드 눈동자를 가진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였지만, 그 누가 봐도 그 여자아이가 천사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을 거다.


그녀의 정체를 곰곰이 생각하고 있던 그 순간.


번뜩, 그녀가 누군지 떠올랐다.


[우리엘?]



*



만약, 주인공으로 빙의하게 된다면?


정해져 있는 길만을 따라가도 되고, 심지어 그 길을 벗어난다고 하더라도 언제든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그런 포지션이 되는거지.


나도 그럴 수만 있다면 좋았겠지... 좋았겠는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거울을 바라보자, 중학생 정도의 체구를 가진 금발 머리의 남자아이가 내 눈에 들어왔다.


[왜 이런 미친■한테 빙의를 한 건데!]


난 놀란 마음을 진정하고, 다시 한번 거울을 바라보았다.


[와... 이게 맞아?]


헝클어진 머리에도 엄청난 미모를 뽐내고 있는 아이가 거울 앞에 서 있었다.


그것뿐만이겠는가? 가만히 있어도 나 자신에게 느껴지는 격조차 내가 빙의한 이 아이가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몇몇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원하는 대로 성좌가 되었고, 최강이란 스펙도 얻었네! 근데 뭐가 문제인데?’


뭐가 문제냐고?


나는 눈을 돌려 해맑게 나를 부르고 있는 우리엘을 보았다.


[언제까지 누워있을 건데! 미카엘!]


미카엘.


대천사인 ‘타락의 구원자’이자, 마왕인 ‘타락 천사들의 왕’이라고 불리는 이.


훗날 <에덴>에서 김독자에게 대항하는 성좌 중 하나로, 작중 후반에는 메타트론과 함께 엄청난 트롤을 저지르는 성좌.


그리고 그 엄청난 트롤을 벌일 미카엘이, 바로 내가 빙의한 성좌였다.


‘뭔 이런 개같은 일이·····’


후... 진정하자고 진정.


일단은 우리엘의 물음에 답해주기로 했다.


[아, 아무것도. 그것보다 무슨 일이야, 우리엘?]


[슬슬 나와야 하지 않을까? 다들 기다리고 있는데.]


기다리고 있다고? 


저기서의 기다림이 무엇을 뜻하는지 묻기에는 내 정신이 너무 혼란스러웠다.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거울을 바라보았다.


‘봐도 봐도 익숙해지질 않네.’


하필이면 잘생긴 것도 문제란 말이야.


[미카엘...]


그때, 우리엘이 내 팔을 콕콕 찌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진짜 무슨 일 있어?]


[어? 아니?]


하지만 내 답변에도, 우리엘이 의심스러운 듯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뭔가 이상해. 너 항상 날 부를 때마다 ‘미친■아’라고 부르잖아. 근데 웬일로 제대로 불러주는 거야?]


[응? 내가 그랬다고?!]


우리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미카엘 미친놈. 도대체 평소에 이렇게 착한 우리엘에게 어떤 식으로 대했으면… 이러니깐 작중 후반부에 우리엘이랑 사이가 안 좋지.


잠깐. 후반부라고?


미처 깨닫지 못한 게 있었는데, 여긴 본래 ‘전독시’의 세계관이랑은 무언가 달라 보인다.


설마…


[우리엘. 지금 몇 번째 지구 시나리오가 진행 중이지?]


[지구 시나리오? 그건… 나오려면 한참은 남았는데?]


[■발. 뭐?!]


빙의한 시점이 시나리오 진행 중도 아니고, 한참 전이라고? 매우 과거?


입을 벌리곤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는 우리엘이 보였다.


[미카엘. 진짜, 정말로 괜찮은 거지?]


[어? 어. 물론이지.]


라고 말했지만, 내 등에는 식은땀이 가득 흘러 내려오고 있었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


이세계와 같은 곳으로 빙의한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항상 상상해왔던 일이 실제로 일어나니깐 신기하긴 한데... 거기까지가 끝이다.


게다가 성좌 중에서도 최상위 중 한 명으로 빙의했으니깐 좋지. 좋긴 하지만...


일단. 이 상황엔 문제점이 있었다.


