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적이는 지하철역 안.
어느 한 벤치에 자리를 잡은 한수영은 그곳에서 후드티를 뒤집어쓴 채로 가만히 노트북만을 지켜보고 있었다.
「············」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공백.
보이는 것은 공백이었지만, 수십 번을 써 내리고, 지우고를 반복한 결과가 이것이었다.
김독자를 위한 이야기를 쓰겠다고, 그를 기억하기 위한 이야기를 쓰겠다고 다짐한 그녀였지만, 이번만큼은 무엇을 써야 할지, 어떤 이야기를 써야 할지조차 생각나지 않았다.
경험한 것을 토대로 쓰면 된다?
바보 같은 소리. 그게 간단한 줄 아나.
누군가의 일대기를 쓴다는 것은, 끝나지 않을 이야기를 쓴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100편으로도, 더 나아가 1000편으로도 부족할 그런 이야기 말이다.
물론, 그게 김독자가 원하는 이야기이긴 했지만······
- 딱 내 취향이네.
“······.”
이런 생각을 떠올릴 때면, 항상 그 얄미운 미소를 짓고 있는 김독자가 생각났다.
불평해도, 화를 내도, 웃음을 지어도 언제나 그 미소를 짓고 있던 김독자의 모습이.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이 떠오를 때면, 가까스로 생각난 것들이 새하얀 도화지로 변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한수영은 눈을 찡그리며 생각했다.
과연, 그녀가 이 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는 것일까. 그녀 자신에게 그럴 자격이 있는 것일까.
수많은 생각이 그녀의 상상력을 옥죄어왔다.
“······지랄 마.”
그런데도 한수영은 입술을 질끈, 문 채로 다시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그녀는 작가다. 모든 이야기를 주도하고, 이끌어내는 작가.
한낱 생각 따위, 그 누구보다 간절한 작가의 마음을 꿰뚫을 수는 없을 게 분명했다.
ㅡ 타닥. 타닥.
수도 없이 들리는 소음 사이에, 한수영의 타이핑 소리만이 울려 나갔다.
조금 전에 무엇을 적을지 고민했던 사람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빠르게 써 내려져 가는 글.
“아, 네! 부장님! 지금 가겠습니다!”
“엄마. 이건 뭐예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도, 한수영은 한 명의 광인(狂人)처럼 다른 곳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오직 그녀가 쓰고 있던 글자들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쓰여진 이야기.
하지만 무언가 만족스럽지 않은지, 한수영은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이렇게 되어선 안 돼.”
한수영은 지금까지 써왔던 이야기를 전부 드래그한 다음, 삭제 버튼을 눌렀다.
ㅡ 탁!
맑고 경쾌한 소리. 하지만 그 소리는 모든 것을 무(無)로 돌리는 소리기도 하였다.
원점. 다시 원점이었다.
이렇게나 많이 이야기를 처음으로 되돌려 보았던 적이 또 있었을까. 아마도, 그녀가 펜을 잡고 처음 이야기를 써보았을 때를 제외하고는 없었을 것이다.
“하아아······.”
한수영의 입가에선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몇 번은 김독자의 엄청난 활약을 중심으로 써보았다. 그리고 또 몇 번은 주변 인물을 중점으로 써보았다.
그리고, 그 끝은 언제나 같았다.
ㅡ 탁!
원점. 그 망할 원점이었다.
“······도대체 뭘 써야 하는 건데...”
시나리오가 진행되어 왔던 그 시간. 자그마치 50년이 넘는 세월이었다.
하지만, 말이 50년일 뿐. 그 모든 세월을 김독자와 함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오직 4분의 1도 안되는 시간. 그 시간 동안만 김독자와 함께 있었으니깐.
한수영은 주먹을 꽉 쥔 상태로 고개를 숙였다.
김독자랑 더 오랜 시간 동안 함께 있었으면 어땠을까. 그가 시나리오를 해쳐오는 길을 도와주고, 그가 힘들어할 때는 곁에서 토닥여주고. 언제나 그의 편에 서서 결말을 향해 나아갔으면.
그랬더라면 김독자는 그곳에 홀로 남는, 그런 선택은 하지 않았을까.
더 올바른 방법을 찾아······ 모두의 곁에 함께 있어 주었을까.
꽈악.
한수영이 쥐고 있는 주먹에 더욱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지금 그녀가 바라는 것은 많지 않았다. 그저, 김독자가 이 세계로 돌아와 주는 것.
그리고, 그녀와 함께 지금 쓰고 있는 이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것.
오직. 오직... 그것뿐이었다.
“······망할 녀석.”
한수영의 눈동자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왜······. 왜 그런 선택을 해서.
한수영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툭. 툭.
한수영은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었다.
슬퍼서 그랬던 것이 아니다. 그저 원망스러웠을 뿐이었다.
모두를, 그리고 자신을 두고 간 그런 김독자가.
한수영은 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떠들썩했던 역에는 오직 그녀만이 남아있었다.
아무도 없이, 이야기가 써질 노트북 하나만을 들고 있는 그녀만이.
“······.”
오직 자신만이 이곳에 있다는 사실에, 그녀는 싸늘하고도 고독한 마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한수영은 다시금 노트북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끝나지 않을 이야기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그녀보다 더욱 고독하게 있을 이를 생각하며.
자신만을 기다리고 있을... 그를 생각하며.
ㅡ 탁!
타이핑을 끝낸 한수영은, 희미해지는 시야 사이로 그녀가 쓴 마지막 문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지을 수 있는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언젠가는 이 이야기가 그녀에게 찾아오길 바라면서.
「기다리고 있을게, 김독자.」
대략 1~2시간? 정도 써본 독백 연습.
본래는 글 하나에 최소 3일은 투자하는 편이거든.
피드백 부탁해! 아직 묘사 같은 게 많이 부족한 거 같아서... 독자분들과 창작러분들의 평가를 들어보고 싶어.