우선, ‘전지적 독자 시점’에 나온 정보 중 일부분만 쓸 수 있다는 것. 작중에서 김독자가 말해주는 정보들은 모두 시나리오 진행 중에서만 쓸모 있던 정보였다.


그리고, 어떤 등장인물에 빙의한다고 해서 언젠가 죽을 운명인 인물에게 빙의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미카엘은 소멸한다고. 소멸을.’


그때, 우리엘이 앓는 소리를 냈다.


[언제 갈건데. 너 때문에 내가 혼나겠다.]


뾰루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우리엘.


이때의 우리엘은 착했나보다. 새삼 미카엘을 다 기다려준다니.


난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잠깐만. 이 상태로 가기엔 좀 그럴 거 같고… 그래. 이거면 되겠다.]


그러고는 의자에 걸려있던 어느 코트를 입어보았다. ‘무한 차원의 아공간 코트’는 아니었고, 하얀색과 금장이 섞여 있는 코트였다. 살짝 김독자의 코트가 <에덴>의 에디션이 된 기분?


[미안. 이제 슬슬 가자.]


날 따라오려던 우리엘이 멈칫하더니, 나를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얘는 왜 자꾸 날 이렇게 쳐다보는 걸까?


[또 왜.]


[네가 같이 가자는 소리를 한다고?]


이게 뭔 소리인감?


우리엘이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말했다.


[너한테 항상 같이 가자고 하면 혼자서 갔잖아.]


[...미안하다.]


망할 미카엘. 얼마나 인성이 썩었으면.


나는 손을 휘휘 저으며, 멀뚱멀뚱 서 있는 우리엘을 두고 방 밖으로 나갔다. 그러고는 몇초도 안되서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뭐야. 왜 돌아왔어.]


[...어디로 가야 하더라.]


[허.]


왜. 나도 여긴 처음이라고.


.


.


.



[······아니. 그때 가브리엘이 있잖아!]


[그랬어?]


[그랬다니깐!]


수다를 떨면서 폴짝이는 우리엘. 소설에서 봤던 것처럼 참으로 귀여운 모습이었다. 성격은 좀 달라진 거 같긴 하지만.


어쩌다가 이런 귀여운 천사가 미카엘과 원수(怨讐)가 되었을까.


[그것보다, 이번에 <올림포스>에서 내려온 거 알지?]


음?


[<올림포스> ■끼들은 왜 내려오는데?]


[...너 오늘따라 이상해.]


[잠시 까먹어서 그런 거야 까먹어서.]


우리엘이 한숨을 푹 쉬더니 설명을 시작했다.


[‘성운 지원 시스템’. 상위 성운들이 우리 에덴 같은 약(弱) 성운들을 지원해 준다는 명분으로 만든 시스템이잖아. 하는 거라곤 맨날 간섭하는 거밖에 없긴 하지만.]


에?


‘전지적 독자 시점’에는 3강(强), 4중(中), 5약(弱)으로 이루어진 12대 성운이 존재한다.


근데 그것보다, 뭐?


[에덴이 약(弱) 성운이라고?]


<에덴>이 어떤 성운인가?


그 수많은 선(善)을 기반으로 한 성운들의 대표격 성운이 아니겠는가? 물론 12대 성운 중에서 가장 강력하다고 자부할 수는 없다만, 그래도 지구에서 가장 유명하다던 성운들인 ‘올림포스’, ‘아스가르드’와 함께 나란히 하고 있던 것이 <에덴>이다. 


근데 이런 성운이 최하위인 약(弱)에 속해있다고?


이러니깐 우리엘이 이렇게 얌전하지! 원래 <에덴>에 간섭한다고 하면 바로 날뛸 성좌들 중 하나가 우리엘인데!


게다가 우리엘의 말에 따르면 주변 성운들 때문에 더욱 <에덴>이 위축된 거 같ㅡ


잠깐. 내가 뭐라고 했지?


...주변 성운들 때문에?


‘이거 뭔가 익숙한 배경인데.’



*



ㅡ <에덴>이 약(弱) 성운이 되었다고?


빙의 당하기 직전인 어제 썼던 글이자,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간단한 주제로 만들어둔 단편.


달라진 대천사들의 성격, 그리고 최악으로 치닫는 <에덴>의 상황을 가정해본 이야기였다.


근데, 좀 신기한 설정이 있는데...


모든 <에덴>에 속해있는 성좌들의 격이 낮아졌다는 설정이 있는 한편, ‘미카엘’ 그 녀석만 그런 설정을 넣어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왜. 조커 같이 예상할 수 없는 녀석이 있어야지 이야기가 재밌어지는 편이지 않나? 애 성격도 딱 조커랑 어울리는 거 같고.


쨋든, 지금 상황은 분명히 내가 썼던 이야기와 같은 서사였다.


「<에덴>. 작중보다 약해진 상태로, 다른 성운들의 간섭을 받고 있는 상태임.」


지금 상황도 똑같다. <올림포스>뿐만 아니라 다른 성운들에게도 간섭을 받은 흔적이 있으니깐.


'어라?'


갑자기 번뜩 떠오른 생각인데... 지금, 내가 쓴 이야기 자체에 빙의했다는 건가?


그럴 리가. 이게 무슨 라노벨 같은 전개야.


[저번에는 베다에서 우리한테······]


...라고 하기엔 옆에서 신나게 설명을 하고 있는 우리엘의 모습도 내가 쓴 성격과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었다.


「우리엘. 본래 냉담한 성격과는 다르게, 이 세계관에서는 모두에게 친절하며 상냥한 모습을 보여줌.」


왜 지금 이걸 떠올린 것일까. 진작에 깨달았으면 좋았을 것을.


만약 진짜 내 가설이 맞다면… 이 세계관의 상황은 내 이야기로 인해 벌어졌다는 거잖아.


작가로서 이 일을 무시할 수도 없고. 이거 참 난감한······


아니지. 생각해보자. 나는 미카엘이잖아? 얜 가지고 있는 능력이 그대로일 텐데?


「미카엘. ‘전지적 독자 시점’에 나온 그대로의 성격과 스펙. 일명, <에덴>의 최강자.」


어제 글을 쓰던 나의 지혜에 감사를 표한다.


역시 기특하다니깐. 


덕분에, ‘힘’과 관련해서 신경을 쓸 정도가 줄어들었다. 오자마자 수련에 들어가야 되는 줄 알고 식겁했네.


‘그래도, 우선으로 해야될 건 있지.’


옆을 돌아보자, 나에게 열심히 <에덴>의 상황을 설명해주고 있는 우리엘이 보였다.


[······아무튼. 이번에는 올림포스니깐 설화급 성좌들한테…]


우리엘에게는 미안하지만, 지금부터는 미카엘처럼 행동할 필요가 있었다.


[정리하자면, 올림포스 그 ■끼들이 우리 <에덴>에서 날뛰고 있다는 거지?]


[어? 그렇지?]


[허. 본작에서도 훼방을 놓는 ■■끼들이 여기에서도 난동을 피우고 있어? 그것도 내 앞에서?]


[본작?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런 게 있어.]


난 눈을 감고는, 마음속으로 ‘나는 미카엘이다’를 반복해서 외쳤다. 마치 선동을 쓴 것처럼 말이다.


‘곧 미카엘이 나고, 나는 곧 미카엘이다. 나에 대한 공격은 미카엘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 아니, 이게 아니지.’


그렇게 반복된 세뇌 끝에, 내가 미카엘과 한 몸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때쯤.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후...]


그 누구든지 <에덴>을 건드리는 새끼가 있다면.


[그 ■끼는 나한테 ■지는거야.]


쉬이이익ㅡ!


나는 당황하고 있는 우리엘을 뒤로하고 재빨리 집합 장소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야! 미카엘! 어디 가!]


뒤에서 애타게 나를 부르는 우리엘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못들은 체하고는 계속 앞을 향해 달렸다.


한시라도 빨리, 이 분노를 해결할 구석이 필요했으니깐.



*



[미안하다, 미카엘. 너한테 미친■이라고 해서.]


잠시 눈을 감고 이 몸의 본래 주인에게 감사를 표하였다.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는 미카엘에게 빙의한 게 다행이다. 그 어떤 일을 저지르더라도 ‘미카엘’이라는 이름 하나에 모두 납득이 되니깐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알기론 지금 <에덴>의 성좌들 중에서 다른 성운에 비빌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한 성좌는 미카엘 뿐이었다. 다른 성좌들은 모두 보유한 격이 낮으니깐.


‘이제 보니깐 미카엘이 선녀였네.’


우선은, 이 망할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미카엘 그 자체가 될 필요가 있었다. 어설프게 행동했다간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었으니.


[네 의지를 이어주마. 진짜 미친 새■가 뭔지 보여주지.]


‘작가의 광기가 뭔지 보여주마.’


것보다, 내가 가장 화나는 부분이 있었다.


내가 <에덴>을 약하게 만든 게 맞기는 하는데. 뭐? <올림포스> 그 새끼들이 왔다고?


[아무리 약해도 그런 ■끼들한테 휘둘리면 안 되지.]


뇌가 거기에 달린 녀석들한테는 들을 얘기가 없다고.


‘생각할수록 화나네?’


[아이그! 다른 대천사들은 뭐 하고 있길래 이런 일이 일어난 거야!]


마치 내가 미카엘이 된 듯이 씩씩거리며 건물의 정문으로 다가서자, 문틈으로 <올림포스>의 성좌가 슬쩍 보이는 듯했다.


그렇게 문을 나서자, 우렁차게 들리는 한 성좌의 진언.


[그래서, 저. ‘흉포의 군신’은 에덴 여러분께 실망 하였기에············]


‘흉포의 군신’은 누구지? 기억도 안 나는데.


근데 저 미친놈이 지금 우리 애들한테 뭐라고 하는 거야? 보자 보자 하니깐...


나는 수많은 천사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향하였다.


터벅. 터벅.


그 어느 때보다 진중한 발소리가 집합소에 고요히 퍼져나갔다.


[어... 미카엘?]


나를 부르는 천사들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였다. 그리곤 온갖 표정을 구긴 상태로 앞에 서 있는 성좌에게 다가서자, 그 성좌는 이상한 사람을 보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천사 여러분께서는····· 음? 너는 누구지?]


[넌 누구냐?]


건방진 나의 태도에 성좌는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더니, 답을 해주었다.


[난 ‘흉포의 군신’이다. 주변에서는 나를 아레스라고 부르지.]


아. 네가 아레스구나. 그 김독자한테 발린.


[그래서 너는 누구지?]


[미카엘.]


[······그게 끝인가?]


[그래.]


‘뭘 이리 물어보는 게 많아.’


난 아레스의 말에 대충 답을 해주곤, 주먹을 쥔 손에 온 힘을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집중시켜 보았다. 그리고 아레스 옆에 있던 벽을 내리쳐 보았다.


쾅!


왜 쳤냐고?


일단 내가 얼마나 강한지 봐야될 거 아니야.


[어… 이정도면 쎈건가?]


오직 단 한번의 정권 지르기에 벽이 뚫린 것이 보였다. 물론 엄청난 힘이긴 한데… 이상하게도 작중에서 나타난 미카엘의 힘보다는 약한 거 같았다.


‘벽이 무너져야 되는 게 정상 아닌가?’


아니다... 내가 쓴 이야기니 불만을 표할 수 있겠는가. 내가 감당해야지, 내가.


[이게 무슨...]


자신 옆으로 갑작스레 주먹이 날아온 아레스는 당황스러워 하고 있었다.


바보같이 이거 가지고 놀라기는.


그때, 멀리서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미카엘! 거기서 뭐 해!]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우리엘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


[빨리 왔네?]


[같이 가자니깐… 너도ㅡ 힉!]


나에게 다가오던 우리엘이 아레스를 바라보고는 내 뒤에 숨었다.


[왜 그래? 우리엘?]


[저...저기...]


우리엘이 가리킨 곳을 바라보자, 있는 표정이란 표정은 다 구기고 있는 아레스가 보였다.


저거 화난 거 맞지?


[감히. 이 ‘전쟁과 투쟁, 군인의 신’의 앞에서 무슨 짓을·····!]


맞네, 화난 거.


저거 봐라? 찡그러진 얼굴이 더 무섭네.


아마도, 아레스는 자기 말에 설렁설렁 대답한 녀석이 힘자랑을 해 보였던 게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심지어 그 상황에서 아무렇지 않게 다른 이와 말을 하고 있었으니…


그래도 화낼거면 우리엘이 오기 전에 화내지 그랬냐.


이거 봐봐. 우리엘 놀라서 움츠러들었잖아. 이래서 <올림포스> 녀석들이란… 매너가 없어요. 매너가.


쿠구구구궁ㅡ!


그래도 전쟁의 신이라는 게 그냥 붙은 말은 아닌가 보다. <에덴>의 일대가 그의 분노로 인해 흔들리는 게 느껴지고 있으니깐.


[어이. 내 말을 듣기는 하는 건가? 도대체 ‘하늘의 서기관’은 무엇을 하고 있길래...]


꼭 분조장 캐릭터들이 이런단 말이지. 갑자기 급발진을 밟고. 참 진부하단 말이야. 맨날 이 몸이 어쨌다니 저쨌다니······


잠깐. 이 새끼 방금 서기관 건든건가? 선 넘네?


넌 뒤졌다.


[대충 말로 끝내려고 했는데...]


난 어깨의 관절을 뿌드득 거리며 아레스에게 물었다.


[전쟁의 신이시라고요?]


[그렇다! 이 몸은 그 누구보다 강한······]


그래.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그놈의 클리셰 대사들.


난 슬슬 주먹에 힘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그러면, 저보다 높으신 거겠네요?]


[당연한 소리를······!]


옳지. 옳지.


그 말이 나와주셔야지.


난 씨익 웃고는, 그대로 아레스에게 주먹을 내질렀다.


[그러면 이건 하극상이다, 이 ■■끼야!!]


퍼어어억ㅡ!


나의 외침과 함께 주먹이 아레스의 미간을 정확하게 강타한 그 날.


천국(天國)에서의 나의 데뷔식이 화려하게 치뤄지는 순간이었다.


털썩.


아레스는 그대로 뒤로 쓰러졌다.


[어우. 얼굴 하나 참 단단하네.]


난 손에 묻은 아레스의 피를 슬쩍 소매에 닦아내며 말했다.


[네가 뭔데 우리 에덴 애들을 가르치고 있어.]


쓰러져 정신을 잃은 아레스를 뒤로하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인생을 살면서 보았던 수많은 하늘 중에서 그 어느 때보다 푸르른 하늘이 보였다.


[미...미카엘? 무슨 짓을 한 거야…?]


[할 일을 한 거지. 이 ■끼는 맞아야 돼.]


고개를 숙여 천사들을 바라보니, 우리엘을 포함한 모든 천사가 경악하며 날 쳐다보고 있었다. 이거 참. 내가 무슨 대단한 일을 했다고.


아름다운 하늘과 함께 나에게 집중된 분위기까지. 이래선 이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걱정 마. 에덴은 내가 책임진다.]


 <에덴>의 위상이 부활할 때까지, 너희들은 내가 끌고 가주마.


후다다다닥ㅡ!


그 순간, 멀리서 소리를 치며 내게 달려오는 여러 개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미카엘 이 미친 ■끼야!!!]


저거 대천사들 아니야? 가브리엘, 요피엘... 그리고 저건 라파엘인가? 저 뒤에는 생김새로 봐선 서기관인 거 같은데.


것보다, 쟤네 왜 이렇게 살기를 풍기는ㅡ


쉬이이잉ㅡ!


[어이구? 검까지 꺼내?]


아무리 반가워도 그렇지····· 참 환영식 하나 거하게 치러주시네.


[······너 잡으러 온 거 같은데.]


그걸 누가 모르겠어.


에휴······. 도망부터 가자. 도망부터.


내가 살아야 네놈들을 일으키든지 말든지 하지.


난 목숨을 걸고, 내 인생 최대의 속도를 내며 뛰기 시작했다.


후다다다닥ㅡ!


[거기 안 서!!]


[히이익!]


빙의 첫날부터 쫓기다니.


신이시여. 제게 왜 이런 시련을.









<아스모데우스가 되었습니다.>와 <화산귀환>을 보고 생각난 이야기야.

...이번에는 완결까지 쓸 수 있겠지?


앞으로 나오게 될 호칭인 '나'와 '미카엘'은 혼용 되어서 사용될 수 있어. 헷갈리지 말아줬으면 해.

그리고, 언제든지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봐줘. 개연성에 안 맞는 게 있는 거 같으면 말해줘도 괜찮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